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을은 손을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그러다 마침 28층에 도착하자 이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집으로 들어가기 전 문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발로 툭툭 건드리는 진가을을 보며 하윤은 이상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띠.”지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하윤은 어두컴컴한 방을 보자 또 다시 투덜대며 도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누구는 매일 이렇게 고독하게 지내는데 저는 맨날 술이나 마시고 문자도 씹고.”하지만 손을 들어 스위치를 만진 순간, 갑자기 따뜻한 손이 손끝에 느껴졌다.“엄마! 귀신이야!”덜컥 겁이 나 곧바로 다시 밝은 복도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누군가 하윤의 허리를 끌어당겼다.“고작 이정도 배짱으로 내 뒷담화 하고 있었던 거야?”이윽고 불이 켜지며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저를 보고 웃는 남자를 보자 하윤은 기쁘면서도 화가 나 도준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왜 오면 온다 말을 안 해요? 놀랐잖아요.”도준은 한 손으로 하윤을 끌어안으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미리 말하면 자기가 다른 놈 숨겨두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그 순간 도준과 공은채가 요 며칠 같이 있었다는 게 생각난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래요. 저 집에 남자 여러 명 숨겨 놓고 있었어요. 매일 한 사람씩 바꿔가면서…… 아…….”갑작스럽게 제 손을 잡아당기는 도준의 행동에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말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거야?”하윤은 화가 나 도준의 어깨를 깨물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힘껏 물어도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만 돋았는지 이내 하윤을 소파 위에 밀쳐버렸다.“착하지? 다른 곳 물어.”“변태!”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맞아 나 변태야.”뒤 이은 말은 이내 흩어졌다.거의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한 터라, 도준은 하윤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괴롭힐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가만두지 않았다.그렇게 겨우 끝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도준은 그 말에 하윤 곁으로 걸어왔다.“스피커폰으로 해 놔.”“도준 씨…….”하윤은 공은채가 눈치라도 챌까 봐 얼른 말리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이내 말을 바꾸며 전화 건너편에 물었다.“잠깐만요, 제 남편도 곁에 있어요. 저 스피커 폰 좀 켤 게요.”석지환은 도준과 하윤이 같이 있다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민 사장님.”“네.”곧이어 석지환은 공은채가 저한테 찾아온 상황을 곧이곧대로 설명했다.……몇시간 전, 공은채는 출장 갔다가 가져온 물건이라며 선물을 사 들고 석지환의 집 문을 두드렸다.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지내는 공은채의 모습에 석지환은 무섭기까지 했다.분명 마음 속에 도준이 있으면서 저를 만날 때는 또 예전처럼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소름이 돋았다.오랜만에 만 난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고 공은채는 말하면서 석지환의 어깨에 슬쩍 기댔다.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오늘 비행기 탔을 때 심장이 이상하더라고, 생각해 보니 나 정기검진 받을 때도 된 것 같아.”“심장 이식도 했으면서 정기 검진은 빼놓으면 안 되지.”“나도 그렇게 생각해.”공은채는 석지환의 어깨에 기댄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우리 애가 태어 날 때 네가 산모와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곤란한 상황 만들기 싫거든.”짤막한 한마디로 제 건강을 석지환의 책임인양 떠밀었다.공은채가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말을 꺼냈다는 걸 석지환은 바로 눈치챘다. 하지만 도준에게 부탁하지 않고 저한테 부탁하는 게 영 찜찜했다.그래도 공은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야 했기에 석지환은 이내 동의했다.“알았어. 내일 같이 병원 가자.”……상황을 들은 하윤은 도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심장 이식을 하는 일을 석지환에게 말해도 되는지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다.도준은 전에 말한 적이 있다. 공은채는 의심이 많아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고. 그동안 한민혁을 하윤에게 붙여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 그녀
“바꾸려고요.”도준이 대신 대답했다.“그런데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죠.”도준의 말이 떨어지자 석지환뿐만 아니라 하윤마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석지환은 천천히 대답했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하윤은 도준에게 따져 물었다.“성공할지 말지 모른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도준은 담배를 눌러 끄더니 하윤의 머리를 문질렀다.“심장 바꾸는 게 뭐 리모컨 배터리 바꾸는 것처럼 간단한 줄 알아? 게다가 두번째 수술이라면 살 확률은 낮아.”“그러면 살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죠?”머뭇거리며 묻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공은채가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살까 봐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수술이 성공해도 새 심장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새 심장이요?”하윤은 그제야 뭔가 눈치챈 듯 물었다.“그러니까 진……, 아니 어머님 심장을 넣어둘 사람을 찾았다는 거예요?”“응.”공은채한테 정성을 쏟아부었던 것처럼 똑 같은 일이 또 반복될까 봐 하윤은 이내 되물었다.“상대가 누군데요?”“아주 귀여운 사람.”‘귀엽다고?’하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벌써부터 귀엽네 뭐네 사람을 칭찬한다고?’곧바로 머리속에는 도준이 심장 이식을 받은 귀여운 여자를 매일같이 간호하다가 눈이 맞아 저를 버리는 모습이 그려졌다.‘진짜 너무하네!’도준의 말에 잔뜩 토라진 하윤은 혼자 씩씩대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또 왜 그래? 말 몇 마디에 또 토라졌어?”하윤은 도준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참, 여기 사진도 있는데, 볼래?”‘뭐? 사진? 상대 사진까지 저장했어?’하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하! 이젠 사진도 저장했어요? 어디 봐요, 얼마나 귀여운지!”화가 잔뜩 나서 도준의 핸드폰을 빼앗은 하윤은 이내 할 마을 잃었다‘정말…… 귀엽네요.”약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는 이미 낡아 다 헌 인형을 품
“오늘 영미 쌤이 연습 어떻게 했는지 검사하겠다고 했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잤으니…… 아!”윤영미의 싸늘한 얼굴을 생각하자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 얼른 옷을 주어 입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내달렸다. 심지어 외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입기 시작했다.도준은 꽁꽁 싸맨 하윤을 보고 피식 웃더니 제 곁으로 끌어왔다.“누가 보면 러시아 인형인 줄 알겠어. 이리 와 봐.”하윤은 고분고분 제 손을 내밀더니 도준이 저를 도와 옷을 정리해 주자 헤실 웃으며 발꿈치를 들고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여보, 고마워요.”“고작 이걸로 퉁 치려고?”눈썹을 들어 올리며 되묻는 도준에게 하윤은 이내 고개를 숙이라는 듯 손짓했다.이윽고 고분고분 제 말을 따르는 도준의 목에 손을 둘렀다.하지만 이제 막 입술이 부딪히려고 하던 찰나,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다른 사람 앞에서 그 모습이 딱 들켜버리고 만 하윤은 얼른 도준을 밀어 버렸다.그때 마침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진가을은 두 사람을 의아한 듯 바라보았고, 하윤은 그런 진가을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좋은 아침이에요.”진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빨강 머리 아내가 바라 피는 건가?’곁눈질로 존재감 있는 남자를 한 번 훑어본 진가을은 이내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연예계에서조차 보기 드문 미남을 보자 자연스레 한민혁이 떠올랐다.‘뭐, 이것도 인지상정이네.’그 시각, 도준이 제 내연남으로 낙인 찍힌 줄도 모르는 하윤은 낮은 소리로 도준에게 말을 걸었다.“이따가 저 혼자 갈게요. 만약 다른 사람이 보면 그간 한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잖아요.”하윤의 말은 당연히 공은채와 공태준이 저와 도준이 다시 화해한 걸 보면 안 된다는 뜻이었지만, 진가을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진가을의 인상 속에 한민혁은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지난 번에 눈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몇 마디 투덜거리기만 하고 따지지도 않았으니까.게다가 진가을이 연예인이라는 걸
권하윤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다른 후배들의 테스트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심지어 불합격을 맞은 두 후배가 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때문에 하윤이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윤영미의 꾸중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이제 60을 앞둔 윤영미였지만 여전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었다.“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와? 차라리 집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하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해요, 늦잠 잤어요.”윤영미는 하윤을 째려보았다.“멍하니 서서 뭐해? 당장 가서 옷 갈아입지 않고. 오늘 테스트 넘지 못하면 저녁에 돌아갈 생각 하지 마. 여기서 밤새 연습해!”“넵!”흠칫 떨며 대답한 하윤은 쌩하고 탈의실로 달려갔다. 한참 뒤,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윤영미는 자세를 잡는 막대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그동안의 지옥 훈련을 거쳐 쌓아둔 실력이 있는 데다, 원래의 실력을 잘 발휘하기도 했고 예전에 몸에 배겨 있던 기초도 있어 테스트는 순조롭게 끝났다. 심지어 마지막 턴을 마치고 제 자리에 서는 순간, 벌을 서고 있던 두 후배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윤영미도 마음에 들었는지 습관처럼 칭찬하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또 버럭 화를 냈다.“흥. 아무리 원래 감각 되찾았다 해도 무대 서려면 아직도 멀었어.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어?”“알았겠어요.”하윤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겨우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안도감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때, 옆에 있던 후배가 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선배, 남자친구 있죠?”하윤은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했다.“왜 그건 물어?”후배는 얼굴을 붉히며 하윤의 가슴 위에 난 자국을 가리켰다.그 자국을 보는 순간 하윤은 눈앞에 아찔해 났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았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아 쪽팔려.’……맑게 개인 하늘에서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병원의 검사실 안, 공은채는 제 검사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공은채 씨, 예전에 심장 이식수술을 한 적 있죠
공태준은 싱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하윤의 앞으로 내밀었다.“물건만 경비실에 맡겨두고 가려고 했는데 점심 먹고 있다고 해서 들렀어요.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야.”하윤이 고개를 젓자 태준은 이내 하윤의 후배들에게 눈길을 돌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여기 앉아도 돼요?”태준이 들어온 순간부터 눈을 반짝이던 정수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평소 볼 일도 드문데, 거기다 매너까지 있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네, 아무데나 앉아요.”수아의 말에 하윤도 뭐라 할 수 없어 태준이 의견을 묻는 듯 눈빛을 보내올 때 할 수 없이 고래를 끄덕였다.평소 고급 레스토랑 음식만 입에 댈 것 같은 공태준이 가정음식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왠지 위화감이 들었다.예쁘게 포장된 디저트를 음식 옆에 놓으니 그런 감각은 더 심해졌다.그때 태준을 훑어보던 수아가 뭔가 알 것 같다는 눈빛을 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선배, 이 분이 선배 남자친구예요?”하윤이 부인하려던 순간, 수아는 윙크까지 날리며 싱긋 웃었다.“오늘 아침 늦게 온 것도 형부가 놔주지 않아서 그랬죠?”말이 끝나자마자 태준은 하윤에게 따져 묻기라도 하듯 빤히 바라봤다.이에 하윤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쫄깃해 났다. 태준이 뭔가 눈치챌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수아가 더 말하다간 도준이 어젯밤 저를 찾아왔었다는 걸 태준에게 들킬까 봐 불안했다.하지만 이내 진정한 하윤은 수아를 향해 싱긋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네가 남자친구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뭐든 남자친구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 보니?”“아니거든요, 이게 다…….”부끄러웠는지 이내 부인하려는 수아를 보자 하윤은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귀띔했다.“이제 곧 1시 다 돼가. 쌤이 너 연습실에서 연습하라고 하지 않았어? 안 보이면 또 뭐라 하겠어.”하윤의 말에 수아는 깜짝 놀란 듯 소리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후다닥 일어났다.“선배, 저 먼저 가볼게요. 쌤한테 저 밥 먹으러 나왔다는 거
공태준은 예전에도 하윤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태준을 마주하고 있자니 하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고, 공태준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니까.태준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늘 마음을 억누르며 볼 수 있는 것에만 만족했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하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니.공은채의 말 때문에 태준은 더 이상 마음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눈빛은 오랫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꿰뚫었고 긴 손가락을 앞으로 뻗으며 하윤의 손을 잡았다. 심지어 손을 뿌리치려는 하윤을 무시한 채 다시한번 되물었다.“저한테 기대요. 네?”제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한참을 버둥대며 겨우 손을 뒤로 뺐다.“공태준,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여러 번 거정당해서인지 태준은 이제 이런 거절도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매번 가슴에 난 흉터에 계속 새 상처가 덧 새겨져 아픈 건 여전했다. 심지어 내리깐 눈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민 사장 때문이에요? 민 사장은 지금 은채랑 같이 있는데 아직도 못 잊었어요?”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도준 씨와는 상관없어.”태준은 그런 하윤을 한참동안 빤히 바라봤다.“민도준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 곧 알 거예요.”이윽고 이 말만 남긴 채 아무 미련도 없이 떠나갔다.하지만 하윤은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 당장이라도 도준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아마 공은채와 함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내 포기했다.……하윤의 생각대로 공은채와 도준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공은채는 도준을 꼬시기는커녕 오히려 자주 넋이 나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종업원이 카페를 올렸을 때 거절하기까지 했다.“아니에요.”심장에 문제가 생겼으니 이런 자극적인 것은 손에 대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도준은 의자에 기대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나중에 다시 예기해.”그 순간 제 건강을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공은채는 기분이 언짢았다.“왜요? 결혼하더니 이젠 어머님 심장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가 봐요?”“그 심장이 아니었다면 네가 살아서 여기 앉아 있었다고 생각해?”도준이 그래도 저를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하윤은 가볍게 웃었다.“그럼 귀찮더라도 오후에 저랑 같이 병원 좀 가줘요. 심장 잘 보관하려면 제가 건강해야 하잖아요.”……공은채는 이번에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했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공은채의 검사 결과를 놓고 세미나까지 열었다.그 결과 약으로 보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상황에 따라 수술하기로 결정했다.하지만 전문 용어로 토론하는 의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공은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 수술 혹시 위험한가요?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그 말에 채 교수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이론적으로 말하면 수술은 모두 위험성이 따릅니다. 개개인의 체질 혹은 유전자에 따라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반응도 모두 다릅니다.”“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은채 환자분 같은 경우는 예전에 병원에서 치료하던 기록이 있기도 하니 저희가 수술 준비는 충분히 할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병원에 입원해 지내면서 수시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입원이요?”공은채는 망설여져 도준을 바라봤다.이제 막 도준과 감정을 회복했는데, 이 타이밍에 입원하여 도준이 다시 하윤을 찾으면 곤란하니까.하지만 한참 동안 고민하던 끝에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오늘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내일부터 입원할게요.”이 병원은 원래부터 도준의 것이기에 의사들은 당연히 아무 의견도 없었다. 한참 뒤, 병원을 떠나기 전, 공은채는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다.그러다 밖으로 나오면서 창가에 기대 있는 도준을 본 순간,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