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한민혁은 순간 온몸이 찌릿 저렸다. 불안함에 눈은 데굴데굴 굴렀고 속으로는 민도준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당장이라도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하지만 한참을 자기의 의지와 싸우고 있던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한민혁의 생각을 끊었다.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 권하윤은 문 앞에 나타난 화영을 보자 몇 초간 멍해졌다.그러다 이내 예전에 조 사장이 운영하는 홍옥정에서 눈앞의 여자를 본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아, 그때 우리가 홍옥정에서 탈출하는 걸 도와줬던 여자네.’심지어 민도준이 전에 화영이 바로 조 사장의 정부라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화영은 권하윤이 자기를 알아보자 이내 한민혁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나 권하윤 씨랑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자리 비켜줄래요?”‘도준 형이 뭘 부탁했나 보네.’화영을 보자 한민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 나가 있을 테니 얘기 나눠요.”한민혁이 나가고 나자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한참 동안 이어지는 침묵 끝에, 화영은 권하윤의 경계를 눈치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민 사장님이 보내서 온 거예요.”민도준의 이름을 듣자 권하윤은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로 캐물었다.“도준 씨는 어때요? 지금 위험한가요? 무사…… 한가요?”마지막 몇 글자를 내뱉는 순간 권하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때 화영의 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걱정할 거 없어요. 고비는 넘겨 이미 깨어났으니.”화영은 그날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지만 권하윤은 위험한 당시 상황을 직접 귀로 듣고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민도준이 몇 초만 늦게 눈치챘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권하윤은 눈물을 쓱쓱 닦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오늘 저 찾아온 건 이 얘기 하러 온 거 아니죠?”“네.”화영은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하윤 씨, 혹시 경성 떠나고 싶어요?”“경성을 떠나고 싶냐
엘리베이터에 오른 권하윤은 이따금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가 머리를 매만지기를 반복했다.솔직히 이런 동작으로나마 긴장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민도준이 있는 층에 도착한 순간, 권하윤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심지어 화영이 두 번 정도 부르고 나서야 권하윤은 정신을 차렸다.“제가 먼저 들어가 민 사장님께 말씀드릴 건데, 혹시 전해줬으면 하는 말이 있나요?”이 말로 민도준이 만나줄지 만나주지 않을지 결론 날 수 있기에 권하윤은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은 입 속에서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이윽고 잔뜩 흥분한 얼굴이 점점 진정을 되찾으며 고개를 저었다.그 때문에 화영이 대신 전하게 될 말은 그저 침묵뿐이었다.복도에 선 권하윤은 화영이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난 방문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문짝은 매우 얇아 보였지만 하필이면 권하윤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했다.그렇게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권하윤은 문이 열릴까 봐 긴장되는 한편 이대로 열리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몇 세기가 흐른 것 같은 몇 분의 기다림 속에서 권하윤의 심장은 점점 타들어 갔다.그러다가 결국 복도에서 맴도는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화영이 끝내 밖으로 걸어 나왔다.하지만 권하윤의 긴장 가득한 눈을 보자 화영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애써 곧게 펴고 있던 등줄기에 힘이 쭉 빠지면서 권하윤은 벽을 짚었다.“하윤 씨, 괜찮아요?”권하윤은 애써 미소를 지어냈다.“괜찮아요. 애써 줘서 고마워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화영의 눈에서 약간의 안타까움이 흘러나왔다.“민 사장님은 원체 변덕스러우니 며칠 후면…….”“아니에요.”권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고개를 들었다.“아까…… 제가 떠나는 걸 도와줄 수 있다고 했죠?”화영은 권하윤의 태도 변화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러면 오늘 밤은 괜찮나요?”-“갔
한편, 권하윤은 화영이 준비해 준 차를 타고 다시 블랙썬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블랙썬을 떠난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이남기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하지만 방금 전 그런 일을 겪고 난 뒤라 그런지 권하윤은 더 이상 블랙썬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심지어 리조트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민도준의 별장으로 향했다.이번에 권하윤은 예전에 정원을 가꾸던 도구를 꺼내 들고 삐죽삐죽 자라난 나뭇가지를 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이것저것 일을 찾아 하면서 한편으로 성은우가 오기를 기다렸다.이왕 떠나기로 했으니, 이번에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고 싶지 않았다.해가 천천히 질 때쯤 권하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그제야 자기가 오전에 보낸 문자를 성은우가 아직 읽지도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눈살이 저도 몰래 구겨지며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하지만 핸드폰을 쥔 채로 멍을 때리고 있던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이남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권하윤 씨,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알겠어요.”문을 닫기 전 권하윤은 문 앞에 서서 아무도 없는 정원을 빤히 바라봤다.지난날의 기억이 한 장면씩 눈앞을 스쳐지났지만 점점 퍼지는 저녁노을과 함께 사라졌다.‘됐어. 이 모든 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어.’솔직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어찌보면 나쁘지는 않았다.끝내 눈을 천천히 감으며 권하윤은 모든 기억을 고이 접어 묻어버렸다.중도에 이남기는 공태준을 데리러 갔다.하지만 차 문이 옆에서 여닫히는데도 권하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공태준도 습관이 되었는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파티에 준비된 음식이 하윤 씨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어 셰프한테 야식을 준비해 두라고 미리 일러뒀으니 나중에 가져다줄게요.”이따가 권하윤은 공태준을 따라가지 않을 거기에 당연히 그 야식은 먹을 수 없었다.하지만 의심을 피하고자 권하윤은 건성으로 대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홍
조 사장이 일부러 자기를 난처하게 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목적은 떠나는 것이기에 권하윤은 결국 참기로 결심했다.하지만 손을 뻗어 술잔을 잡으려 하는 순간, 공태준의 퉁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윤 씨는 오늘 불편해서 술 마실 수가 없어요.”“쾅.”조 사장이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대리석 테이블 위에 탕 내리쳤다.“축하해 주러 왔다면서 술도 안 마시려 한다니 너무 제 체면을 안 세워주는 거 아닙니까?”트집을 잡고 있는 조 사장의 말투에도 공태준의 표정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저희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말을 마친 뒤 공태준은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서 있는 이남기를 바라봤다.그러자 이남기가 이내 서류 봉투를 가져왔다.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류를 받아 열어보던 조사장의 눈은 순간 휘둥레졌다.‘뭔데 저러지?’안에 든 물건이 뭔지 알 수 없기에 권하윤은 온갖 생각이 들었다.그러던 그때, 조 사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얼굴 근육이 경련하면서 옆에 있던 화영을 홱 노려봤다.“화영! 잠깐 나와 봐!”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저 안에 든 게 뭐예요?”아직 꺼지지 않은 노래방 기계에서 요란한게 울리는 노랫소리에 공태준은 고개를 돌리더니 권하윤 곁으로 한껏 다가왔다.“화영이 배신한 증거요.”권하윤은 놀란 나머지 고개를 홱 돌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워진 건 처음이다.너무 가깝다 못해 공태준의 부드러운 얼굴에 가려져 일렁이고 있는 무언가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순간, 화영이 자기를 도와 여기를 떠나려 한다는 걸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권하윤은 그 생각을 곧바로 부인했다.화영이 권하윤을 도와 떠나려 한 건 오늘 일인데, 이 증거들을 모은 건 하루 사이에 할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그렇다면 화영 씨가 도준 씨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뜻인데.’그러면 지금 공태준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 거다. 그건 바로…….
화영은 손을 들어 반쪽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더니 지금껏 숨겨왔던 원망의 눈빛을 드러냈다.“이유를 알고 싶어? 혹시 그 사람 기억해?”화영이 뱉어낸 낯선 이름에 조 사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더욱이 자기가 그 남자를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었던지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조 사장의 그런 반응에 화영은 울화가 치밀었다.한 글자 한 글자 뱉어내는 말은 마치 목구멍을 찢고 나온 것처럼 피빛이 서려 있었다.“경찰이었어. 당신이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의 가족을 죽이고 나이 어린 여동생까지 놓아주지 않았잖아. 칼로 그 사람을 찌르고 개 우리에 던져 뜬눈으로 자기 살점이 뜯겨나가는 걸 지켜보게 했잖아.”조 사장은 애써 옛 기억을 더듬다가 막연한 장면을 점차 떠올렸다.그건 이미 몇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의 조 사장은 경성 전체를 휘어잡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웬 놈이 조직에 숨어들어 증거를 수집하다가 마침 기분이 언짢았던 조 사장에게 발각됐고, 조 사장은 그 사람으로 화풀이했었다.조 사장이 점차 기억을 떠올린 듯하자 화영은 한 글자 한 글자 어렵사리 토해냈다.“그 사람이 내 약혼남이었어.”그날, 화영은 뜬 눈으로 그 잔인한 장면을 모두 지켜봤다.자기를 위해 각종 쿠키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님의 손가락이 하나둘 부러지는 모습.자기를 보면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반겨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가는 모습.심지어 앳된 목소리로 언제면 자기 오빠한테 시집오냐며 쫑알거리던 여동생마저 점차 화영 앞에서 생기를 잃어갔다.그리고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화영에게 남겨준 건 오직 피범벅이 된 옷감 몇 조각뿐이었다.분명 전날까지만 해도 자기가 일등공을 세우면 알사탕만 한 다이아 반지를 사주겠다고 하던 사람이었는데.훈장은 남겼지만 사람은 사라졌다.몇 번의 자살 시도를 해봤지만 동료들이 번번이 구해줘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날, 화영은 다시 태어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가족을 죽인 사람
“보스. 저희를 불렀습니까?”누군가 다가오자 조 사장의 몸부림은 더 격렬해졌다.하지만 화영이 심호흡을 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대화 중이니, 나가.”그 한마디에 문밖은 다시 조용해졌다.원래도 요동치던 권하윤의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쿵쾅거렸고 화영의 안색도 어두워졌다.이 순간 만약 누군가 들어온다면 두 사람이 살지 못하기는커녕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되어버리니까.화영이 조 사장 곁에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 신임을 얻으려고 노력한 것도 하수구 같은 악취를 풍기는 죄악을 뿌리째 뽑기 위함인데 만약 여기에서 틀어지면 아직 덫에 걸리지 않은 쥐새끼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해치고 다닐 거다.이익이 따른다면 조 사장이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 조 사장의 자리를 대체하기 마련이니까.권하윤과 화영에게 이 몇 초간은 마치 몇 세기라도 되는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다행히 조 사장이 화영에 대해 신임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기에 조 사장의 부하도 그저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요, 화영 누님. 무슨 일 있으면 저희를 부르세요.”문밖 사람들이 점차 멀어지는 걸 확인하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그제야 쿠션 아래에 있던 조 사장이 이미 숨을 멎었다는 걸 확인했다.화영은 숨이 막혀 눈을 뒤집은 채 흉악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조 사장의 얼굴을 보자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권하윤은 화영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본인 상태도 좋지 않았다.그때, 화영이 겨우 숨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홍옥정에는 조 사장의 사람이 널렸으니까 민 사장님이 오기 전에 절대 들켜서는 안 돼요.”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권하윤도 말을 보탰다.“룸에 있던 사람들이 조 사장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만약 안 돌아가면 의심할 수 있어요.”화영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이렇게 해요. 제가 여기 일 모두 처리하고 뒤따를 테니까 하윤 씨가 먼저 뒷문으로 빠져나가요.”“안 돼요.”권하윤은 고민도 하지 않
“그래요. 돌아가요.”공태준은 뭐든 들어줄 것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권하윤도 함께 일어나는 모습에 화영은 흠칫 놀랐다.이때 권하윤이 티 안 나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황영은 이내 눈치챘다. 오늘 같은 날 권하윤이 남아 있는다 해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화영은 권하윤을 막지 않았다.하지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조 사장의 똘마니 몇몇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큰일 났어요! 보스가…… 보스가!”대성은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달려갔다.“보스가 왜?”“보스가 죽었어요!”순간 방 안은 적막이 흘렀다.이 비보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그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다름 아닌 대성이었다. 대성은 그 소식을 듣기 바쁘게 화영을 손가락질했다.“당신이지? 당신이 우리 보스를 죽였지?”방금 조 사장이 경인 지역으로 갔다고 했을 때부터 대성은 의심이 들어 사람을 불러 찾아가 보게 했다.그런데 역시나 방안에서 조 사장의 시체가 발견된 거다.그 순간 대성은 방금 전 화영이 자기를 배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 사장과 똑같은 표정을 한 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영을 노려봤다.“젠장! 우리 보스가 당신을 얼마나 믿었는데, 감히 보스를 죽여?”그 시각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조 사장의 부하거나 조 사장과 협력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다들 불같이 화를 냈다.“시간 낭비할 게 뭐 있어? 당장 묶어!”“저 여자를 죽여 보스를 위해 복수하자고!”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권하윤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지만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상황을 망칠까 봐 할 수 없이 주먹을 쥔 채 마음을 졸였다.다행히 화영도 지금껏 많은 걸 겪어 왔기에 권하윤이 생각한 것처럼 나약하지 않았다.“내가 조 사장을 죽였다는데, 증거는 어디 있지?”화영의 침착한 대꾸에 누군가 바로 반박했다.“보스가 방금 당신과 함께 나갔는데, 증거는 무슨 증거야?”“조 사장이 죽자마자 나를 몰
공태준의 말이 끝나자 공기 속에는 적막이 흘렀다.민도준이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는 말에 모든 사람은 뒤 통수라도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두려운 듯한 눈빛을 드러냈다.그때, 대성이 몸을 돌려 화영을 바라보더니 잔뜩 당황한 듯 따져 물었다.“말해! 민도준이 아직 살아있는 거야? 어디 있어?”대성의 추궁이 귓전을 때리는 순간, 권하윤은 그제야 알아차렸다.‘공태준이 아까까지 태연하게 있던 게 다 화영 씨가 허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던 거였어?’‘아니야.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거야.’만약 그저 화영의 정체를 까발리는 게 목적이라면 오늘을 선택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갑자기 공태준이 아까 자기가 화영한테 가서 소식을 전하도록 내버려 둔 걸 생각하니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혔다.‘한민혁 씨가 이제 곧 사람들을 데리고 올 텐데. 그러면 도준 씨가…… 도준 씨가…….’순간 커다란 공포가 덮쳐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공태준이…… 도준 씨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어!’개인 병원 밖, 훈련이 잘되어 있는 킬러 7,8명이 어둠을 틈타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놈들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처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평범한 임무라면 한 명 정도로 충분했겠지만 이렇게 많은 킬러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건 놈들이 죽여야 할 사람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주었다.불이 켜진 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 밖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던 놈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이윽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놈들이 병실로 뛰어들었다.한편, 룸 안은 이미 깨진 술병들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화영은 바닥에 쓰러진 채 두려움과 증오가 섞인 눈빛으로 대성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눈빛에 분노가 극에 치달은 대성은 술에 젖은 화영을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쳤다.“말하라고! 민도준이 아직 살아있어?”그 시각 공태준의 의도를 눈치챈 권하윤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한민혁에게 전화하려 했다.하지만 움직이려는 순간 공태준이 권하윤의 손목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