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너무 놀란 나머지 권하윤은 순간 심란해졌다.“해외라고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죠?”권미란은 그녀의 예의 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이어 그녀에게 맡길 일을 생각해서 꾹 눌러 참았다.“전에 모셔 온 의료진들이 말하길 너의 오빠 다리가 완전히 감각을 잃은 건 아니라더구나. 해외 실험실에서 치료받다 보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했거든.”오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말에 권하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권미란이 자기 오빠에게 좋은 치료환경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아마 그녀가 민도준이라는 뒷배를 두면 자기의 공제를 벗어날까 봐 오빠와 접촉하지 못하게 격리해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거다.오빠가 불편한 몸으로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권하윤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이윽고 눈을 내리깔며 애써 감정을 숨긴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바쁘신 와중에 저희 가족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알면 됐다.”권미란은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그녀가 여전히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확인했는지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아졌느냐?”권하윤은 민도준이 대체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민 사장님이 너한테 약까지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잠깐 멈칫한 권하윤은 그제야 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했을 거라는 걸 알아채고는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네,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민 사장님은 승현이의 형이신데 그런 일을 하다니. 다행히 가정의가 저한테 놓은 주사와 배척반응을 일으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녀의 말에 권미란은 난감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의 뜻을 내비쳤다.“물론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민 사장님이 너를 마음에 들
예전 같으면 권하윤은 그런 물음은 절대 묻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권효은도 그녀를 다리로 이용하려 하기에 분명 뭔가 털어놓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잠깐 멈칫하던 권효은은 끝내 입을 열었다.“그냥 간단한 운수업이야.”‘운수업…….’‘평범한 물건을 운송하려 한다면 권씨 가문 자금과 능력으로 충분할 텐데, 왜 하필 도준 씨를 거치려는 거지?’“뭘 운송하는데요?”끝내 참지 못하고 뱉어낸 그녀의 물음에 권효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명령했다.“먼저 민 사장님 태도를 살핀 다음 정말로 도와줄 마음이 있는 것 같으면 움직여.”“알았어요. 그러면 저 먼저 가볼게요.”그녀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권하윤은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하지만 권하윤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권효은이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너, 권하윤 맞아?”“그게 무슨 말이에요?”흠칫 놀라 되묻는 말에 권효은은 어느새 여상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왔다.“아니야, 나가 봐.”사무실을 나선 권하윤은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애초에 권미란은 그녀를 비밀리에 경성으로 데려온 데다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에게 행동 하나하나를 가르쳐줬었다.그 일은 심지어 권희연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지금껏 그녀를 진짜 여동생으로 생각하는 거고.하지만 권희연은 그렇다 쳐도 권씨 가문 후계자인 권효은은 당연히 내막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까의 한마디로 그녀도 모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렇다는 건 권효은과 권미란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는 걸 말하는 건가?’피어오르는 의심을 던져버린 권하윤은 여고를 떠난 뒤 과일과 디저트를 사 들고 권희연을 보러 병원을 향했다.“희연 언니, 나 왔어…….”그녀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산만한 등과 그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권희연이었다.심지어 로건이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병상에 기대 책을 보고 있는 권희연과 로건의 손에 쥐어진 털실
광선을 등진 병실에 복도의 햇빛이 살짝 비집고 들어왔다. 물론 곤혹스러워하는 로건의 얼굴까지 함께 말이다.그의 표정을 보면 탕수육과 깐풍기 중 뭘 먹을지 고르는 일이 아주 중차대한 일인 것만 같았다.심지어 대답을 들으면 바로 식당으로 달려갈 것만 같은 결의가 보였다. 하지만 그때, 권희연이 갑자기 얼굴을 감싸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갑작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로건은 많이 놀라 허둥댔지만 여전히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애먼 문짝만 손톱으로 긁어댔다.“왜 그러세요? 혹시 탕수육과 깐풍기가 다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럴 리가 없는데, 어제 점심에는 분명 맛있다고 했잖아요…….”점수를 딸 좋은 기회에도 바보처럼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로건을 보자 권하윤은 한심한 듯 탄성을 자아내더니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안으로 들어와 말하면 안 돼요?”“아? 들어가도 돼요? 알겠어요.”로건은 얼른 병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희연 씨, 울지 마세요.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닭갈비도 있고, 닭볶음탕, 양갈비, 그리고 제육볶음도 있어요…….”메뉴를 하나하나 열거하는 로건을 보고 있자니 권하윤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다행히 더 사납게 우는 권희연의 모습에서 이게 아니라는 걸 알아챈 로건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권희연을 보니 그의 마음은 답답하고 괴로웠다.그런 느낌은 민도준의 주먹에 열 대 정도 맞았을 때보다 더 아팠다.이윽고 그의 몸은 머리보다 먼저 권희연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더니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난 누구? 여긴 어디? 나 지금 권희연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이상한 생각이 난무하던 그때 권희연이 갑자기 울면서 몸부림 쳐댔다.“저 만지지 마요, 더러워요.”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은 코가 찡했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위로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로건이 손을 풀었다.그것이 서러웠는지 권희연의 흐느낌은 더 심해졌다. 두 눈은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물이
갑작스러운 발표에 공기가 잠시 고요해지더니 사람들은 그제야 반응한 것처럼 하나둘 축하하기 시작했다.천생연분이네 잘 어울리네 하는 말로 말이다.축복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민도준은 사람들을 지나 손뼉을 치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멈췄다.‘하, 아주 열심히도 치네.’하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기에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민상철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전에 도준이가 가정도 이루지 못해 걱정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성격도 많이 죽인 것 같으니 과학기술 단지는 도준이한테 맡길까 한다.”그 말을 들은 민용재는 표정이 몇번 바뀌었지만 끝내 고개를 숙였다.“네, 아버지.”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거역하지는 못했다.병으로 몸 상태가 많이 쇠약해진 민상철은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돌아갔다.그리고 그가 사라지기 바쁘게 식구들은 둘째 작은 사모님이 될 고은지에게 하나둘씩 다가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사람들이 쌩하고 모두 고은지한테로 달려가는 바람에 권하윤은 혼자 원래 자리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장난기 넘치는 한 쌍의 눈과 마주쳤다.복도에 서 있다가 경망스럽게 턱을 치켜올리는 민도준의 모습에 놀란 권하윤은 다급히 무리를 따라 고은지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약 두 걸음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성큼성큼 걸어오는 남자의 어깨에 부딪혀 몸을 비틀거렸다.“북쪽 별채로 와.”귀를 파고드는 나지막한 음성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고은지를 바라봤다. 다행히 그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보지 못한 듯했다.다른 누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곧바로 민도준을 따라가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고은지에게 축하를 건넸다.그녀의 목소리에 고은지는 잠깐 멈칫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와 눈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그 모습에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왠지 모르게 그녀의 그 눈빛에 깊은 뜻이 담겨있는 듯했다.북쪽 별채.권하윤은 도둑고양이처럼 두리번대며 별채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정원에
“큰 숙부님 오셨어요.”고은지의 말에 민도준은 권하윤에게 장난치던 손을 멈칫하더니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그 틈에 권하윤은 그를 밀어버리고 허둥대며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그때, 손이 옥죄어 오더니 민도준이 따라 일어났다. 심지어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도 장난칠 마음이 들었는지 그녀의 볼살을 쭉 잡아당겼다.“놀랄 거 없어. 침대에서 뒹굴다 잡힌 것도 아니고.”“이거 놔요.”버둥대며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고은지가 안으로 들어섰다.일순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하지만 민도준과 마찬가지로 고은지도 전혀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큰 숙부님이 정원까지 들어섰어요.”물론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민용재를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저 먼저 갈게요.”말을 하며 손을 빼내려 버둥댔지만 남자의 손은 마치 뿌리라도 내린 듯 뿌리칠 수 없었다.심지어 민도준은 바람피우다 들켰다는 자각도 없는 것처럼 고은지의 면전에서 그녀의 손목을 주물럭거렸다.“멀리 도망가지 마.”권하윤은 이 상황을 차마 견딜 수 없어 대충 대답하고 안쪽 방으로 도망쳤다.그리고 그녀가 몸을 숨기기 바쁘게 민용재가 저택에 들어섰다.그 시각, 이미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민도준은 나른한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오셨네요?”웃어른인 민용재도 서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인 민도준이 다리를 꼰 채 삐딱하게 앉아 있으니 상황은 그야말로 난감했다. 하지만 민도준이 여전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체면이 서지 않은 민용재는 이내 표정을 구겼다.“참 한가해 보이는구나.”“아니면요?”민도준은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숙부님처럼 정신없이 일하다가 아무것도 차지하지 못하고 다 빼앗길까요? 아, 아니지. 아무것도 못 가진 건 아니지.”이윽고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헤기 시작했다.“저 암살하고, 고창호 어르신을 끌어들이고, 과학기술 단지를 손에 넣으려 하다가 일이 모든 일을 다 망쳤죠. 그런데도
마치 말을 타는 듯 상대를 놀리는 민도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권하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민용재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곧이어 화가 단단히 난 민용재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게 들려오자 이 틈에 슬그머니 밖으로 도망치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왔다.그러던 그때, 하늘이 그녀를 돕기라도 한 듯 베란다에 난 작은 문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어색했는데 이참에 얼른 도망쳐야겠어.’민용재가 떠나기 바쁘게 그녀는 슬그머니 그 뒤를 따랐다.그리고 그 시각, 거실에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던 민도준은 작인 인기척에 입꼬리를 올렸다.‘하, 이젠 점점 기어오르네. 감히 도망가시겠다?’그가 마침 담배를 다 피웠을 때 손에 받쳐 든 재떨이가 그의 앞에 쑥 내밀어졌다.곁눈질로 확인해 보니 아까부터 조용함을 유지한 채 앉아있던 고은지였다.그는 손에 힘을 준 채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더니 고은지의 손이 미세하기 떨리기 시작하자 싱긋 웃었다.“눈치는 있네,”“도준 씨 일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죠.”떨리는 손목과 달리 평온한 말투였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을 세게 조여왔다.갑자기 조여오는 힘에 숨이 막혀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랐다.“쨍그랑”이윽고 손에 들려 있던 재떨이마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당장이라도 상대를 죽이려는 듯한 동작에 반해 한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민도준이 말을 걸어왔다.“민용재 그 인간을 끌어들인 거 은지 씨잖아. 내가 빚지게 만들려는 속셈인가?”“…….”고은지의 눈빛은 순간 자잘하게 흔들렸다. 살려고 숨을 헐떡이며 발버둥 치는 모습이 조금 가엽기까지 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눈이 뒤집힐 때까지 손에 힘을 주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아참, 전에 민승현한테도 같잖은 도움 주려고 했었지? 설마 그 얼굴이 목숨을 건지는 패라도 되는 줄 아나? 아니면 죽음도 두렵지 않은 건가?”돌아오는 대답은 고요함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고은
민도준은 자기의 말에 의견을 굽힌 권하윤을 힐끗 바라보며 그녀의 다리를 손으로 슥 매만졌다.“응. 기다려.”짤막한 한마디를 남기고 민도준이 떠나가자 권하윤은 마음이 불안해 났다.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밖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바라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그리고 그 시각, 권씨 집안 사람들도 그녀못지 않았다.민도준과 같은 큰 인물이 집에 왔다는 말에 권미란은 머리도 미처 빗지 못한 채 다급히 달려 나왔다.“민 사장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오시다니. 앉으…….”앉으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도준은 주인인 것처럼 먼저 소파에 털썩 기대앉았으며 서 있는 권미란을 향해 오히려 자리를 권했다.“앉으시죠? 서서 저 대접할 겁니까? 그렇게 내외할 거 없습니다. 얼른 앉으세요.”그의 말에 권씨 저택 분위기는 순간 무거워졌다.고지식한 가풍을 가지고 있는 데다 예의범절에 엄격한 권씨 집안에서 그것도 권미란 앞에서 이런 태도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거였다.심지어 권하윤은 평소 말하는 속도가 조금 빨라도 혼나곤 하는데 그런 걸 깡그리 무시하는 민도준의 건방진 행동에 권미란의 표정은 좋을 리가 없었다.“민 사장님, 이게 지금…….”“농담 좀 한 겁니다. 설마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 아니죠?”민도준의 건들건들한 태도에 권미란은 진지하기도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애매했다.따라서 파리라도 삼키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정만 구겼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화를 삭이며 호흡을 가다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온 건 우리 넷째 때문입니까?”“네.”민도준은 숨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말했잖습니까? 권하윤 씨와 잘 수만 있다면 권씨 가문과 손을 잡겠다고. 잠은 이미 잤으니 약속을 지킬 때가 됐죠.”충격적인 한마디에 거실에 있던 사용인들은 하나둘 고개를 떨구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심지어 입에서 소리라도 날까 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갑자기 예고도 없이 가문의 민낯을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미란은 놀라기도 잠시 애써 체통을
“말씀하시죠.”“우리 제수씨 말인데요, 예전에 해원에 갔던 적 있나요?”살짝 웃으며 꺼낸 민도준의 말에 권미란의 표정은 알게 모르게 굳어버렸다.‘갑자기 이건 왜 묻지? 설마 뭔가 알게 됐나? 아니면, 권하윤이 알려줬나?’‘아니야, 그럴 리 없어. 민 사장이 공씨 가문 가주와 아는 사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인데 권하윤이 자기의 허점을 쉽게 드러낼 리 없어. 더욱이 오빠도 내 손에 있는데.’몇 초도 안 되는 사이, 권미란은 뭔가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 애들은 어릴 적부터 경성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게다가 지금 세상이 무서운지라 그 애들을 밖에 내보낸 적 없고요.”“아하, 그러시구나-”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말투에 불안감이 일순 권미란을 덮쳤다.“권 여사님, 제가 누군지 아시죠?”“당연하죠. 민 사장님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경성에 누가 있겠습니까?”“하, 난 또 모르시는 줄 알았지 뭡니까.”분명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마치 상대의 껍질을 벗겨낼 것처럼 잔인하고 악랄했다.“그래서 저를 속이는 줄 알았는데.”분위기는 갑자기 변하더니 편안하던 공기 속에 찬 바람이 불어 들어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다행히 권씨 가문을 관리하면서 쌓은 내공이 있는지라 권미란은 이러한 압박에도 이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넷째는 몸이 안 좋아 제가 어릴 때부터 옆에 끼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더욱이 제 말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아이이고요. 경성에 있으면서 민 사장님도 소문을 들었을 텐데요.”그녀가 이토록 대담하게 권하윤에게 가짜 신분을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진짜 딸 덕분이었다.만약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내면 바로 들통이 날 테지만 권하윤은 원래 있던 사람을 대신한 거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녀의 이름을 조사한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이 모든 걸 계산한 권미란은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혹시 넷째가 민 사장님의 심기라도 거슬렀나요? 그렇다면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