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내가 뭐 널 잡아먹기라도 할 줄 알아? 난 그냥 너랑 같이 차 사러 가려고 하는 건데 네가 그렇게 싫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면 되지 뭐!”이청월은 임지환이 일부러 대답을 피하는 것을 보고 살짝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그럴 예정이라면... 내가 너랑 같이 가줄게.” 임지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청월은 임지환을 흘겨보며 하얗고 부드러운 목을 한껏 치켜들고 말했다. “아까는 수련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 개인적인 일 때문에 네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그럼 난 안 갈래. 내일 진운한테 같이 가자고 부탁해.” 임지환이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이 남자의 머리는 혹시 시멘트로 만든 걸까?이청월은 임지환의 철벽같은 대답에 화가 치밀어 올라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저는 별로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곁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진운은 화살이 자기한테 날아오자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견결한 태도로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형님의 시신을 집으로 보내고 할아버지께 이 일을 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그 말에 임지환은 시선을 다시 오양산에게 돌렸다.“저도 진 도련님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니까 시간을 짜낼 수 없어요.”오양산이 임지환의 의도를 눈치채고 재빠르게 말했다.“늦게 출발하면 되잖아. 그러면 시간 맞출 수 있어.”임지환이 웃을 듯 말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청월은 더 이상 이들의 서로 공을 넘기는 태도를 참을 수 없어 이를 악물고 으름장을 놓았다.“임지환, 내일 안 오면 넌 진짜 큰일 날 줄 알아!”이청월은 말을 마치고 화가 가득한 얼굴로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두 분, 웃고 싶으면 얼른 웃어요. 그렇게 참다가는 병이라도 나겠네요.”임지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유유하게 말했다.“임 진인, 당신 같은 무술 고수도 찍소리도 내지 못할 때가 있군요...”오양산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슬쩍 농담을 건넸다.진운은 한술 더
이청월은 그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임지환의 취향을 제대로 맞췄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이청월은 오늘 임지환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화장하며 꾸미느라 여념이 없었다.오피스룩, 아내 스타일, 선녀 스타일, 코스르레... 다양한 스타일을 한 번씩 시도한 끝에 결정한 게 로리타 스타일이었다.그런데 놀랍게도 임지환의 취향을 정확히 맞춘 것이었다.“난 단지 예쁜 여자가 좋을 뿐이야.”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취향을 부정했다.이 말을 들은 이청월의 얼굴에는 살짝 부끄러운 기색이 떠올랐고 이내 임지환을 흘겨보며 말했다. “작업 멘트 하나는 참 죽여주네.”어머, 오늘은 강철 같은 남자가 드디어 철이 드는 날인가?“차를 사러 가려던 거 아니었어? 얼른 출발해야지.” 임지환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른 볼 일 다 보고 돌아오자. 다시 수련해야 해.”“왜 그렇게 급해? 차 사는 게 무슨 채소 사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이것저것 따지면서 제대로 골라야지. 나랑 좀 더 시간을 보내기 그렇게 싫어?”이청월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 그런데 그런 투정과 로리타 스타일이 어울리자 너무 완벽했다.임지환은 이청월이 투덜대자 고개를 저으며 급히 부정했다. “그런 건 아니야. 난 그냥 일을 질질 끄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걱정 마. 이미 마음에 드는 차를 정해놨으니까. 네가 나랑 가주는 건 그냥 형식적인 절차를 한번 거치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이청월은 임지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이청월은 진운의 벤츠 S60을 운전해 임지환을 데리고 자동차 상가로 갔다.진운의 거의 20억 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는 이미 지난번 총격전에서 볼품없이 망가졌고 이 S60은 단지 그의 일상용 차량일 뿐이었다.자동차 상가에 들어서자 이청월은 바로 포르쉐 서비스 센터로 향했다.차를 주차한 후, 이청월은 자연스럽게 임지환과 팔짱을 끼고 함께 매장으로 들어갔다.“손님, 어서 오세요! 차를 보러 오셨나요?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깔끔한 정장을
“근데 왜 굳이 여자를 찾아야 해? 내가 뭐 질투라도 할까 봐 그래?”임지환은 이청월의 민감한 반응을 몹시 궁금해했다.“저 사람이 널 보는 눈빛이 참으로 불쾌하단 말이야. 분명 널 내가 데리고 노는 기둥서방으로 보고 있었을 거야.” 이청월은 주먹을 치켜들며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난 이런 속물들을 정말 싫어해. 게다가 방금 널 일부러 나한테서 떼어놓으려 했잖아. 의도가 너무 불순해 보여.”“그렇구나.”임지환은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이 평소에 항상 낮은 자세로 행동해 왔기 때문에 아까 판매원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이런 이청월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임지환,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어?”두 사람이 한담을 주고받을 때 갑자기 2층에서 뭔가 크게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환이 고개를 들어보니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얼굴이 이쁘장한 여자가 계단을 내려오며 임지환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뛰어오는 속도가 꽤 빠르다 보니 여자의 가슴이 눈에 띄게 출렁거렸다.“고미나?”오랜 친구를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만난 임지환은 약간 놀랐다.“난 네가 지수를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씨 가문 아가씨와 가까워지더니 지수를 깡그리 잊어버렸구나. 그래, 뭐... 새사람이 생기면 옛사람은 자연스레 잊히는 법이지. 세상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남자들은 다 똑같아!”고미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실망과 서운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임지환이 배지수를 무정하게 버리고 떠난 줄 알 것 같은 말이었다.“고미나 씨 맞죠? 난 당신과 배지수의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방금 하신 말씀은 사실과 많이 다르네요. 좀 너무한 것 같지 않나요? 임지환과 배지수는 이미 이혼했어요. 임지환이 누구와 함께 있든 그건 임지환의 자유고요. 이혼했다고 해서 다시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이청월은 고미나의 말에 몹시 불쾌해하며 쉬지 않고 질타를 쏟아냈다.자기 남자가
쓱...순식간에 홀에서 차를 보러 온 손님들과 매장 직원들이 전부 임지환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공기 중에는 남의 사적인 일에 흥미진진해하는 기운이 감돌았다.“차를 사러 왔다가 이런 재미있는 광경을 보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세 여자만 모이면 드라마가 된다는데 오늘 이 드라마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아.”“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지옥의 현장인가? 내가 저 남자라면 벌써 여자를 내버려두고 도망갔을 거야.”구경꾼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배지수를 보자마자 이청월은 화를 내기는커녕 먼저 주동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지수 씨, 잘 지냈어요?”“이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신 거죠?”배지수는 이청월을 보고는 잠시 멍했지만 여전히 습관적으로 이청월을 ‘이 대표’라 불렀다.“회사는 이제 지수 씨에게 돌려드렸잖아요. 난 더 이상 지수 씨의 상사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굳이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이청월은 미소를 지으며 넓은 기량을 보였다.“이 대표님, 그룹을 저에게 넘긴 건 당신 뜻인가요, 아니면...”배지수는 복잡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임지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사람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건가요?”“그렇게 말할 수 있죠. 임지환이 선뜻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큰 회사를 지수 씨에게 전부 넘기지 않았을 거예요. 회사 경영은 필경 자선 사업이 아니니까요.”이청월은 잔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임지환의 팔짱을 끼며 친밀한 행동을 보였다.“잠깐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하나도 이해가 안 되네.”고미나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를 보며 참지 못하고 질문을 꺼냈다.“지수야, 네가 회사의 지배권을 되찾았다고 했잖아. 설마 그중에 임지환의 공이 있단 말이야?”“믿기 어렵지만, 청월 씨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인 것 같아요.”배지수는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고 이어서 말했다. “임지환, 이 은혜는 평생 간직하고 살게. 기회가 되면 꼭 보
배지수는 그 말에 진심을 담아 이청월에게 대신 사과했다.“됐어요. 저딴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갈 필요 없어요.”이청월은 한숨을 쉬며 배지수의 사과에도 별로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누나, 우리도 이젠 억만장자잖아. 왜 굳이 저 사람한테 고개 숙여야 해? 저 여자는 기껏해야 태생이 좋은 것뿐이잖아. 이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없다면 별 볼 일 없는 계집이잖아.”배준영은 누나가 사과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청월을 비웃으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배지수가 경성 그룹의 실제 지배권을 되찾은 이후로 배준영은 눈에 뵈는 게 없이 거만해졌다. 누나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으니 이제 배준영은 누구에게도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자신했다.“준영아, 그만 닥치지 못해? 이씨 가문을 건드리면 우리가 어떤 큰 문제에 직면할 건지 알기나 해?”배지수는 참다못해 큰소리로 호통쳤다. 그녀도 자기 동생이 이 정도로 입이 가볍고 무모한 사람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배지수가 지금 이룬 성과는 누가 봐도 눈부셔 보였지만 이 모든 건 전적으로 이청월이 주식을 기꺼이 넘겨준 덕분이었다. 게다가... 현재 이씨 가문은 DCM 그룹으로부터 거의 2조 정도의 투자를 받은 상태였다. 이씨 가문 아가씨 이청월의 입장에서 볼 때 배지수의 막대해 보이는 재산은 사실 웃음거리에 불과했다.“너 이 자식, 또 오랜만에 매를 버는구나.”임지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배준영 쪽으로 다가갔다.“누나, 살려줘!”배준영은 임지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지라 그가 자기를 정말 때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빤히 알고 있었다.그래서 임지환의 행동을 보자 바로 누나 뒤로 숨었다.“임지환, 내 체면을 봐서라도 준영이 한 말은 그냥 무시해.”배지수는 동생을 뒤로 보호하며 마지못해 임지환에게 부탁했다.“나에 대한 개소리는 용서할 수 있어도 청월에게 한 개소리는 용서 못 해. 얼른 청월에게 사과해.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닌 성인이잖아. 자기가 내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지.”임지환은
배준영은 비열하게 웃으며 거들먹거렸다.으뜸가는 갑부 딸의 차를 뺏어올 수 있다니 그 기분이 짜릿하기 그지없었다.“오 이사, 이게 무슨 일이죠?”이청월은 배준영의 말에 화가 나서 오진영과 따졌다. “차를 나한테 남겨주기로 약속하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죠?”“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연히 내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이죠.”배준영은 얼굴에 희열이 가득한 채 계속 이청월을 약 올렸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내 6억 원짜리 거래를 놓칠 리 없잖아요?”“응? 우리가 방금 얘기한 가격은 4억 원이 아니었나? 왜 2억 원이 갑자기 붙었지?”배지수는 생각지 못한 가격을 듣고 당황해서 배준영에게 물었다.“누나, 4억 원은 기본 포르쉐 가격이야. 내가 2억을 더 추가해서 풀옵션으로 맞췄어.”배준영은 손을 비비며 뻔뻔스럽게 말을 이었다.“누나는 이제 몇백억짜리 자산을 소유한 부자잖아. 이 2억은 누나한테 새 발의 피에 불과한 게 아니야?”“아무리 돈이 많아도 고작 차 사는 데 이렇게 많이 쓰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배지수는 한숨을 쉬며 동생이 너무 방탕하다고 생각했다.“누나가 이 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내가 바로 팔아버릴게.”그러고는 배준영은 이청월을 보며 슬쩍 떠봤다. “청월씨, 이 차를 갖고 싶어요? 양도비 2억 원만 내면 기분 좋게 차를 넘겨줄 수도 있어요.”말을 마치고 배준영은 일부러 차 열쇠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네가 만진 물건은 난 더러워서 못 쓰겠어.”“임지환, 우리 가자. 난 페라리 사러 갈래.”이청월은 콧방귀를 끼며 임지환을 데리고 나가려 했다.그러나 임지환은 자리에 서서 떠날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안 돼, 사과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임지환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이청월은 잠시 멈칫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차 한 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너 여자 등쳐먹다가 머리가 정말 돌았나? 내가 지금 차를 몰고 나갈 테니 네가 어떻게
“아까는 나를 치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빨리 포기했어?” 임지환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네가 미쳤다고 해서 나까지 미칠 필요는 없잖아. 널 쳐서 죽이면 나도 감옥에 가야 하잖아. 난 지금 한창 인생을 즐길 황금 같은 나이람 말이야. 너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이유가 있겠어?”배준영은 냉랭하게 변명거리를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눈을 굴리며 뭔가 생각하다가 오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 이사, 이 차 말이야...”“배 도련님,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세요!”오진영은 포르쉐를 판매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황급히 대답하며 배준영의 비위를 맞췄다.“그냥 이 가게에서 꼴 보기 싫은 사람 좀 치워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밥맛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니까 차 사는 기분에 영향을 주거든.”배준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어떻게 처리할지는 오 이사가 알아서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오진영은 즉시 배준영의 의도를 파악했고 이내 임지환을 향해 머리를 돌려 쌀쌀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선생님, 미안하지만 여기서 나가 주셔야겠어요.”“임지환이 당신 가게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단지 저 사람의 말 한마디에 지금 내쫓으려는 건가요? 너무 무례한 거 아니에요?”이청월은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내 친구예요. 이 정도의 체면도 안 준다고요?”“청월 씨, 이분이 청월 씨 친구라서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겁니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바로 경호원을 불러서 쫓아냈을 겁니다.”오진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해명했다.오늘 일로 이청월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건 이미 바꿀 수 없는 사실로 확정되었으니 차라리 수수료나 톡톡히 받고 다음 직장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네가 뭔데 나더러 나가라 마라야? 설마 배준영이 여기서 너희 차를 샀다고 해서 그래?” 임지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맞아요. 배 도련님이 여기서 차를 샀
여자의 등쳐먹는 놈이 부잣집 아가씨의 도움 없이 차를 산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배준영은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 더 기세가 등등했다.“좋아, 그 내기 받아들일게.”임지환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동의했다.“미리 말해두는데, 청월 씨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어. 오직 네 돈으로만 해결해 봐.”배준영은 임지환이 꾐수를 쓸까 봐 급히 한마디 덧붙였다.그는 모든 허점을 완전히 막아 임지환이 속임수를 쓸 기회를 철저히 없애려고 했다.“당연하지, 난 여자의 돈을 쓰는 습관이 없어.”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 내게 준비할 시간을 반 시간 줘야겠어.”“반 시간이 아니라 하루라도 기다릴 수 있어.”배준영은 소파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면서 선심을 베푸는 척했다.임지환이 으뜸가는 갑부 딸의 도움 없이 고급 차를 살 수 있는 재산이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준영아, 이렇게 큰 내기를 걸 필요는 없잖아. 옛정을 생각해 봐. 임지환이 우리를 도와준 적도 있잖아.”배지수가 보다 못해 옆에서 임지환의 편을 들어주었다.“누나, 그 녀석을 봐주는 건 그만해. 난 저 녀석이 여자 돈으로 나대며 사는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어. 이건 누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기도 해.”배준영은 배지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말했다.진퇴양난의 기로에 선 배지수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지환은 구석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유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지환은 국내 계좌의 유동 자금을 전부 유란에게 맡겨 투자하며 관리하게 했다.“용주님, 무슨 일이죠?”전화 너머로 유란의 다소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별일 아니야, 갑자기 차를 사고 싶어져서 연락했어.”임지환은 웃으며 유란에게 지시했다. “지금 은행에 가서 현금을 좀 찾아와 줘. 내가 직접 가기 귀찮아서 그래.”눈치가 빠른 유란은 임지환의 말에서 뭔가를 감지하고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