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이 자리에 앉자 공은채도 따라서 공태준 곁에 앉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널찍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비좁아 졌고,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에 하윤은 의자에 기대 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한창 당황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머리를 꽉 잡은 채 제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어디 말해 봐. 방금 공 가주랑 뭐 먹었어?”“앵두 치즈 케익이요.”“맛있었어?”하윤은 곁눈질로 공은채를 흘겨보더니 일부러 토라진 듯 버럭 대답했다.“네, 엄청 맛있었어요.”“그래?”“저기요, 지금 말한 앵두 치즈 케익 10조각 주세요.”곧이어 테이블은 케익으로 가득 찼다.그때, 도준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좋아하면 다 먹어.”이런 비아냥 섞인 말투는 너무 진짜 같아 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채 기계적으로 케익을 입에 밀어 넣었다.양식 레스토랑이라 다행히 일 인분 양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 막 하나를 다 먹자마자 도준이 옆에서 두번째 접시를 들이 밀었다.“낭비하지 말고 계속 먹어.”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민 사장님, 사람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닙니까?”“뭐 마음 아프다 이건가? 그럼 대신 먹어주든지.”태준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린 채 케익 한 조각을 제 앞에 가져와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공은채에게 메뉴를 건내 주었다.“먹고 싶은 거 골라.”공은채는 도준의 관심에 놀랐는지 잠깐 넋 놓고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해산물 샐러드면 돼요.”“그거 갖고 되겠어?”그 말에 공은채는 고개를 숙인 채 케익을 먹고 있는 하윤을 바라보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오기 전에 배불리 먹었잖아요.”모두 성인 남녀인 데다, 너무 야릇한 말투에 하윤은 당연히 공은채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심지어 사레까지 걸려 쉴 새 없이 기침하다가 포크를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태준은 고민도 없이 자리에서
“공은채가 이미 먹었다고 했잖아요! 둘이 뭐 했어요?”민도준은 잔뜩 화난 권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자기가 나 다 뽑아먹어서 남아나지 않는데 어떻게 가능하겠어?”뜨거운 숨결에 귀까지 빨갛게 된 하윤은 얼른 도준의 어깨를 밀어 버렸다.“사람 참 뻔뻔해.”……뭐가 어찌됐든 연기는 계속해야 했기에 두 사람은 따로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하지만 먼저 성큼성큼 나가는 도준을 보자 하윤은 왠지 모르게 속상했다.도준이 호텔에 돌아왔을 때 하윤은 여전히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도준은 얼른 하윤을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고작 이거로 삐졌어? 그럼 이틀 뒤에는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홱 고개를 돌린 하윤은 잔뜩 놀란 듯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이게 고작 에피타이저라고?’“이틀 뒤에 왜요?”“사실 공은채가 바란 건 오늘 우리 관계가 완전히 나빠지고 자기가 떠난 뒤 그 틈에 나 꼬시는 거였거든.”그런 상황을 생각하니 하윤은 가슴이 답답해났다.그때 도준이 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기분 안 좋아? 그럼 기분 좋은 얘기해볼까? 오늘 공태준과 공연 보러 갔다며? 아니지, 무대 다시 서게 된 게 더 기쁜 일이겠지?”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준의 품에 안겨 있던 하윤은 말없이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를 한데 모으며 군기 바짝 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아니에요, 제 말 좀 들어봐요.”조심스럽게 말하는 하윤을 보며 도준은 입에 담배를 문 채 고개를 살짝 젖히며 끄덕였다.“그래, 말해 봐. 듣고 있으니까.”하윤은 다시한번 말을 조직해 오후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도준에게 설명했다.하지만 말을 할수록 기가 죽었다. 그도 그럴 게, 저도 잘한 거 하나 없으며 도준만 탓했으니.그 이유 때문인지 방금까지만해도 버럭버럭 화내며 따지고 들던 하윤은 이내 누그러들었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도준의 다리 위에서 내려가고 싶었다.하지만 도준이 이내 움직이려는 하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아직 얘기 안 끝
순간 마음에 따뜻한 물결이 일렁였고 시큰한 느낌이 콧잔등을 타고 올라왔다.난류가 심장을 파고 들었다 사지로 퍼져 나가 온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하윤은 팔과 다리를 도준의 몸에 칭칭 감으며 푸딩 같은 입술로 도준에게 입맞췄다.“여보, 여보…….”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에 하윤의 모소리는 점점 부드러워져 듣는 사람의 마음조차 녹을 지경이었다.도준은 저한테 자꾸만 칭칭 감겨오는 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가만히 있어. 뭐 잘못했는지 계속 말해야지, 왜 갑자기 발정 나고 이래?”낯부끄러운 도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하윤의 심정은 날아갈 듯했으니까.솔직히 도준은 예전에도 하윤이 하고 싶어하는 건 뭐든 하라고, 절대 난처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있다.하지만 그때는 너무 황홀하고 꿈만 같아 믿기지 않았다.게다가 도준의 눈치를 보는데 습관이 된 터라 뭐든 동의를 구하곤 했다.하지만 지금은 믿기지 않기보다 진심으로 기뻤다. 평등이란 이런 것인 줄 처음 알았다.그때 도준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윤을 소파에 고정시켰다.“그러다 하늘로 날아가겠어?”기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하윤은 반항하기는커녕 도준의 목에 손을 둘렀다.“네, 도준 씨가 그렇게 만들어줬잖아요.”도준은 활짝 웃는 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멍청하긴.”“그럼 저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제 목을 안은 채로 마구 흔들어대는 하윤의 닭살스러운 말에 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하윤은 쉽사리 그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대답해봐요.”“하, 자기가 공태준이랑 붙어 다니는 것도 다 참았는데 사랑하냐고 물어?”도준의 맘에 하윤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우스운 얘기가 아니었는데 하윤은 키득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때 도준이 하윤을 들어 올렸다.“왜? 진짜 바보가 된 거야?”하윤도 웃느라 진이 빠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도준의 어깨에 기댔다.“아니거든요. 도준 씨가 제 복수 도와주는 거 지켜봐
“네? 저는 왜 기다려요?”도준은 의아해하는 하윤의 이마를 손으로 튕겼다.“너무 오래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됐어? 곧 이혼할 부부가 같이 자는 거 봤어?”‘아, 아직 연기를 해야 하지?’그제야 하윤은 순순히 옷을 챙겨 입고 잔뜩 풀이 죽어 도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우리 이제 오랫동안 못 보는 거죠?”싸우고 헤어진다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이유는 없으니까.이미 하이라이트까지 왔으니 하던 연기를 끝마쳐야 비로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도준은 부드러운 하윤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많아서 한 달이면 돼. 끝나고 데리러 갈게, 응?”한 달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솔직히 전에도 헤어진 적 있지만 이번에는 그 헤어진 동안 도준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하윤은 손을 놓기 싫어졌다.“한 달은 너무 길어요.”“이 일이 쉬운 줄 알았어?”도준은 피식 웃었다.“이미 병원에는 미리 손써뒀어. 심장이식하기 전에 한동안 약을 먹고 검사도 해야 해서 한달도 짧은 거야.”하윤도 이 일은 급하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공은채의 성격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니까. 오늘만 놓고 보더라도 일부러 저와 도준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보게 하고 또 공태준을 불러와 하윤이 ‘꿈’을 이루도록 도와줬다.공은채가 하윤의 스승이었던 윤영미의 극장을 찾아냈다는 건, 하윤이 춤을 좋아하고 또 윤영미한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윤영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만약 상대가 원래의 도준이었다면 하윤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정말 다행이네…….’하윤은 침대 모퉁이에 앉아 도준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제가 뭘 하든 괜찮다고 도준이 미리 약속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떠나기 전 하윤은 도준의 목을 끌어안고 애교부렸다.“그런데 제가 간다는데 왜 슬퍼하지도 않아요? 저 빨리 보내고 공은채랑 밀회라도 즐기려고…… 아아아, 아파요.”도준은 하윤의 볼을 꼬집었다.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맨 위층에 도착했다.“그럼 들어가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 부르고요.”“그래요. 고마워요.”손을 저으며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에 기대 핸드폰을 만지던 민혁은 1층을 누르자마자 제 어깨에 걸려 있는 하윤의 가방을 발견했다.“어? 하윤 씨 가방 주는 거 깜빡했네.”이내 다시 취소하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그러다가 28층에 도착했을 때, 웬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쓴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곧바로 내리려고 고개를 빼들고 확인했지만 맞은편의 엘리베이터는 27층에 멈춰 있었다. 이윽고 민혁은 다시 고개를 뒤로 빼며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려고 결심했다.하지만 제 편의만 챙기느라 그 동작이 얼마나 의심스러웠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그 시각 진가을은 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밖을 두리번거리며 관찰하다가 제 앞에 막아선 채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리자 덜컥 겁이 났다.벌써 밤 11시인 데다, 밀폐된 공간에 수상한 남자와 단 둘이 있으니 진가을은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더욱이 민혁의 어깨에 메고 있는 여성용 가방을 보자 시간이 너무 늦게 흐른다는 착각마저 들었다.“어, 도준 형, 사람은 이미 데려다 놨어.”“에이, 나 못 믿어? 걱정하지 마, 따라붙은 사람 없어.”사람은 데려다 놨어…….따라붙은 사람 없어…….생각할수록 진가을은 제 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있는 사람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가방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스프레이를 꺼내 들었다.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민혁은 통화가 끝난 뒤 이상한 낌새를 채고 뒤를 돌아봣다. 그리고 그 순간, 스프레이가 그의 얼굴에 흩뿌려졌다.“아!”“씨X 뭐야??”민혁은 물론 도준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80은 족히 넘는다. 그런 남자가 저를 향해 걸어오자 진가을은 1층에 도착하자마자 힘껏 소리쳤다.“살려주세요! 여기 양아치가 쳐들어왔어요!”“…….”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구조 요청을 듣자마자 쏜살같이
펜트하우스.시뻘겋게 충혈된 한민혁의 눈을 보자 권하윤은 놀란 듯 물었다.“왜 이렇게 됐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 웬 싸가지가 침 튀겨서요.”“네?”하윤은 의아한 나머지 도준에게 전화할 때 이 일을 말했다.“하, 너무 건조해서 그랬나 보지 뭐.”“그게 무슨 말이에요? 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들으면 들을수록 하윤은 어리둥절해졌다.“됐어, 다른 사람 얘기는 그만하고 집은 어때? 괜찮아?”소파에 앉아 있던 하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 곳곳을 훑어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그럼 됐어. 당분간은 거기서 지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그럼……, 도준 씨가 필요한 것도 말해도 돼요?”곧이어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아직도 배 안 불러?”“누가 그걸 말해요? 제가 말한 건……, 아 됐어요, 말 안 할래요.”말을 안 하겠다고 했지만 하윤은 한참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대화하다가 겨우 끊었다.물론 도준이 곁에 없지만 왠지 계속 함께한 기분이었다.……다음날 아침, 하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택시를 타고 익숙한 극단으로 향했다.윤영미는 여전히 몇 년 전부터 춤 연습을 하던 연습실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윤도 빨리 도착했지만 안에는 이미 몇몇 여자애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옷을 갈아입고 다시 플라스틱으로 된 바닥을 밟는 순간, 하윤은 다시 몇 년 전으로 추억 여행하는 듯싶었다.벌써 2년 동안 춤을 놓고 있어 몸이 뻣뻣하고 말을 안 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리를 다시 봉 위에 올려 놓는 순간 몸은 연습 루트를 모두 기억하는 듯 제멋에 움직였다.하지만 연습을 마쳤을 때쯤, 뒤에서 누군가 콧방귀를 뀌었다.“흥, 원래보다 많이 죽었네. 지난 2년 동안 연습 한 번도 안 했나 보네.”고개를 돌려 윤영미를 확인한 하윤은 이내 다리를 내리고 얌전한 자세를 취했다.“쌤. 어, 제가 그동안 연습을 못하긴 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연습해서 꼭 따라 잡을게요.”“노력만 하지 말고
공은채는 뭔가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도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분명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공은채는 왠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괴리감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괜찮으면 할래요?”도준은 공은채를 힐끗 바라봤다.“그건 네가 내 흥을 돋울 수 있는지도 봐야지.”도준이 순순히 동의하지 않은 덕에 공은채는 오히려 더 믿음이 생겼는지 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왜요? 도준 씨 침대에 오르는 것도 뭐 확인을 거쳐야 할 만큼 위험해요?”도준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우아한 동작에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입꼬리로 매혹적인 호를 그렸다.“내 침대에서 사람 죽어나는 게 싫거든. 흥이 깨지잖아.’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정말 확인만 하면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그리고 도준은 그날 바로 해외에서 유명한 의료진을 개인 병원으로 데려왔다.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병원에 다시 발을 들인 적 없는 공은채는 익숙한 환경에 속이 울렁거렸다.심장 이식이 작은 수술은 아니기에 그때 물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긴 했으나 이것저것 문제는 여전히 많았다.그때의 공천하는 공은채에게 관심을 준다기 보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보상해주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할 테니까.공은채는 매일 거부 반응으로 고통받고 발열하고 구토하고 기침하는가 하면 심지어 폐에 물이 차는 것까지 견뎌야 했다.도준이 나타나 병을 치료해주기 전까지는…….공은채는 익숙한 병실을 바라봤다.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배치는 예전과 똑같았다.이윽고 고개를 돌린 공은채는 제 옆의 도준을 돌아봤다.“여기 혹시 다른 사람 지낸 적 있어요?”도준 대신 답한 건 곁에 있던 간호사였다.“없습니다. 민 사장님께서 이 방은 그 누구도 쓸 수 없게 특별히 지시하셨거든요.”평소 아무리 철석 같던 공은채라도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준 씨, 나…….”공은채의 말은 갑자기 들어온 의사에게 묻혀 버렸다.“검사실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따라오시지요.”도준은 고개를 까
약은 수입품이었다. 물론 공은채도 영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학 전문용어 때문에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아 핸드폰으로 꼼꼼히 검색해보았다. 그렇게 검색한 결과 약은 모두 거부 반응을 치료하는 약이 맞았다.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공은채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검사를 진행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제 공씨 가문에는 개인 병원이 없는 지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러다가 공은채의 손가락은 연락처 한 곳에 멈췄다.[석지환]……“띵.”권하윤이 낮잠을 자는 사이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기쁜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한 결과 기다리던 도준이 아닌 석지환이었다. 그것도 만나자는 연락.마침 할 일이 없던 하윤은 곧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하윤이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석지환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넋을 놓고 있어 하윤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발견했다.“어, 왔어?”석지환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뭐 마실래?”석지환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던 것만 생각하면 하윤은 아직도 화가 났지만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자 뭐라 할 수 없었다.석지환도 피해자이니까. 심지어 그는 한쪽 팔까지 잃었다. 그런데 제 삶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를 낭떠러지로 민 범인이라는 걸 알았으니 절망하는 건 당연했다.웨이터가 떠나간 뒤 석지환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시윤아, 지난 번에는 내가 미안했어. 많이 억울했지? 그래도 오빠 너무 탓하지 말아줄래?”석지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하윤은 이내 마음을 풀며 이상야릇한 말투로 투덜댔다.“제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냐면서요. 그런데 탓하기까지 하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하윤의 말에 석지환은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지난 번엔 오빠가 미안했어. 다 내 잘못이야. 누가…… 진심인지도 알아보지 못했으니.”점점 눈시울을 붉히는 석지환을 보자 그가 요즘 얼마나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을 지 훤했다.이에 하윤도 더 이상 삐진 척할 수 없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