권하윤은 주위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원망했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그 소리에 민도준은 얼른 권하윤을 잡아당겨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손가락으로 이마를 쿡 찔렀다.“어쩜 눈만 팔면 사고가 나?”권하윤은 억울한 듯 끙끙거렸다.“저는 얌전히 있었다고요. 도준 씨가 늦게 왔으면서 왜 저한테 뭐라 그래요?”두 사람의 대화에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모두 민도준이 책임이라도 물을까 봐 잔뜩 긴장해서는 머리를 다친 민승현은 까맣게 잊어버렸다.심지어 강민정이 여러 번 소리치고 나서야 민승현을 일으켜 세웠다.민도준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민승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컴컴해진 눈앞이 다시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민도준 팔짱을 끼고 애교 부리는 권하윤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그걸 눈치챈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렸다.“오, 이렇게 빨리 회복됐어? 그럼 어디 말해 보지 그래? 방금 하윤 씨 끌고 가서 뭐 하려고 했어?”민승현은 자기 이마를 닦아 주는 강민정을 뿌리치더니 비틀비틀 일어나서는 민도준과 눈을 마주했다.“약혼식도 올린 사이에 내가 권하윤 끌고 가는 게 뭐 어때서? 그러는 둘째 형이야말로 제수씨가 될 뻔한 사람과 드레스나 맞추러 오는 게 대체 뭐 하자는 건데?”민승현이 민도준에게 한 말을 듣고 있던 강민정은 순간 겁이 덜컥 나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민도준과 권하윤을 번갈아 봤다.그리고 그때, 민도준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권하윤을 끌어안았다.“아. 제수씨가 혼자 외로운 것 같아 결혼해서 네 형수님 시켜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둘이 아는 사이니까 앞으로 친해지기도 편하고. 자, 둘째 형수님이라고 불러 봐.”제수씨? 둘째 형수님?이 강렬하고도 충격적인 내용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순간 놀라거나 동정하는 눈빛을 받게 되자 민승현은 피가 흐르는 입을 틀어막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위로라도 하는
민도준은 그제야 시선을 드레스를 입은 권하윤에게로 돌렸다. 하지만 민승현과 실랑이를 벌인 탓인지 넥라인이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민도준은 손가락으로 슬쩍 정리해 주더니 권하윤의 쇄골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이게 마음에 들어?”“아까는 괜찮았는데 도준 씨가 맨 처음 본 사람이 아니라서 싫어요.”그 말이 민도준의 기분을 좋게 해준 모양인지 이내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좋아, 그럼 다른 거 보자.”그러더니 옆을 쓱 보며 질문했다.“또 어떤 스타일이 있어요?”아까까지만 해도 피비린내가 서린 폭군 같던 사람이 갑자기 이토록 부드럽게 드레스에 관해 물어보는 게 갭이 너무 커서 직원은 약 2초간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겁에 질린 듯 앞으로 걸어갔다.“어. 이 옷처럼 비단으로 된 드레스가 또 여러 벌 있는데 보여드리죠…….”잠시 후, 민도준은 다리를 꼰 채 앉아 직원이 소개하는 드레스를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반면 권하윤은 민도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 시간은 드레스를 보는 게 아니라 민도준을 훔쳐봤다.아마도 이 모든 게 너무 현실감 없는 화면이라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슬쩍 훔쳐보고 시선을 돌리려 하는 순간 마침 민도준에게 들키고 말았다.“같이 드레스 맞추러 온 거지 나를 구경시켜 주려고 온 거 아닌데.”권하윤은 그런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민도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신나서 그러죠.”이윽고 자기의 작은 손을 민도준의 손안에 넣으며 꽉 잡았다.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던 끝에 권하윤은 궁중 요소가 섞인 비단 드레스를 선택했다.피팅룸에서 직원은 권하윤이 옷을 입는 걸 도와주고는 이내 감탄을 자아냈다.“신부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피팅 미러에 비친 여인은 한 손에 잡힐듯한 가는 허리를 자랑하고 있었고 바닥까지 축 드리운 드레스가 로맨틱한 라인을 그렸으며 가슴 부근에 살짝 더해져 있는 레이스가 마침 화룡점정의 효과를 냈다.분명 아직은 피팅룸 안에 있었지만 권하윤은 자기가 민도준 앞으로 걸어
공태준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와 동시에 좋던 기분도 한순간 흩어져 버렸다.이내 일어서 뒷걸음친 권하윤의 얼굴에는 경계가 가득했다.“경성에는 언제 왔어? 왜 여기 있는 거지?”“오늘 아침 도착했어요. 윤이 씨가 보고 싶어서 여기 왔고요.”권하윤의 날 선 말투와 달리 공태준의 어조는 여전히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웠다.하지만 예전에 너무나 많은 걸 겪은 터라 공태준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왠지 모를 공포감이 들었다.물론 겪은 일 때문인 것도 있지만 지금껏 지내오면서 느낀 공태준이란 사람 자체가 두려웠다.언제나 남의 약점을 찾아내 한 걸음 한 걸음 그 사람을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트리는 위험한 사람이었으니.“지금 봤으니 돌아가.”말을 마친 권하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그런데 그때.“오빠 보고 싶지 않아요?”공태준의 말에 권하윤은 순간 멈칫하더니 충격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고개를 홱 돌렸다.“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 오빠를…….”“오해했어요. 그냥 영상으로 보겠냐는 뜻이었어요. 저 윤이 씨 오빠한테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겁먹을 거 없어요.”권하윤은 공태준을 빤히 바라봤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공태준의 입에서 자기 오빠가 나왔다는 공포감이 남아 있었다.결국 눈을 꾹 감으며 한참을 진정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 손에 우리 오빠가 있다고 나 경고하는 거야?”“아니에요. 윤이 씨 가족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약속했잖아요. 전 한 입으로 두말 안 해요.”공태준의 말 속에 섞인 위선적인 선의에 권하윤은 토가 쏠렸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가족 때문에 공태준과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무슨 영상?”공태준의 체온이 담긴 핸드폰 하나가 권하윤의 손에 건네졌다.각도를 보니 몰래 찍은 것인 듯했다.영상 속 이승우는 바이올린을 안고 있었다. 동생 이시영이 옆에서 자꾸만 재촉했지만 이승우는 끝내 바이올린을 켜지는 않았다.오빠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권하윤은 잘 알고 있다.8살
“거절할게.”허황한 행복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환영처럼 쨍그랑 깨지고 말았다.그리고 그 순간 권하윤은 싸늘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아빠도 돌아가시고 식구들은 진작에 흩어졌어. 집도 진작에 없어졌다고. 게다가 당신이 말한 것들, 도준 씨도 똑같이 나한테 줄 수 있어.”공태준은 열쇠를 쥔 손을 툭 아래로 떨구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듯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하지만 차분한 눈에 조금 쓸쓸함이 더해졌다.“보아하니 민 사장님과 관계가 많이 좋아졌나 보네요.”“그래.”권하윤은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나 23일에 결혼해. 관계가 나쁘면 결혼까지 하겠어?”“제가 준 USB안 자료를 다 보지 않았나 보네요.”확신에 한 말투였다.“봤으면 뭐? 그건 다 과거의 일이잖아. 지금 도준 씨 옆에 있는 사람은 나고!”공태준은 유감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저한테 그렇게 적대감을 가질 필요 없어요. 저는 그저 윤이 씨가 진실을 알면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 USB를 건네준 거니까. 그걸 보고 잘 생각해 보라고.”진실이라는 두 글자에 권하윤은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공태준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공태준은 나와 도준 씨가 결혼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인데, 이런 말 믿으면 안 돼.’이미 한번 공태준의 이간질 때문에 민도준을 한번 다치게 했는데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난 진실이 뭔지 중요하지 않아. 그저 내가 도준 씨를 좋아하고 도준 씨도 나를 좋아하는 데다 우리가 이제 곧 결혼한다는 것만 알 뿐이지!”권하윤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그 목소리는 공태준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자기를 설득하고 있는 듯했다.당연히 뭐라 더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공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미 결정했다니 됐어요.”그러고는 권하윤의 초조한 얼굴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눈치껏 뒤로 물러났다.“저 먼저 갈게요. 저 그동안 리조트에 있으니까 궁금한 거
권하윤은 여전히 울적했지만 이런 때에 민도준이 자기 때문에 한눈을 파는 걸 원치 않았기에 이내 기운을 내며 말했다.“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잘 회복했대요.”그 말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나한테 암시하는 거야?”“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냥 말하는 거지…….”권하윤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파묻고 다시 밥을 먹느라 민도준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솔직히 민도준에게 공태준을 만났다고 말하지 않은 건 민도준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공태준이 찾아왔다는 걸 민도준이 알아 벌이면 또 풍파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민도준이 지금 민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도 벅찬데 권하윤은 그를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함께 걸어왔는데 곧 결혼을 앞두고 민도준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게다가…….공태준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저녁을 먹고 난 뒤 권하윤은 민도준을 끌고 소파로 향했다. 그러더니 작은 손 위에 상자를 들어 내밀며 싱긋 웃어 보였다.“반지 왔어요.”민도준은 권하윤이 들어 올린 손을 힐끗 바라봤다.“마음에 들어?”“네. 엄청 마음에 들어요.”권하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다.“저 이거 한번 껴보고 싶은데.”“그러면 껴 봐.”반지 케이스를 민도준 앞에 조금 더 내밀자 민도준은 권하윤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케이스를 받아 들어 뚜껑을 열었다.손이 잡히는 순간 뜨거운 온도가 손끝으로부터 전해지자 권하윤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권하윤은 숨을 고르고 민도준이 반지를 손에 쥔 걸 빤히 지켜보다가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는 순간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도준 씨,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반지 끼워준 적 있어요?”“그건 왜 물어보지?”민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권하윤의 뜨겁게 달아올랐던 권하윤의 얼굴도 따라서 식었다.솔직히 권하윤도 자기가 왜 그런 말
고요한 오후, 바람도 지쳤는지 불지 않아 거실 안 공기는 더욱 답답하고 끈적끈적해졌다.하지만 그런 공기 속에서 한 사람은 소파에 앉고 한 사람은 옆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럴수록 권하윤은 점점 더 당황했다.너무 오랫동안 떠받들린 탓에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냉랭함을 견딜 수 없는 터라 권하윤은 애써 분위기를 녹이려 했다.떨리는 손가락으로 민도준의 팔을 잡은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준 씨, 앉으면 안 돼요?”민도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짙은 눈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민도준은 권하윤이 견디지 못하자 그제야 허리를 살짝 숙여 소파를 손으로 짚었다.천지를 뒤덮는 듯한 압박감이 순간 덮쳐오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파에 기대 안전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몸이 민도준과 멀어지자마자 손이 잡히고 말았다.이토록 가깝고도 먼 듯한 자세는 마치 권하윤의 내면과 꼭 닮은 듯했다.무섭지만 놓지 못하겠다는 느낌.민도준은 담배를 끼운 손으로 권하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심지어 두 가닥의 머리카락은 자꾸만 민도준의 손을 감더니 끝내 손에 든 담뱃불에 타 꼬불어들며 뒤로 움츠러들었다.그동안 권하윤은 그저 왜 갑자기 웃는지 모를 민도준을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민도준은 마치 권하윤의 얼굴을 보물처럼 손에 쥐고 이리저리 감상하더니 좌우로 돌려보기까지 했다.“자기야, 어쩜 점점 예뻐져? 어쩐지 공태준마저 공씨 가문을 버려두고 자기 보러 온다 했어.”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등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제야 공태준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걸 민도준한테 들켰다는 걸 알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도준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 공태준이 올 거라는 거 모르고 있었어요.”“몰랐다고?”민도준은 권하윤의 긴 머리카락을 점점 부드럽게 만지며 물었다.“그렇다면 돌아와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속이려고 한 거야?”“아니요.”
권하윤은 민도준의 방법이 극단적이라고 생각됐지만 거절하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민도준은 떠나기 전 핸드폰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가져가 버렸다.밖을 내다봤지만 민도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하윤은 자기가 절대 이 별장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권하윤은 그저 민도준이 화가 나서 그럴 거라고,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를 위로했다.사실을 고백할 용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말이다.공태준의 등장은 이미 권하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었는데 마치 사형 선고와 같은 “응”이라는 대답이 권하윤을 더 미치게 했다.권하윤은 정말 그 어떤 변고도 견딜 수 없었다.아마 그런 불안감은 민도준과 결혼하고 나면 다시 안전감으로 바뀔지도.전자기기가 없어지자 권하윤은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던 권하윤은 연예 뉴스에서 이번 주 일요일에 민승현과 강민정의 약혼식이 있다는 보도를 보게 되었다.이목을 끌기 위해서인지 기자는 심지어 “파혼을 당해 쫓겨난” 전 약혼녀에 대해서도 보도하며 열변을 토했다. “바람”이라는 두 글자만 해도 권하윤은 오장육부가 비틀어질 듯 괴로웠다.민씨 가문이 아무리 여론에 보도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가문이라 해도 경성에서는 한 손으로 하늘도 가릴만한 권력을 지닌 가문이기에 권하윤의 이름을 바닥으로 처박는 건 일도 아니다.그러면 그럴수록 자기와 결혼하는 민도준에게 안 좋은 소문이 옮겨갈 걸 생각하니 권하윤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바로 채널을 돌렸다.하지만 연이은 채널 두 개에서 모두 그 일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제야 권하윤은 이 뉴스가 일부러 보도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민승현 외에 권하윤은 더 이상 그런 소문을 낼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권하윤의 이름을 많은 사람이 알수록 권하윤과 민도준이 결혼할 때 안 좋은 소문이 더 많을 테니까.티브이를 꺼버린 권하윤은 쿠션을 품에 안은 채 소파에
권하윤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이 한참 동안 울리고 나서야 권하윤은 시끄러운 배경 소리 사이에서 민도준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왜?”“도준 씨, 저예요. 지금 바빠요?”“응.”그 말에 순간 하려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이미 방해 했으면서 할 말 있으면 해.”권하윤은 난감했지만 자기가 걱정하는 걸 솔직히 털어놓았다.“오늘 현장에 많은 기자들이 올 거예요. 도준 씨가 저를 데리고 가면 기자들이 안 좋은 쪽으로 기사를 쓸까 봐 걱정이에요…….”민도준이 제수씨와 붙어먹은 것도 어불성설인데 동생 결혼식 앞에까지 나타난다면 아주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될 게 뻔했다.그때 전화 건너편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버릇이 있네.”권하윤은 민도준의 말 속에 담긴 조롱을 못 알아들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그래서 말인데 우리 따로 가면 안 돼요? 혹시라도…….”“마음대로 해.”민도준은 이 말을 남기자마자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하, 또 도준 씨 심기를 건드렸나 보네.’하지만 권하윤은 민도준이 왜 자기를 꼭 데려가려고 하는지 알 수 없어 핸드폰을 다시 한민혁에게 돌려주었다.약혼식의 규모가 클 거라는 건 미리 짐작했지만 권하윤은 셔터가 눈 뜰 틈도 주지 않고 번쩍거리는 걸 보자 덜컥 겁이 났다.다행히 권하윤이 앉은 차가 민도준의 차라서 막힘없이 지나쳐 호텔 주차장으로 향했다.웨딩 홀에 도착해 보니 50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홀이 거의 차 있었다.때문에 권하윤은 사람들 틈에 숨어 약혼식이 끝날 때까지 구석에 숨어 있다가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었다.하지만 권하윤은 본인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간과했다.왜냐하면 권하윤이 구석에 자리 잡고 서자마자 주변에서는 수군수군 얘기가 오갔기 때문이다.“저기 봐, 저 사람 권씨 가문 넷째 아니야?”“진짜네. 저 여자가 민승현 도련님 약혼식에는 왜 왔대?”“쯧쯧, 바람만 안 피웠어도 민씨 가문 다섯째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