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말하던 공천하는 회한에 잠긴 듯 눈을 감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런데 그때 내가 그랬거든. 유전자 검사는 아이가 태어난 날 바로 했다고. 아이는 내 아이가 맞더라고. 그런데 여전히 구역질 난다고.”이야기를 듣는 내내 하윤은 염옥란이 얼마나 억울하고 절망스러웠을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공태준이 당연히 오해하고 일부러 두 모녀를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너무 충격이라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럼 염옥란 여사는 그 일 때문에 자살한 거겠네?”공천하는 그 말에 갑자기 흥분했다.“아니. 내 아내는 따뜻해지려고 숯을 피운 것뿐이지 자살한 게 아니야! 따뜻해지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나와 아이들만 남겨 놓고 떠났을 리 없어!”‘여전히 죄책감 없는 걸 보니 그동안 같잖은 핑계로 제 신경을 마비시켜 왔을 게 뻔하네.’“눈가리로 아웅하는 것도 아니고. 친자 확인으로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고개 숙이지 않던 사람이 아이 학교 보내겠다고 끝내 고개 숙였는데, 그게 모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절망에 빠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아니야! 그 입 닥쳐! 내 아내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야. 절대 그럴 사람 아니라고!”감옥에 잡혀 올 때까지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공천하가 갑자기 미쳐 날뛰자 교도관은 곧바로 나타나 공천하를 끌고 갔다.……면회실에서 나온 하윤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공천하가 비록 끝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염옥란의 죽은 건 아마도 공은채가 더 잘 살아가기를 바라서였을 거다.하지만 공은채가 살아있는 한 공천하의 마음 속 응어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텐, 죽지 않는 한 공씨 집안에서는 좋은 대접을 받기는 어려웠을 거다.그렇게 생각하니 뒤에 일은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혀졌다. 염옥란이 죽은 뒤 공은채는 공씨 집안 둘째 아가씨로 인정을 받긴 했지만 공천하의 이쁨을 받는 건 불가능 했을 거다. 더욱이 얼마 뒤 재혼하게 되었으니 공은채의 생활은 이루
하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석지환의 문자를 받았다.[시윤아, 미안해. 내가 전에 너무 어리석었나 봐. 잠깐 진정이 필요하니 나중에 제대로 사과할게.]이 문자를 보자 하윤은 그제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석지환이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건 공은채가 도준의 방에 들어간 게 확실하다는 걸 설명하기도 한다.‘하!’머릿속에 그려지는 화명에 하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문 앞에 다다른 하윤은 일부러 방 안에 사람들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카드키로 벌컥 문을 열었다.그리고 도준의 몸 위에 바싹 붙어있는 공은채를 본 순간 끝내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누가 너 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공은채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하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도준의 위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준의 반응을 관찰하며 그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뿐.그 사이 도준의 시선이 잔뜩 화가 난 하윤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었다. 버럭버럭 화내는 하윤의 모습은 심지어 정말 남편 불륜 현장을 덮친 아내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그게 재밌었는지 도준은 자리를 꼰 채 와인을 내려 놓으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봤으면서 뭘 물어?”분명 미리 짜 놓은 각본이었지만 쓰레기 남편처럼 말하는 도준을 보자 하윤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심지어 도준을 삿대질하던 손마저 부들부들 떨어 오히려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저 여자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고 약속했잖아요!”“앞으로 나 다시는 속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건 누구더라?”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하지만 그 말에 하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그런 적 없어요.”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공은채가 이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하윤의 변명을 사전에 차단했다.“그럼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야?”“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나랑은 상관없지. 그런데 우리 오빠가 너랑 공천하 만나게 도와주
결국 하윤은 얼굴을 감싼 채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호텔문은 벽에 부딪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그 모습을 본 공은채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 안의 물건은 거의 다 깨져 있었고 도준은 세면대 옆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옷깃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목덜미에 난 상처는 그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야성미를 더해주었다.심지어 욕실 안에 흩어진 희뿌연 연기는 야릇한 분위기까지 연출했다.공은채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주어 거치대에 걸어 놓고는 도준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오히려 도준과 같은 세면대에 기댄 채 그를 힐끔 쳐다봤다.“화가 나면 더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도준 씨는 어때요?”공은채는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데다 남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남자를 저한테 푹 빠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공은채도 딱 한 번 실패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도준이다.물론 그때는 공씨 저택을 빠져나갈 계획을 짜느라 다른 데 집중할 수 없어서 실패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계획이 이제 막바지에 이른 데다, 공은채에게는 도준이 필요하다.몸과 마음이 도준을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도준이 꼭 있어야 한다.그리고 그런 날이 멀지 않다고 공은채는 속으로 생각했다.……“띠.”멀리에서 들리는 경적 소리에 하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아까의 ‘분노’가 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방금 아무 생각도 없이 단숨에 1층까지 달려 내려왔지만, 이 순간 다시 맨 위층의 유리창을 보자 하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갑갑해 났다.지금껏 도준에게 접근할 기회만 엿보던 공은채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 그럴 만했다.외로운 남녀가 같은 공간에 있는 데다, 하필이면 예전에 사귀던 사람이었으니…….아까 방으로 쳐들어갔을 때 본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하윤의 눈앞에 익숙한 길이 펼쳐졌다.‘여긴?’얼마 뒤 차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하윤이 예전에 자주 공연했던 극장 앞이었다.“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공태준은 입장권 한 장을 하윤에게 건넸다.“오늘 여기서 공연이 있대요. 기분 풀고 싶으면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하윤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표 뒤에 적힌 배우 명단에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이름이 있는 걸 보자 이내 흔들렸다.공연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윤의 스승님과 같이 춤추던 친구들이었다…….하윤은 손가락 끝으로 입장권에 있는 이름을 살살 문질렀다. 만약 전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위에 적인 이름은 중 아마 하윤의 이름도 있었을 거다.그 순간 스승님과 친구들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솔직히 그 보다는 기억 속 자기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하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마주쳤을 때 자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으니까.태준은 하윤의 갈등을 눈치채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제가 표 구매한 시간이 너무 늦어서 뒷자리 밖에 차지하지 못했어요. 뒷자리라도 괜찮다면 보러 가고요.”하윤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태준을 빤히 바라봤다. 이 순간에도 태준의 처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분명 제 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이토록 완곡하게 설득하다니.……공연장 내부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좌석 번호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하윤의 심장박동도 무용수들이 자리에서 뛰어오르고 착지할 때 함께 요동쳤다.이 공연을 보면 분명 감명만 받을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무대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건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저들 사이에 끼여 함께 무대를 채워나가고 싶다는 갈망이 들었다.공연은 역시나 매우 훌륭했고,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그렇게 공연장을 떠나는가 싶었는데, 때마침 태준
“내려.”도준은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 명령했다.하지만 공은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왜 그렇게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에요? 와아프가 화낼까 봐 그래요? 걱정 말아요. 당장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공은채를 힐끗 바라봤다.“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공은채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더니 도준에게 건네 주었다.공은채가 가리킨 핸드폰 액정에는 사진이 떠 있었는데, 공태준이 하윤을 빤히 바라보며 매너 있게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었다.그리고 다음 사진 역시 같은 주인공 두 사람이 극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남자는 다정한 눈빛으로 눈물을 훔치는 여자를 향해 티슈를 건네 주고 있었다. 그때 공은채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참, 오빠가 그러는데 본인의 격려 덕에 시윤이 다시 무대에 서기로 결심했대요. 도준 씨도 이제 곧 무대에서 춤 추는 시윤을 볼 수 있을 거예요.”도준은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미간을 팍 좁혔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은채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도준처럼 소유욕 강한 사람은 자기 여자가 무대에서 춤 추는 걸 원치 않을 게 뻔하다. 더욱이 다른 남자의 도움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면 더더욱 용납하지 못할 거다.아까 있었던 일에 이번 일까지 더해지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꿈의 유혹과 애인의 기분 중 대체 뭘 고를까?’공은채는 손을 들어 차 안에 달린 액세사리를 살짝 건드렸다. 귀여운 스타일은 딱 봐도 하윤이 걸어놓은 게 뻔했다.“나한테 손 안 대는 건 뭐라 안 할 테니, 같이 저녁 먹어요. 이건 괜찮죠?”……“이 가게 음식 입에 맞는지 한번 먹어 봐요.”태준은 이미 잘게 썬 스테이크를 하윤의 앞에 건네 주었다. 선분홍 육즙이 흘러나오는 고기를 보면서도 하윤은 입맛이 없는 듯 포크로 푹푹 찌르며 좀처럼 입에 대지 않았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태준은 얼른 웨이터를 불러 미리 주문했던 디저트부터 내오라고 부탁했다. 곧바로 올라온 디저트를 거부감
도준이 자리에 앉자 공은채도 따라서 공태준 곁에 앉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널찍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비좁아 졌고,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에 하윤은 의자에 기대 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한창 당황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머리를 꽉 잡은 채 제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어디 말해 봐. 방금 공 가주랑 뭐 먹었어?”“앵두 치즈 케익이요.”“맛있었어?”하윤은 곁눈질로 공은채를 흘겨보더니 일부러 토라진 듯 버럭 대답했다.“네, 엄청 맛있었어요.”“그래?”“저기요, 지금 말한 앵두 치즈 케익 10조각 주세요.”곧이어 테이블은 케익으로 가득 찼다.그때, 도준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좋아하면 다 먹어.”이런 비아냥 섞인 말투는 너무 진짜 같아 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채 기계적으로 케익을 입에 밀어 넣었다.양식 레스토랑이라 다행히 일 인분 양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 막 하나를 다 먹자마자 도준이 옆에서 두번째 접시를 들이 밀었다.“낭비하지 말고 계속 먹어.”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민 사장님, 사람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닙니까?”“뭐 마음 아프다 이건가? 그럼 대신 먹어주든지.”태준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린 채 케익 한 조각을 제 앞에 가져와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공은채에게 메뉴를 건내 주었다.“먹고 싶은 거 골라.”공은채는 도준의 관심에 놀랐는지 잠깐 넋 놓고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해산물 샐러드면 돼요.”“그거 갖고 되겠어?”그 말에 공은채는 고개를 숙인 채 케익을 먹고 있는 하윤을 바라보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오기 전에 배불리 먹었잖아요.”모두 성인 남녀인 데다, 너무 야릇한 말투에 하윤은 당연히 공은채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심지어 사레까지 걸려 쉴 새 없이 기침하다가 포크를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태준은 고민도 없이 자리에서
“공은채가 이미 먹었다고 했잖아요! 둘이 뭐 했어요?”민도준은 잔뜩 화난 권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자기가 나 다 뽑아먹어서 남아나지 않는데 어떻게 가능하겠어?”뜨거운 숨결에 귀까지 빨갛게 된 하윤은 얼른 도준의 어깨를 밀어 버렸다.“사람 참 뻔뻔해.”……뭐가 어찌됐든 연기는 계속해야 했기에 두 사람은 따로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하지만 먼저 성큼성큼 나가는 도준을 보자 하윤은 왠지 모르게 속상했다.도준이 호텔에 돌아왔을 때 하윤은 여전히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도준은 얼른 하윤을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고작 이거로 삐졌어? 그럼 이틀 뒤에는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홱 고개를 돌린 하윤은 잔뜩 놀란 듯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이게 고작 에피타이저라고?’“이틀 뒤에 왜요?”“사실 공은채가 바란 건 오늘 우리 관계가 완전히 나빠지고 자기가 떠난 뒤 그 틈에 나 꼬시는 거였거든.”그런 상황을 생각하니 하윤은 가슴이 답답해났다.그때 도준이 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기분 안 좋아? 그럼 기분 좋은 얘기해볼까? 오늘 공태준과 공연 보러 갔다며? 아니지, 무대 다시 서게 된 게 더 기쁜 일이겠지?”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준의 품에 안겨 있던 하윤은 말없이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를 한데 모으며 군기 바짝 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아니에요, 제 말 좀 들어봐요.”조심스럽게 말하는 하윤을 보며 도준은 입에 담배를 문 채 고개를 살짝 젖히며 끄덕였다.“그래, 말해 봐. 듣고 있으니까.”하윤은 다시한번 말을 조직해 오후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도준에게 설명했다.하지만 말을 할수록 기가 죽었다. 그도 그럴 게, 저도 잘한 거 하나 없으며 도준만 탓했으니.그 이유 때문인지 방금까지만해도 버럭버럭 화내며 따지고 들던 하윤은 이내 누그러들었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도준의 다리 위에서 내려가고 싶었다.하지만 도준이 이내 움직이려는 하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아직 얘기 안 끝
순간 마음에 따뜻한 물결이 일렁였고 시큰한 느낌이 콧잔등을 타고 올라왔다.난류가 심장을 파고 들었다 사지로 퍼져 나가 온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하윤은 팔과 다리를 도준의 몸에 칭칭 감으며 푸딩 같은 입술로 도준에게 입맞췄다.“여보, 여보…….”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에 하윤의 모소리는 점점 부드러워져 듣는 사람의 마음조차 녹을 지경이었다.도준은 저한테 자꾸만 칭칭 감겨오는 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가만히 있어. 뭐 잘못했는지 계속 말해야지, 왜 갑자기 발정 나고 이래?”낯부끄러운 도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하윤의 심정은 날아갈 듯했으니까.솔직히 도준은 예전에도 하윤이 하고 싶어하는 건 뭐든 하라고, 절대 난처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있다.하지만 그때는 너무 황홀하고 꿈만 같아 믿기지 않았다.게다가 도준의 눈치를 보는데 습관이 된 터라 뭐든 동의를 구하곤 했다.하지만 지금은 믿기지 않기보다 진심으로 기뻤다. 평등이란 이런 것인 줄 처음 알았다.그때 도준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윤을 소파에 고정시켰다.“그러다 하늘로 날아가겠어?”기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하윤은 반항하기는커녕 도준의 목에 손을 둘렀다.“네, 도준 씨가 그렇게 만들어줬잖아요.”도준은 활짝 웃는 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멍청하긴.”“그럼 저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제 목을 안은 채로 마구 흔들어대는 하윤의 닭살스러운 말에 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하윤은 쉽사리 그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대답해봐요.”“하, 자기가 공태준이랑 붙어 다니는 것도 다 참았는데 사랑하냐고 물어?”도준의 맘에 하윤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우스운 얘기가 아니었는데 하윤은 키득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때 도준이 하윤을 들어 올렸다.“왜? 진짜 바보가 된 거야?”하윤도 웃느라 진이 빠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도준의 어깨에 기댔다.“아니거든요. 도준 씨가 제 복수 도와주는 거 지켜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