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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병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해 제일병원이 수준이 높은 줄 알았는데 무식한 돼지 무리가 따로 없네요.”

임성호를 비롯한 모든 의사들이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말았다.

한병천의 의술은 지역 최고 수준이었다.

남들이 제일병원 의사들을 돼지라고 한다면 의사들이 주먹다짐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박하는 말이라도 할 텐데 한병천이 이렇게 말하니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병천이 말을 돌렸다.

“이쪽 초대 교수 자리는 없던 일로 하죠. 전 창피당하기 싫습니다.”

임성호를 비롯한 일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번에 한병천을 영입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이유림 사건까지 터져 수렁에 빠질 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았을걸.

지금 이 순간 임성호 일행은 후회가 밀려왔다.

한병천은 임성호 일행을 쳐다보지도 않고 살가운 얼굴로 전보민을 찾아왔다.

“전 대표님, 신의님께서 지금 어디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딸이 불치병에 걸렸다.

자신의 뛰어난 의술로 딸의 생명을 겨우 붙잡았지만 그 역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선 은혈만이 답이다.

은혈의 강력한 기능을 사용하여 딸의 신체적 잠재력을 자극해야 했다.

그도 은혈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체력의 한계 때문에 은혈에 찌르는 금침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이제 은혈을 아는 전문가를 힘들게 만났는데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전보민은 당연히 한병천을 알고 있었지만 강동준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한병천이 서둘러 말했다.

“대표님께서 알려주시면 제대로 보답하겠습니다!”

전보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선생님께서 만나 뵙고 싶다는 말은 전할 수 있지만 만날지 말지는 신의님께 달렸어요.”

한병천은 능력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질이 괴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엄숙하게 말했다.

“소식 들리면 제일 먼저 알려주세요. 되든 안 되든 대표님께는 신세를 졌네요.”

다음 날 점심이 되자 이씨 가문 저택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태연이 주름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고 중요한 날이다!

이유림이 쓰레기와 이혼하고 조씨 가문의 장남 조명훈과의 약혼 소식을 알리면 이씨 가문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과거 이씨 가문을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 쓰레기 때문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 사람들, 이씨 가문에게 빌붙으려는 사람들 모두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며 자신을 공손하게 대할 것이다.

오늘부터 이씨 가문은 새롭고 더 높은 출발점에 서게 된다.

LS그룹의 상장은 물론이고 이씨 가문은 천해의 대가문이 될 것이다.

이유림을 그 쓰레기와 이혼시킨 게 이번 생에 가장 잘한 일 같았다.

이유설은 들뜬 얼굴로 이유림을 따라다녔다.

“언니, 이씨 가문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건 오랜만이네.”

이유림이 이유설을 흘겨보았다.

“한 번도 북적거린 적이 없었지.”

이유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조명훈 씨 덕분이야. 앞으로 그 사람한테 잘해!”

한쪽에 있는 조명훈을 바라보는 이유림의 눈에 설레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조명훈은 지위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밤일도 출중했다.

쓰레기에 비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자신이 얼마나 착했으면 그런 쓰레기와 3년을 같이 살았을까.

그 생각에 이유림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명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만 아니었다면 그런 놈과 3년을 같이 살지도 않았을 텐데!

조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면 아버지로 대접하지도 않을 거다.

조명훈은 오성산과 함께 서 있었다.

오성산은 오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오씨 가문은 천해에서 조씨 가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천해 오씨 가문은 S시 오씨 가문의 방계였기에 오성산의 지위가 조명훈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때 조명훈은 오성산이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진짜 이유림을 구했다고?”

오성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전보민이 움직일 줄은 몰랐어, 빈틈을 보인 거야. 하지만 다 계획이 있지. 이유림이 천해를 떠나지 않는 한 반드시 내 것이 될 거야.”

조명훈이 피식 웃었다.

“전보민이 두렵지 않아?”

오성산은 비웃었다.

“전보민은 S시에서나 대단하지 천해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감히 날 건드려? 걔도 같이 데려와서 재밌게 놀아야지.”

조명훈의 눈에 악의가 번뜩였다.

“전 대표 훌륭하지. 한 번 맛보면 눈이 번쩍 뜨일 거야.”

오성산은 말을 돌렸다.

“진짜 이유림이랑 결혼할 거야?”

조명훈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못해, 이유림도 보기 드문 미인이야. 게다가 이씨 가문 재산이 4천억 가까이 되잖아. 공짜로 생긴 떡인데 왜 마다하겠어!”

오성산은 큰 소리로 웃었다.

“역시 천해에서 제일 독한 놈이야, 난 아무것도 아니네.”

조명훈이 말하기도 전에 오성산은 유강대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됐어?”

유강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도 자신과 오성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작게 말했다.

“다 준비했어. 저녁 식사 전에 이유림을 네 집으로 보낼게.”

오성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나머지 10억 계좌로 보내줄게.”

바로 이때 주최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생일 파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백 개가 넘는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들 모두 천해의 유명한 인물이었다.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사람도 20억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천해의 진정한 거물들을 초대할 수는 없지만 노태연은 이씨, 조씨 가문의 결혼으로 언젠가는 고고한 거물도 자신을 귀하게 대접할 거라고 믿었다.

노태연은 이유림, 이유설 자매의 부축을 받으며 레드카펫 위로 걸어갔다.

“여러분, 제 생일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음껏 드시고 즐기시면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 말만 하세요!”

이러한 오프닝 연설을 시작으로 다음은 생일 선물을 증정식이었다.

이씨 가문 자제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와 푸짐한 선물을 건넸고 노태연은 상석에 앉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 가문 후손들 다음으로 하객들 차례였다.

이씨 가문이 높게 비상할 것이라 생각하고 생일 잔치에 온 사람들은 모두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물론 오성산, 조명훈, 유강대 등 축하 선물을 건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씨 가문보다 훨씬 월등한 그들이 이 자리에 오는 것만으로 이씨 가문의 체면을 살려준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노태연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웃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유일한 아쉬움은 이유림이 구출되었고 전보민이 나섰다는 것이다.

이유림을 고통스럽게 하려면 또다시 음모를 꾸미고 계략을 짜야 했다.

바로 이때 날카롭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동준이 화환을 보냈어.”

많은 사람들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귀를 세차게 비볐다.

하지만 실제로 한 청년이 화환을 들고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모두들 목이 멘 듯 일제히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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