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태준은 예전에도 하윤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태준을 마주하고 있자니 하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고, 공태준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니까.태준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늘 마음을 억누르며 볼 수 있는 것에만 만족했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하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니.공은채의 말 때문에 태준은 더 이상 마음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눈빛은 오랫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꿰뚫었고 긴 손가락을 앞으로 뻗으며 하윤의 손을 잡았다. 심지어 손을 뿌리치려는 하윤을 무시한 채 다시한번 되물었다.“저한테 기대요. 네?”제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한참을 버둥대며 겨우 손을 뒤로 뺐다.“공태준,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여러 번 거정당해서인지 태준은 이제 이런 거절도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매번 가슴에 난 흉터에 계속 새 상처가 덧 새겨져 아픈 건 여전했다. 심지어 내리깐 눈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민 사장 때문이에요? 민 사장은 지금 은채랑 같이 있는데 아직도 못 잊었어요?”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도준 씨와는 상관없어.”태준은 그런 하윤을 한참동안 빤히 바라봤다.“민도준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 곧 알 거예요.”이윽고 이 말만 남긴 채 아무 미련도 없이 떠나갔다.하지만 하윤은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 당장이라도 도준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아마 공은채와 함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내 포기했다.……하윤의 생각대로 공은채와 도준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공은채는 도준을 꼬시기는커녕 오히려 자주 넋이 나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종업원이 카페를 올렸을 때 거절하기까지 했다.“아니에요.”심장에 문제가 생겼으니 이런 자극적인 것은 손에 대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도준은 의자에 기대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나중에 다시 예기해.”그 순간 제 건강을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공은채는 기분이 언짢았다.“왜요? 결혼하더니 이젠 어머님 심장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가 봐요?”“그 심장이 아니었다면 네가 살아서 여기 앉아 있었다고 생각해?”도준이 그래도 저를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하윤은 가볍게 웃었다.“그럼 귀찮더라도 오후에 저랑 같이 병원 좀 가줘요. 심장 잘 보관하려면 제가 건강해야 하잖아요.”……공은채는 이번에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했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공은채의 검사 결과를 놓고 세미나까지 열었다.그 결과 약으로 보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상황에 따라 수술하기로 결정했다.하지만 전문 용어로 토론하는 의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공은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 수술 혹시 위험한가요?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그 말에 채 교수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이론적으로 말하면 수술은 모두 위험성이 따릅니다. 개개인의 체질 혹은 유전자에 따라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반응도 모두 다릅니다.”“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은채 환자분 같은 경우는 예전에 병원에서 치료하던 기록이 있기도 하니 저희가 수술 준비는 충분히 할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병원에 입원해 지내면서 수시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입원이요?”공은채는 망설여져 도준을 바라봤다.이제 막 도준과 감정을 회복했는데, 이 타이밍에 입원하여 도준이 다시 하윤을 찾으면 곤란하니까.하지만 한참 동안 고민하던 끝에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오늘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내일부터 입원할게요.”이 병원은 원래부터 도준의 것이기에 의사들은 당연히 아무 의견도 없었다. 한참 뒤, 병원을 떠나기 전, 공은채는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다.그러다 밖으로 나오면서 창가에 기대 있는 도준을 본 순간,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오늘 저녁 우리 극단이 파티에 초대받아 자선 공연을 하게 됐는데, 다른 선배들은 연습해야 하니 네가 후배들 데리고 참석하는 게 어때?”“자선 공연이요?”대선배 서윤화의 말에 하윤은 어리둥절했다.“극단이 언제부터 이런 공연도 참석했어요?”“공연이라기보다는 협찬을 끌어들이려고 참석하는 거야. 안 그러면 극단 유지비는 어디서 나겠어?”하긴, 이런 고전 예술은 케이팝처럼 대중성을 띤 게 아니기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게다가 매번 공연할 때마다 수백 수천 번을 연습해야 하지만, 무대는 항상 4분의 1 정도만 채워진다.극단을 알리려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공연을 하면 자금이 드니 그동안 이런 활동에 참석하여 협찬을 받아냈던 거다.극단 상황을 들은 하윤은 왠지 마음이 아파 얼른 의견을 냈다.“선배, 저한테 돈이 좀 있는데, 아니면…….”“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서윤화는 피식 웃으며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투자 받는 건 당연한 거야. 드라마나 영화도 똑 같잖아. 됐어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너는 춤만 열심히 추면 나머지는 윤 쌤과 내가 알아서 할게.”서윤화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바람에 하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이 춤추겠다는 약속을 했다.하지만 하윤이 떠나기 전, 서윤화는 여전히 걱정이 됐는지 신신 당부했다.“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상황은 드문데 그래도 조심해.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만약 누가 투자 건으로 얘기 나누고 싶다면 몇 마디 소개하는 건 괜찮은데 절대 술은 마시지 마. 투자를 받지 못한대도 상관없으니까, 알았지?”서윤화의 걱정에 하윤은 마음이 따뜻해났다.예전에 윤영미 아래에서 춤을 배울 때에도 서윤화는 하윤을 늘 챙겼는데, 이제 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린 동생 챙기듯 챙기는 마음이 고맙고 감동스러웠다.이에 하윤은 얼른 서윤화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알았어요, 저 총명한 거 잊었어요?”그 말에 서윤화는 피식 웃었다.“하긴, 윤 쌤이 너
무대 위에서 도준을 본 하윤 역시 넋이 나갔다. 하지만 하윤의 시선은 이내 그의 옆에 앉은 공은채와 마주쳤다.어두운 무대 아래, 꼭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어울렸다. 하지만 하윤은 그저 그들 흥을 돋우는 댄서에 불과하다니…….“선배.”무대 앞으로 나가던 수아가 그 자리에 굳어 있는 하윤을 보자 낮게 불렀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윤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오늘은 극단을 대표해 나왔으니 절대 추태를 부려서는 안 돼.’얼른 제 위치에 선 하윤은 무대를 등진 채 시작 포즈를 취했다.환한 불빛 아래, 여자의 가는 허리와 팔은 요염하게 움직이며 무대의 서막을 열었다.하윤은 확실히 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분명 정식적인 무대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단아하고 우아하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그 순간, 무대 아래의 대화 소리도 점점 작아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서서히 무대 위로 집중되었다.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을 늘어 놓으며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지만, 유독 한 곳만은 무거운 암류가 흐르는 듯했다.도준은 이내 옆에 있던 공은채를 바라봤다.“네 짓이야?”제 속내를 들킨 공은채는 당황하기는커녕 사람들을 따라 박수를 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시윤이 매일 밤 도준 씨 생각으로 잠도 못 이룬다고 하길래 도와준 것뿐이었어요.”그 사이, 하윤이 마무리 도작을 하며 무대는 끝이 났다.그때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 극단에 대해 소개했다.“방금 보신 무용수들이 선보인 무대는 이제 곧 투어를 앞둔 새로운 무극입니다. 이 무대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여기 계신 무용수들한테 연락하시면 됩니다.”사회자가 사회를 보는 사이, 하윤은 후배들을 데리고 그 뒤에 서있었다.하지만 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모두 하윤에게 몰려 들었다. 기타 후배들도 귀엽고 활기차긴 했지만 남자의 욕망을 자극할 정도로 여물지는 못했지만, 하윤은 오히려 빨갛게 여물어 바로 따고 싶은 앵두 같았으니까.도준도 나자로써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저 버린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요?”“내가 너 버렸대도 아직은 내 마누라야. 그렇게 속살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 죽고 싶어?”도준의 차가운 말과 굳은 표정에 하윤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지금 이거 진심인 건가? 정말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공은채랑 붙어먹을 때는 왜 결혼한 상태라는 거 망각했어요? 제가 옷 벗고 춤을 추든 그게 도준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하윤은 너무 화가 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점점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공은채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앞서 하윤이 극단에 돌아간 일로 싸웠다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 도준이 당연히 화를 낼 거라는 걸 공은채는 알고 있었다.게다가 하윤도 저와 도준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봤으니 좋은 말을 할 리 없고, 그러다 보면 두 사람 관계는 점점 파국에 치달을 거라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공은채의 생각대로 도준은 이내 인내심을 잃은 채 소파 의자에 기대 앉았다.“나랑 상관없다고? 그럼 여긴 왜 앉아 있어? 당장 가서 웃음 팔며 후원 끌어들이러 가지 않고?”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하윤은 울적한 심정으로 홱 돌아 떠나버렸다.하지만 다시 무대 뒤로 떠나려던 순간, 누군가 갑자기 하윤을 막아섰다.“예쁜이도 극단 사람 맞지? 지금 투자 필요한 거고? 이리 와 봐, 나랑 얘기 좀 해.”하윤에게 말을 건 사람은 해원에서 플레이보이로 유명한 재벌2세 양동준인데, 평소 이런 투자 자리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투자를 빌미로 여자를 고르는 게 취미일 정도로 쓰레기다.사실 오늘도 유명한 연예인들이 온다는 소식에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방금 전 춤을 추는 하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심지어 하윤은 보는 순간 마음이 간질거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은 심정을 애써 눌러 참았다.하윤은 양동준의 노골적인 시선이 불쾌해 이내 제 손을 뒤로 뺐다.“이게 저희 극단 팸플릿입니다. 위에 극단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기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걸 본 양동준은 이내 상대방에게 명령했다.“당장 꺼져!”“여긴 내 대기실이거든? 당신이 누군데 나가라 말라야?”귀찮은 듯 욕설을 퍼부으며 고개를 돌린 진가을은 마침 남자에게 끌려 들어온 하윤과 눈이 마주쳤다.‘그 빨강 머리 남자 와이프잖아?’‘헐, 바람 상대가 너무 빨리 바뀌는 거 아닌가?’하지만 하윤의 손을 꽉 움켜쥔 남자의 동작에서 가을은 이내 수상함을 감지했다.‘뭐야? 이거 혹시 강제로 끌려온 거였어?’가을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훤한 대낮에 어디서……, 아니지, 훤한 불빛 아래에 어디서 감히 유부녀를 겁탈하려 해?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신고할 거니까.”“씨X, 딴따라 주제에 어디서 감히 눈을 크게 뜨고 덤벼? 나 양동준이야!”양동준이라는 이름을 가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늘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하면서 여자 연예인한테 손대는 거로 유명하다고 매니저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니.하지만 하윤이 강제로 모욕을 당하고 있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었기에 진가을은 이내 허리에 손을 짚고 버럭 소리쳤다.“당신이 누군지 알 게 뭐야? 대통령 아들이라도 사람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당장 나가지 않으면 진짜 소리 지를 거야!”“소리 지른다고? 어디 질러 봐!”가을은 양동준의 도발에 고민도 없이 바로 소리 질렀다.“사람 살려요!”하지만 그런 가을이 한심하다는 듯 양동준은 피식 웃었다.“거 봐, 내 일 망치는 사람은 없다니까……, 아!”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그 소리에 놀라 비틀대는 하윤을 진가을은 이내 부축했다.그리고 때마침 하윤을 놓쳐 찾고 있던 한민혁이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방금 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하윤이 없어져 민혁은 모든 대기실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다 마침 진가을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거고.그리고 이제야 양동준의 얼굴을 확인한 민혁은 버럭 화를 냈다.“이 자식이 감히! 상대를 봐 가
한편, 하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7,8 정도 되는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무사한 하윤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괜찮으세요?”하윤은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 대충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그럼 차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그렇게 차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한민혁은 겨우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이내 의자를 뒤로 당겼다.뜬금없는 민혁의 행동에 하윤은 어리둥절했다.“왜 그래요?”“자리 좀 내느라고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민혁은 의자와 핸들 사이 공간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하윤을 쳐다봤다.“하윤 씨는 대인배니까 저 용서해 줄 거죠? 아까 있었던 일 절대 도준 형한테 말하지 마요, 안 그러면 저 진짜 죽어요.”“…….”사실 민혁은 아까 내내 하윤을 몰래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양동준이 하윤에게 치근덕대는 사이 마침 화장실에 다녀와 하윤을 놓쳐 버렸고, 상황을 듣고 난 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이내 경비원을 불러 모아 사람을 찾기 시작한 거다.도준이 저를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울적하던 하윤의 기분은 조금 풀렸다.“괜찮아요, 갑자기 벌어진 일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말 안 할게요.”“그런데 양동근이라는 사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도 마음대로 하는 걸 보면 평소에도 분명 제멋대로 굴겠죠?”의자 위치를 다시 원래대로 조절하던 민혁은 하윤의 말에 이내 대답했다.“맞아요. 집에서 엔터 회사를 운영하거든요. 그래서 평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설치고 다니지 못할 걸요.”도준의 성격으로 비추어 보면 양동준은 죽지 않는 대도 분명 불구가 될 게 뻔하다. 이에 하윤은 덜컥 겁이 났다.“혹시 이러다가 들키는 거 아니에요?”“걱정 마세요. 공은채가 내일 병원에 입원하거든요. 앞으로 밖에 일에 관여하지 못할 거예요.”“병원이요?”“네, 도준 형이 겨우겨우 공은채를 입원시켰거든요. 내일이면 두 사람 더 이상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어쩐지
도준은 양동준을 향해 무해한 웃음을 지었다.“왜 그러냐고?”길게 늘어뜨리는 말꼬리가 텅 빈 방안에서 울려 퍼져 유난히 음산하게 들렸다.하지만 양동준이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도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뭐 별 일은 아니고. 당신 해원 사람 맞지?”도준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리 없는 양동준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네…….”가득이나 두 팔을 뒤로 묶은 채 바닥에 앉아 있는데, 키 큰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위압감이 몰려왔다.게다가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도준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 움찔거리는 찰나, 도준이 움직이는 그의 다리를 그대로 밟아버렸다.“아!”양동준의 비명 소리에 도준의 입가에는 더 짙은 미소가 걸렸다.“내가 이번에 해원에 재미 좀 보려고 왔는데 해원 사람이니 소개 좀 해주는 게 어때?”양동준은 너무 큰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눈 앞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없이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저희 집에 수영장도 있고 골프장도 있으니 저 집에 보내주시면 제가 민 사장님 잘 모시라고 아랫사람들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고마워하실 거고요!”“골프장? 재밌을 것 같네.”곧이어 도준이 턱을 까딱이자 민혁이 눈치 빠르게 야구 방망이를 건넸다.그 순간 양동준은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지,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도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골프는 오랜만이라 양동준 씨가 나랑 몸 좀 풀어줘야겠어.”말이 끝나자마자 야구 방망이가 바람을 가르며 양동준의 팔을 가격했다.“아!”곧이어 양동준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사람 살려! 나 양동준이야! 다짜고짜 이렇게 나를 때린 걸 우리 아빠가 알면 절대 당신들 가만두지…… 아!”잇따른 가격은 모두 양동준의 오장육부를 터뜨릴 것처럼 힘이 실려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빈 공간에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만 울려 퍼졌다.그렇게 한참 뒤, 자리에서 일어난 도준의 턱에는 이미 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