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여전히 울적했지만 이런 때에 민도준이 자기 때문에 한눈을 파는 걸 원치 않았기에 이내 기운을 내며 말했다.“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잘 회복했대요.”그 말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나한테 암시하는 거야?”“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냥 말하는 거지…….”권하윤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파묻고 다시 밥을 먹느라 민도준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솔직히 민도준에게 공태준을 만났다고 말하지 않은 건 민도준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공태준이 찾아왔다는 걸 민도준이 알아 벌이면 또 풍파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민도준이 지금 민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도 벅찬데 권하윤은 그를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함께 걸어왔는데 곧 결혼을 앞두고 민도준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게다가…….공태준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저녁을 먹고 난 뒤 권하윤은 민도준을 끌고 소파로 향했다. 그러더니 작은 손 위에 상자를 들어 내밀며 싱긋 웃어 보였다.“반지 왔어요.”민도준은 권하윤이 들어 올린 손을 힐끗 바라봤다.“마음에 들어?”“네. 엄청 마음에 들어요.”권하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다.“저 이거 한번 껴보고 싶은데.”“그러면 껴 봐.”반지 케이스를 민도준 앞에 조금 더 내밀자 민도준은 권하윤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케이스를 받아 들어 뚜껑을 열었다.손이 잡히는 순간 뜨거운 온도가 손끝으로부터 전해지자 권하윤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권하윤은 숨을 고르고 민도준이 반지를 손에 쥔 걸 빤히 지켜보다가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는 순간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도준 씨,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반지 끼워준 적 있어요?”“그건 왜 물어보지?”민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권하윤의 뜨겁게 달아올랐던 권하윤의 얼굴도 따라서 식었다.솔직히 권하윤도 자기가 왜 그런 말
고요한 오후, 바람도 지쳤는지 불지 않아 거실 안 공기는 더욱 답답하고 끈적끈적해졌다.하지만 그런 공기 속에서 한 사람은 소파에 앉고 한 사람은 옆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럴수록 권하윤은 점점 더 당황했다.너무 오랫동안 떠받들린 탓에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냉랭함을 견딜 수 없는 터라 권하윤은 애써 분위기를 녹이려 했다.떨리는 손가락으로 민도준의 팔을 잡은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준 씨, 앉으면 안 돼요?”민도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짙은 눈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민도준은 권하윤이 견디지 못하자 그제야 허리를 살짝 숙여 소파를 손으로 짚었다.천지를 뒤덮는 듯한 압박감이 순간 덮쳐오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파에 기대 안전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몸이 민도준과 멀어지자마자 손이 잡히고 말았다.이토록 가깝고도 먼 듯한 자세는 마치 권하윤의 내면과 꼭 닮은 듯했다.무섭지만 놓지 못하겠다는 느낌.민도준은 담배를 끼운 손으로 권하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심지어 두 가닥의 머리카락은 자꾸만 민도준의 손을 감더니 끝내 손에 든 담뱃불에 타 꼬불어들며 뒤로 움츠러들었다.그동안 권하윤은 그저 왜 갑자기 웃는지 모를 민도준을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민도준은 마치 권하윤의 얼굴을 보물처럼 손에 쥐고 이리저리 감상하더니 좌우로 돌려보기까지 했다.“자기야, 어쩜 점점 예뻐져? 어쩐지 공태준마저 공씨 가문을 버려두고 자기 보러 온다 했어.”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등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제야 공태준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걸 민도준한테 들켰다는 걸 알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도준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 공태준이 올 거라는 거 모르고 있었어요.”“몰랐다고?”민도준은 권하윤의 긴 머리카락을 점점 부드럽게 만지며 물었다.“그렇다면 돌아와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속이려고 한 거야?”“아니요.”
권하윤은 민도준의 방법이 극단적이라고 생각됐지만 거절하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민도준은 떠나기 전 핸드폰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가져가 버렸다.밖을 내다봤지만 민도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하윤은 자기가 절대 이 별장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권하윤은 그저 민도준이 화가 나서 그럴 거라고,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를 위로했다.사실을 고백할 용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말이다.공태준의 등장은 이미 권하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었는데 마치 사형 선고와 같은 “응”이라는 대답이 권하윤을 더 미치게 했다.권하윤은 정말 그 어떤 변고도 견딜 수 없었다.아마 그런 불안감은 민도준과 결혼하고 나면 다시 안전감으로 바뀔지도.전자기기가 없어지자 권하윤은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던 권하윤은 연예 뉴스에서 이번 주 일요일에 민승현과 강민정의 약혼식이 있다는 보도를 보게 되었다.이목을 끌기 위해서인지 기자는 심지어 “파혼을 당해 쫓겨난” 전 약혼녀에 대해서도 보도하며 열변을 토했다. “바람”이라는 두 글자만 해도 권하윤은 오장육부가 비틀어질 듯 괴로웠다.민씨 가문이 아무리 여론에 보도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가문이라 해도 경성에서는 한 손으로 하늘도 가릴만한 권력을 지닌 가문이기에 권하윤의 이름을 바닥으로 처박는 건 일도 아니다.그러면 그럴수록 자기와 결혼하는 민도준에게 안 좋은 소문이 옮겨갈 걸 생각하니 권하윤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바로 채널을 돌렸다.하지만 연이은 채널 두 개에서 모두 그 일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제야 권하윤은 이 뉴스가 일부러 보도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민승현 외에 권하윤은 더 이상 그런 소문을 낼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권하윤의 이름을 많은 사람이 알수록 권하윤과 민도준이 결혼할 때 안 좋은 소문이 더 많을 테니까.티브이를 꺼버린 권하윤은 쿠션을 품에 안은 채 소파에
권하윤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이 한참 동안 울리고 나서야 권하윤은 시끄러운 배경 소리 사이에서 민도준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왜?”“도준 씨, 저예요. 지금 바빠요?”“응.”그 말에 순간 하려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이미 방해 했으면서 할 말 있으면 해.”권하윤은 난감했지만 자기가 걱정하는 걸 솔직히 털어놓았다.“오늘 현장에 많은 기자들이 올 거예요. 도준 씨가 저를 데리고 가면 기자들이 안 좋은 쪽으로 기사를 쓸까 봐 걱정이에요…….”민도준이 제수씨와 붙어먹은 것도 어불성설인데 동생 결혼식 앞에까지 나타난다면 아주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될 게 뻔했다.그때 전화 건너편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버릇이 있네.”권하윤은 민도준의 말 속에 담긴 조롱을 못 알아들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그래서 말인데 우리 따로 가면 안 돼요? 혹시라도…….”“마음대로 해.”민도준은 이 말을 남기자마자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하, 또 도준 씨 심기를 건드렸나 보네.’하지만 권하윤은 민도준이 왜 자기를 꼭 데려가려고 하는지 알 수 없어 핸드폰을 다시 한민혁에게 돌려주었다.약혼식의 규모가 클 거라는 건 미리 짐작했지만 권하윤은 셔터가 눈 뜰 틈도 주지 않고 번쩍거리는 걸 보자 덜컥 겁이 났다.다행히 권하윤이 앉은 차가 민도준의 차라서 막힘없이 지나쳐 호텔 주차장으로 향했다.웨딩 홀에 도착해 보니 50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홀이 거의 차 있었다.때문에 권하윤은 사람들 틈에 숨어 약혼식이 끝날 때까지 구석에 숨어 있다가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었다.하지만 권하윤은 본인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간과했다.왜냐하면 권하윤이 구석에 자리 잡고 서자마자 주변에서는 수군수군 얘기가 오갔기 때문이다.“저기 봐, 저 사람 권씨 가문 넷째 아니야?”“진짜네. 저 여자가 민승현 도련님 약혼식에는 왜 왔대?”“쯧쯧, 바람만 안 피웠어도 민씨 가문 다섯째 작
민도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민도준이 얼마나 귀찮아하는지 단번에 보아냈을 테지만 강채령은 그저 방금 몇 마디 나눈 거로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는 특별하다는 자부하고 있었다.게다가 자기가 오빠라고 불렀는데도 민도준이 거부하지 않으니 오히려 으쓱 해났다.“에이, 오빠도 참,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요. 우리야 당연히 친하잖아요.”강채령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풍만한 가슴을 일부러 더 내밀었다.그토록 작은 동작은 당연히 민도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민도준은 고개를 돌리더니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뭐,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나?”민도준이 이토록 직설적으로 말할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터라 강채령은 바로 부인하려 했다.하지만 그때 민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보탰다.“난 솔직한 여자가 좋던데.”그 말속에 담긴 의미에 거의 공기처럼 존재감을 숨긴 권하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의 그런 이상한 기류를 당연히 눈치채지 못한 강채령은 민도준의 미소에 홀린 듯 한참을 멍때렸다. 고혹적이면서도 위험한 민도준 특유의 분위기는 사람을 홀리게 했다.하지만 강채령은 여전히 잘 배운 듯한 부잣집 여식의 자태를 취하며 은근슬쩍 자기의 뜻을 내비쳤다.“도준 오빠 같은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오. 그렇다면 강채령 씨도 나를 좋아한다는 건가?”살짝 경박한 어조에 강채령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어디 앉아서 얘기할까요?”민도준의 초대에 강채령뿐만 아니라 권하윤마저 멍해졌다.‘도준 씨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강채령은 순간 들떠 체면이고 뭐고 생각지도 않고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좋아요.”심지어 민도준이 마음이라도 바꿀까 봐 얼른 민도준의 팔짱을 꼭 꼈다.“그럼 우리 어디 갈까요?”“하.”하지만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강채령은
권하윤은 갑자기 추가된 코너에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막 움직이려던 찰나 하객들 사이에서 빙빙 돌던 불빛은 마침 가장 구석에 서 있는 권하윤에게 떨어졌다.처음부터 구석에서 배경처럼 있다가 빠져나가려 하던 권하윤은 순간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심지어 초대되어 온 기자들마저 권하윤 얼굴 앞에 대고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며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대했다.그때 재촉하는 듯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른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하객들은 자동으로 비켜서며 권하윤에게 길을 내주었다. 하지만 막힘없이 쭉 난 길을 보자 권하윤은 그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깜빡이는 셔터 때문에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기한테 쏠렸다는 건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갑자기 생긴 구경거리에 재밌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경멸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눈빛들은 모두 칼날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러던 그때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빛에 흐릿해진 시선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을 깜빡이며 불빛 때문에 시큰거리던 눈을 잠깐 쉬게 하고 다시 뜬 순간 좀 떨어진 거리에서 빛을 막아선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이윽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현이 결혼식인데 형인 제가 축복해도 괜찮겠죠?”무대 위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선명하게 굳어버렸다. 심지어 사회자는 목소리마저 떨렸다.“당, 당연하죠.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이미 많은 걸 겪었던 민승현은 순간 자기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민도준이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증오의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민도준을 째려보더니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도준 형, 나한테 어떤 축복을 해주려고 이렇게까지 해?”민도준은 자기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슬금슬금 도망칠 각을 잡고 있는 강민정을 보며 씩 웃었다.“당연히 겹경사를 축하하려고 그러지. 듣기론 그 아이를 어렵게 가졌다던데 신부가 하루 종일 힘들게 식을 준비하느라 애
무대 위에서 민승현은 강민정의 허둥대는 모습에서 대충 답을 얻고는 손을 들어 뺨을 갈겼다.“이 년이 감히!”갑자기 뺨을 맞은 강민정은 울며 민승현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아니야, 오빠. 내 말 들어 봐. 이거 사실 아니야…….”그리고 그 시각, 아수라장이 된 무대 아래에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강수아는 화가 나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민시영이 얼른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오늘 약혼식은 여기까지이니 여러분도 퇴장하실 때 질서정연하게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불과 몇 분 사이에 권하윤은 경멸과 조롱을 받던 대상에서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변해있었다.그 시각,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사이 두고 권하윤은 남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 거리는 고작 몇 미터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여느 때보다 멀게 느껴졌다.“하윤 씨, 우리는 먼저 나가요. 여기 있다간 기자들이 몰려오면 우리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예요.”한민혁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권하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차 안에서 한민혁은 뒷좌석을 힐끗 쳐다봤다.“저기, 전에 봤던 그 기사들을 막지 않은 건 오늘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어요. 그러니까 도준 형이 상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요.”“저도 알아요.”예전과 같은 상황에 해명 기사를 낸다 해도 믿을 사람은 없을 거다.게다가 권하윤은 원래 결백한 신분이 아니기에 그렇게 한다면 해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흙탕물에 몸을 담그는 거나 다름없을 거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덕에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더 이상 권하윤에게 집중되지 않을 거다.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권하윤은 그제야 뭔가 발견한 듯 되물었다.“방금 제가 본 기사라고 하셨는데, 제가 기사를 봤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알아맞힌 거죠. 알아 맞힌 거.”한민혁은 하하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권하윤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자기가 매일 그런 뉴스들을 찾아보는 사실이 민도준의 귀에 들어갔다는 걸.민도준은
사실 두 사람은 따지고 보면 다툰 적이 없다. 그저 한 명은 상대를 불신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상대에게 순수하지 않기에 금이 갔던 두 사람의 관계가 더 벌어졌을 뿐이다.이에 권하윤은 두 사람이 결혼만 하면 그 간극이 사라질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과거는 중요하지 앟아, 중요한 건 지금이야.’생각을 마친 권하윤은 슬며시 손을 들어 민도준의 다른 한쪽 어깨에 댔다.“저 무시하지 마요.”분명 애초에는 그저 불쌍한 척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말하다 보니 코끝이 찡해 나더니 점점 서러워졌다.“저 무시하지 마요. 무서워요.”살짝 떨리는 끝 음은 남자의 가슴에 녹아내렸고 그와 동시에 권하윤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하나둘 떨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의 등에 손 하나가 놓이더니 등을 살살 토닥였다.조금 위로를 받았다고 그런지 권하윤은 점점 더 서러워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민도준을 끌어안았다.“제가 질투하면 달래주면 되는데 왜 그렇게 무섭게 굴었어요? 게다가 핸드폰까지 뺏어가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투덜투덜 불만을 토로하는 권하윤의 말에 민도준은 웃음이 났다.이윽고 권하윤을 자기 앞에 끌어오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흐느끼는 권하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때렸다.“다 내 탓이라는 거야?”“네, 도준 씨가 잘못했어요.”권하윤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도 손은 여전히 민도준을 꽉 껴안은 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그때 민도준이 콧방귀를 뀌었다.“이게 내 탓이라고? 그러게 누가 하윤 씨더러 귀가 그렇게 얇으랬어?”민도준이 공태준을 입에 담자 권하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민도준의 어깨에 파묻으며 중얼거렸다.“이게 다 도준 씨가 딴마음 품은 탓이잖아요.”민도준은 권하윤을 톡톡 두드렸다.“하윤 씨 하나로도 생명이 위태위태한데 딴마음까지 품으면 수명이 줄어들까 봐 겁나는데.”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입을 삐죽거렸지만 눈치껏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때, 차 밖에 있던 한민혁이 시간을 힐끗 살피더니 다가와 주의를 주었다.“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