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은 이제야 제 옆에 누군가 있는 걸 발견하기라도 한 듯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그 순간, 발그스름하게 익은 탐스러운 얼굴이 달빛 아래에 훤히 드러났다.흐리멍덩한 눈으로 도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하윤은 잘 보이지 않는 듯 손을 들어 만지기 시작했다.도준은 그 자리에 서서 제 얼굴을 만져대는 하윤을 가만히 놔뒀다.그때 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도준 씨?”“응.”남자의 목소리는 좁은 골목에서 유난히 낮게 들렸고 속에 깃든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그런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하윤은 도준의 이름을 부르고는 질문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예쁜 얼굴을 찡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대답이 돌아오지 앉자 도준은 다시 물었다.“답답한 게 나 때문이야?”그제야 질문을 정확히 들은 하윤은 술로 항상 저를 감싸고 있던 가면을 씻어 버리기라도 한 듯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벼운 한 글자는 도준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파동도 일으키지 못했지만 유난히 거슬리게 들렸다.하지만 그런 도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하윤은 다시 가슴을 부여잡은 채 혼잣말을 이어나갔다.“여기 너무 답답해요. 뭔가 내리누르는 것처럼 숨이 안 쉬어져요. 진짜 열심히 숨 쉬어 봐도 숨이 안 쉬어져. 만약 여기 가르고 심장을 빼내면 더 이상 괴롭지도 울지도 않을 텐데...”하윤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더니 급기야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하필이면 모든 말이 도준의 귀에 또렷이 박혔다.도준은 목울대를 꿀렁이더니 눈을 내리깐 채 괴로워하는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하윤은 정말 고통스러워 보였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도준은 하윤을 꽉 끌어안았다. 덩치 차이 때문에 도준의 품에 완전히 가려진 하윤은 시선마저 어두워졌다.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하윤의 위에서 들려왔다.“자기야, 많이 취했어. 집에 가자.”집에 가자는 말에 하윤은 꼭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저 집에 갈래요. 엄마와 오빠가 기다려요. 그리고 동생도, 동생도 나 기다리고, 또...”말을 하던 하윤은 잠깐 멈추어 열심
그날 밤, 하윤은 이상한 꿈을 꿨다.꿈에서 도준이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리고 하윤은 그런 도준을 용서하고 서로 꼭 껴안았다.그 뒤로 두 사람은 다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도 낳았다.하지만 이제 행복한 나날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핏줄이 서린 눈으로 저를 빤히 바라봤다...하윤은 식은땀에 푹 젖은 채로 튕겨 올라오듯 벌떡 일어났다.그때 옆에서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아, 왜 그래?”꿀물을 손에 든 승우를 보자 하윤은 몇 초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되물었다.“오빠?”“나...”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자, 우선 꿀물부터 마셔. 안 그러면 내일 속 버려.”하윤은 컵을 받아 들고 몇 모금 마시더니 밖을 내다봤다.“나 언제 왔어?”“11시 넘었을걸, 나도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승우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 완전 취해서 어머니 끌고 춤도 췄어. 시영이 더러 노래도 하게 하고. 어머니가 나이 들었는지 피곤하다며 나더러 너 돌봐주라고 해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고.”자초지종을 들은 하윤은 미안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미안해, 친구와 술 마시다가 취했나 봐.”“괜찮아, 어차피 난 낮에 잠 보충할 수 있으니까. 속은 좀 어때?”승우의 다정한 물음에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 빼고는.”그렇게 따지고 보니 술 약한 것도 좋은 점은 있다. 얼마 마시지 않고 취하기에 몇 시간 자고 깨어나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으니.꿀물을 다 마신 하윤은 컵을 꽉 움켜쥐었다.“혹시 도준 씨가 나 데려왔어?”“응.”승우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매일 여기서 지내는 거야? 혹시 싸웠어?”“아니, 그냥...”하윤이 다시 의기소침해지자 승우는 얼른 하윤을 달랬다.“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대신 털어놓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와.”가족에게
“딸.”양현숙의 목소리에 멍해 있던 하윤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왜 그래요?”“국 먹을래?”“아, 아니요, 배불러요.”넋이 나가 있는 하윤의 모습에 양현숙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요즘은 왜 민 서방이 너 데리러 안 오고 한민혁 씨가 데리러 와?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하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싱긋 웃었다.“아니에요, 도준 씨 일 바쁜 거 엄마도 알잖아요. 요즘 일 때문에 못 오는 거예요.”“그래?”도준 같은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달리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양현숙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럼 이따가 전화라도 좀 해 봐. 이번 주말 시간 되면 집에 식사하러 오라고 해. 지난번에는 너무 늦어 아무것도 준비 못했지만 이번엔 맛있는 음식 준비할 테니까. 그래도 사위한테 처음 대접하는 식사인데.”양현숙은 도준이 여전히 두렵게 느껴졌지만 집을 찾아주고 한민혁을 시켜 하윤의 픽업을 도와주는 것만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게다가 딸과 이미 결혼한 사이니 두 사람이 화목하기를 바랐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하윤은 컵을 쥔 손가락에 힘을 꽉 주었다. 도준을 집에 들여 아버지의 위패 앞에서 식사 대접을 하는 걸 상상만 해도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에 하윤은 양현숙을 포기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변명했다.“바빠서 시간 없을 거예요. 됐어요.”“그럼 언제 올 수 있는지만 물어봐. 우리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도준 씨는 경성 사람이라 여기 음식 입에 안 맞을 수 있어.”계속 고집을 부리는 하윤을 보며 양현숙은 싱긋 웃었다.“엄마도 알아, 그래서 요즘 경성 요리도 배우고 있는 중이야. 걱정하지 마, 네 체면 안 깎을 테니까.”이런 상황에서 더 거절하면 어머니가 걱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윤은 마지못해 동의했다.그러고는 방에 돌아온 뒤 핸드폰을 들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그건 도준에게 식사 초대를 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왜 안무 연락이 없었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다.고민
경찰은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을 유지했다.“진가을 씨가 본인 여자 친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증거 있어요?”“증거요? 무슨 증거요?”“사진이나, 동영상이요. 물론 합성하지 않은.”“어...”솔직히 민혁은 그동안 한 번도 가을과 함께 사진 찍은 적이 없다. 커플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난감한 표정을 짓는 민혁을 보자 경찰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증거 없는 거죠?”“아니면 이렇게 해요, 지금 가을 씨한테 전화하면 가을 씨가 증거 대줄 거예요.”어떻게든 증명하려고 발버둥 치는 민혁과 달리 경찰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본인을 연예인의 남편, 아내로 자칭하는 스토커에 관한 건을 저희가 1년에 얼마나 접하는지 알아요? 상대가 실종됐다면서 찾아달라는 극성팬도 있었어요.”“왜 사람 말을 믿지 않지? 가을 씨가 정말 제 여자 친구라니까요...”오늘 이대로 억울함을 풀지 못할 거라고 포기하려던 찰나, 밖에서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이윽고 신입 경찰 한 명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안에 대고 말했다.“진가을이 왔어요!”그 시각, 소식을 전해 들은 가을은 예쁘게 화장한 채 경찰서 한 가운데 떡하니 서 있었다. 연예인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화보가 따로 없었다.그때 경찰 한 명이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진가을 배우님, 저희 서에서 이미 배우님을 괴롭히던 팬은 지금 잡아 지금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한꺼번에 입증하시면 됩니다.”가을의 얼굴은 순간 잿빛으로 변했다.“그 사람 극성팬이 아니라 제 남자 친구 맞아요.”그 말이 떨어지자 상냥하게 설명해 주던 경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심지어 그뿐만 아니라 서에 있던 경찰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을을 바라봤다.당사자의 증언으로 민혁은 곧바로 풀려났다.“싸...”반가운 듯 인사하던 민혁은 이제 막 한 글자를 말한 순간 가을의 눈총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그때 가을이 경
도준의 이름을 본 순간 하윤은 잠시나마 자기가 잘못 본 거라고 착각했다.이내 문자를 눌러 답장을 하려고 했지만 곧바로 뭐라 답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던 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하윤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역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전화 건너편의 도준도 웬일인지 장난스럽게 하윤을 놀리지 않고 그저 침묵만 주지했다.너무 오래 이어지는 침묵에 하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제가 안 자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전화했어요?”“문자 입력하는 게 보였거든.”그제야 자기가 망설이면서 문자를 썼다 지웠다 했던 모습을 도준에게 들켰다는 걸 인지한 하윤은 왠지 어색해졌다.하지만 그 어색함이 길어지기 전에, 도준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잠깐 동안 생각한 끝에, 오늘 오전에 자기가 오전에 전화를 했던 일이 떠오른 하윤은 손가락으로 이불을 후비며 대답했다.“아, 엄마가 도준 씨 집에 초대해 같이 식사하고 싶대요.”이윽고 핑계를 댄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이내 보충했다.“덕분에 시영이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엄마가 고마워해요. 제가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계속 고집하셔서. 만약 싫으면 경성에 돌아갔다고 말할 테니까...”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하려던 찰나, 도준이 일주일 동안이나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게 생각난 하윤은 자기가 괜한 얘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 순간 분위기는 또다시 얼어붙었다. 그러던 그때,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한번 만나. 안 그러면 어머님이 걱정하실 테니까.”“그럼 엄마더러 준비하라고...”“집에서 말고 밖에서 먹자.”일전에 도준에게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게 생각나 하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도준은 역시 하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배려에 하윤은 오히려 마음이 답답해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언제 시간 있어요?”“모레.”달력을 확인하니 모레는 마침 극단이 쉬는 날이었다.순간 가슴이 시큰거리며 감정이 흘러넘칠 것만 같아 하윤은 어렵사리 감
웃음꽃이 피는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 오직 하윤만은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분명 지난 일주일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틀만 지나면 도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시간이 유독 늦게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연습을 할 때마저 하윤은 계속 시계를 보며 겨우 오전을 버텼다.그 때문에 수연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하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선배, 혹시 오늘 저녁 데이트라도 해요? 왜 그렇게 시계에서 눈을 못 떼요?”“그런 거 아니야. 그냥 배가 고파서 그랬어.”하윤은 대충 얼버무렸다.하지만 수연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헤헤, 남편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아니야.”“못 믿겠는데요?”수연인 아니라 솔직히 하윤 본인도 믿지 못했다.도준이 보고 싶은 게 맞았으니까...이런 느낌이 들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정말 보고 싶었다.분명 수천수백 가지 이유를 대며 이 기회에 거리를 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도준의 품이 그립고 장난기 섞인 그의 목소리가 그리운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하루를 버틴 하윤은 집에 돌아갈 때는 아예 앞에서 걷고 있는 승우와 부딪힐뻔했다.승우는 얼른 하윤을 부축했다.“괜찮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윤은 바이올린을 등에 메고 있는 승우를 보더니 놀란 듯 물었다.“오빠가 어떻게... 어디 가는 거야?”승우는 싱긋 웃었다.“나 바이올린 선생님 자리 구했어. 내일부터 출근할 거야.”하윤을 한참 동안 입을 뻐끔거렸지만 축하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분명 전도유망한 천대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이제는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되었으니.승우는 하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됐어, 여기 서 있지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어머니가 무슨 음식 만들었는지 보자.”양현숙은 승우와 하윤이 즐겨 먹는 반찬 몇을 준비하고 시영이 좋아하는 작은 케익도 만들었다.그중 한 케익이 유난히 큰 탓에 시영과 하윤은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렸지만, 시영은 하윤에게
끼익-오래된 문은 마찰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벌써 겨울에 들어선 밤공기가 순간 덮쳐오는 바람에, 하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하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엔진 작동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놀란 하윤이 곧장 차가 있던 쪽으로 달려 나갔지만 대문을 연 순간 어느새 멀리 가버린 차의 후미등만 보였다.하윤이 체념하지 않고 뒤를 따라가 봤지만 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하윤은 멍한 표정으로 차가 떠나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 왜 내가 나오자마자 떠나버리지?’‘설마 진짜 도준 씨였나?’‘계속 우리 집 아래에서 뭐 했던 거지?’‘나한테는 차갑게 대하더니 왜 또 여기엔 나타났지?’하윤의 마음은 전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이에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도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움츠러들었다.‘물어봐서 뭐 하게? 아빠의 죽음을 놓지 못하면서. 아빠를 죽인 사위를 엄마한테 받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됐어...’또 스스로를 설득한 하윤은 끝내 핸드폰을 다시 옷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었다.그 시각, 남자는 멀지 않은 골목의 나무 그늘 뒤에 숨어 있었다.만약 방금 전 하윤이 몇 발자국만 더 쫓았다면 그녀 마음을 어지럽혔던 차를 볼 수 있었을 거다.하윤이 한참 동안 망설이는 모습과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도준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심지어 하윤이 전화를 걸려고 망설일 때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어두운 액정에는 끝까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밤이 깊어지자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오직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는 바스락 소리만 들렸다.한편 승우는 2층 침실에서 두 남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각도에서 마침 두 남녀가 나무를 사이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분명 지척에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인연이 엇갈린 비련의 주
양현숙의 도움으로 하윤은 결국 파격적인 변신을 하게 되었다. 몸에 딱 붙는 파란색 니트 원피스는 복잡한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마감이 잘 되어 하윤의 콜라병 몸매를 더욱 잘 부각했고, 그 위에 걸친 흰색 코트는 안에 입은 원피스와 무척 잘 어울렸다. 게다가 반짝이는 진주 귀걸이는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유난히 빛나 눈에 띄었다.양현숙은 그런 하윤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큰딸 진짜 이쁘네.”그 말에 시영이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엄마는 왜 언니만 칭찬해요? 나는?”그러자 양현숙은 얼른 손을 뻗어 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시영은 귀엽지. 너도 크면 언니처럼 예뻐질 거야.”아들딸을 돌아가며 한바탕 칭찬한 양현숙은 양쪽에 두 딸 손을 잡고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그들이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도준은 아직 오지 않았다.오히려 식당 매니저가 매우 열정적으로 메뉴를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이 몇 가지가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예요. 특히 랍스터 차우더 수프와 생선찜이 제일 잘 나가요... 그리고 디저트도 이 몇 가지가 잘 나가고요. 지금 주방에서 준비 중이니 이따가 올려드리겠습니다.”“사람이 다 모이면 주문할게요. 오기 전에 주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서요.”매니저는 바로 거절하는 양현숙을 향해 싱긋 웃었다.“네, 그럼 시간 나실 때 저 불러주세요. 먼저 접시 세팅 도와드릴게요.”시간이 일분일초 흘러 거의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도준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심지어 시영은 아예 침을 흘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디저트를 바라봤다.“엄마, 형부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양현숙은 음식을 먼저 먹으려는 시영의 손을 탁 내리치며 막았다.“배고파 죽을 것 같긴. 내가 볼 때는 그냥 입이 심심한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11시가 되자 매니저는 다시 다가와 질문했다.“지금 바로 음식 내올까요?”하윤은 텅 빈 핸드폰 액정을 보더니 이내 대답했다.“올려주세요.”이윽고 저를 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