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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득히 긴 강물을 바라보며 강동준의 눈에는 희미한 호기심의 흔적이 번뜩였다.

‘지금의 이유림이 날 구한 게 아니면, 또 다른 이유림이 있는 걸까?’

한정판 메르세데스 벤츠 SUV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가까이 다가와 유려한 꼬리를 그리며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용천우가 차에서 내려 경건한 얼굴로 강동준을 향해 걸어왔다.

두 달 전, 갑자기 병이 발작해 길가에 쓰러졌을 때 강동준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을 뻔했던 그였다.

하지만 강동준은 그 병이 하루 이틀에 생기는 병이 아니며 제때 치료하지 않아 다시 발작하면 그땐 신이 와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굳게 믿고 강동준이 자신을 살릴 방법이 있다고 하니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강동준은 용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이씨 가문 일에서 손 떼.”

용천우가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손... 손 떼라고요?”

이유림은 강동준의 아내이고 강동준은 이씨 가문의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에게 1600억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손을 떼라는 걸까?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걸까?’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용천우는 벌써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동준은 용천우가 오해한 것을 알면서도 굳이 설명하기 귀찮았다.

“당신 병을 치료할 다른 약재는 이미 모았어. 이제 현음초만 구해오면 당신을 치료할 수 있어.”

용천우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동준이 손을 흔들자 용천우는 정중히 물러났다.

용승그룹으로 가는 길에 용천우는 반나절 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알아봐야 할 게 있어. 하나, 이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선생님이 이씨 가문을 돕지 말라고 하는 건지. 둘, 묘의당에 가서 현음초가 있는지 알아봐.”

용천우가 떠난 후 강동준이 강가에 서서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리며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묘의당에 금방 도착한 약재에 현음초 세 송이가 있답니다!”

강동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묘의당으로 가지.”

묘의당은 천해에서 가장 큰 한의원이자 약국이었다.

새로 들여온 약재에 현음초가 있다는 건 강동준에게 때마침 도착한 선물 같았다.

천해에서 가장 큰 한의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묘의당은 이미 내부가 사람들로 가득 차서 강동준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강동준의 차례가 되자 그는 필요한 약의 이름을 말했고 그가 현음초를 언급하자 상대는 인상을 찌푸렸다.

“묘의당에 방금 현음초가 들어오긴 했지만 아쉽게도 저 손님이 방금 현음초를 사 가셨어요.”

말하며 직원이 이미 문밖으로 걸어 나간 여인의 뒷모습을 가리켰고 강동준은 황급히 그녀를 쫓아갔다.

이미 빨간 페라리 쪽으로 걸어간 여자를 강동준은 세 걸음 만에 따라잡았다.

“아가씨, 그 현음초 저한테 양보해 줄 수 있어요?”

용우희는 뒤돌아 배달원 옷을 입고 있는 강동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요!”

강동준은 초조했다.

“현음초 나한테 무척 중요해요.”

용우희도 목청을 높였다.

“나한테도 중요해요!”

그러면서 용우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빠의 건강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데 홧김에 평범한 사람이랑 싸울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에 용우희는 강동준과의 대화에 흥미를 잃고 차 문을 열며 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강동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이 현음초를 내게 양보한다면 당신 가족의 병은 내가 치료해 줄게요.”

홱 뒤돌아선 용우희는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런 장난 재밌어요?”

강동준은 당황했다.

“네?”

용우희의 시선은 강동준의 심장을 똑바로 꿰뚫을 기세였다.

“내가 용씨 가문 아가씨인 거 알고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끌고 싶은 거죠?”

강동준이 피식 웃었다.

“오해에요. 전 정말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현음초가 필요해요.”

용우희는 비웃음을 내뱉으며 차 문을 열었고 일부러 차 문을 쾅 닫으며 강동준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다.

강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번호판을 기억해 두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고 이유림의 전화인 것을 확인한 강동준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이유림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강동준의 귀에 들려왔다.

“이 쓰레기야, 2시 다 됐어. 나 지금 법원으로 가서 너 기다릴 테니까 울면서 무릎 꿇고 빌지 마. 떼를 써도 난 마음 약해지지 않을 거니까.”

이유림은 강동준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툭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에 강동준이 피식 웃었다.

“그 말 똑같게 돌려줄게. 떼를 써도 용서 안 해.”

강동준은 법원으로 향했고 도착하니 이미 이유림과 조명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오는 강동준을 바라보는 이유림의 눈에는 혐오감이 넘쳐흐르는 듯했다.

“시간 끄는 거 재밌어?”

조명훈은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죽기 살기로 이씨 가문에 붙어있는 거 아무 의미 없잖아. 강동준, 주제 파악 좀 해.”

이유림은 그 틈에 조명훈의 팔짱을 꼈다.

“명훈 씨에 비하면 넌 정말 쓰레기야.”

강동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사는 절대 나쁜 말을 하지 않지.”

이유림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패배자인 네가 어디서 감히 신사라고 해?”

조명훈은 강동준을 흘겨보았다.

“강동준, 내일 여사님 생신인데 거기서 여사님이 나와 유림 씨 결혼 발표할 거야. 당신이 와서 수준 차이가 얼마나 큰지 봤으면 좋겠는데?”

이유림이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병은 너 말고는 못 고친다고 하지 않았어? 명훈 씨가 이미 S시 명의 한병천을 불러서 할머니 병 치료해 줄 거야. 할머니 금방 나을 거고 네 거짓말이 다 드러날 거야. 이 개자식... 거짓말쟁이!”

강동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님 병은 한병천이 고칠 수 없어.”

조명훈과 이유림은 강동준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한병천은 명의라고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린 S시 유명한 의사다.

이 멍청한 녀석은 한병천을 얕잡아봤다고 그 사람에게 밉보여서 큰 코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엔진 굉음이 울리며 빨간 페라리 한 대가 법원 입구에 도착한 뒤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오는 정장 입은 여자를 보자 조명훈의 눈빛이 환해졌다.

수천억대 자산가인 천봉그룹 대표 전보민,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걸까?

곧이어 조명훈은 살가운 얼굴로 전보민에게 인사를 건넸다.

“전 대표님, 전 ZH그룹 조명훈입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조씨 가문의 자산은 천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지만 천봉그룹 앞에 나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보민과 인연이 닿으면 천해에서 조씨 가문의 위상은 분명 위로 한층 더 올라가 심지어 천해 제일 가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명훈이 이처럼 전보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잘 보일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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