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의 말을 들은 장현정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빈은 민씨 저택에서 10년 넘게 일했으니 여러 곳을 잘 알고 있긴 헤. 그럼 케빈이 대신 안내 좀 하도록 해.”케빈은 시영을 한번 쳐다보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먼저 밖으로 나갔다.오준석은 두 사람 사이를 발견하지 못한 듯 떠나기 전 시영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좋아, 금방 돌아올게.”...주홀 밖. 주홀과 멀어지자마자 오준석은 발걸음을 멈추고 케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당신은 시영의 보디가드 맞죠?”케빈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준석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손에 든 채 잎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게 똑똑한 시영이가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하다니. 어떻게 시영이를 꼬신 거죠?”오준석의 가벼운 태도에 케빈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이만 돌아가시죠.”오준석은 케빈의 뜻을 알아차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당신은 성격부터 고쳐야겠네요. 나중에 저랑 시영의 결혼이 결정된 후 괜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안 그래요?”오준석의 말을 듣자 케빈의 이마는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항상 악의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준석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준석은 절대 시영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케빈의 시선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을 느낀 오준석은 두 걸음 물러섰다. “설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오준석은 케빈을 살펴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시영이랑 결혼하더라도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시영이도 제 사생활을 간섭할 수 없겠죠.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쉬운 조건이 아닐 거예요.”오준석은 비꼬듯이 말했다. “그러니 당신들은 뒤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겠죠. 어차피 엄청나게 해봤겠죠. 안 그래요?”케빈은 이 말을 듣자마자 오준석의 멱살을 잡았다. 케빈의 주먹이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주홀 안에 있던 장현숙은 케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시영이가 케빈의 이름으로 보낸 선물이 쥐어져 있었다.장현정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상자를 열고 그 안의 비싼 팔찌를 꺼냈다. 그녀는 한 번 쓱 보더니 말했다. “이게 네가 준비한 선물이야?”대부분의 손님들은 이미 자리로 가서 앉았고, 장현정 주위에는 그녀의 친한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하석에 앉아 있는 정초아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경멸의 눈빛으로 케빈을 쳐다보고 있었다.케빈은 시영이 오기 전에 내린 지시를 따랐다. “네, 맞습니다.”“그렇다면 이게 어떤 브랜드인지 말해봐.”시영이가 케빈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잘 알지 못했다. 케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상자에 쓰여 있는 영어를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허허허...”몇몇 부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 장현정의 목소리는 특히 차가웠다. “이름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이 팔찌를 샀다고 말하는 거야?”정초아가 맞장구를 쳤다. “제가 잡지에서 이 팔찌를 본 적이 있어요. 가격이 수천만 원인 데다 구매하려면 별도의 절차도 필요한데, 보디가드 월급으로는 사기 힘들지 않나요?”장현정의 친척도 협력하며 말했다. “시영이는 힘들겠어. 회사 일로 바쁘면서도 이런 작은 일까지 신경 써야 하니. 우리 시영은 공주 같은 아이인데, 하필이면...”장현정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아. 집안이 맞으면 좋고 안 맞더라도 사업에 재능이 있어 시영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면 돼. 최소한 성격이 좋고 시영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시영을 걱정시키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절대 안 돼.”장현정은 케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케빈, 너는 어떻게 생각해?”장현정과 친구들의 비웃음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전 아가씨의 뜻을 따르겠습니다.”그 말은 시영이가 무엇을 선택하든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시영이 자신을 떠나라고 해도 따르겠다는 뜻이
시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 주방에서 수십 명 분량의 음식을 준비했는데 한 사람 더 추가된다고 해서 우리 집이 무너지기라도 하겠어요? 좀 너그럽게 생각해 주세요.”장현정은 딸이 보디가드를 데리고 친척과 친구들 앞에 나설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장현정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케빈을 가리켰다. “시영아, 네가 아직도 날 엄마로 본다면 당장 케빈을 내쫓아!”시영은 웃음을 유지하며 말했다. “엄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엄마는 언제나 제 엄마세요. 제가 엄마의 딸인 건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케빈은 달라요. 케빈은 저와 피도 섞이지 않았는데 여러 번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 그런 사람을 내쫓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엄마, 제발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장현정은 시영의 단호한 태도를 보자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녀는 빠르게 다가가 시영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시영아, 케빈이 네게 무슨 마법이라도 건 거야? 넌 엄마의 소중한 딸이잖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시영은 장현정의 손을 내려놓으며 무기력하게 말했다. “케빈이 정말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엄마가 지금 우리를 반대하고 있을까요?”시영은 장현정을 달래며 말했다. “자, 엄마, 밖에는 많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나가 봐야죠.” “난 차라리 손님들을 기다리게 할지언정 내 생일날 망신당하기는 싫어!” 장현정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던 손님들이 딸의 남자친구가 보디가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지 상상할 수 없었다. 장현정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케빈에게 달려들어 그를 밖으로 밀쳐냈다. “너 당장 나가! 내 딸 망치지 말고 나가!”“엄마! 진정하세요!”“사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욕설과 말리는 소리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사람들이 밀치고 끌어안는 동안 갑자기 장현정은 눈이 뒤집히더니 기절하고 말았다.“사모님!”“엄마!”...생일 파티는 급작스럽게 끝이 났고, 외
결국 시영은 한숨을 내쉬며 장현정과 마주 보며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문밖에서 물을 가져오던 케빈은 방 안의 대화를 듣고 미간을 찡그렸다.시영이가 망가졌다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케빈은 왜 장현정이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 순간 케빈의 눈앞에는 자신이 총을 들고 몇 사람을 주저 없이 쏘아 죽이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그 사람들은 큰집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시영은 큰집의 사람들이 모두 민도준의 손에 죽었다고 했는데 케빈은 왜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까.더구나 케빈은 큰집이 돈을 주고 데려온 사람이기에 그렇게 대놓고 큰집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다.케빈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생일 파티 날의 소문은 결국 퍼져 나갔다.소문에 시영이가 보디가드 때문에 어머니를 병들게 했다고 떠들썩했다.시영은 이전에 항상 멋진 여성의 이미지를 선보였고 백제그룹의 주축이었으며, 사방팔방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녀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하지만 갑자기 보디가드와의 문제로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녀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시영 언니 같은 여자가 어떻게 연애에 미쳐있을 수 있지?][그러게, 간교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시영 누나는 모르는 건가?][혹시 그동안의 이미지가 다 거짓이었나? 사실 전혀 능력 없는 사람이었을 지도 몰라.][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 이대로라면 가정마저 파탄 나 버릴 지도 몰라.][내 딸이 이랬으면 그냥 때려죽였을 거야.][민씨 가문의 딸이 보디가드를 좋아한다고? 진짜 웃기네.][이런 머리로 어떻게 백제그룹을 이끌겠어?]...순식간에 인터넷에는 수많은 악플이 쏟아졌고, 그중에는 시영이가 권력을 잡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숨어 있었다.시영은 회사의 부대표로서 여러 인터뷰와 상회에 자주 참석했다. 이런 공적 이미지에 흠집이 생기면 회사는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시영은 이전까지 24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왔기에 갑자기 한가해진 상황이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날, 시영은 인터넷의 여러 댓글을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 화면이 갑자기 가려졌다.“아가씨, 그만 보세요.” 고개를 들자 케빈이 서 있었다. 비록 그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시영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소파에 기대었다. “걱정 마. 이 정도 댓글로는 상처받지 않으니까. 이 사람들은 왜 다른 여자들의 결혼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정말 웃기는 사람들이네.”“능력 있는 남자 대표가 가난한 여자와 결혼하면 다들 부러워하고 축복해 주면서 그 대표가 여자면 연애에 눈이 먼 멍청한 여자라고 비난을 하다니.” “결국 여자를 결혼의 부속품으로만 여기는 거잖아. 여자가 자기보다 능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하면 가치가 떨어지고, 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면 신데렐라가 된다는 거지. 내가 왜 내 가치를 다른 사람을 통해 평가받아야 하는 거지?”케빈은 시영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케빈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만약 이번 일의 영향이 너무 크다면, 제가...”“케빈!”시영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관계는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케빈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그러면 괜한 걱정하지 마.”“저는 아가씨의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아가씨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하고 싶어요.”시영은 케빈이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시영은 그에게 손짓을 하며 가까이 오게 했다. 케빈이 몸을 숙이자 시영은 그에게 입맞춤을 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케빈이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오려 할 때 케빈을 밀어내며 손에 들고 있던 체리를 입에 넣어주었다.차가운 체리가 입에 들어가자 케빈은 잠시 멈칫했다.시영은 웃으며 말했다. “방금 공수해 온 거야, 맛 좀 봐.”케빈이 조금 실망하면서 일어나려 할 때 시영은 팔을 그의 목에 감았다. “과일이라
케빈은 전쟁으로 엉망이 된 곳에서 태어났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금지된 물건들을 더 많이 접했었다. 선배가 말하길, 그런 것들은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중독될 뿐이라고 여기고 시도해 보지만 그런 중독은 심장에 구멍을 내어 무엇이든지 채워 넣게 만든다. 양심, 가족, 사랑, 돈, 생명을 모두 앗아갈 때까지.케빈은 항상 선배의 말을 기억하며 절대로 사람을 중독시키는 물건에 손대지 않았다. 단, 시영만은 예외였다. 처음 중독의 징조를 느낀 것은 자신이 시영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가끔 휴가를 받아 시영 곁에 있지 않아도 될 때 그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는 난원을 한 바퀴씩 돌며 마치 집을 찾지 못한 강아지처럼 헤맸다.그들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명 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케빈의 중독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가까워질수록 더 가까이 가고 싶었고 가질수록 더 많이 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케빈은 품 안에 있는 시영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물고 있었고, 그런 시영의 모습은 그를 매료시켰다. 시영이가 자신을 사랑하든 미워하든 상관없다.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케빈은 그녀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다....일은 점점 더 커져갔다. 여론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영의 측근이 그녀를 배신했다는 것이었다. 시영이 떠난 후, 회사는 몇 날 며칠 동안 혼란에 빠졌고 모든 프로젝트가 보류되었다. 하지만 이때 시영의 측근이 갑자기 나서서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단순히 휴가를 간 시영은 갑자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의 권력이 나눠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어질 것이다.이 소식은 곧 장현정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는 즉시 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영, 엄마가 오씨 가문이랑 상의했어. 네가 동의한다면 곧바로 너와 준석의 약혼식을 열 거야. 그러면
케빈은 손에 들고 있는 치킨을 보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현정은 치킨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가져가도 마찬가지잖니!”“아가씨는 바삭한 걸 좋아하십니다.”장현정은 케빈의 고집스러움에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우리 시영이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애가 이 목석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까!’장현정은 밀려오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바삭하지 않으면 다시 사 오면 되잖니! 난원에 잠시 다녀오기만 할 거니까 잠깐이면 돼!”케빈은 위층을 한번 보고도 여전히 장현정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아가씨께 어디 가는지 말씀드려야 합니다.”“이놈!”장현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케빈, 지금 시영이가 너 때문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라? 아직도 시영을 좋아한다면 나랑 같이 가!” “아가씨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먼저 아가씨께 어디 가는지 말씀드려야 합니다.”“거기 서!”장현정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케빈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장현정은 케빈이 정말 자신을 두고 가려고 하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은 처음 보았다.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케빈은 그녀를 무시하고 올라탔다.“너! 끝까지 가겠다는 거야?”장현정은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탔고 엘리베이터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또다시 케빈을 단둘이 보게 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체면을 내려놓고 말했다. “케빈! 네가 시영이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너도 시영이가 너랑 만나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을지 알잖아! 나는 이제 네 일에 신경 쓸 마음도 없으니 시영이가 준석이와 약혼만 하면, 너희 둘의 일은 눈감아줄 수 있어!”장현정은 큰 양보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케빈은 여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전 아가씨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장현정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넌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준석이가 얼마나 똑똑한 아이인지 알잖아! 준석이는 좋은 가정 출신이고 너를 받아주
케빈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할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한마디만 했다. “아가씨, 닭 다리는 다 팔렸습니다.”시영은 이 말을 듣자 웃음을 터뜨렸다. “닭 다리가 없으면 없는 거지. 표정 보면 혼이라도 빠져나간 줄 알겠어.”시영은 그의 손에서 치킨을 받아들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바삭한 껍질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케빈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하러 멍하니 서 있어? 와서 나한테 기대.”케빈은 멍하니 서 있다가 시영에게 다가갔다. 시영의 몸에서 나는 장미 향이 그를 휘감아 더욱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장현정의 말이 계속 그의 귀에 맴돌았다. '그때의 일이라...’그의 아가씨는 민씨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이자, 밝고 빛나는 존재였다. 케빈은 어둠 속에서 시영을 항상 우러러보았다. 그녀는 케빈에게 있어서 고귀하고 완벽한 존재였다. ‘도대체 누가 아가씨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케빈은 분명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계속해서 시영의 절박한 구조 요청이 환청으로 들려왔다.밤이 되었다.케빈이 침대 정리를 마치자 시영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불 꺼.”케빈은 불을 껐고 아직 정신을 차라기도 전에 침대 위에서 분노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케빈! 지금 뭐 하는 거야!”케빈은 불을 끄고 난 후 자기도 모르게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케빈 스스로도 놀랐다. 왜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지, 불을 끄고 난 후 몸이 자동으로 이렇게 앉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더 중요한 것은, 시영이 이에 대해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탁- 불이 켜졌다.시영은 케빈이 보디가드로서 자신의 역할을 지키며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케빈의 옷깃을 잡고 뺨을 때렸다.“제대로 된 침대가 있는데 왜 바닥에서 자려고 해! 제대로 된 사람을 놔두고 왜 개처럼 굴어!”시영은 미친 듯이 케빈을 때렸다. 시영의 손톱 끝이 케빈의 얼굴을 긁자 피가 흘러내렸다. 시영은 그의 옷깃을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