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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노태연을 보자 이명천은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여기 왜 오셨어요?”

노태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안 오면 이씨 가문의 명성이 그놈 때문에 더럽혀질 거야.”

노태연을 뒤따르던 조명훈이 미소를 지었다.

“강동준이 쓰레기인 것도 모자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일 줄은 몰랐네요. 처제까지 건드리다니, 하늘이 노하실 일이네요.”

이명천의 눈이 번뜩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게 틀림없어.”

노태연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쏘아붙였다.

“아직도 그 새끼 편드는 거야?”

말을 하던 노태연이 쿨럭 기침하더니 갈수록 기침 소리가 격해졌다.

이유림이 노태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 나서야 노태연의 숨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녀는 분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일이 생겼으니 유림이는 강동준과 이혼해야 해. 이혼하고 바로 조명훈과 결혼시킬 거야.”

이유림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지만 이명천은 언성을 높였다.

“그건 안 돼요!”

조명훈이 조씨 가문의 장남으로 천해에서 발만 굴러도 땅이 흔들릴 법한 인물이지만 매우 비열한 성격을 가졌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다.

게다가 유명한 바람둥이에 극도로 변태적인 사람이라 아내가 전후로 세 명 있었는데 시달림을 견디지 못해 그중 두 명은 투신자살하고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유림이 조명훈과 결혼하는 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짓이었다.

조명훈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더니 차갑게 히죽 웃으며 노태연을 돌아보았다.

노태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씨 가문은 규모가 큰 집안이고 조명훈은 그 집안에 후계자야. 유림이가 조씨 가문에 들어가면 바로 사모님이 되어서 호사를 누릴 텐데 뭐가 문제야!”

이유설이 낮은 소리로 거들었다.

“아빠, 그 쓰레기보다 조명훈이 훨씬 나아요.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 셈이라고요. 아빠 고집 때문에 언니 행복을 망치는 건 안 되죠.”

이명천은 화가 나서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며 이유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노태연이 쓰러졌다.

이유설과 이유림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노태연을 부축했고 이명천은 발을 굴렀다.

“뭐 하고 있어, 얼른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천해 병원.

이씨 가문 일행은 노태연의 병상 앞에서 바삐 맴돌았고 이때 번듯하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조명훈 씨 오셨어요?”

이유설은 미소를 지으며 황급히 앞으로 다가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다름 아닌 조명훈이었다.

이유림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자 이명천은 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가문의 두 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조명훈의 눈빛이 탐욕스러웠다.

“유림 씨, 걱정하지 마요. 여사님을 위해 이미 유명한 의사를 불렀으니까요. 그 사람만 오면 여사님 꼭 치료할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유림은 고마운 눈빛으로 조명훈을 바라보았다.

조명훈은 그 쓰레기보다 백 배는 나은 사람이었다.

10년 넘게 이씨 가문을 짓눌렀던 문제를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자식은 조명훈에 비하면 쓰레기야. 그 쓰레기 같은 놈과 이혼한 게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어.’

노태연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표정은 단호했다.

“이혼해! 안 그러면 나 죽어서도 눈 못 감아!”

...

이씨 가문 저택을 나선 강동준은 불어오는 찬 바람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빠, 앞으로는 어른 없이 물놀이 하지 마, 위험할 수 있어.”

“오빠, 배고파? 여기 초콜릿 있어.”

“오빠, 엄마가 나 데리러 왔어, 나 돌아가야 해.”

“기억해. 말 안 듣는 어린이는 나쁜 어린이야.”

10년 전 강동준과 이유림이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해, 강동준의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변고가 찾아왔고 가족을 잃고 다 포기하려던 그때 그 소녀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렇게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강동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들리기 바쁘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저쪽에서 지극히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시키실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용승그룹 대표 사무실에서 용천우는 전화를 받고 자리에 똑바로 서 있었다.

마치 검열식에 서 있는 군인처럼.

비서는 이상한 표정으로 용천우를 바라보았다.

용천우는 천해에서 지하 세계의 왕이라 불리며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처신을 바로 하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용승 그룹을 설립하여 양지 사업을 시작했다.

‘누구 전화인데 저렇게 공손하게 받는 걸까, 혹시... 용도 사람?’

용천우의 공손한 목소리를 들으며 강동준이 말했다.

“강가로 와, 할 말이 있어.”

통화를 마친 강동준은 강가로 향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연결음 소리를 들으며 용천우가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자 비서가 서둘러 귀띔했다.

“시장님 지금 오시는 길인데요!”

시장은 오늘 용천우에게 넘겨줄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오는 길이었고 협상에 성공하면 용승그룹에 4천억의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용천우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시장님께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니까 이해해 달라고 전해.”

비서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무려 시장님인데!’

용천우가 아무리 대단하긴 해도 시장님에 앞에서는 아직 작은 존재인데 전화 한 통에 시장님을 뒤로하다니.

‘도대체 전화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강동준이 막 큰길에 들어섰을 때 빨간색 페라리가 질주하며 달려왔고 타이트한 정장 차림의 화끈한 몸매를 자랑하면서도 멋들어진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강동준에게 서둘러 달려갔다.

“선생님!”

강동준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소식 알아냈어?”

여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네... 네!”

강동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말해봐.”

“저희가 확인한 결과 그... 그해 선생님을 구한 사람은 지금의 이유림이 아니에요!”

강동준의 눈에 번뜩이는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된 거야?”

여자는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다.

“구체적인 건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을 시켜 당장 모든 정보를 보내라고 했으니 곧 도착할 거예요.”

강동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 도착하면 제일 먼저 나한테 보내.”

30분 후, 강동준은 강변에 도착했다.

잔잔한 강물과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강동준의 눈에는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10년 전, 집안의 원한으로 인해 강가에서 놀다가 누군가 그를 강물로 떠밀었고 이유림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익사할 뻔한 상황이었다.

천해를 떠난 그는 이방인을 만나 3년 동안 능력을 키웠고 5년 만에 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피비린내 나는 삶에 지쳐 자신을 구해준 이유림을 생각하며 천해로 돌아왔다.

단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이유림과 결혼해서 은혜를 갚기 위해 천해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정체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씨 가문 사람들이 무서워할까 봐 몰래 도와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씨 가문 사람들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고 야박하게 대할 줄이야!

탁한 공기를 뱉으며 강동준은 주머니에서 계약서 하나를 꺼냈다.

계약 금액은 1600억!

위에는 용승그룹의 도장은 물론 대표인 용천우의 친필사인까지 적혀 있었다.

종이를 들여다보는 강동준의 눈에는 조롱이 번뜩였다.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들린 종이가 허공에 날리는 종이 조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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