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은 고은지에게 반응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손으로 그녀의 팔을 낚아채더니 창가에 밀쳐버렸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은지는 눈앞이 컴컴해져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깜빡거렸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아래층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저기 분수 보이지? 저기 가서 씻어.”컴컴하던 눈이 다시 광명을 찾기 바쁘게 들려오는 충격적인 말에 고은지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네, 알겠어요. 바로 가볼게요.”하지만 그녀가 움직이자마자 민도준은 그녀를 다시 잡아끌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뭐 하러 걸어 내려가? 다이빙하면 더 빠르겠는데.”“민도준 씨, 저…….”고은지는 애써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댔다. 하지만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자기한테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민도준은 아래층을 바라보며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그 시선 끝에는 웬 여자가 서 있었다. 다만 거리가 멀어 상대가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층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 선 작은 인영은 앞으로 걸었다 뒤로 물러났다 하면서 뭔가 갈등하는 모습이었다.‘만약 이 순간 사람이 떨어진다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하.”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명령했다.“꺼져.”그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몰랐지만 고은지는 겨우 목숨을 건진 것마냥 다급하게 방문을 나섰다.그 시각, 아래층.건물 밖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던 권하윤은 이남기가 성은우를 고향에 묻어주고 싶다던 말이 생각나 끝내 블랙썬의 대문에 들어섰다.하지만 건물에 들어서기 바쁘게 마주친 고은지의 온몸을 적신 시뻘건 피를 보는 순간 그녀는 속으로 경악했다.고은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바로 다른 생각에 의해 대체 됐다.“권하윤 씨.”“고은지 씨.”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나눈 뒤, 고은지는 떠나버렸다.하지만 권하윤의 눈살을 이내 찡그러졌다. 그녀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건 민도준이 없는 틈에 성은우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고은지가
권하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민도준이 답을 맞히기 시작했다.“민승현은 아닐 테고, 성은우는 이미 죽었으니 기회가 없을 테고. 나는, 하, 목숨 걸고 도망치지 못해 안달이니 더욱 아닐 테고. 그렇다면 남은 건…….”민도준의 길게 늘어뜨린 끝 음에 권하윤의 심장 박동은 마구 흐트러졌다.이윽고 민도준이 따져 물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 피식하는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한민혁?”당연히 공태준의 이름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권하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이미 머릿속에 생각한 말들도 모두 소용없어지자 저도 모르게 억지 미소를 지어냈다.“무슨 그런 농담을…….”“하긴.”그녀의 얼굴에 대고 있던 민도준의 손가락은 그녀의 볼을 한 번 슥 문질렀다. 이윽고 장난기 섞인 남자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었다.“제수씨처럼 까탈스러운 여자를 한민혁이 감당할 리가 없지. 적어도 신분 높고 여자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돼야지. 안 그래?”끝 음을 살짝 올린 그의 한마디가 내뱉어지는 순간 아슬하게 걸려있던 담뱃재가 툭하고 떨어졌다.쇄골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도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뜨렸다.그 순간 선명하던 그녀의 쇄골은 하층 더 움푹 파였다. 하지만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던 그녀는 오히려 어느때 보다도 강인하게 허리를 곧게 폈다.이윽고 이를 꽉 악문 채 신음소리를 참으며 눈을 내리깔았다.“신분 높은 사람은 바라지 않습니다. 전 그저 평범하고 무탈하게 지내고 싶거든요.”그녀의 긴 속눈썹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와 검푸른 다크써클 한데 어우러져 색을 분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던 민도준이 끝내 입을 열었다.“요구가 의외로 낮네?”“제가 어찌 감히 요구를 내걸겠습니까?”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를 끝으로 주위는 일순 조용해졌다.무거운 공기 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덩어리져 권하윤을 눌러댔다.고개를 들지 않고도 자기를 찍어 누르는 듯한 남자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체념한 듯 민도준의 괴롭힘을 기
“어.”한민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하려던 말을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왠지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한민혁 씨…….”이윽고 그는 자기의 이름에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저기, 하윤 씨, 먼저 먹고 있어요. 저 급한 일 때문에 잠깐 나가야 할 것 같아요.”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물기 어린 두 눈에 한민혁은 몸을 흠칫 떨었다. 이윽고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헐레벌떡 달려 나오더니 놀란 가슴을 내리 쓸었다.‘휴, 권하윤 씨 정말 무섭네.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잖아.’하지만 이런 일은 민도준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민씨 저택.다리를 꼰 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흘겨보는 민도준의 태도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민상철의 표정은 어두워졌다.“너 때문에 과학기술단지가 지금 텅 비어있어. 이대로 칩 기술을 들이지 않는다면 문 닫을지도 모른다고!”“그래서요?”“그래서라고 물었어? 어쩜 그리 뻔뻔할 수가 있지?”느긋하게 하품하며 묻는 민도준의 말에 민상철은 버럭 화를 냈다.“비즈니스가 네가 하는 그 짓거리와 같은 줄 아느냐? 때리고 죽이고 하면 끝인 줄 알아? 비즈니스계의 전쟁은 그런 무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강하게만 나간다면 누가 너를 위해 일하겠니?”“할아버지의 훌륭한 아들이 있잖아요.”민도준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튕기더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그의 태도에 민상철의 낯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네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일주일 내로 여전히 이 꼴이면 과학기술단지는 네 큰 숙부한테 맡길 거다.”민도준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서류를 테이블 위에 툭 던져버렸다.그것으로 일 얘기가 끝나자 장 집사가 차를 내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도준 도련님, 차 드세요.”차가 입안으로 감겨 들어간 순간 약 2초간 머금다가 삼킨 민도준은 이내 입꼬리를 씩 올렸다.‘어쩐지 영감탱이가 우리 제수씨의 결혼을 서두르신다 했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은 사람을 노곤노곤하게 내리쬤지만 권하윤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한민혁이 간 뒤로 그녀는 줄곧 그의 반응을 되새겼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그런 반응은 이상하기만 했다.‘은우가 이미 죽었는데, 시체가 있는 곳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난 그저 고향에 묻어주려는 것뿐인데, 누가 다시 살려낸다고 했나? 설마…….’갑자기 든 생각에 권하윤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전류라도 흐르는 것처럼 등줄기로부터 손끝까지 저릿해 났다.‘설마, 은우가 안 죽었나? 그날 총소리만 들었을 뿐 은우 시체는 못 봤잖아. 설마 죽이지 않고 어디 가뒀나?’그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권하윤의 가슴은 뜨거운 물을 부어 넣은 것처럼 끓기 시작했다.이윽고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방 안을 계속 서성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모든 장면을 되새겼다.‘은우를 개밥으로 던져줬다는 것도 속인 거라면, 은우가 죽었다는 것도 속일 수 있잖아.’분명 이 모든 게 현실성 없는 신기루 같은 생각이라지만 그녀는 기쁨을 제어할 수 없었다.‘은우가 죽지 않았다면…… 만약 안 죽었다면…….’너무나도 깊이 몰두한 나머지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듣지 못했다.때문에 민도준이 들어왔을 때 그의 앞에는 선 자리에서 뱅뱅 도는 권하윤이 보였다.“귀신이라도 들렸어?”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권하윤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본 순간 모든 생각을 고이 접었다.“도준 씨.”이윽고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눈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민도준을 쫓았다. 마치 그의 머리를 꿰뚫어 성은우의 생사를 알아내기라도 하듯이.민도준은 자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권하윤이 아예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재밌는 듯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쿡쿡 찍었다.“왜? 안 본 새에 나 잊은 거야? 못 알아보겠어?”“아니거든요. 저는 그저…….”권하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무의식적으로 그의 비위를 맞추는 듯 나긋한 한마디를 내뱉었다.“보고 싶어서요.”“하. 진짜
권하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하윤 씨가 인색하다지만 공태준은 아니던데? 하윤 씨랑 놀려고 집안 밑천까지 탈탈 털어낸 걸 보면.”“네? 집안 밑천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요?”밑도 끝도 없는 한마디에 권하윤은 일순 멍해졌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그녀의 얼굴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그래, 오해했다고 쳐.”자비 없이 꽉 눌러대는 그의 손가락 아래의 피부는 점점 붉게 물들었다. 이윽고 뻘건 자국이 날 때쯤 권하윤은 끝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렸다.그녀가 고통을 호소하자 민도준은 그제야 자비를 베풀 듯 손을 놓더니 별로 먹지도 않은 만둣국을 보며 댐배를 꺼내 들었다.“왜 안 먹었어?”권하윤은 얼른 그의 손에 있는 라이터를 받아 그를 도와 불을 붙였다.“도준 씨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요.”고분고분한 한마디를 내뱉으면서 말이다.하지만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은 담배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자 민도준은 몸을 뒤로 젖히며 권하윤과 거리를 두더니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또 무슨 꿍꿍이지?”권하윤의 손은 일순 멈칫했다.하지만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한민혁이 무조건 말할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한참을 머뭇대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저…… 요즘 은우가 자꾸 꿈에 나와요. 그래서 말인데, 이왕 죽었는데 고향에 묻게 할 수는 없나요?”그녀는 말하면서 민도준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그가 조금이나마 소식을 흘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모두 헛수고였다.민도준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고, 흔들림 없는 표정에서마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망자가 꿈에 나타나 부탁한다고 하나?”권하윤은 당연히 그의 말속에 담긴 경고를 캐치했다. 이에 곧바로 눈을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토막 난
민도준은 애써 머리를 굴리며 그의 모에 불을 지피고 있는 권하윤을 여유롭게 바라보더니 살짝 풀린 손으로 두근대는 그녀의 맥박을 매만졌다.이게 풀어진 표현이라고 생각한 권하윤은 얼른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그러면서도 그가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생각났는지 얌전히 그의 등에 매달리면서 부드러운 입술로 꾹 다문 그의 입술을 문질렀다.그제야 민도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였었다.“자기야, 설마 성은우가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게…….”꿍꿍이가 상대에게 까발리자 그녀의 숨소리는 단번에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다음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민도준은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분명 웃는 얼굴이었지만 권하윤은 저도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심지어 목덜미 뒤에 붙어있는 따가운 손바닥 때문에 뼛속까지 오한이 느껴졌다.그러던 끝에 참지 못한 그녀가 애원하려고 할 때 목덜미가 갑자기 차가워지며 민도준이 그녀를 놓아주면서 한순간에 다시 나른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아까 잘 놀았잖아. 계속해 봐.”이렇듯 반복된 상황에 권하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도준 씨, 은우가…….”“경고하는데…….”소파에 기댄 남자는 권하윤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성격도 안 좋을 거야.”그 한마디에 권하윤은 하려던 말을 도로 목구멍으로 삼켰다.그는 권하윤에게 성은우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자기의 화를 돋우는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아무리 마음이 급하다지만 권하윤도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때문에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살짝 말아 올린 그의 입술에 다시 자기 입술을 갖다 댔다.이번에 민도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 동작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권하윤이 눈을 들었을 때 마침 남자의 장난기 섞인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왜? 그동안 대접 받는 데 너무 익숙해져 혼자서는 못하겠어?”민도준은 눈길로 아래를 가리키며 암시
“뭐, 그럭저럭.”민도준은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나른한 콧소리로 대답했다.“그런데 알아서 한다고 했었잖아?”이윽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그의 손가락이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리며 권하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불합격이야.”“다, 다음에 할게요.”권하윤은 말문이 막힌 듯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민도준의 눈치를 살폈다.“저기, 기분이 괜찮다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그 개자식이 아직 살아 있냐고?”숨이 턱 막혔지만 권하윤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죽었어.”짤막한 세 글자는 권하윤의 희망을 반쯤 꺼버렸다.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애써 몸을 일으킨 그녀는 민도준과 눈을 마주하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도준 씨도 그때 오해였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장난치지 마세요. 네?”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꾹꾹 눌러댔다.“꿈은 하윤 씨가 꿨으면서 내가 깨웠다고 탓하는 거야?”권하윤의 머리는 그의 힘에 밀려 앞으로 살짝 치우쳤다.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반짝거리던 눈빛은 어느새 희망이 완전히 점멸된 듯 어두워졌다.따뜻하던 몸의 온도마저 이내 식어버려 벗어나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민도준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왜? 그 개자식이 죽었다니까 방금 전 행동이 후회 돼?”권하윤은 이내 고개를 피했다. 하지만 아직 부탁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하는 수 없이 그의 비위에 맞춰야 했다.솔직히 그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귀에 너무나도 거슬렸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또 진짜일까 봐 겁이 났다.이에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피곤해서 그래요.”민도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까발리지는 않았다.이윽고 침대에서 내리더니 따라 내리는 권하윤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대에 앉혔다.“여기서 자.”“여기서요?”권하윤은 어리둥절했다.그때 겉옷을 입은 민도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이렇게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온천 펜션은 대부분 개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내비게이션을 따라 그곳으로 향하던 중 권하윤은 펜션의 위치가 공씨 가문 리조트와 멀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모든 방면에서 리조트보다 많이 떨어졌다.게다가 엄 변호사의 말대로 주위에 건물도 없고 가로등도 없어 펜션이라기보다는 귀신의 집에 더 가까웠다.때마침 날이 어두워 어둑어둑한 주위 환경 때문에 권하윤은 감히 내리지 못하고 차에 앉은 채로 이남기를 기다렸다.고요한 주변 환경은 왠지 모르게 김장감을 안겨주었다.그 때문인지 차 문손잡이가 움직이는 순간, 권하윤은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그러다가 차창으로 이남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물 마실래요?”이남기는 고개를 저으며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런데 아까 전화로 은우 형의 시신에 관한 소식을 들은 적 있다고 하셨죠?”“네.”권하윤은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훑어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참, 전에 보육원에서 입양되셨다고 하셨죠? 혹시 어느 보육원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이남기는 그녀의 물음에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말은 다 사실이니까.”이윽고 그는 자기가 성은우와 있었던 일을 모두 사실대로 설명했다. 어느 보육원 출신이고, 공씨 가문에 들어간 지는 몇 년이고, 또 성은우의 습관 심지어는 성은우가 입었던 상처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그 답은 권하윤이 알고 있던 것과 모두 일치했다.그때 이남기가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저 권하윤 씨의 생활을 방해할 생각 없어요. 단지 은우 형의 유해를 해원으로 데려가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알고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이남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권하윤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은우 안 죽은 것 같아요.”“네?”이남기는 그녀의 말에 흥분한 태도를 보였다.“은우 형이 안 죽었다고요? 그럼 지금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