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와.”간단한 세 글자를 내뱉고 창가로 사라진 민도준의 실루엣에 권하윤은 잠시 고민하더니 빗자루를 문 앞에 세워두고 옷을 여미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그러면서 계단을 밟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조마조마함을 감추지 못했다.‘나한테 흥미 없어진 거 아닌가? 왜 갑자기 부르지? 설마…… 내가 고의로 접근했다고 생각해서 괴롭히려는 건 아니겠지?’수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바람에 그녀의 걸음은 점차 느려졌다.심지어 도둑처럼 살금살금 움직이기까지 하는 바람에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도준이 피식 웃었다.“외간 남자 꼬실 때는 다리를 잘만 이용하더니 지금은 부러지기라도 했어?”‘외간 남자를 꼬셨다고?’계단 맨 위층에 서서 놀려대는 민도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권하윤은 자기가 그를 꼬시러 일부러 접근했다고 오해라도 하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하지만 그렇다 한들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하게 그의 앞까지 다다른 뒤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모든 괴롭힘도 견뎌낼 것만 같은 고분고분한 모습은 하늘하늘 춤추던 어제의 모습과는 확연한 대비를 이루었다.이에 민도준은 재밌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담배를 끄더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듣기 좋은 말을 잘만 하던 모습은 어디 갔어? 이젠 말도 하지 못하나?”입 안에 머금고 있던 매캐한 연기가 고스란히 권하윤에게 뿌려지자 그녀는 불편한 듯 눈을 깜빡이며 입을 삐죽거렸다.“예전에는 도준 씨가 저 싫어하지 않으니 그런 말도 서슴없이 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저 싫어하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겠어요?”분명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이었지만 왠지 매정한 민도준을 나무라는 말로 들렸다.이에 재미를 느낀 그는 손을 풀면서 안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몇 걸음 걸어갔을 때 여전히 동상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왜? 내가 모셔 오기라도 해야 해?”하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권하윤은 자연적으로 따라나설 수 없었다
권하윤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민도준이 그녀에게로 걸어갔다.그 순간 정원의 풀내음과 민도준의 담배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그녀를 덮쳐오는 바람에 원래도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점점 더 복잡했다.이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지만 몇 발짝 가지 못해 벽에 등이 부딪히고 말았다.민도준은 한가로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갔다.닿일듯 말듯한 거리에 오히려 더 숨이 막힌 권하윤은 자기를 짓누르는 느낌을 애써 무시했다.민도준은 그녀가 겁에 질렸다는 걸 알면서도 짓궂게 괴롭혔고 그녀의 허리 뒤쪽 벽에 손을 짚은 채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이윽고 그녀의 쇄골이 눈에 띌 정도로 바르르 떨리는 걸 보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랑 있으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한 것 같아 이제는 싫어졌어? 그래?”그의 모든 게 너무 존재감이 큰 탓에 권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나서야 자기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저…… 그저…….”하지만 한참을 우물대다가 말 한마디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하.”곧이어 남자의 입매에서 터져 나온 웃음은 싸늘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위험을 감지한 권하윤은 불안함에 고개를 들었고 다음 순간 그의 비아냥 섞인 눈빛과 마주치고 말았다.“정말 길들지 않네.”권하윤은 흠칫 몸을 떨면서 뭐라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들어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이윽고 그녀를 안고 있던 뜨거운 품도 싸늘하게 식어갔다.한 걸음 정도 거리를 둔 채 그녀를 바라보는 가늘게 접은 눈에는 언뜻 살기가 지나갔다.오랫동안 그와 지내온 권하윤은 그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겁에 질린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마음속에 피어나던 따뜻한 감성마저 어느덧 흩어졌다.그녀의 겁먹은 모습에 민도준은 더욱 조급해 났다. 이윽고 목덜미에 난 혈관이 펄떡펄떡 뛰더니 피비린내 나는 기억 속의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치 그런 피 빨간 장면을 다시 그려야만 화를
민도준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몰라.”한민혁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혹시 공씨 가문 가주의 오른팔과 왼팔이라던 그놈들 아닐까? 그러면 얼른 하윤 씨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그러더니 갑자기 놀라기라도 한 듯 몸을 떨었다.하지만 그의 반응에 반해 민도준은 오히려 무덤덤했다. 그는 호들갑 떠는 한민혁을 힐끗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렇게 걱정되면 너희 집으로 데려가는 건 어때?”“응? 나…… 어…… 하하,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한민혁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더듬더듬 말을 보충했다.“그저 그놈이 원체 신출귀몰하는 데다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그래. 보통 애들이 막지 못할까 봐 그런 거지.”그의 말에 민도준은 긴 다리를 앞으로 내뻗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그 정도로 죽는다면 명줄이 거기까지라도 봐야지.”“어, 도준 형…….”정말로 손을 놓은 것처럼 행동하는 민도준을 보자 한민혁은 마음이 편하기는커녕 화가 났다.‘이렇게 신경 안 쓴다고 해놓고 진짜로 죽으면 나한테 책임 물을 거면서!’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는 끝내 똘마니 하나를 더 보내 권하윤 주위를 잘 감시하도록 명령했다.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았는지 해가 지기도 전에 그는 직접 권하윤의 집 부근으로 가 경계를 살폈다.“민혁 형님, 어떻게 직접 오셨습니까?”“너희들이 믿음직스러우면 나도 이러지 않지.”한민혁은 망원경을 들고 권하윤의 집 부근을 살폈다.“일전에 말했던 수상한 차량은 어디 있는데?”조수석에 앉아 있던 똘마니는 그의 물음에 곧바로 맞은 쪽에 세워진 회색 차량을 가리켰다.“저기요. 형님 말대로 저희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똘마니가 가리키는 차량을 한참 동안 살폈음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한민혁은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다시 한 번 명령했다.“놓치
일순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가슴이 쿵쾅거려 권하윤은 마음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을 때 잔뜩 놀란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윤이?”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뜬 권하윤은 고개를 든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은우?”이건 그가 권하윤의 도주를 도운 뒤로 이루어진 첫 만남이었다. 때문에 권하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하지만 은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들더니 그는 갑자기 어깨를 움켜쥐었다.이윽고 그는 권하윤을 힐끗 보고는 곧장 창문으로 도망쳤다.그리고 그때 인기척 없이 나타난 민도준이 눈을 가늘게 접은 채 어두운 표정으로 권하윤을 이리저리 훑었다.“여기 가만히 있어.”그가 은우의 뒤를 쫓으려 하자 권하윤은 재빨리 그의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가지 마요. 저 무서워요.”이윽고 그가 불쌍한 표정까지 지으며 그를 만류했지만 민도준은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걸리적거리지 말고 손 놔.”하지만 허리에 두른 손은 아무리 뿌리쳐 내도 계속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그러더니 곧이어 등 뒤에서 불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버리고 가지 마요. 보고 싶었어요…….”마지막 한마디에 그녀의 팔을 떼어내던 손은 일순 멈칫했다.이윽고 민도준은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오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보고 싶었다고?”분명 그를 막으려고 생각해 낸 거짓 핑계였지만 위험한 상황에 곧바로 달려와 준 그의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보고 싶었어요.”물기 어린 눈동자에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지시 않았지만 손은 떼어내는 족족 다시 민도준에게 달라붙었다.이에 창밖을 힐끗 살핀 그는 이미 때를 놓쳤다는 걸 직감하고는 그녀의 이마를 쿡쿡 찔러댔다.“건드릴 땐 반응 없다가 왜 하필 중요한 순간에 발정하고 난리야?”민도준이 아픈 곳을 다시 찔러대자 권하윤은 아예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저
민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매혹적인 눈동자로 권하윤을 빤히 쳐다만 봤다.그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계속 눈물을 쏟아내는 권하윤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눈물에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덜미로 시선을 옮겼다.그렇게 한참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무 오래 지속된 침묵에 민도준이 자기한테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한 그때, 권하윤의 목에 닿아 있던 권총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졌다.하지만 너무 오래 누르고 있은 나머지 턱에 깊은 자국이 남아 그녀에게 불쌍함을 더해줬다.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민도준을 바라봤다.이윽고 그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민도준이 갑자기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문질렀다.“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부드럽고도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자는 조금 전 살기 어린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이렇듯 변덕스러운 모습에 권하윤은 그의 다리 위에 앉은 순간까지도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아직도 믿어준다는 대답을 듣지 않은 터라 그녀는 여전히 불안했다.불안과 공포, 고뇌와 미안함 등 감정이 얼기설기 뒤엉켜 그녀의 눈시울은 또다시 불어졌다.그때 굳은살이 박인 손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다.“왜 아직도 울어? 내가 막아줄까?”음미할수록 이상야릇한 말은 복잡하기만 하던 권하윤에게 부끄러움을 더해줬다.하지만 그녀가 버둥대며 민도준의 다리에서 내리려 할 때 그의 손이 권하윤을 꾹 눌렀다.“어디 가려고? 나 보고 싶다며? 설마 또 나 속인 거야?”권하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자의 다리 위에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그때 그녀의 등 쪽에 있던 손이 권하윤의 웃을 들추며 그녀의 차가운 피부를 자극하더니 곧이어 욕망이 가득 담긴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그럼 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검사 좀 해볼게.”“아-”얼마 안 되는 사이, 거절하던 목소리는 점점 흥분에 젖어 들
권하윤은 자연스럽게 민도준이 하루 종일 자기를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한 번 만에 끝나 버렸다.하지만 권하윤은 오히려 이런 변화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설마 안 되나? 아니면 기력이 달리나?’온갖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안 되는 건 바로 배제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민도준이 그녀를 안을 때마다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욕망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그렇다면 나한테 흥미를 잃었나?’“무슨 생각해?”허리에 타월을 두른 채 욕실에서 걸어나온 순간 민도준은 침대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 권하윤을 발견했다.먼저 씻겨 내보낸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축축한 머리를 어깨 위에 드리운 채 나른한 모습을 하고 있자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권하윤은 민도준의 그쪽 능력을 대놓고 의심할 배짱이 없었기에 그저 아무 일도 없는 듯 무해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민도준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그 눈빛은 오히려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무섭게 그녀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불 꺼.”‘오늘 밤은 여기에서 보내려나 보네.’다행히 민승현이 며칠 동안 집에 온 적이 없는 데다가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권하윤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의견에 따랐다.하지만 침대에 누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권하윤은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그녀의 눈은 오히려 더욱 똘망똘망해졌고 저도 모르게 뇌리에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왔다.성은우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잡히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다가 또 갑자기 공씨 가문의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두려워났다.‘날 죽이려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공아름이겠지?’다행히 성은우가 왔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왔다면 그녀는 아마 도망치지 못했을 거다. 더욱이 공씨 가문 가주의 귀에 그녀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어갈 가능성까지 고려하니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도준 씨가 오늘 여기에 남은 건 아마도 공아름이 이런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알아서겠지?’그 생각에 그녀는 어둠
‘이건…….’목에 닿았던 차가운 촉감이 순간 되살아나는 듯해 권하윤의 몸은 일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이거…….”하지만 그녀가 자세하게 만져보기도 전에 민도준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착하지? 함부로 만지지 마.”아이를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권하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왜 이런 걸 베개 밑에 숨기고 있지? 설마 날 죽이려는 건가?’품속의 여자가 경직된 것을 느낀 민도준은 그녀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달랬다.“얼른 자.”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베개 밑에 놓인 무기의 존재를 알게 되자 권하윤은 잠이 들 리 없었다.순간 조금 전에 겪었던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에서 재생되었다.민도준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녀더러 불을 끄라고 할 때부터 모든 건 이 무섭고 소름 끼치는 답을 가리키고 있었다.‘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지내 왔으면서 민도준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잊어버리다니. 진짜 나를 용서해 줬다고 생각하다니.’순간 덮쳐오는 공포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트려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권하윤이 겁을 먹었다는 걸 발견한 민도준은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갑자기 방을 밝히는 눈 부신 빛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고 다시 뜨는 순간 민도준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에 겁을 먹은 권하윤은 몸을 슬금슬금 뒤로 빼며 그와 멀어지려고 애썼다.그때 민도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 뒤를 힐끗 살피며 입을 열었다.“더 물러나다간 떨어져.”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권하윤은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 넘어졌다.“아-”그리고 그 순간 힘 있는 손이 그녀의 허리를 받쳐 들어 그녀를 원래 자리고 끌어왔다.권하윤은 가까이에 있는 민도준 때문에 버둥거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가 갑자기 손에 힘을 주며 인내심을 잃은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뭐 하는 거야? 내가 하윤 씨 죽이려고 했으면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하긴, 민도준이 나 죽이려 한다면 난 도망칠 기회도 없겠지? 안돼. 흐트러져서는 안
권하윤은 숨을 죽인 채 민도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넘겨주던 남자가 입을 달싹이면서 짤막한 대답을 내뱉었다.“착하네.”겨우 정확한 선택지를 골랐다는 생각에 권하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한참 뒤 채 피우지 않은 담배를 눌러 끈 민도준은 권하윤의 목덜미를 잡은 채 그녀를 자기 앞으로 돌려놨다.“피곤해?”이미 정신이 번쩍 든 권하윤은 성실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녀의 동작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피곤하지 않으면 우리 다른 거 할까?”분명 권하윤의 의견을 물어보는 한마디였지만 민도준은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그녀의 다리를 벌리며 신음을 입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방 안에는 낮은 흐느낌 소리만 맴돌았다.하지만 그 덕에 권하윤의 쓸데없는 생각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민도준은 그녀의 상처가 눌리우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권하윤더러 여러 가지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하게 했다.‘그렇게 날 생각해 준다면 횟수나 좀 줄이라고!’권하윤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지만 조금 전의 교훈 때문에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동이 틀 때쯤 권하윤은 완전히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의 눈초리에는 여전히 물기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에게 호되게 당한 뒤라 그런지 더 이상 그의 품에 파고들지 않고 혼자 침대 끝에 쪼그린 채 잠들었다.그런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손을 이불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권하윤의 얼굴이 붉게 물들자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지만 그런데도 권하윤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보아하니 무척 피곤한 모양이었다.민도준은 담배를 들고 테라스로 향하더니 담배 한 갑이 바닥날 때까지 피워댔다.그러면서 희뿌연 연기를 내뿜더니 어디론가 전화했다.“사람 하나 잡아 와.”권하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탓에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한 한민혁은 민도준의 전화를 받자 곧바로 고분고분 대답했다.“잡아야지. 당연히 잡아야지. 내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