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우리 극단이 파티에 초대받아 자선 공연을 하게 됐는데, 다른 선배들은 연습해야 하니 네가 후배들 데리고 참석하는 게 어때?”“자선 공연이요?”대선배 서윤화의 말에 하윤은 어리둥절했다.“극단이 언제부터 이런 공연도 참석했어요?”“공연이라기보다는 협찬을 끌어들이려고 참석하는 거야. 안 그러면 극단 유지비는 어디서 나겠어?”하긴, 이런 고전 예술은 케이팝처럼 대중성을 띤 게 아니기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게다가 매번 공연할 때마다 수백 수천 번을 연습해야 하지만, 무대는 항상 4분의 1 정도만 채워진다.극단을 알리려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공연을 하면 자금이 드니 그동안 이런 활동에 참석하여 협찬을 받아냈던 거다.극단 상황을 들은 하윤은 왠지 마음이 아파 얼른 의견을 냈다.“선배, 저한테 돈이 좀 있는데, 아니면…….”“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서윤화는 피식 웃으며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투자 받는 건 당연한 거야. 드라마나 영화도 똑 같잖아. 됐어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너는 춤만 열심히 추면 나머지는 윤 쌤과 내가 알아서 할게.”서윤화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바람에 하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이 춤추겠다는 약속을 했다.하지만 하윤이 떠나기 전, 서윤화는 여전히 걱정이 됐는지 신신 당부했다.“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상황은 드문데 그래도 조심해.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만약 누가 투자 건으로 얘기 나누고 싶다면 몇 마디 소개하는 건 괜찮은데 절대 술은 마시지 마. 투자를 받지 못한대도 상관없으니까, 알았지?”서윤화의 걱정에 하윤은 마음이 따뜻해났다.예전에 윤영미 아래에서 춤을 배울 때에도 서윤화는 하윤을 늘 챙겼는데, 이제 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린 동생 챙기듯 챙기는 마음이 고맙고 감동스러웠다.이에 하윤은 얼른 서윤화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알았어요, 저 총명한 거 잊었어요?”그 말에 서윤화는 피식 웃었다.“하긴, 윤 쌤이 너
무대 위에서 도준을 본 하윤 역시 넋이 나갔다. 하지만 하윤의 시선은 이내 그의 옆에 앉은 공은채와 마주쳤다.어두운 무대 아래, 꼭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어울렸다. 하지만 하윤은 그저 그들 흥을 돋우는 댄서에 불과하다니…….“선배.”무대 앞으로 나가던 수아가 그 자리에 굳어 있는 하윤을 보자 낮게 불렀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윤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오늘은 극단을 대표해 나왔으니 절대 추태를 부려서는 안 돼.’얼른 제 위치에 선 하윤은 무대를 등진 채 시작 포즈를 취했다.환한 불빛 아래, 여자의 가는 허리와 팔은 요염하게 움직이며 무대의 서막을 열었다.하윤은 확실히 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분명 정식적인 무대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단아하고 우아하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그 순간, 무대 아래의 대화 소리도 점점 작아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서서히 무대 위로 집중되었다.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을 늘어 놓으며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지만, 유독 한 곳만은 무거운 암류가 흐르는 듯했다.도준은 이내 옆에 있던 공은채를 바라봤다.“네 짓이야?”제 속내를 들킨 공은채는 당황하기는커녕 사람들을 따라 박수를 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시윤이 매일 밤 도준 씨 생각으로 잠도 못 이룬다고 하길래 도와준 것뿐이었어요.”그 사이, 하윤이 마무리 도작을 하며 무대는 끝이 났다.그때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 극단에 대해 소개했다.“방금 보신 무용수들이 선보인 무대는 이제 곧 투어를 앞둔 새로운 무극입니다. 이 무대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여기 계신 무용수들한테 연락하시면 됩니다.”사회자가 사회를 보는 사이, 하윤은 후배들을 데리고 그 뒤에 서있었다.하지만 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모두 하윤에게 몰려 들었다. 기타 후배들도 귀엽고 활기차긴 했지만 남자의 욕망을 자극할 정도로 여물지는 못했지만, 하윤은 오히려 빨갛게 여물어 바로 따고 싶은 앵두 같았으니까.도준도 나자로써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저 버린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요?”“내가 너 버렸대도 아직은 내 마누라야. 그렇게 속살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 죽고 싶어?”도준의 차가운 말과 굳은 표정에 하윤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지금 이거 진심인 건가? 정말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공은채랑 붙어먹을 때는 왜 결혼한 상태라는 거 망각했어요? 제가 옷 벗고 춤을 추든 그게 도준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하윤은 너무 화가 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점점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공은채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앞서 하윤이 극단에 돌아간 일로 싸웠다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 도준이 당연히 화를 낼 거라는 걸 공은채는 알고 있었다.게다가 하윤도 저와 도준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봤으니 좋은 말을 할 리 없고, 그러다 보면 두 사람 관계는 점점 파국에 치달을 거라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공은채의 생각대로 도준은 이내 인내심을 잃은 채 소파 의자에 기대 앉았다.“나랑 상관없다고? 그럼 여긴 왜 앉아 있어? 당장 가서 웃음 팔며 후원 끌어들이러 가지 않고?”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하윤은 울적한 심정으로 홱 돌아 떠나버렸다.하지만 다시 무대 뒤로 떠나려던 순간, 누군가 갑자기 하윤을 막아섰다.“예쁜이도 극단 사람 맞지? 지금 투자 필요한 거고? 이리 와 봐, 나랑 얘기 좀 해.”하윤에게 말을 건 사람은 해원에서 플레이보이로 유명한 재벌2세 양동준인데, 평소 이런 투자 자리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투자를 빌미로 여자를 고르는 게 취미일 정도로 쓰레기다.사실 오늘도 유명한 연예인들이 온다는 소식에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방금 전 춤을 추는 하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심지어 하윤은 보는 순간 마음이 간질거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은 심정을 애써 눌러 참았다.하윤은 양동준의 노골적인 시선이 불쾌해 이내 제 손을 뒤로 뺐다.“이게 저희 극단 팸플릿입니다. 위에 극단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기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걸 본 양동준은 이내 상대방에게 명령했다.“당장 꺼져!”“여긴 내 대기실이거든? 당신이 누군데 나가라 말라야?”귀찮은 듯 욕설을 퍼부으며 고개를 돌린 진가을은 마침 남자에게 끌려 들어온 하윤과 눈이 마주쳤다.‘그 빨강 머리 남자 와이프잖아?’‘헐, 바람 상대가 너무 빨리 바뀌는 거 아닌가?’하지만 하윤의 손을 꽉 움켜쥔 남자의 동작에서 가을은 이내 수상함을 감지했다.‘뭐야? 이거 혹시 강제로 끌려온 거였어?’가을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훤한 대낮에 어디서……, 아니지, 훤한 불빛 아래에 어디서 감히 유부녀를 겁탈하려 해?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신고할 거니까.”“씨X, 딴따라 주제에 어디서 감히 눈을 크게 뜨고 덤벼? 나 양동준이야!”양동준이라는 이름을 가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늘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하면서 여자 연예인한테 손대는 거로 유명하다고 매니저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니.하지만 하윤이 강제로 모욕을 당하고 있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었기에 진가을은 이내 허리에 손을 짚고 버럭 소리쳤다.“당신이 누군지 알 게 뭐야? 대통령 아들이라도 사람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당장 나가지 않으면 진짜 소리 지를 거야!”“소리 지른다고? 어디 질러 봐!”가을은 양동준의 도발에 고민도 없이 바로 소리 질렀다.“사람 살려요!”하지만 그런 가을이 한심하다는 듯 양동준은 피식 웃었다.“거 봐, 내 일 망치는 사람은 없다니까……, 아!”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그 소리에 놀라 비틀대는 하윤을 진가을은 이내 부축했다.그리고 때마침 하윤을 놓쳐 찾고 있던 한민혁이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방금 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하윤이 없어져 민혁은 모든 대기실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다 마침 진가을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거고.그리고 이제야 양동준의 얼굴을 확인한 민혁은 버럭 화를 냈다.“이 자식이 감히! 상대를 봐 가
한편, 하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7,8 정도 되는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무사한 하윤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괜찮으세요?”하윤은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 대충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그럼 차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그렇게 차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한민혁은 겨우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이내 의자를 뒤로 당겼다.뜬금없는 민혁의 행동에 하윤은 어리둥절했다.“왜 그래요?”“자리 좀 내느라고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민혁은 의자와 핸들 사이 공간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하윤을 쳐다봤다.“하윤 씨는 대인배니까 저 용서해 줄 거죠? 아까 있었던 일 절대 도준 형한테 말하지 마요, 안 그러면 저 진짜 죽어요.”“…….”사실 민혁은 아까 내내 하윤을 몰래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양동준이 하윤에게 치근덕대는 사이 마침 화장실에 다녀와 하윤을 놓쳐 버렸고, 상황을 듣고 난 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이내 경비원을 불러 모아 사람을 찾기 시작한 거다.도준이 저를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울적하던 하윤의 기분은 조금 풀렸다.“괜찮아요, 갑자기 벌어진 일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말 안 할게요.”“그런데 양동근이라는 사람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도 마음대로 하는 걸 보면 평소에도 분명 제멋대로 굴겠죠?”의자 위치를 다시 원래대로 조절하던 민혁은 하윤의 말에 이내 대답했다.“맞아요. 집에서 엔터 회사를 운영하거든요. 그래서 평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설치고 다니지 못할 걸요.”도준의 성격으로 비추어 보면 양동준은 죽지 않는 대도 분명 불구가 될 게 뻔하다. 이에 하윤은 덜컥 겁이 났다.“혹시 이러다가 들키는 거 아니에요?”“걱정 마세요. 공은채가 내일 병원에 입원하거든요. 앞으로 밖에 일에 관여하지 못할 거예요.”“병원이요?”“네, 도준 형이 겨우겨우 공은채를 입원시켰거든요. 내일이면 두 사람 더 이상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어쩐지
도준은 양동준을 향해 무해한 웃음을 지었다.“왜 그러냐고?”길게 늘어뜨리는 말꼬리가 텅 빈 방안에서 울려 퍼져 유난히 음산하게 들렸다.하지만 양동준이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도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뭐 별 일은 아니고. 당신 해원 사람 맞지?”도준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리 없는 양동준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네…….”가득이나 두 팔을 뒤로 묶은 채 바닥에 앉아 있는데, 키 큰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위압감이 몰려왔다.게다가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도준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 움찔거리는 찰나, 도준이 움직이는 그의 다리를 그대로 밟아버렸다.“아!”양동준의 비명 소리에 도준의 입가에는 더 짙은 미소가 걸렸다.“내가 이번에 해원에 재미 좀 보려고 왔는데 해원 사람이니 소개 좀 해주는 게 어때?”양동준은 너무 큰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눈 앞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없이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저희 집에 수영장도 있고 골프장도 있으니 저 집에 보내주시면 제가 민 사장님 잘 모시라고 아랫사람들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고마워하실 거고요!”“골프장? 재밌을 것 같네.”곧이어 도준이 턱을 까딱이자 민혁이 눈치 빠르게 야구 방망이를 건넸다.그 순간 양동준은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지,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도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골프는 오랜만이라 양동준 씨가 나랑 몸 좀 풀어줘야겠어.”말이 끝나자마자 야구 방망이가 바람을 가르며 양동준의 팔을 가격했다.“아!”곧이어 양동준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사람 살려! 나 양동준이야! 다짜고짜 이렇게 나를 때린 걸 우리 아빠가 알면 절대 당신들 가만두지…… 아!”잇따른 가격은 모두 양동준의 오장육부를 터뜨릴 것처럼 힘이 실려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빈 공간에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만 울려 퍼졌다.그렇게 한참 뒤, 자리에서 일어난 도준의 턱에는 이미 피가
도준은 침실 안에서 휙 스쳐지나는 그림자를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뭐야? 나 못 본 척하는 거야?”이내 들켜버린 하윤은 그제야 마지못해 방에서 걸어 나왔다.“흥, 공은채랑 같이 있느라 제가 눈에 안 보이나 보죠.”“질투하는 거야? 이리 와, 어디 봐 봐.”도준은 쭈뼛거리며 걸어오는 하윤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와서인지 속눈썹마저 촉촉하게 젖어 있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 했다.하지만 도준의 손에 이끌려 고개를 든 하윤은 그의 턱에 묻은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여, 여기 왜 이래요? 혹시 다쳤어요?”다시 제대로 확인했더니 턱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피가 묻어 있어 흐린 눈으로 보면 꽃무늬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어디 봐 봐요.”하윤은 다급하게 도준의 옷을 벗기며 이리저리 확인했다.그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의 손을 꽉 잡았다.“뭐가 그렇게 급해?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옷부터 벗기고 말이야.”“도준 씨가 다쳤을까 봐 이러는 거잖아요.”다급하게 소리치는 하윤의 손을 도준은 꽉 그러쥐었다.“이리 와, 욕실에서 구석구석 보여 줄게.”그제야 도준이 아무 일도 없다는 걸 발견한 하윤은 이내 그를 밀어냈다.“전 이미 다 씻었으니 도준 씨 혼자 들어가요.”‘욕실에서 또 얼마나 괴롭히려고. 내가 바보인 줄 아나?’하지만 도준은 하윤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왜? 무대 위에서 잘 흔들더니 이제 와서 게으름 피우려고?”제멋대로 말하는 도준의 행동에 하윤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그거 예술이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그래 나 모르니까, 여보가 가르쳐줘.”낮게 깔린 웃음 소리와 간질거리는 호칭에 하윤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하지만 잠깐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어느새 몸에 걸친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욕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여기서 더 발버둥쳐봤자 때는 이미 늦었다.뜨거운 수증기가 낀 욕실 안에서 곧이어 남자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마음이 흔들렸다.‘정말 바보네.’사람들은 특권을 손에 쥐면 어떻게 마음껏 휘두를 지 생각할 텐데, 하윤만은 오히려 어렵사리 주어진 특권도 공평하게 나눌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손을 들어 하윤의 목덜미를 잡은 도준은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렀다.“왜 갑자기 이렇게 착하게 굴어?”“제가 뭐 언제는 이러지 않았나요?”하윤의 뻔뻔한 태도에 도준은 헛웃음이 났지만 일부러 흥을 깨지는 않았다.오히려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하윤을 위로부터 쭉 내리 훑었다.“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이렇게 자유롭지 못할 텐데, 그래도 괜찮아?”또다시 원래의 처지로 돌아갈 생각을 하자 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 않으면 안 돼요?”제 말 한마디에 이내 다시 겁을 먹은 하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해도 싫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해도 싫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야?”“좀 융통성 있게 지낼 수는 없는 거예요? 저희 연애하는 거지 밧줄 당기기하는 거 아니잖아요. 좀 서로 대화로 풀면서 그때그때 상황 보면서 협상할 수는 없는 거예요?”‘협상’라는 두 글자는 도준에게 참 신선한 단어였다.도준의 세상에는 늘 약육강식만 존재했다. 매번 비즈니스 모임에서도 늘 누가 가진 패가 많은지, 누구 주먹이 더 센지 겨루기만 했으니까.하지만 그 모든 게 하윤의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때려도 울고, 욕해도 울고 결국 귀찮음을 안고 가는 건 늘 도준이었다.도준은 눈을 들어 기대에 찬 하윤의 얼굴을 느긋하게 훑었다.“어떻게 협상하고 싶은데?”“그러니까…….”하윤은 어색한 미소를 싱긋 지었다.“사실 저도 아직 생각해 둔 게 없어요. 그런데 직접 부딪혀 보면 방법이 생기겠죠. 우리 앞으로 시간도 많잖아요, 안 그래요?”도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손아귀에 힘을 준 채 하윤을 제 품으로 끌어 들였다.그 때문에 무방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