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등쳐먹는 놈이 부잣집 아가씨의 도움 없이 차를 산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배준영은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 더 기세가 등등했다.“좋아, 그 내기 받아들일게.”임지환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동의했다.“미리 말해두는데, 청월 씨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어. 오직 네 돈으로만 해결해 봐.”배준영은 임지환이 꾐수를 쓸까 봐 급히 한마디 덧붙였다.그는 모든 허점을 완전히 막아 임지환이 속임수를 쓸 기회를 철저히 없애려고 했다.“당연하지, 난 여자의 돈을 쓰는 습관이 없어.”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 내게 준비할 시간을 반 시간 줘야겠어.”“반 시간이 아니라 하루라도 기다릴 수 있어.”배준영은 소파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면서 선심을 베푸는 척했다.임지환이 으뜸가는 갑부 딸의 도움 없이 고급 차를 살 수 있는 재산이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준영아, 이렇게 큰 내기를 걸 필요는 없잖아. 옛정을 생각해 봐. 임지환이 우리를 도와준 적도 있잖아.”배지수가 보다 못해 옆에서 임지환의 편을 들어주었다.“누나, 그 녀석을 봐주는 건 그만해. 난 저 녀석이 여자 돈으로 나대며 사는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어. 이건 누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기도 해.”배준영은 배지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말했다.진퇴양난의 기로에 선 배지수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지환은 구석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유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지환은 국내 계좌의 유동 자금을 전부 유란에게 맡겨 투자하며 관리하게 했다.“용주님, 무슨 일이죠?”전화 너머로 유란의 다소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별일 아니야, 갑자기 차를 사고 싶어져서 연락했어.”임지환은 웃으며 유란에게 지시했다. “지금 은행에 가서 현금을 좀 찾아와 줘. 내가 직접 가기 귀찮아서 그래.”눈치가 빠른 유란은 임지환의 말에서 뭔가를 감지하고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물
그러고 나서 임지환의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휴게실로 들어갔다.“한 달 만에 보는데 임지환 저 녀석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네. 왠지 더 남자다워진 것 같아.”임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고미나는 눈 속에 반짝이는 이색적인 빛을 숨길 수 없었다.“아무리 변해도... 꿩이 봉황으로 변신할 순 없어. 대체 언제쯤이면 저 허풍 떨기 좋아하는 못된 버릇을 고칠지 모르겠어.” 배지수는 고미나의 말에 한숨을 쉬며 부정했다.하지만 고미나는 눈을 깜빡이며 계속 자기주장을 펼쳤다. “그건 몰라. 진짜 해낼 수도 있는 거잖아.”“말도 안 돼. 지금은 단지 여우가 호랑이 등에 업힌 격일 뿐이야. 이씨 가문의 후원이 없으니까 임지환은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거야.” 배지수 역시 단호한 말투로 자기주장을 견지했다.“진짜인지 아닌지, 30분 후면 알게 될 거야. 만에 하나 진짜라면 네 그 망나니 동생은 오늘 이 자리에서 개망신당하게 생겼어.”고미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미나 누나, 기대해도 좋아요. 이번에야말로 임지환 저 녀석의 거지 같은 진짜 정체를 밝혀낼 겁니다.” 배준영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반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원래 차를 보고 바로 떠나려던 손님들도 이 구경거리가 흥미진진해져 아예 매장에 남아 끝까지 지켜보려고 작정했다.손님들은 모두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30분까지 5분 남았어. 임지환, 오늘에 개 짖는 소리 시원하게 듣게 생겼네.”시계를 보고 있던 배준영은 약속된 시간이 거의 다 되자 흥분을 주저하지 못하고 휴게실로 뛰어갔다.하지만 휴게실에 있던 임지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5분밖에 안 남았어요. 진짜 기적이라도 바라는 겁니까? 내가 보기엔 얼른 배 도련님에게 사과하고 망신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오진영도 옆에서 배준영을 거들었다.“차를 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유란이 등장하는 순간, 장내 모든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현장의 모든 여성이 한순간에 빛을 잃고 유란의 들러리가 된 것 같았다.예뻐도 너무 예쁜 여자였다.이런 존예는 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도 같았다.“존경하는 고객님, 혹시 저희 차를 보러 오셨나요?”오진영은 잠시 멍해 있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아부하려고 애쓰는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그러나 유란은 오진영을 쓱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임지환 앞으로 다가갔다.“임 선생님, 시간이 촉박해서 현금 16억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걸로 부족하다면 다시 은행에 가서 더 가져오겠습니다.”유란은 말을 마치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그러자 보디가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차례로 열었다.가방 안에는 노란 5만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광경은 정말 보기 드문 희한한 광경이었다.“세상에! 살다 살다 이렇게 많은 돈은 처음 봐. 이 돈이 다 내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조금 전 임지환을 무시하던 그 남자 판매원은 이렇게 많은 돈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주변에서 수군대며 구경하던 손님들도 가방 안 돈을 보자 두 눈이 반짝였다.160억 원의 현금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 이렇게 충격적일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하지만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과 달리 임지환은 한번 흘낏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괜찮아, 160억이면 충분해.”“오 이사, 이 160억으로 여기 매장에서 차 한 대를 살 수 있겠어?”임지환은 일어나서 오진영을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물론...”오진영은 생각지 못한 충격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안고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충분하죠... 차 한 대는 물론 열 대라도 살 수 있어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오진영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속으로 후회막급이었다.자기가 오랫동안 차 판매 사업에 종사했지만 이렇게 사람을 과소평가해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난
이청월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아까 그 말다툼 이후로 이청월은 이미 배지수의 성격이나 인품을 완전히 파악했다.이 여자는 한 번도 진심으로 임지환을 위해 생각한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준영아, 얼른 무릎 꿇고 할아버지라 불러. 안 그러면 임지환을 진짜 분노하게 만들면 너 또 얻어터질지도 몰라.”고미나가 옆에서 임지환에게 얼른 사과하라고 배준영을 재촉했다.“사내자식이 왜 저렇게 앞과 뒤가 다르지?”“우란 아까부터 모든 걸 다 봤어. 남자의 말은 태산보다 무겁다는 말을 못 들어 봤어? 설마 발뺌하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주변 사람들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임지환, 두고 보자. 언젠가 이 수모를 그대로 되갚아 주겠어.”배준영의 얼굴은 화가 나서 벌겋게 달아올랐다.그러고는 마지못해 무릎을 꿇고 모기처럼 기어들어 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밥 안 먹었어? 크게 말해, 전혀 들리지 않아.”임지환은 귀를 후비며 호통쳤다.“너 그렇게까지 날 막다른 골목에 몰고 가야 하겠어? 적당히 해!”배준영이 이를 악물고 소심하게 반격했다.“임지환, 우리 남매 체면을 꼭 이 정도로 사정없이 짓밟아야 하겠어?”배지수가 임지환을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와 실망이 역력히 담겨 있었다.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더 짓밟아야 네 성에 차겠어?”분노로 가득 찬 배지수를 보며 임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앞으로는 좀 더 겸손하게 살아. 그렇게 거만하게 버르장머리 없이 굴지 말고.”배준영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후, 임지환은 돌아서서 매장에서 나가려 했다.“임 선생님, 뭐 잊으신 거 없으세요?”임지환이 떠나려는 것을 본 오진영이 급히 쫓아왔다.“난 그저 내가 여기 차를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야. 여기서 산다고는 말한 적이 없어.”임지환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오진영에게 해석했다.“임
“빨리 구급차를 불러! 우리 매장에서 사람이 죽어선 안 돼!”오진영은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잠깐 얼어붙었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책임지기 싫어 뿔뿔이 흩어지며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임지환, 우린 이제 어쩌면 좋아?”이청월은 피가 멈추지 않는 배준영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경 쓰지 마, 우리 아직 차를 안 샀잖아. 계속 둘러보자.”하지만 이청월의 우려와 달리 임지환은 웃으며 배준영의 생사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런 상황에서 차를 보러 가다니, 말이 돼?”이청월은 임지환의 반응에 헛웃음이 나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소송까지 갈 판인데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침착할 수가 있지?“먼저 가세요. 여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유란이 자진해서 뒤처리를 떠메려 말했다.“알았어. 그럼 남은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줘.”임지환은 웃으며 이청월에게 말을 돌렸다. “우린 계속 차를 보러 가자.”이청월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듣고도 걱정스러워하며 유란에게 당부했다.“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 그분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거야.”유란은 이씨 집안의 귀빈이기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청월 씨, 마음은 고맙지만 이 정도 일로 아버님을 귀찮게 할 필요는 없어요.”유란도 임지환 못지않게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맞아, 우리 중요한 일이나 해결하러 가자고. 시원하게 소비하러 가야지.”임지환은 가볍게 가방 하나를 집어 들고 이청월와 함께 당당하게 포르쉐 서비스 센터를 나섰다.직원들은 원래 두 사람을 막으려 했으나 유란의 독기 품은 눈빛을 보고 차마 막지 못하고 길을 비켜주었다.“임지환, 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매장을 나서자마자 이청월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기습 질문을 던졌다.임지환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었다. “왜 그렇게 묻지?”“아까 유란이 널 용주님이라고 불렀잖아. 그
여성 판매원의 열정적인 추천에 따라 이청월은 현금으로 페라리 812를 구매했다.임지환이 현금 가득 든 상자를 들고 계산대에 갔을 때, 직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많은 현금을 들고 결제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기 때문이었다.결국, 강한시에서 꽤 유명한 이청월이 나서서야 이 난감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가게를 나온 후, 이청월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장 드라이브를 가겠다고 임지환에게 통보했다.그러자 임지환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포르쉐 서비스 센터로 다시 걸어갔다.문 앞에 도착하니 구급차가 막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구급차 뒷면 유리를 통해 배지수의 초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임지환, 또 왜 돌아왔어?”임지환이 소리를 듣고 돌아서자 바로 고미나를 발견했고 이내 그녀에게 되물었다. “넌 왜 아직도 안 갔어?”“네가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어.” 고미나가 웃으며 대답했다.“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볼 일이라도 남아 있어?”“왜? 난 널 기다리면 안 되나?”고미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잔잔한 물결 같은 눈으로 임지환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임지환은 따가운 시선이 살짝 불편해져서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유란은 어디 갔어?” 그러고는 화제를 급히 돌려 물었다.“그 여자라면... 이미 차를 타고 떠났어.” 고미나가 임지환의 질문에 대답했다.“그럼 나도 갈게, 또 보자.”임지환은 고미나와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문 앞에 주차된 차 쪽으로 걸어갔다.“잠깐만, 거기 딱 서.”바로 그때, 오진영이 경호원 무리와 함께 우르르 몰려와 임지환을 겹겹이 둘러쌌다.“너희 매장 차를 안 산다고 해서 날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임지환은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맞아! 너 때문에 오늘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사람들 앞에서 엄청난 수모도 겪고 말이야. 그래서 아까 내가 당한 만큼 반드시 돌려줘야겠어.”오진영은 냉소
“큰일이야! 이 송우빈은 악명이 자자한 여색을 즐기는 변태야. 이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난 끝장이야!”고미나는 송우빈의 악명을 알고 있어서 송우빈의 말에 두려워 벌벌 떨었다.“걱정 마, 내가 있는 한 저 자식이 너에게 아무 짓도 못 할 거야.”임지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미나의 손을 토닥였다.“흥, 여자 등쳐먹는 자식이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것 같아? 송 도련님 앞에서 넌 한낱 벌레에 불과해!”오진영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우빈이 지금 이 자리에 온 이상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넌 씨X 또 뭐야? 내가 봐둔 여자는 한 번도 놓친 적 없어. 알기나 해?”송우빈은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경호원 손에서 전기 충격기를 받아 들고 임지환의 뒤통수를 노리며 천천히 다가갔다.바로 그때, 임지환이 갑자기 돌아섰다.“송우빈, 너 많이 컸구나.”탁!송우빈은 임지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살기등등한 사나운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와 손에 든 전기 충격기도 무의식적으로 전부 바닥에 떨어뜨렸다.“송 도련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다니, 넌 정말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구나.”오진영은 임지환의 무지함을 비웃으며 팽팽한 상황에 기름을 더 퍼부었다.짝!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송우빈은 오진영에게 다가가 험상궂은 얼굴에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날렸다.“송 도련님, 술을 얼마나 드신 거예요?”오진영은 얼떨떨해하며 얼굴을 감싸 쥐고 억울해했다. “저를 때리시면 안 되죠. 저 녀석을 때리셔야죠!”“너 씨X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이분은 우리 의부님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대단한 인물이야, 알겠어?”송우빈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오진영에 가차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송 도련님, 뭔가 오해가 있는 건 아닙니까?”오진영은 얼굴을 꼭 감싸 쥐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놈이지 송 도련님이 말한 그런 대단한 인물이 아니란 말입니다.”“맞아요, 우리도
그런데 자기가 깔보며 무시하던 이 기생충 같은 놈이 바로 그 유명한 임 대사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진영의 몸은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결국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임지환이 바로 임 대사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고미나도 송우빈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의 표정을 지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임 대사는 어떤 인물인가?임 대사는 요즘 강한시 장안의 화제로 홍 시장과 이성봉 갑부도 그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춘다고 알려져 있었다.매장에 있는 사람 중 임 대사의 명성을 아직 들어본 적 없는 이들도 송우빈이 임지환에게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자 다들 서로 눈치만 힐끔 살피며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이 자식들의 무례한 언행은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너 방금 쓸데없이 내 정체를 폭로해 내 친구를 놀라게 한 건 썩 내키지 않아.”임지환은 돌아서 송우빈을 쌀쌀하게 쳐다보며 솔직하게 말했다.송우빈은 차가운 얼음물에 빠진 듯 마음이 서늘해졌고 임지환을 올려다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임 대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대사님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그 질문은 내게 할 게 아니라 내 친구에게 해야지.”임지환은 한쪽에서 멍하니 서 있는 고미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고미나,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어? 말만 해.”“임지환, 고마워. 그냥 이쯤에서 끝내자.”고미나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말했다.송우빈의 강한시 으뜸가는 악당이라는 악명은 이미 고미나의 귀에 익었다. 고미나의 집안이 강한시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긴 하지만 송우빈의 배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임 대사'로 불리는 임지환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있다고 해도 고미나는 여전히 송우빈을 쉽게 건드릴 용기가 없었다.임지환의 말에 송우빈은 즉시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 내며 고미나에게 사과했다. “미나 씨, 방금 제가 무례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미나 씨가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