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수입품이었다. 물론 공은채도 영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학 전문용어 때문에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아 핸드폰으로 꼼꼼히 검색해보았다. 그렇게 검색한 결과 약은 모두 거부 반응을 치료하는 약이 맞았다.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공은채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검사를 진행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제 공씨 가문에는 개인 병원이 없는 지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러다가 공은채의 손가락은 연락처 한 곳에 멈췄다.[석지환]……“띵.”권하윤이 낮잠을 자는 사이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기쁜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한 결과 기다리던 도준이 아닌 석지환이었다. 그것도 만나자는 연락.마침 할 일이 없던 하윤은 곧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하윤이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석지환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넋을 놓고 있어 하윤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발견했다.“어, 왔어?”석지환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뭐 마실래?”석지환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던 것만 생각하면 하윤은 아직도 화가 났지만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자 뭐라 할 수 없었다.석지환도 피해자이니까. 심지어 그는 한쪽 팔까지 잃었다. 그런데 제 삶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를 낭떠러지로 민 범인이라는 걸 알았으니 절망하는 건 당연했다.웨이터가 떠나간 뒤 석지환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시윤아, 지난 번에는 내가 미안했어. 많이 억울했지? 그래도 오빠 너무 탓하지 말아줄래?”석지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하윤은 이내 마음을 풀며 이상야릇한 말투로 투덜댔다.“제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냐면서요. 그런데 탓하기까지 하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하윤의 말에 석지환은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지난 번엔 오빠가 미안했어. 다 내 잘못이야. 누가…… 진심인지도 알아보지 못했으니.”점점 눈시울을 붉히는 석지환을 보자 그가 요즘 얼마나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을 지 훤했다.이에 하윤도 더 이상 삐진 척할 수 없었다.“지
“지환아, 나 출장 다녀왔어. 혹시 오늘 저녁 시간 돼?”공은채의 목소리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며칠 보지 못하다 만난 기쁨까지 전해지는 듯했다.만약 공은채가 경성에 있는 걸 직접 본 게 아니라면 석지환은 아마 진짜로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을 거다.“지환아? 내 말 들려?”전화 건너편에서 약 2초간 침묵이 흐르다가 이내 대답이 들렸다.“응. 몇 시 비행기야? 내가 데리러 갈게.”“아니야. 친구 전용기 얻어 타서 가기도 편해. 게다가 요즘 날씨도 추워졌는데 우리 남친 그렇게 고생하는 거 내가 어떻게 봐.”“역시 나 생각하는 건…… 너뿐이네.”“당연하지. 집에서 봐. 내가 선물도 준비했어.”전화를 끊은 공은채는 서랍에서 오래 전 준비해 두었던 선물을 꺼냈다. 심지어 공은채가 출장한다고 했던 곳에서 특산품으로 판매되는 도자기였다.비록 지금 도준과 잘 돼 가고 있었지만 공은채는 아직 석지환의 도움이 필요했다.……“뭐래요?”전화를 끊자마자 묻는 하윤을 보며 석지환은 잠깐 침묵했다.“만나자네.”그 말에 하윤은 조금 의심스러웠다.“도준 씨가 분명 공은채를 받아줬는데 왜 아직도 지환 오빠를 놓아주지 않는대요?”석지환도 덩달아 의아했다.“나도 이상하긴 해. 오늘 저녁에 만나보면 알겠지.”“그럼 오늘 사실대로 말할 거예요?”석지환은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저었다.“내가 어떨 것 같아?”솔직히 말하면 하윤은 석지환이 잠시 공은채를 잠시 속이길 바랐다. 그래야 저도 공은채가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있으니까.하지만 석지환에게 이 모든 걸 참고 저를 해친 여자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했다.한참 생각하던 하윤은 끝내 선택권을 석지환에게 넘겼다.“이건 두 사람 일이니 오빠가 결정해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석지환이 피식 웃으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심지어 자조적인 웃음도 섞여 있었다.“시윤아…….”“네?”의아해하는 하윤을 보며 석지환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 당분간은 모른 척할 거야. 나도 공은채
진가을은 손을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그러다 마침 28층에 도착하자 이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집으로 들어가기 전 문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발로 툭툭 건드리는 진가을을 보며 하윤은 이상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띠.”지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하윤은 어두컴컴한 방을 보자 또 다시 투덜대며 도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누구는 매일 이렇게 고독하게 지내는데 저는 맨날 술이나 마시고 문자도 씹고.”하지만 손을 들어 스위치를 만진 순간, 갑자기 따뜻한 손이 손끝에 느껴졌다.“엄마! 귀신이야!”덜컥 겁이 나 곧바로 다시 밝은 복도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누군가 하윤의 허리를 끌어당겼다.“고작 이정도 배짱으로 내 뒷담화 하고 있었던 거야?”이윽고 불이 켜지며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저를 보고 웃는 남자를 보자 하윤은 기쁘면서도 화가 나 도준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왜 오면 온다 말을 안 해요? 놀랐잖아요.”도준은 한 손으로 하윤을 끌어안으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미리 말하면 자기가 다른 놈 숨겨두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그 순간 도준과 공은채가 요 며칠 같이 있었다는 게 생각난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래요. 저 집에 남자 여러 명 숨겨 놓고 있었어요. 매일 한 사람씩 바꿔가면서…… 아…….”갑작스럽게 제 손을 잡아당기는 도준의 행동에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말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거야?”하윤은 화가 나 도준의 어깨를 깨물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힘껏 물어도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만 돋았는지 이내 하윤을 소파 위에 밀쳐버렸다.“착하지? 다른 곳 물어.”“변태!”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맞아 나 변태야.”뒤 이은 말은 이내 흩어졌다.거의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한 터라, 도준은 하윤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괴롭힐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가만두지 않았다.그렇게 겨우 끝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도준은 그 말에 하윤 곁으로 걸어왔다.“스피커폰으로 해 놔.”“도준 씨…….”하윤은 공은채가 눈치라도 챌까 봐 얼른 말리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이내 말을 바꾸며 전화 건너편에 물었다.“잠깐만요, 제 남편도 곁에 있어요. 저 스피커 폰 좀 켤 게요.”석지환은 도준과 하윤이 같이 있다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민 사장님.”“네.”곧이어 석지환은 공은채가 저한테 찾아온 상황을 곧이곧대로 설명했다.……몇시간 전, 공은채는 출장 갔다가 가져온 물건이라며 선물을 사 들고 석지환의 집 문을 두드렸다.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지내는 공은채의 모습에 석지환은 무섭기까지 했다.분명 마음 속에 도준이 있으면서 저를 만날 때는 또 예전처럼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소름이 돋았다.오랜만에 만 난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고 공은채는 말하면서 석지환의 어깨에 슬쩍 기댔다.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오늘 비행기 탔을 때 심장이 이상하더라고, 생각해 보니 나 정기검진 받을 때도 된 것 같아.”“심장 이식도 했으면서 정기 검진은 빼놓으면 안 되지.”“나도 그렇게 생각해.”공은채는 석지환의 어깨에 기댄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우리 애가 태어 날 때 네가 산모와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곤란한 상황 만들기 싫거든.”짤막한 한마디로 제 건강을 석지환의 책임인양 떠밀었다.공은채가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말을 꺼냈다는 걸 석지환은 바로 눈치챘다. 하지만 도준에게 부탁하지 않고 저한테 부탁하는 게 영 찜찜했다.그래도 공은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야 했기에 석지환은 이내 동의했다.“알았어. 내일 같이 병원 가자.”……상황을 들은 하윤은 도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심장 이식을 하는 일을 석지환에게 말해도 되는지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다.도준은 전에 말한 적이 있다. 공은채는 의심이 많아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고. 그동안 한민혁을 하윤에게 붙여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 그녀
“바꾸려고요.”도준이 대신 대답했다.“그런데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죠.”도준의 말이 떨어지자 석지환뿐만 아니라 하윤마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석지환은 천천히 대답했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하윤은 도준에게 따져 물었다.“성공할지 말지 모른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도준은 담배를 눌러 끄더니 하윤의 머리를 문질렀다.“심장 바꾸는 게 뭐 리모컨 배터리 바꾸는 것처럼 간단한 줄 알아? 게다가 두번째 수술이라면 살 확률은 낮아.”“그러면 살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죠?”머뭇거리며 묻는 하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공은채가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살까 봐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수술이 성공해도 새 심장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새 심장이요?”하윤은 그제야 뭔가 눈치챈 듯 물었다.“그러니까 진……, 아니 어머님 심장을 넣어둘 사람을 찾았다는 거예요?”“응.”공은채한테 정성을 쏟아부었던 것처럼 똑 같은 일이 또 반복될까 봐 하윤은 이내 되물었다.“상대가 누군데요?”“아주 귀여운 사람.”‘귀엽다고?’하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벌써부터 귀엽네 뭐네 사람을 칭찬한다고?’곧바로 머리속에는 도준이 심장 이식을 받은 귀여운 여자를 매일같이 간호하다가 눈이 맞아 저를 버리는 모습이 그려졌다.‘진짜 너무하네!’도준의 말에 잔뜩 토라진 하윤은 혼자 씩씩대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또 왜 그래? 말 몇 마디에 또 토라졌어?”하윤은 도준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참, 여기 사진도 있는데, 볼래?”‘뭐? 사진? 상대 사진까지 저장했어?’하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하! 이젠 사진도 저장했어요? 어디 봐요, 얼마나 귀여운지!”화가 잔뜩 나서 도준의 핸드폰을 빼앗은 하윤은 이내 할 마을 잃었다‘정말…… 귀엽네요.”약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는 이미 낡아 다 헌 인형을 품
“오늘 영미 쌤이 연습 어떻게 했는지 검사하겠다고 했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잤으니…… 아!”윤영미의 싸늘한 얼굴을 생각하자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 얼른 옷을 주어 입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내달렸다. 심지어 외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입기 시작했다.도준은 꽁꽁 싸맨 하윤을 보고 피식 웃더니 제 곁으로 끌어왔다.“누가 보면 러시아 인형인 줄 알겠어. 이리 와 봐.”하윤은 고분고분 제 손을 내밀더니 도준이 저를 도와 옷을 정리해 주자 헤실 웃으며 발꿈치를 들고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여보, 고마워요.”“고작 이걸로 퉁 치려고?”눈썹을 들어 올리며 되묻는 도준에게 하윤은 이내 고개를 숙이라는 듯 손짓했다.이윽고 고분고분 제 말을 따르는 도준의 목에 손을 둘렀다.하지만 이제 막 입술이 부딪히려고 하던 찰나,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다른 사람 앞에서 그 모습이 딱 들켜버리고 만 하윤은 얼른 도준을 밀어 버렸다.그때 마침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진가을은 두 사람을 의아한 듯 바라보았고, 하윤은 그런 진가을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좋은 아침이에요.”진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빨강 머리 아내가 바라 피는 건가?’곁눈질로 존재감 있는 남자를 한 번 훑어본 진가을은 이내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연예계에서조차 보기 드문 미남을 보자 자연스레 한민혁이 떠올랐다.‘뭐, 이것도 인지상정이네.’그 시각, 도준이 제 내연남으로 낙인 찍힌 줄도 모르는 하윤은 낮은 소리로 도준에게 말을 걸었다.“이따가 저 혼자 갈게요. 만약 다른 사람이 보면 그간 한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잖아요.”하윤의 말은 당연히 공은채와 공태준이 저와 도준이 다시 화해한 걸 보면 안 된다는 뜻이었지만, 진가을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진가을의 인상 속에 한민혁은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지난 번에 눈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몇 마디 투덜거리기만 하고 따지지도 않았으니까.게다가 진가을이 연예인이라는 걸
권하윤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다른 후배들의 테스트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심지어 불합격을 맞은 두 후배가 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때문에 하윤이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윤영미의 꾸중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이제 60을 앞둔 윤영미였지만 여전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었다.“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와? 차라리 집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하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해요, 늦잠 잤어요.”윤영미는 하윤을 째려보았다.“멍하니 서서 뭐해? 당장 가서 옷 갈아입지 않고. 오늘 테스트 넘지 못하면 저녁에 돌아갈 생각 하지 마. 여기서 밤새 연습해!”“넵!”흠칫 떨며 대답한 하윤은 쌩하고 탈의실로 달려갔다. 한참 뒤,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윤영미는 자세를 잡는 막대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그동안의 지옥 훈련을 거쳐 쌓아둔 실력이 있는 데다, 원래의 실력을 잘 발휘하기도 했고 예전에 몸에 배겨 있던 기초도 있어 테스트는 순조롭게 끝났다. 심지어 마지막 턴을 마치고 제 자리에 서는 순간, 벌을 서고 있던 두 후배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윤영미도 마음에 들었는지 습관처럼 칭찬하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또 버럭 화를 냈다.“흥. 아무리 원래 감각 되찾았다 해도 무대 서려면 아직도 멀었어.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어?”“알았겠어요.”하윤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겨우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안도감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때, 옆에 있던 후배가 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선배, 남자친구 있죠?”하윤은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했다.“왜 그건 물어?”후배는 얼굴을 붉히며 하윤의 가슴 위에 난 자국을 가리켰다.그 자국을 보는 순간 하윤은 눈앞에 아찔해 났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았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아 쪽팔려.’……맑게 개인 하늘에서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병원의 검사실 안, 공은채는 제 검사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공은채 씨, 예전에 심장 이식수술을 한 적 있죠
공태준은 싱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하윤의 앞으로 내밀었다.“물건만 경비실에 맡겨두고 가려고 했는데 점심 먹고 있다고 해서 들렀어요.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야.”하윤이 고개를 젓자 태준은 이내 하윤의 후배들에게 눈길을 돌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여기 앉아도 돼요?”태준이 들어온 순간부터 눈을 반짝이던 정수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평소 볼 일도 드문데, 거기다 매너까지 있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네, 아무데나 앉아요.”수아의 말에 하윤도 뭐라 할 수 없어 태준이 의견을 묻는 듯 눈빛을 보내올 때 할 수 없이 고래를 끄덕였다.평소 고급 레스토랑 음식만 입에 댈 것 같은 공태준이 가정음식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왠지 위화감이 들었다.예쁘게 포장된 디저트를 음식 옆에 놓으니 그런 감각은 더 심해졌다.그때 태준을 훑어보던 수아가 뭔가 알 것 같다는 눈빛을 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선배, 이 분이 선배 남자친구예요?”하윤이 부인하려던 순간, 수아는 윙크까지 날리며 싱긋 웃었다.“오늘 아침 늦게 온 것도 형부가 놔주지 않아서 그랬죠?”말이 끝나자마자 태준은 하윤에게 따져 묻기라도 하듯 빤히 바라봤다.이에 하윤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쫄깃해 났다. 태준이 뭔가 눈치챌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수아가 더 말하다간 도준이 어젯밤 저를 찾아왔었다는 걸 태준에게 들킬까 봐 불안했다.하지만 이내 진정한 하윤은 수아를 향해 싱긋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네가 남자친구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뭐든 남자친구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 보니?”“아니거든요, 이게 다…….”부끄러웠는지 이내 부인하려는 수아를 보자 하윤은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귀띔했다.“이제 곧 1시 다 돼가. 쌤이 너 연습실에서 연습하라고 하지 않았어? 안 보이면 또 뭐라 하겠어.”하윤의 말에 수아는 깜짝 놀란 듯 소리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후다닥 일어났다.“선배, 저 먼저 가볼게요. 쌤한테 저 밥 먹으러 나왔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