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이 이런 상황에서도 시끄럽게 떠들자 강동준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다.하지만 이때 용천우가 나서서 제지했다.“강 선생님, 저 자식 형이 흑룡이에요!”흑룡은 신이 내린 살인자였다.H국의 수배자 랭킹 11위.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H국 군부의 포위와 공격 속에서 여러 번이나 도망쳤다.하지만 흑살이 흑룡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용천우는 과거 천해 지하 세계의 왕이었기에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강동준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상기시켜 주었다.강동준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흑살은 그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험상궂은 눈빛을 보냈다.“이 자식아, 겁먹어도 소용없어. 죽음의 나팔은 이미 울렸고 지옥에 떨어질 날만 기다려.”강동준은 한숨을 내쉬며 흑살의 귀에 속삭였다.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흑살의 눈에는 조롱이 가득 담겼다.그런데 강동준을 비웃기도 전에 강동준이 귓가에 속삭이는 말을 듣고 그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눈동자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한병천의 눈에서 섬광이 번쩍였다.그가 봤을 때 강동준은 흑살을 죽이지 않았다. 흑살은 스스로 겁에 질려 죽은 것이다.강동준이 흑살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그 무시무시한 흑살을 산 채로 겁에 질려 죽게 했을까.현장에는 죽음의 정적이 흘렀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동준을 마치 죽은 사람 보듯 쳐다봤다.저 멍청이가 흑룡의 동생을 죽였으니 이제 가는 날이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하지만 강동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조진국과 오석풍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조진국과 오석풍의 다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강동준의 시선이 마침내 오성산에게 멈췄다.“유림이가 직접 복수하길 바랐는데 네가 하도 간절히 죽음을 바라니까 들어줄 수밖에!”오성산은 괴성을 지르며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겁을 먹고 바지에 지린 것이다!강동준은 눈살을 찌푸렸고 두 눈에는 더욱더 경멸이 번쩍였다.자신은 이렇게 죽는 걸 무서워하면서 감히 납치에 협박 같
조명훈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강동준이 홱 뒤돌아 임연비를 노려보자 임연비는 충격에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강동준의 시선은 임연비를 지나 곧바로 노태연에게 향했다.“보름이 지나면 유림이 상처가 다 나을 거고 그때 내가 유림이를 데리고 와서 모든 걸 되찾을 테니 당신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노태연은 강동준에게 삿대질하며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할뿐더러 눈이 뒤집히더니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 강동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제야 용천우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배고픈데 음식 대접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약혼식이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난리 통에 강동준은 쌀 한 톨 삼키지 못했다.용천우는 정중한 얼굴로 옆으로 비켜서며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했고 강동준이 앞장서 걸어가자 한병천과 용천우가 그 뒤를 따랐다.평소 이 모습을 봤다면 모두가 강동준이 너무 거만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젠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용우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를 악물고 재빨리 그들을 쫓아갔다. 강동준과 용천우 일행이 떠난 뒤 손님들도 상당수 자리를 떠나고 조명훈은 빠르게 임연비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망할 년, 네가 날 망쳤어!”임연비가 무릎을 꿇었다.“명훈 씨,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무슨 짓을 해서든 당신 병 고쳐줄 의사 찾아올게요!”조명훈은 임연비를 바닥으로 걷어차고 발로 몇 번 짓밟기까지 했다. 몸의 고통으로는 마음속의 절망과 후회가 조금도 감춰지지 않았다.강동준이야말로 난놈인데 그것도 모르고 강동준과 이혼하겠다고 설쳐댔다.‘내가 눈이 멀었지, 내가 눈이 멀었어!’이씨 집안 사람들의 응급조치에 힘겹게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노태연은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강동준, 보름 후에 이유림을 데리고 와서 모든 걸 되찾겠다고? 절대 네 마음대로 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 LS그룹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이씨 집안을
강동준과 용천우는 잔을 부딪쳤고 한병천도 강동준을 위해 건배했다.곧 용천우와 한병천의 뜨거운 시선이 용우희에게 향했고 당연히 용우희도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눈빛에 망설임이 보였다.강동준이 보여준 전투력은 태어나서 평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게다가 약혼식에서 강동준은 노태연과 임연비뿐만 아니라 조명훈의 병까지 지적했다.‘혹시 내 판단이 틀렸던 걸까. 강동준은 무식한 게 아니라 정말 한병천도 우러러보는 신의인 건가? 아니야, 아니야. 싸움을 잘한다고 해서 병을 잘 고치는 건 아니지.’이 자식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병을 고쳐주는 걸 핑계로 헛수작 부리는 것이었다.이런 생각을 하며 용우희는 마지못해 술잔을 들었다.“사기... 강동준 씨, 건배 한 번 하시죠. 하지만 난 여전히 나한테 아무런 병도 없다고 생각해요.”강동준이 말하기도 전에 용우희는 오만하게 와인 한 잔을 다 비웠다.보다 못한 용천우가 나섰다.“우희야, 왜 그렇게 철이 없어? 내 병이 가짜인 것 같아? 강 선생님 실력이 연기인 줄 알아? 얼른 강 선생님께 사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용돈 없어.”용천우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본 용우희가 마지못해 사과하자 용천우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강 선생님, 제 동생이 철이 없어요. 저 성격 좀 제대로 고쳐주시면 그럴듯하게 내조하는 현모양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용우희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오빠는 지금 나보고 이 사기꾼이랑 결혼하라는 거야? 세상에 오빠, 대체 이 사기꾼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동생을 불구덩이에 집어 던지려는 거야!’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에 용우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사기꾼이랑은 때려죽여도 결혼 안 해!”거의 동시에 강동준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용 대표,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우린 그냥 친구로 지내지.”용우희는 씩씩 거친 숨을 내쉬었다.‘무슨 뜻이야, 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면서... 꼭 내가 부족한 것처럼 얘기하네? 우리 오빠가 굳이 날 시집보내겠다고
용우희의 두 눈이 의아하게 번뜩이며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눈썹과 뺨에 서리가 내린 것을 본 용우희는 당황했다. 아무리 의학을 몰라도 용우희는 이것이 결코 자궁 질병과 연관된 증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구음절맥이었던 것이다! 용천우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나한텐 동생인 너밖에 없어. 너까지 없으면 난 이제 혼자라고! 우희야, 제발. 얼른 강 선생님께 살려달라고 해! 제발 부탁할게!”용우희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강... 강동준 씨, 제발 나 좀 살려주세요.”강동준이 피식 웃었다.“당신이 부탁한다고 내가 꼭 들어줘야 하나?”용우희는 당황했다. 몸에 느껴지는 냉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이빨마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용우희는 자신이 이대로 곧 얼어 죽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순간 강동준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강동준은 전부터 그녀에게 구음절맥이 있다고 계속 강조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동준을 비열하고 뻔뻔하고 고약한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어떤 인간도 그런 모욕은 견딜 수 없겠지. 탓하려거든 대단하신 분을 못 알아본 자신을 원망해야 할 것이다.이런 생각에 용우희는 그대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강동준의 표정이 확 변하며 재빨리 용우희의 몸 몇 곳을 짚었다.방금 그렇게 말했던 건 아직 버티고 있는 용우희에게 교훈을 주고 싶어서였는데 구음절맥이 이렇게 빨리 발작할 줄 몰랐다.용천우와 한병천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동준은 용우희를 안아 들었다.“위층 손님방으로 가지!”용천우와 한병천은 허둥지둥 강동준을 따라 5층으로 올라갔다. 강동준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발로 방문을 뻥 차서 열었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용우희를 안고 들어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강동준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나 대신 주변 좀 지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용우희를 침대에 눕히고 이미 얼어붙은 용우희를 바라보던 강동준은 비장한 얼굴로 금침을 꺼냈다. 이를 악문 그가 용우희의
1분 안에 체내의 한기를 없애지 못하면 그도 좀비처럼 얼어버리고 만다.다행히도 신은 강동준의 손을 들어주었고 약 20초 정도 지나자 용우희의 몸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갈수록 약해지며 희미한 온기가 한기와 뒤섞여 나왔다.마른나무가 봄을 맞이하듯 음의 기운을 몰아내고 양의 기운이 들어온 것이다.이는 구음절맥이 제대로 치료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강동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용우희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지금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큰일 날 수 있었다.용우희의 몸은 점점 더 따뜻해졌고 몸에 형성된 얇은 얼음층은 물방울로 변해 침대에 떨어졌다.서서히 긴장하던 몸이 풀리자 강동준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어쨌든 용우희와 빈틈없이 맞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게다가 용우희는 보기 드문 미녀였기에 남자로서 반응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그때 눈을 번쩍 뜬 용우희는 자신을 덮치고 있는 강동준을 보고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강동준이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미처 해명하기도 전에 용우희의 발에 걷어차여 저 멀리 나동그라졌다.용우희는 살벌한 표정으로 펄쩍 뛰었다.“죽여버릴 거야.”강동준은 화가 나면서도 씁쓸했다.“널 치료해 준 거야. 안 그랬으면 넌 얼어 죽었을 거야.”강동준에게 다가가려던 용우희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조금 전 혼수상태였지만 아무 감각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몸은 마치 얼음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았고 정신은 점점 더 흐려졌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몸으로 밀려 들어오는 온기에 간신히 의지해 버텼다.‘설마 강동준이 본인 몸으로 온기를 전해 준 건가?’강동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구음절맥이 다 나았어. 못 믿겠다면 한번 느껴봐. 자궁의 차가운 느낌은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 거야.”후천 1급에 불과했지만 용우희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2초 후 용우희의 눈에는 기쁨의 빛이 반짝였다.강동준의 말대로 자궁 안에 있던 냉기가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
강동준은 용우희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방을 나갔다.용우희는 한동안 숨을 헐떡이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밖으로 나갔다.복도에 한병천과 용천우만 서 있는 것을 보고 용우희는 안도했다.‘드디어 그 망할 놈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강동준이 서둘러 천해 호텔을 떠난 이유도 용우희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호텔을 나서자마자 강동준은 이명천의 전화를 받았다.이명천은 강동준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서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강동준은 이명천이 이유림에 관해 얘기할 거라 짐작하며 또한 이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이 그였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는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이명천과 마주했다.거듭된 충격 탓인지 망연자실한 듯 이명천은 초췌한 모습이었다.강동준이 자리에 앉은 뒤 이명천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 며칠 동안 유림이를 만나러 가야 하나 계속 고민했어.”이유림이야말로 이명천의 친딸이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밖에서 떠돌아다니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당연히 이명천은 이유림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차마 그녀를 만날지 말지 고민했다.강동준도 그런 이명천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한숨을 쉬었다.“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만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그동안 억압된 삶에 이유림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데다 얼굴까지 다쳐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려면 감정 기복이 심해서는 안 된다.만약 이유림이 이명천을 만나게 되면 분명 슬퍼할 거고 이는 강동준이 가장 원치 않는 것이기도 했다.이명천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겠네.”그러면서 이명천은 강동준의 손을 잡았다.“동준아, 난 이씨 집안에서 지내는 동안 너한테 잘못한 것 없다. 그동안 우리 유림이 좀 잘 부탁하마.”강동준이 웃으며 말했다.“말씀 안 하셔도 유림이 잘 챙길 거예요.”이명천은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눈에는 더욱 결연한 의지가 번뜩였다.강동준은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가 이유림을 돌봐주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로서 이유
이명천은 깜짝 놀랐다.“어머니, 괜찮으세요?”노태연은 악에 받쳐 이명천을 노려보았다.“언젠가 너 때문에 내가 화병으로 죽을 거다. 꺼져!”이명천은 노태연의 상태가 더 악화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문밖으로 사라지는 이명천을 바라보던 노태연은 가슴과 복부 사이에서 솟구치는 피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커먼 피를 한입에 뱉어냈다.그녀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병이 점점 심해지고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네.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 정말 그 쓰레기한테 빌어야 하나?”노태연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해결책과 명의를 찾아다녔는지 모른다.하지만 어떤 의사도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없었다.오늘 약혼식에서 강동준이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꼈다.자신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강동준일지도 모른다고!하지만 그녀와 강동준이 이미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녀가 강동준에게 애원해도 그가 받아줄까?창가에서 가만히 서 있던 임연비는 노태연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두 눈에 분노가 번뜩였다.임연비 때문에 병에 걸린 조명훈은 그녀를 증오하며 약혼식에서 때려죽일 뻔했으니 결혼은 물거품이 되었다.임연비는 이번 일로 이씨 집안에서 자신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노태연의 곁으로 가서 아부하며 자신의 입지를 지킬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려던 찰나 우연히 노태연과 이명천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이명천은 노태연의 친아들이다. 이번에는 거절했지만 다음번에는?게다가 노태연은 지금 마음이 흔들려서 강동준에게 병 치료를 부탁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노태연이 LS그룹과 강동준의 용서를 맞바꿀까?‘아니, 내 운명은 내 손에 달렸어.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지금 유일한 방법은 강동준에게 애원하는 것뿐이다.그래도 3년 동안 같이 살았던 부부의 정이 있는데 자기가 먼저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강동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눈앞의 난관에 대한 해결책을
사람들의 말을 듣던 강동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걸어갔다.어린 소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것처럼 애절한 얼굴로 강동준을 바라보았다.“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강동준은 쭈그리고 앉아 노인의 눈꺼풀을 들어서 살펴보았다.뇌출혈, 한의학에서는 귀경풍이라고도 불렸다.노인은 이미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고 당장 구하지 않으면 이대로 죽는다.어린 소녀에게 설명할 시간도 없이 강동준은 들고 있던 금침을 꺼냈다.금침 도겁지술을 발동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의 머리 주위에 있던 은혈 열다섯 군데가 강동준에 의해 뚫렸다.강동준이 침 끝을 부드럽게 비틀며 노인의 몸에 미세한 현황 진기 한 가닥을 주입했다.노인의 얼굴이 회색에서 흰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핏기가 도는 것을 보고 강동준은 노인이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금침을 빼낸 강동준은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지금은 괜찮지만 얼른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소녀는 닭이 모이를 쪼아 먹듯 고개를 끄덕였다.강동준이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은도연이 다급히 붙잡았다.“선생님, 잠깐만요.”강동준은 뒤돌아보며 물었다.“더 할 말이라도?”은도연이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를 구해주셨으니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돈을 많이 못 챙겼어요. 주소만 알려주시면 내일 사람 보내서 갚을게요.”말하는 은도연의 얼굴에서 오만함이 어렴풋이 드러났다.천해 제일의 가문인 은씨 가문, 시장도 감히 이런 은씨 가문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오늘 할아버가 산책을 하고 싶다기에 따라 나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은씨 가문은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는다. 강동준이 할아버지를 구해줬으니 사례금으로 최소 20억 이상은 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만한 돈이 없으니 일단 주소부터 물어볼 수밖에.내일 강동준의 계좌에 20억이 입금되면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 어떤 건지 알게 될 것이다.강동준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돈을 바라고 구한 건 아닙니다. 얼른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