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것은 이 소리가 왕진석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그는 지체없이 풀밭으로 뛰어들었다.그는 다른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크지도 작지도 않은 신장에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평범한 체구였다.하지만 그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왕진석은 빨간 팬티 바람에 입이 부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아저씨, 좀 어떻게 해 봐.”왕진석이 외쳤다.그의 발음은 다소 새는 느낌이 있어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방금 전, 그가 재미를 보려는데 갑자기 돌덩이가 날아와 그의 입을 가격했고 그 바람에 이빨 두 대가 부러졌던 것이다.그리고 이 자식이 나타났다.“우리 도련님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 것 같은데 왜 해치는 거예요?”장명이 물었다.장명은 즉시 움직이지 않고 탐색해 보았다.하지만 임지환은 대꾸도 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왕진석을 바라볼 뿐이었다.무서운 살기로 가득한 기운이 그를 에워쌌다.이상함을 느낀 장명이 재빨리 도련님 앞을 막아섰다.“죽고 싶어 환장했어?”“내가 누군지 몰라?”“넌 오늘 무사히 돌아갈 생각 하지 마!”장명의 등장에 등을 빳빳이 세운 왕진석은 거만하게 말했다.“넌 죽어 마땅해!”임지환이 차갑게 선고했다.“강한시에서 감히 이런 식으로 나에게 말해?”“젠장! 내가 누군지 알면 큰일나!”“아저씨, 저놈을 처리해.”왕진석은 장명에게 지시했지만, 그는 곤란해 보였다.여기는 모두 부자거나 귀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 실수하면 어르신께 비난받을 것이 분명했다.“아저씨,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때려!”“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왕진석은 뚫린 입으로 잘도 나불거렸다.장명은 끝내 결심했다.도련님이 이 모양으로 다쳤는데 먼저 보호하는 것이 시급하다.징계를 받는다 해도 가벼우면 비난일 것이고 아니면 직장을 잃은 것밖에 더 되겠는가!장명이 한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우리 도련님을 공격했으니, 제가 너무하다고 탓하진 말아 주세요.”“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거야! 아저씨! 빨리 쳐!”임지
장명과 같은 강자는 한주먹으로 돌바위를 깨뜨릴 수 있었다.임지환은 자신의 오만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받아라!”장명의 외침 소리와 함께 주먹이 임지환의 갈비뼈로 향했다.이 주먹 한 번이면 임지환의 갈비뼈가 산산조각 날 것이고 중하면 죽음에 이를 것이다.장명의 주먹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임지환의 오만했던 태도를 탓해야 할 것이다!허나 임지환은 여전히 같은 동작을 유지하며 무심하게 손짓했다.“퍽!”장명의 주먹이 명중당하자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났다.그는 갑자기 기차에 부딪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풀썩!”먼지가 일고 장명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그 광경을 본 왕진석은 눈알이 튀어나 올 지경이었다.잘못 본 건 아니지?호위무사인 장명은 비록 아버지 옆을 지키는 정부처보다는 강하지 못했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전에 왕진석이 그 지역 두목의 여자를 건드려 화가 난 두목이 수십 명의 아우들을 데리고 쳐들어온 적 있었다. 그때 장명이 홀로 순식간에 제압하며 두목까지 두려움에 벌벌 떨게 했고 여자를 왕진석에게 양보했었다.하지만... 임지환은 손 한번 까딱여 고수 장명을 쓰러뜨렸다.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하단 말인가?임지환은 바닥에 쓰러진 장명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왕진석만 뚫어지게 볼 뿐이다.그는 피 비릿한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왕진석의 행동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하여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큰 보폭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대에 왕진석은 혼비백산해 내빼기 시작했다.그는 바르지 못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장명도 상대할 수 없는 놈이니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도망을 가?”임지환이 무심하게 발길질했다.“휙-”돌멩이 하나가 상대의 종아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왕진석은 넘어졌다.재빨리 다가간 임지환은 그의 목을 졸랐고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다.“이거 놔!”“내가 누군지 몰라!”“나는 강한시 왕씨 가문의 왕진석이라고!”왕진석
그때 왕진석은 이미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이청월은 깜짝 놀라 임지환을 손을 붙잡았다.“만약 그가 죽으면 배씨 가문이 왕씨 가문의 보복을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럼, 배지수는 어떻게 해요?”이청월은 다급하게 권고했다.“목숨 건진 줄 알아.”임지환은 그제야 왕진석을 아무렇지 않게 옆에 던져버렸다.“켁켁켁...”목숨 건진 왕진석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정신을 차린 그가 이청월을 보더니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그런 거였어? 이청월. 네가 이놈이랑 짜고 나를 괴롭힌 거네?”“나중에 너의 아버지께 다 이를 거야!”“두고 봐!”이청월은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저승에 있을 몸이었다.그런데도 고마운 줄 모르고 날뛰고 있다.“왜? 이제야 좀 겁나나 보지?”왕진석은 의기양양해서 도발했다.임지환은 그의 말을 잠시도 듣고 싶지 않아서 손목 한번 튕겼다.“휙!”바람이 일었다.갑자기 왕진석은 바닥에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고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눈썹사이에는 은침이 흔들이고 있었다.“그를 죽인 건 아니죠?”이청월은 혼비백산했다.“그저 조금 얌전하게 있게 했을 뿐이에요.”임지환은 어깨를 으쓱였다.그제야 이청월은 한시름 놓았다.그녀는 임지환이 홧김에 저 자식을 죽여버리기라도 했을까봐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왕직선에게 다가간 임지환은 그의 복부에 빠르게 몇 대 더 놓았다.“뭐 하는 거예요?”이청월이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보았다.“죽을죄는 면했으나 용서할 수는 없죠.”“남은 생엔 제구실을 못 할 거예요.”임지환은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이청월은 두피까지 마비되는 것 같았다.이런 고문은 차라리 죽이는 것보다 더 무자비한 것 같다.그녀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이 사람을 괴롭히느니 차라리 염라대왕을 괴롭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임지환은 배지수의 곁으로 다가가 가볍게 그녀를 들어 올리고 숲을 빠져나갔다.배지수의 눈썹이 움직였다. 살짝 깬 듯했다.몽롱한 상태
“그와 결혼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이청월은 운전하면서 끊임없이 왕진석을 씹었다.“질이 좋아 보이진 않더군요.”임지환도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저지른 행동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셈인가요?”이청월은 걱정스레 물었다.“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도 가만히 있었겠죠.”“하지만 내 기분을 어지럽혔다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죠.”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느긋하게 말하고 있었다.그런 그를 힐끔 보던 이청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보아하니 왕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모양이다....이씨 가문의 저택, 손님 접대일.“스너프 장인 서귀의 유작 ‘대산하’, 시장가치 500억!”“빛의 사원의 다지 스님이 직접 개안한 해황 옥 한 줄, 시장가치 700억!”“장대천의 명화 ‘숲의 층’, 시장가치 1,100억!”“헬지 별장 3채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아파트 8채, 총 가경은 8천억!”“자인 그룹 주식 10억 주, 시장가치 1조!”“...”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소개하고 있었다.그의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선물이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다.이것들은 왕씨 가문에서 보내온 청혼 선물이었다.“아는 사이에 뭘 이렇게 큰 선물을 준비하셨나요?”이성봉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그의 맞은편에는 후덕한 몸매에 호랑이 눈매와 짙은 눈썹을 가진 중년 남자가 앉아있었다.그가 바로 왕씨 가문의 왕상의였다.그의 옆에는 수염이 없는 하얀 얼굴, 눈썹이 거의 없는 대머리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눈을 감고 손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그래도 청혼은 성대하게 해야죠.”“특히 이씨 가문이라면 당연히 최고급으로 준비해야지 않겠어요?”왕상의는 호탕하게 웃었다.이 혼사를 위해 그는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문학, 그림, 주식과 부동산까지 합치면 총액이 2조를 넘었다.상대는 갑부 이씨 가문이어서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씨 집안의 딸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돈 걱정할 이유가 없다.“별말
손님을 본 이성봉은 흥분한 나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임 명의님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이성봉은 버선발로 나아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눈살을 찌푸린 왕상의는 임지환을 흘겨보았다.이 젊은이는 누구인가?”이성봉이 직접 일어서서 맞이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가?”그가 방금 여기에 왔을 때도 이성봉은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다.“이분은?”왕상의가 물었다.이성봉이 대답하기 전에 임지환이 선수 쳤다.“당신이 혼담을 꺼내러 온 사람인가요?”“그래요.”무례한 젊은이의 행동에 왕상의는 기분이 상했다.하지만 집주인의 체면을 봐서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네요.”임지환은 마치 아래 사람을 대하듯이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얼굴이 일그러진 왕상의는 약간 거친 어조로 말했다.옆에서 손을 늘어뜨린 채 잠자코 있던 남자도 눈을 떴다.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어디서 막되 먹은 자식이 감히 주인님에게 버릇없게 대하고 있는가!“내 말은... 꺼지라고!”담담하게 뱉는 말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꺼져?!입이 떡 벌어진 이청월은 임지환의 말투가 그렇게 거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상대는 그 대단한 왕씨 가문의 가주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꺼지란 말을!이성봉은 깜짝 놀랐다.혹시... 두 사람 사이에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탁-”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왕상의는 분노했다.“넌 누군데 나보고 꺼지라 마라야!”보아하니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진정해요. 내가 소개할게요.”“이분은 의술이 뛰어나 내 아버지를 살린 분이에요.”“우리 이씨 가문의 은인이죠.”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이성봉은 급히 해명했다.“아무리 그래도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되나요?”“어린 것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죽였을 거예요.”왕상의는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왕씨 가문의 수장으로써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아보았지, 이런 하대는 처음이었다.어떻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진정해요.”“분명히 오
이청월은 마치 사랑에 흠뻑 빠진 소녀 같았다.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에도 불구하고 임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을 총알받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너...”이성봉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딸이 이렇게 대담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풍속을 문란케 했다.게다가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그런 사이였단 말인가?“탁!”왕상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찻잔을 깨뜨렸다.“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할 거예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상의는 공격적인 말투였다.혼담을 꺼내려는데 미래의 며느리가 딴 놈이랑 얽혀서 낯 뜨거운 행동을 하고 있다.이건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진정해요.”“우리 청월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뭔가 오해가 있을 거예요.”이성봉은 멎쩍은 미소를 지으며 거듭 해명했다.“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그런 말을 하시나요?”“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는 거였어요?”“혼인을 빌미로 나를 끌어들여 망신 주는 건가요?”“이것이 파혼이 아니면 뭐죠?”왕상의는 얼굴까지 벌게지며 씩씩거렸다.“오해에요. 난 정말 몰랐어요.”“그리고 이씨 가문은 파혼 같은 건 하지 않아요.”이성봉은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왕상의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면 두 가문의 연은 철저히 끊길 것이다.왕씨 가문의 재력이 이씨 가문보다는 떨어지긴 했지만, 종합실력은 한 수 위였다.왕씨 가문의 많은 사람들은 정계에 진출했고 모두 거물이 되었다.거기에 강한시 지하 세계의 왕, 노천호는 왕상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진정한 의미의 흑과 백!시장인 홍진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왕상의다.“반드시 합당한 설명을 해야 할 거예요.”“이 일이 알려지면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냔 말이에요.”“우리 왕씨 가문은 체면을 그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가문이에요.”기세등등한 왕상의는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난, 난...”이성봉은 입만 뻥긋거릴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차피 이 지경까지 된 이상, 그녀는 아예 손을 떼버리기로 했다."이청월, 너 정신 차려!"이성봉은 화가 난 나머지 이청월의 얼굴을 때렸다.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린 갑작스런 따귀에 이성봉은 당황했다.20여 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이청월을 때려본적이 없었고, 여태 애지중지해왔다. 하지만, 오늘 뺨을 때리게 될 줄은 몰랐다!사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었다!이청월은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그리고는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원망스러웠다!!그러나 이성봉이 다시금 따귀를 때리기 직전, 누군가가 그를 말렸다."지환 씨가 왜 여기에..."이성봉은 놀란 표정으로 임지환을 바라보았다."그만하시죠, 청월이 말이 다 맞아요.""결혼에도 자유가 필요해요. 당사자가 시집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되는건데 왜 억지로 보내려고 강요하는데요?""딸의 행복이 저 왕씨 집안보다도 더 중요한거 아니에요?” 임지환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이성봉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너 그게 무슨 말이야?""네가 보기엔 우리 왕씨 집안이 그렇게 형편 없는줄 알아?"옆에서 듣고 있던 왕상의는 살의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틀린 말 아니잖아.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임지환은 콧방귀를 뀌었다."허, 그래. 이게 바로 너희 이씨 집안의 뜻인거지?""내가 똑똑히 기억해두겠어.”"나중에 우리가 이씨 집안의 혼약을 망쳐도 우리한테 뭐라 하지 마, 알겠어?” "가자, 얘들아!"왕상의는 단호하게 한마디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형님, 그러지 마세요."“이번 일은 저희끼리 천천히 얘기해요.”이때 이성봉이 얼른 나가 말렸다.그러나 이미 분노가 극에 다다른 왕상의는 이성봉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바로 그 순간,"왜 이렇게 시끄러워?"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왔다.보기에는 초라했지만 누구보다도 정정했고 흰 머리까지 정갈하게 빗어놓았다. 그는 바로 금방 병을 이겨내고
"저희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때 지킨 약속은 유효한거죠?” 왕상의는 이장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 혼사를 정한건 무려 18년 전이지만 나야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비록 자네의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이 약속을 함부로 어길 수는 없지.”이장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가 오늘 이렇게 많은 선물을 들고 여기로 온건 혼인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어요.” “그런데 당사자들이 오히려 후회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싶어요...” "저희 왕씨 집안이 그렇게 만만해보이던가요?” 왕상의는 가슴 아픈 말을 내뱉으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어? 뭐라고?"노인의 시선은 이성봉과 이청월에게로 쏠렸다.이성봉은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는 차마 아버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이청월 또한 입을 앙 다물고는 창백한 얼굴을 보였다."이런 황당한 일을 겪게 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네.""하지만 자네는 안심하게.""이 혼사는 무조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테니까.” 이장호는 또박또박 약속을 했다."그래요, 저희는 절대 뱉은 말을 다시 어기지 않아요.”"그러니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이성강 또한 옆에서 왕상의를 달래주었다.그제서야 왕상의의 눈동자에서는 다시금 기쁨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이장호가 장담까지 한 이상 이 일은 더이상 변수가 없을 것 같았다."역시나 할아버님이 이렇게 말해주셔야 안심이 되네요.”왕상의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장사를 하든, 사람을 만나든 성실이 가장 중요한거야.” "이것이 여태 우리 이씨 집안을 먹여살린 근본이야.”곧이어 이장호는 고개를 돌려 이성봉 부녀를 바라보았다.“너희들은 요 며칠 어디에도 가지 말고 스스로 잘 반성해.”"우리 가훈을 10번씩 베껴서 달달 외우도록 해!"이 벌은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무거운 편이었다."예, 아버지!""예, 할아버지!"두 부녀는 감히 조금도 반항하지를 못했다."다시 한번 이번 일에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