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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9화 줄행랑(83)

이시운은 순간 당황했다.

“그럼 아닌가요?”

지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내가 널 폭로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야.”

지훈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기복도 없었고, 시선에는 경멸이나 멸시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 때문에 이시운은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왜 절 데리고 온 건가요?”

지훈은 고개를 살짝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소혜가 처음 묵었던 방이 보였다.

“내가 널 데리고 온 건, 닭을 잡아 원숭이를 경계시키려는 거였고, 덤으로 너의 존재가 소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결론적으로는, 네가 나를 대신하고 3년을 훔쳐도 소혜의 마음엔 네가 없다는 거지.”

이시운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그렇긴 했다. 소혜는 그에게 더 이상 책임감과 동정심밖에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소혜는 지훈을 남자로 여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지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말한 것처럼, 네가 없으면 우리 둘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나 정정해 주지. 나와 소혜 사이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둘의 문제였어. 우리가 헤어진 것도 너 때문이 아니고, 만약 우리가 다시 잘 된다면 그것 또한 네가 아닌 나와 소혜의 문제야. 네 존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지훈은 덧붙여 말했다.

“이제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집사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이시운을 향해 말했다.

“이시운 씨, 나가시죠.”

이시운이 떠난 뒤, 지훈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으로 가지 않고 소혜가 한때 머물렀던 손님방으로 갔다.

그는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훈은 어렸을 때부터 민씨 저택에서 자라며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아버지처럼 말에는 여지를 남겼고, 행동에는 한계를 두었다.

지훈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방어하는 것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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