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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7화 야릇한 임무

도준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본 순간 하윤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저 아직 씻지 않았어요.”

“가서 씻고 와.”

하윤은 말하면서도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도준은 의외로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쉽게 풀리자 하윤은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걸어가면서까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하윤이 막 욕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도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씻을 때 잘 준비해 둬. 또 울며불며 나 탓하지 말고.”

“네.”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삐끗한 하윤은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는 도망치듯 문을 닫아 버렸다.

도준은 하윤의 콩알만한 심장을 비웃으며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때마침 그때, 소파 틈새에 있는 명함이 도준의 눈에 들어왔다.

명함을 이런 곳에 숨겨둘 사람은 하윤일 게 뻔했다.

‘결과는 고려하지도 않고 물건 숨기는 것도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원.’

도준은 명함을 꺼내 힐끗 바라봤다.

그 순간 귓가에 공은채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알아 맞혀 보자면, 이시윤은 아마 내일 공천하 만나러 갈 거예요. 그것도 도준 씨 몰래.’

마치 모든 걸 꿰고 있는 듯한 공은채의 말투에 도준은 순간 언짢았다.

특히 하윤이 저를 배신할 거라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하지만 하윤의 선택에 본인마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도준은 혀로 치열을 훑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보자고. 제대로 길들여졌는지.’

그 시각, 하윤은 뜨거운 물을 맞으며 머릿속으로 온통 도준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직접 준비하라니!’

아까는 정신이 없어 엉겁결에 대답했는데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그렇게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껏 모든 걸 도준이 알아서 해줬는데 오늘 갑자기 스스로 하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도준이 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 한다는 걸 알아도 목숨을 부지하려면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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