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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병원으로 가는 길에 강동준은 전보민의 전화를 받았다.

전보민은 협상 끝에 이유림을 VIP 병실에 보냈고 사람을 보내 이유림을 괴롭힌 두 사람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강동준은 알았다고 답하며 병원으로 돌아오자 전보민이 서둘러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요?”

강동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은 지었어.”

말하며 강동준은 병상으로 다가왔다.

“좀 어때?”

전보민이 작게 답했다.

“아직 안 깨어났어요.”

강동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깨어나서 다행이야. 아니면 이런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어.”

전보민은 이유림의 몸에 여전히 박혀있는 금침을 가리켰다.

“왜 침을 빼지 않았어요?”

강동준이 설명했다.

“침을 12시간 동안 놔둬야 효과가 극대화돼. 빼면 효과가 없어져.”

전보민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잘해주네요.”

강동준은 전보민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림의 얼굴에 감긴 붕대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강동준은 부용단을 물에 녹여 이유림의 얼굴에 발랐다.

이 과정에서 강동준은 더없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치료가 끝난 후 강동준은 전보민에게 생필품을 사라고 지시했다.

이유림이 이틀 더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 생필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명령을 받고 전보민이 나가자 강동준은 병원 침대 옆에 앉아 이유림을 지켜주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이유림의 속눈썹이 떨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기절 직전 장면이 번개처럼 이유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이유림은 공처럼 몸을 웅크렸다.

“하... 하지 마... 아악!”

강동준은 황급히 이유림의 손을 잡았다.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이유림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있다는 사실과 눈앞에 낯선 강동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이유림은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

“당... 당신 누구야?”

겁에 질린 토끼 같은 이유림을 바라보는 강동준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난 강동준이야. 기억 못 하겠지만... 10년 전 강가에서...”

어쩌면 그 사건이 이유림의 기억 속에서는 하찮고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는지 이유림은 반나절 동안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강동준의 부드러움에 마음을 열었는지 이유림이 소심하게 물었다.

“그... 당신이 날 구해준 사람이에요?”

강동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유림은 조금 긴장한 듯했다.

“당신... 이씨 가문의 여사님이 두렵지 않으세요?”

강동준은 멍하니 있다가 눈빛이 번뜩였다.

“노태연 짓이야?”

이유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강동준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는 거 다 말해.”

이유림의 눈에서 두려움이 번쩍였다.

“그해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시는 걸 옆에서 지켜봤어요. 그때 여사님이 나타나서 절 데려가게 하면서 난 떳떳한 존재가 아니니 날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내는 거라고, 엄마를 죽인 사람이 엄청 악랄하니 내 정체를 절대 밝히지 말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이 날 죽일 거라고요.”

강동준에게서 폭력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어떻게 그런 짓을!”

이유림은 다시 몸을 움츠렸다.

“당... 당신 너무 무서워요.”

그제야 강동준은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숨을 고르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 후엔 어떻게 된 거야?”

이유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평범한 가정에 가서 그 집 자식이 됐고 2년 후에 양아버지가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돌아가셨어요. 또 2년 후엔 양어머니도 흉악한 깡패들에게 강도를 당하고 세 번이나 칼에 찔려 돌아가셨어요.”

여기까지 말하던 이유림이 극도로 흥분했다.

“하지만 양아버지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이고 2년 동안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술에 취해 물에 빠져요! 양어머니가 강도를 만났을 때도 돈이 고작 몇천 원밖에 없었고 아무런 반항도 안 했는데 어떻게 칼에 찔려 죽어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불행이 다가왔어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들은 이유 없이 사고를 당했고, 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분에 맞기도 하고 달려오는 차에 치이기도 했어요. 다들 제가 불행을 가져온다며 저한테 가까이 오지 않았어요.”

강동준은 이유림이 겪었던 수많은 고통을 알고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이유림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다.

“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요.”

‘나한테 잘해준 사람들은 늘 사고를 당했어요.’

‘다들 내가 불행을 가져온대요.’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유림의 두 마디에 강동준의 가슴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진지한 얼굴로 이유림의 손을 잡은 강동준이 말했다.

“모든 불행은 다 지나갔어. 더 이상의 사고는 없을 거야.”

강동준의 크고 힘 있는 손에 이유림은 안정감을 느꼈다.

강동준이 다시 물었다.

“너를 해친 그 두 사람 누가 보냈는지 알아?”

이유림이 눈을 깜빡였다.

“여사님일 거예요.”

강동준의 눈이 번뜩였다.

“확실해?”

이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는 없지만 모든 단서가 여사님을 가리키고 있어요. 며칠 전에 여사님이 사람 좋은 척 저한테 오성산을 소개해 줬는데 저를 해치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성산을 멀리했어요. 엊그제 술에 취한 오성산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결혼 안 하면 내 얼굴을 망가뜨린다고 했는데 오늘 제가 납치를 당했어요.”

강동준의 두 눈이 붉게 물들며 이를 악물었다.

“노태연!”

이유림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망가져서 다행이에요, 성가신 일이 줄어들 테니까.”

이유림의 자조 섞인 말을 들은 강동준은 마음이 아팠다.

“유림아, 네 얼굴 망가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넌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야. 내가 너와 함께할게.”

“당신... 나랑 같이 있겠다고요?”

이유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강동준을 바라보았고 강동준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림의 눈동자에는 조롱이 번뜩였다.

“날 동정해요?”

강동준은 당황했고 이유림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림은 눈을 감았다.

많은 일을 겪은 이유림은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든 이유림이 찡그리기까지 하는 것을 본 강동준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날 믿어, 행복한 삶은 이제부터야.”

전보민은 생필품이 담긴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잔뜩 화가 난 전보민을 보며 강동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전보민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다 알아냈어요. 이유림 씨를 해친 사람 노태연이에요! 죽은 이유림 씨의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쓴 거예요, 이유림 씨가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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