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화

전보민은 조명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강동준을 향해 걸어와 팔짱을 꼈다.

“선생님, 여기 계신 줄 알고 특별히 찾으러 왔어요.”

강동준은 얼굴을 찡그린 채 애처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전보민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전보민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줄곧 모른척했다.

전보민은 분명 지금 자신이 이유림과 조명훈에게 굴욕당하는 것을 보고 일부러 두 사람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나무라면 전보민에게 상처가 될 것이었다.

조명훈의 얼굴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지고 이유림의 입은 계란을 넣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벌어졌다.

왠지 모르게 원치 않는 장난감을 빼앗긴 것처럼 속이 괴로웠다.

그때 전보민의 시선이 이유림과 조명훈에게 향했다.

“선생님, 이 두 사람 어떻게 할까요?”

조명훈과 이유림은 벌벌 떨었다.

전보민은 수천억대 천봉그룹을 소유하고 있으니 이씨 가문과 조씨 가문을 몰살시키는 것 정도는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강동준은 고개를 저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전보민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해요.”

강동준은 전보민을 떼어내고 안으로 향했다.

“서류 신청한다며, 얼른 가자고.”

이유림의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번뜩였다.

자신의 두 눈으로 전보민이 강동준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걸 보니...

‘설마 강동준에게 전보민을 고개 숙이게 할 힘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금수저 남편인데!’

하지만 곧 이유림은 피식 웃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강동준과 함께 법원으로 들어갔다.

강동준이 정말 전보민을 굴복시킬 능력이 있었다면 3년 동안 이씨 가문에서 얌전히 지냈을까?

전보민은 단지 튼튼한 강동준의 몸을 보고 그를 먹여 살리는 것이었다.

전보민이 갖고 놀다 질리면 강동준은 여전히 무일푼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이유림과 조명훈은 함께 떠났다.

조명훈은 떠나기 전 도발하는 표정으로 강동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여자한테 빌붙는 건 남자도 아니지. 전 대표가 계속 예뻐해 주길 기도해. 안 그러면 내가 벌레보다 널 더 쉽게 죽여버릴 테니까!”

역시나 조명훈도 강동준이 전보민에게 빌붙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조명훈의 목소리를 전보민도 똑똑히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죽고 싶어?”

조명훈은 웃으며 말했다.

“난 아직 충분히 살지 못했어요. 근데 대표님 안목이 형편없네요. 어떻게 이런 놈을.”

전보민이 입을 열기 전에 조명훈은 이유림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전보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생님...”

강동준은 전보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지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정보 입수했어?”

전보민은 차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여기 다 있어요.”

강동준은 갈색 봉투에 담긴 정보를 꺼내 한눈에 살펴보면서 점점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에는 끔찍한 살기가 솟구쳤다.

10년 전, 그의 목숨을 구해준 소녀의 이름은 이명천의 친딸 이유림이 맞았지만 이명천과 그의 연인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떳떳한 신분이 아니었다.

노태연은 이명천이 집안 망신을 시킨다며 이유림을 죽이려 했고 이 소식을 알게 된 이명천은 노태연과 대판 싸우면서 그 모녀가 곤경에 처하면 절대 이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노태연은 차마 핏줄의 정을 무시하지 못해 이명천과 싸우지 않는 대신 몰래 교통사고를 조작해 이명천의 연인을 죽게 했다.

이유림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노태연은 이유림과 키와 외모가 비슷한 소녀를 찾아 사람을 바꾸고 다정한 할머니인 척 연기했다.

그리고 이명천은 노인네의 연기에 홀라당 속아 넘어갔다.

또한 아직 어린 이유림에게 엄마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이유설을 낳게 되었다.

이유림인 척 연기한 여자의 본명은 임연비, 고아 출신이었다.

이유림은 목숨은 건졌지만 그 후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재앙을 수시로 겪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재난은 이유림을 죽이지는 못해도 거듭해서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유림 주변 사람들은 이유림이 재난을 불러온다며 모두 그녀를 멀리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3년 동안 지켜온 여자는... 놀랍게도 이유림이 아닌, 임연비였다.

‘노태연, 독한 것!’

모든 것을 확인한 강동준에게서 폭력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펑-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에 의해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종이가 가루로 변해버렸고 전보민은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강동준은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심호흡했다.

“진짜 이유림은 어디 있어?”

전보민은 몸을 떨었다.

“그게...”

한두 문장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전보민은 이를 악물고 강동준에게 전화를 건넸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강동준이 영상 하나를 재생하자 오두막 안에서 한 여자가 묶여 있었고 그 앞에는 귀신 가면을 쓴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강동준의 몸이 떨렸다.

이목구비가 임연비와 닮은 것을 보아 이유림이 틀림없었다.

화면 속에서 가면을 쓴 남자가 번뜩이는 단검을 들고 이유림에게 다가갔고 이유림은 절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공포에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며 그녀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쁜이, 겁내지 마... 살살해줄게. 그렇게 아프지 않게 못난이로 될 거야. 그 얼굴로 어떻게 남자를 꾈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하하하하...”

펑-

강동준에게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휴대폰이 산산조각이 났다.

감히 이유림을 이렇게 대하다니, 아아아악!

목구멍에서 야생 짐승 같은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짐승 같은 놈!”

전보민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천봉그룹의 수장으로서 전보민은 강동준이 피바다로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이 순간, 강동준의 격한 분노는 천해의 재앙이 될 것이다.

강동준은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유림은 어디 있어?”

전보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사람 보내서 찾고 있으니까 곧 소식 들려올 거예요!”

강동준은 전보민을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봤고 전보민은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강동준은 휴대폰을 꺼내 용천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영상 하나 보낼 테니까 당장 그곳을 찾아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찾아.”

강동준은 고함을 지르다시피 마지막 말을 뱉었고 전보민은 일어나서 다른 여분의 휴대폰을 꺼냈다.

강동준은 휴대폰을 들고 용천우에게 영상을 보냈다.

용승그룹에서 용천우는 그 영상을 보고 당장 명령했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여길 찾아. 먼저 찾는 사람에게 20억 포상금을 주겠다.”

용천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천해 전체가 술렁였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