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훈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얼른 거절했다.“아니에요. 제가 할게요.”“지훈아, 제수씨가 하고 싶다는데 해보라고 해. 쪼잔하게 굴지 말고.”‘쪼잔?’그 말을 들은 순간 참을성 많은 민지훈마저 하마터면 표정을 숨기지 못 할뻔했다.하지만 이내 미소를 장착한 그는 권하윤에게 낚싯대를 건네며 하라는 손짓을 했다.권하윤의 실력은 민지훈에 비하면 코웃음이 날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눈은 즐거웠다.낚싯줄이 수면에 떨어져 잔물결을 일으킬 때마다 따라서 흔들거리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보자 민도준의 가슴은 저도모르게 간질거렸다.하지만 그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미를 찾으려던 그때 무릎 위에 중력이 가해졌다.“아!”애교 섞인 짧은 비명과 함께 여직원 하나가 그의 무릎 위에서 다급히 일어섰다.“죄송합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절대 일부러 그런 거 아닙니다.”그 여자는 아까 민도준에게 낚시를 권했던 여직원이었다. 그녀는 적잖게 당황했는지 나른해진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몸을 마구 움직이며 민도준의 다리를 문질러댔다.“죄송합니다, 민 사장님.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겨우 몸을 일으킨 그녀는 말하는 동시에 민도준의 눈치를 살폈다.하지만 민도준은 고개를 움직이며 싸늘한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이렇게 저급한 수작을 부린다고? 살아있는 사냥감은 이거로 할까 보다.’한편 모든 과정을 지켜본 권하윤은 배짱이 두둑한 여직원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침묵이 길어질수록 여직원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이 직원분 보면 볼수록 하윤 씨랑 닮았네.”그때 갑자기 침묵을 깨는 민지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그 말에 잠시 멈칫하던 민도준의 눈가에 장난기가 더해졌다.“그래? 어디 봐봐.”그는 여직원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권하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제수씨 이리 와봐. 진짜 비슷한지 비교해 보게.”‘비교는 개뿔!’권하윤은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민도준의 말에 거역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게 다가갔다.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떨
발효된 위스키는 짙은 알코올 냄새를 풍겼고 유리 벽에서 미끄러지며 흘러내리는 액체마저 매력적인 색채를 띠었다.그러던 그때, 술잔을 채운 술을 입에 대지도 않은 채 몇 번 흔들던 민도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술 도수가 꽤 높아 보이는데 취하면 어떡하죠?”“방은 이미 준비해 드렸습니다. 단독 별장으로 준비했으니 방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아하, 그럼 방안에 사람도 이미 준비해 뒀나요?”그 말을 들은 주상현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설마 방에 아름 아가씨가 있다는 걸 눈치챈 건가?’“농담이에요.”민도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주상현을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식사도 하지 않았는데 술부터 권하면 위 망가지는데.”“네네, 당연히 식사 후에 드셔야죠.”주상현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더 이상 그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들 곁에도 위스키가 한 잔씩 놓여 있었지만 민도준 곁에 놓인 것보다는 많이 저렴한 거였다.그러던 그때, 주다현이 술을 살짝 맛보더니 혀를 내밀며 민도준의 어깨에 기댔다.“너무 매워요.”“매우면 적게 마셔.”기복이 없는 그의 말투는 그나마 조금 걱정이 묻어있어 보였다. 그 때문에 주다현의 심장은 더욱 콩닥콩닥 뛰었다.그녀는 민도준에게 음식을 짚어 주며 하늘이 내린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비위 맞추기가 어렵다는 소문만 무성하더니. 민 사장님도 품에 안겨 오는 여자를 마다하지 못하는 건 보통 남자랑 똑같네.’그녀는 당장이라도 민도준 무릎에 앉을 기세로 딱 붙은 채로 그에게 음식을 짚어 주었다. 그 모습에 권하윤도 게 다리 하나를 집에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하지만 한창 열심히 먹고 있던 그때 갑자기 무언가 다리를 슬쩍 스쳤다.권하윤은 게 다리를 씹고 있던 동작을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맞은 쪽에 앉은 민지훈을 바라봤다.그녀의 갑작스러운 눈길에 의아했지만 민지훈은 그녀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쨍그랑”하는 맑은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민도준
권하윤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특히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욕조에 앉아있는지라 그 두려움은 배가 됐다.하지만 그녀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며 세면대 위에 올려둔 옷을 낚아채려 하는 순간 욕실의 문손잡이가 끼이익 돌아갔다.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권하윤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다급히 욕조로 숨겼다. 하지만 너무 급한 동작 때문에 물보라가 일며 욕조 옆으로 물이 흘러나왔다.욕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습을 보게 된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젠 다이빙도 해?”그는 천천히 욕조 쪽으로 다가가더니 안을 힐끗 훑어봤다.“가려봤자 가려지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애써?”“콜록콜록…….”고개를 들던 권하윤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댔다.투명한 물방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리다 떨어지면서 작은 물보라를 잃었고 물기에 촉촉하게 젖은 얼굴에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다.“왜 도준 씨가 여기 있어요?”“내가 아니면?”민도준은 허리를 숙여 물을 손으로 휙 쓸어 일렁이고 있는 수면 위에 물보라를 더했다.“누구인 줄 알았는데? 지훈이?”“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훈 아주버님이 제 방에 뭐 하러 들어오겠어요?”뜬금없는 민도준의 말에 권하윤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모르지.”그러자 민도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 안에 있는 권하윤의 발목을 잡아 확 잡아당겼다.“아!”그 힘에 권하윤은 중심을 잃고 뒤로 젖혀지면서 물에 다시 빠졌다.만약 욕조 변두리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마침 수면위에 멈춰 선 그녀의 입술 안으로 맑은 액체가 자꾸만 흘러들려고 애썼다. 매혹적인 입술이 숨결을 찾으려고 뻐금거리는 모습에 민도준의 눈빛은 일순 어두워지더니 허리를 굽힌 채 그녀의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던 권하윤은 끝내 더해져 오는 민도준의 힘을 이기지 못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욕조는 크지
한 번의 소동이 끝나자 욕실은 엉망이 되어버렸고 권하윤은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원흉인 민도준은 여전히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등에 입을 맞춰댔다.“그만 해요, 저 좀 휴식하게 해줘요. 지금 저 죽이려는 거예요?”권하윤은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원망스러운 듯 자기 허리에 두른 민도준의 손을 마구 끌어냈다.그러자 곧바로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그럴 리가. 아껴도 모자랄 판에 죽이다니.”“이게 아끼는 거예요? 공아름 씨가 민도준 씨한테 일부러 약까지 탔는데 제 방으로 들어오면 저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요?”마구 버둥대는 권하윤의 모습을 보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직도 쌩쌩하네?”그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린 권하윤은 방금전까지 팔딱거리더니 이내 얌전해졌다.“전 다 죽게 생겼는데 어쩜 그런 생각만 하세요?”충분히 만족한 민도준은 인내심이 생겼는지 그녀의 투덜거림에도 피식 웃으며 말랑한 얼굴을 살짝 꼬집어 댔다.“약을 탄 게 공아름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아니면요? 공아름 씨가 아니면 누가 도준 씨한테 감히 약을 타겠어요? 저는 도준 씨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 미칠 지경인데 약 타는 건 상상도 못 하거든요.”괴상야릇한 말투로 투덜대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재밌는 듯 피식 웃더니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렸다.“하윤 씨는 약 탈 필요가 없어. 나 한 번 부르기만 하면…… 거든.”일부러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인 말에 계속 투덜대려던 권하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난 또 도준 씨가 보기에도 여러 가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다현 씨를 찾아갈 줄 알았죠.”권하윤의 손을 주물럭거리던 민도준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점점 올라가 깍지를 꼈다.“또 심술이야?”“그럴 리가요. 도준 씨가 그 여자 안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그의 말에 한참을 꼬물대던 권하윤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남자의 가벼운 대답에 권하윤은 고개를 돌려 그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
반 시간 전.섹시한 잠옷을 입은 채 마음을 졸이며 민도준을 기다리던 주다현은 초인종이 울리기 바쁘게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그리고 기대처럼 문 앞에 나타난 민도준을 보는 순간 그녀는 기쁜 나머지 몸을 배배 꼬며 어찌할 줄 몰랐다.민도준은 그녀가 예전에 만났던 다른 부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돈과 권력은 물론 사람을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얼굴까지 소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게다가 경험이 많은 그녀는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민도준이 그 방면에서 얼마나 강한지를 한 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심장이 콩닥거렸다.이윽고 방안을 관광하는 듯 둘러보는 민도준을 보며 마른침을 삼키기까지 했다.“민 사장님, 오, 오늘 밤은 여기에서 지낼 건가요?”민도준은 그제야 주다현을 발견한 듯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오후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던데 이리 와 봐. 다리 치료해 줄 테니까.”그 말을 야릇한 농담으로 받아들인 주다현은 몸을 배배 꼬며 민도준에게 다가갔다.“민 사장님…… 아!”하지만 그의 옆에 다다랐을 때 머리가 유리에 세게 부딪히더니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그 모든 과정을 들은 권하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설마 모든 책임을 다현 씨한테 전가할 생각이에요?”“이게 책임 전가에 속하나?”민도준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씩 웃었다.“감히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결과도 감당해야지.”“다현 씨도 아마 도준 씨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어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그랬겠죠.”권하윤은 혀를 차더니 참지 못하고 주다현을 위해 한마디 했다.“하.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왜 다른 사람을 보호해야 하지?”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 모습은 마치 권하윤과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위험천만하고 통제할 수 없었다.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본 권하윤은 마음이 불안했다. 물론 민도준이 지금은 그녀에게 흥미를 느껴 보호해 주고는 있다지만 어느 날 흥미가 깨지면 그녀의 결말은 아마 주다현보다는 몇 배 더 비참할 거다.왜냐하면 그들 사이에
늦은 밤.단독 별장으로 돌아온 민도준은 역시나 그곳에서 공아름과 마주쳤다.바쁜 일로 리조트를 떠났다던 그녀는 민도준에게 배정된 별장의 거실에 앉아 밤을 새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를 가볍게 무시했다. 이미 충분히 즐기고 온 그는 무척 상쾌했는지 눈에는 지금까지 본 날카로움 대신 나른함만 남아 있었다.“도준 씨!”그가 자기를 무시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자 공아름은 그의 앞으로 달려가 막아섰다. “왜 그랬어요?”마음속에 담아뒀던 수많은 말들 대신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원망이 담긴 한마디였다.‘왜 나한테 이렇게 대해요?’분명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 그를 너무 사랑해서 먼 경성까지 쫓아와 마음을 내보이는 걸 알면서 민도준은 그녀를 무시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했다.심지어 약 때문에 괴로우면서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그가 대체 왜 이러는지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계단을 밟으려고 발을 들어 올리던 찰나 공아름의 말을 들은 민도준은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왜냐고요? 이유야 많죠. 그런데 말하기 귀찮으니 직접 생각해요.”말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준 씨…… 민도준!”당장이라도 자지러질 정도로 내지른 고함은 어두운 밤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도 민도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그녀는 미친 듯이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쓸어버리더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켜져 있는 핸드폰 안에는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는데 민도준이 주다현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문틈 사이로 섹시한 잠옷을 입고 있는 주다현의 모습까지 언뜻 보였다.그리고 방문이 다시 열렸을 때 민도준은 손에 들고 있던 외투를 몸에 걸치며 나왔다. 그 동작 때문에 슬쩍 말려 올라간 셔츠 아래에는 붉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이 있는 게 보였다.사실 그녀는 민도준과 권하윤의 관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거였다.두 사람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약 때문에 괴로울 때 민도준은 당연히 권하윤을
뷔페식으로 된 아침 식사가 마련되었지만 민도준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이 각종 음식이 이미 그의 앞에 차려졌다.그와 달리 권하윤은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빈 접시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식을 골랐다. 하지만 입맛이 없는지라 오렌지 주스 한잔에 계란 후라이 하나 그리고 체리 몇 개만 골라 담았다.그러던 그때 제대로 짚지 못한 체리가 접시에서 굴러떨어져 테이블 위에 데굴데굴 굴러갔다.그녀는 이내 손을 뻗어 체리를 주워 담으려 했지만 큰 손하나가 그녀를 가로막았다.빨간 열매를 잡은 손가락을 따라 올라가 보니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민도준의 얼굴이 보였다.깜짝 놀란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두러봤지만 다행히 과일 구역은 벽과 가까운 끝자리에 있었기에 누구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살짝 안도한 그녀는 접시를 쭉 내밀며 입을 삐죽거리며 민도준더러 도로 접시 위에 올려놓으라는 시늉을 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기는커녕 대놓고 체리를 입 안에 넣어버렸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이윽고 민도준을 힐끗 째려보며 몸을 홱 돌려 떠나버렸다.그녀의 뒷모습을 본 민도준은 입 안의 과일을 꿀꺽 넘기며 낮게 중얼거렸다.“다네. 마치 하윤 씨처럼.”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권하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그녀가 들었다는 것에 만족했는지 민도준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침 식사가 끝난 뒤 주성현과 민도준은 일적으로 회의해야 했지만 민도준은 의자에 기대 누운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어제 물고기를 하나도 못 잡은 걸 생각하니 아쉽네.”주성현은 민도준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그를 찔러봤다.“그럼 오늘 다시 낚시하는 건 어떠십니까?”“그래요.”민도준의 가벼운 말투에 권하윤은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예감은 현실로 되었다.낚시터.권하윤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못 안에서 허우적대는 주성현을 빤히 바라봤다.“민 사장님…… 꼬르륵…… 죄송합니다…… 저 올라가게 해주세요…… 꼬르
민도준이 분명 자기를 죽일 뻔했지만 주성현은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헐떡이며 사과했다.“제 불찰입니다. 먼저 회의실에서 기다리시면 제가 옷만 갈아입고 바로 따라갈게요.”“그렇게 계략적인 사람이 어쩜 옷 한 벌 더 챙겨야 한다는 걸 잊었어요?”그 말에 주성현의 창백한 얼굴은 아예 회색빛이 감돌았다. ‘설마 내가 어제 일부러 주다현 씨를 민 사장한테 붙여준 걸 알아챘나?’공아름은 그에게 약을 탄 술만 권하라는 명령만 했지 상세한 속사정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때문에 그녀가 민도준과 권하윤을 시험하려고 한다는 걸 알지 못한 그는 당연히 공아름이 약을 써서 민도준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거절당한 데다 민도준이 주다현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는 그걸 다른 기회로 생각했다.마음에 안 드는 공아름과 억지로 관계를 맺어 프로젝트를 성사하는 것보다는 마음에 드는 주다현과 관계를 맺는 게 안전할 테니까. 주다현이 복수를 당하든 말든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민도준이 그의 모든 의도를 눈치챌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오한이 느껴진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민 사장님…… 저…… 저는 그런 적…… 그게…….”“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제가 언제 주 매니저님을 말했나요? 옷을 말했지.”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주성현을 보는 순간 민도준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데 옷 꼬락서니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냥 가죠.”말을 마친 그는 긴 다리를 뻗으며 앞으로 걸어갔다.그리고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주성현은 할 수 없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은 채로 그의 뒤를 따랐다.프로젝트의 기밀성 때문에 권하윤과 민지훈은 그들을 따라 들어갈 수 없었다.“하윤 씨, 우리는 주위에서 좀 산책할까요? 형이 나오면 그때 같이 떠나요.”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하지만 어제의 교훈 덕에 민지훈은 산책할 때 권하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걸 잊지 않았다.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