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헌은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 친구가 오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괜히 헛된 기대하지 말고 나랑 같이 가자. 지금의 널 아무도 구해줄 수 없어. 뭣들 하고 있어? 이 자식 당장 잡아가!”유진헌은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부하들은 무력을 사용해 임지환을 강제로 데려가려 했다.유진헌의 명령과 함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임지환을 포위하려고 했다.임지환은 눈빛이 차가워지며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펑!펑!유진헌의 부하들이 임지환의 공격을 맞고 허공을 날아 전부 바닥에 꼬꾸라졌다.“이 자식이 죽고 싶어 안달 났구나! 지금 당장 널 사살해 버릴까?”임지환이 자기 앞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보고 유진헌은 펄펄 뛰며 총을 꺼내 그의 머리에 겨눴다.“유 국장, 그만둬요!” 홍진은 아찔한 장면을 보자 급히 외쳤다.아까는 임지환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홍진이 미처 막을 새도 없었다.그러다가 유진헌이 총을 꺼내 들자 홍진은 비로소 머리가 반응하고 서둘러 제지했다.“홍 시장님, 문제를 더 키우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자식은 헛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내 부하들을 때려 다치기까지 했어요.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에요. 확실하게 처리해야 합니다.”유진헌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홍진의 표정을 슬그머니 살폈다.홍진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자 유진헌은 다시 말을 살짝 돌렸다. “하지만 홍 시장님께서 그만두라고 하니 저도 멋대로 행동할 순 없죠. 저 녀석이 내 부하들을 때린 일은 사과하고 배상금을 내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 녀석은 여전히 나와 함께 감찰국으로 가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작은 범죄행위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중대한 사안을 그냥 넘어가면 모두에게 감찰국 국장으로 설 자격이 없을 겁니다.”유진헌은 총을 치우며 차가운 표정으로 몇 마디 더 했다.상급자 앞에서는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사실 임지환만 감찰국에 데려가면 그를 어떻게 처리할
유진헌은 참다 참다 끝내 인내심을 잃고 폭발했다.“내가 너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불러 봐. 도대체 어떤 대단한 인물인지 한번 보자고!”장정우는 두 팔을 가슴에 모으고 비웃으며 위협했다. “내가 미리 말해두는데, 불러온 사람이 널 구해주지 못하면 감찰국에 들어가서 보름 정도는 갇혀 있어야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임지환이 저지른 일들은 하나같이 중죄였고 더구나 감찰국의 사람들까지 때렸다.보름을 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임지환을 반년 동안 가둬놔도 절차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다 들었지? 어서 네 그 대단한 배후를 불러 와. 안 그러면 얌전히 나랑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정말 자비를 베푸는 거야, 알겠어? 홍 시장님 체면을 봐서 그렇지 내가 총으로 널 백번 쏴 죽여도 아무런 문제도 없어.”유진헌은 으름장을 놓으면서 원래 자리에 들어간 총을 다시 한번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아이고, 이번엔 임 대사가 누구도 쉴드칠 수 없는 대형 사고를 터뜨렸네.”이성봉은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강한시 시장 홍진도 이 순간은 침묵에 빠졌다.사실 홍진은 이미 임지환에게 이 곤경에서 탈출할 기회를 줬는데 임지환은 그 소중한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다.이제 홍진이 뭐라고 더 설득해도 유진헌은 쉽게 임지환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그럼 기다려 봐. 소원대로 내가 전화할 테니.”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임지환은 진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참 어이가 없네. 아직도 생쇼하는 거야?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짜로 자기가 대단한 인물인 줄 아나 보네. 오늘은 전화 한 통, 아니 열 통, 백 통을 해도 소용없어. 넌 끝장이야!”유진헌은 임지환이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며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평소에 웃음을 잘 보이지 않던 장정우도 이 모습에 빵 터져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유진헌은 휴대폰을 들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임지환, 네 손님도 너처럼 허세가 장난이 아니구나. 이 조그마한 강한시에 무슨 용수 특전대가 있어? 허세 부리기에도 정도가 있지. 정말 웃기는 놈일세. 됐어, 이 소동도 이제 끝낼 때가 됐어.”유진헌은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잠깐! 유 국장, 조금 전에 용수 특전대라고 했나?”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잠자코 구경하던 장정우가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물었다.“장 비서님, 이런 헛소리를 믿는 겁니까? 이건 명백히 허세 부리는 거잖아요. 우리 강한시에는 상어 특전대밖에 없습니다. 다른 특전대는 존재하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유진헌은 순간 멈칫하다가 이내 이실직고했다.“강한시에는 확실히 없지만 그렇다고 용수 특전대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금릉 구역에 용수라는 코드명을 가진 특전 부대가 확실히 있어. 만약 그 손님이 진짜 용수 사람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질 거야.”장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설령 용수 특전대가 있다고 해도 저 녀석 신분으로 대원들을 지휘할 수 없는 게 뻔하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 허청열이라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는 게 분명합니다.”유진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하며 장 비서가 겁쟁이라고 속으로 비웃었다.“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어?”장정우는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입가를 움찔하며 황급히 물었다.“그 사람이 자기 이름이 허청열이고 용수 특전대의 교관이라고 했습니다. 장 비서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거짓말이잖아요...”유진헌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장정우를 위로했다.“용수 특전대의 교관 이름이 실제로 허청열이야! 만약 그 사람의 말이 진짜라면 이번엔 우리가 무시무시한 문제를 자초한 거야.”장정우는 깊은숨을 쉬며 말했고 눈에는 눈에 확 띄는 불안이 엿보였다.유진헌은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
“네 이중인격자 연기가 장난이 아니야. 뮤지컬이나 찍으렴? 어쩌면 표정 바꾸는 속도가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더 빠르냐?” 임지환은 장정우의 돌연 180도 변한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지만 장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임 선생님, 대인배이신 당신께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세요.”몇 년간 비서직을 맡아온 장정우는 이미 관료 생활에서 노련한 인물이 되었다. 유연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 출세할 수 있고 더 환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도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장 비서님, 설령 이 녀석이 진짜 용수 교관과 친분이 있다고 해도 굳이 이 녀석에게 그렇게까지 굽신거릴 필요는 없지 않나요?” 유진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네가 뭘 알아? 용수는 정예 중의 정예야. 교관의 신분은 특히나 특별해서 우리 같은 비천한 사람이 쉽게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장정우는 인상을 쓰면서 유진헌을 대놓고 훈계하기 시작했다.“그저 특전대 교관일 뿐인데 그 신분이 아무리 높아 봤자 얼마나 높겠습니까? 강한시는 내 구역입니다. 용수의 세력이 길어봤자 설마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그 사람이 진짜 군대를 끌어올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겠죠?”유진헌은 강한시의 감찰국장으로서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있었다.장정우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며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그토록 죽고 싶으면 내가 굳이 말리진 않겠어.”“임 선생님, 아까 제가 한 말을 절대 마음에 담지 마세요. 제가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 미쳤나 봅니다. 도지사께서 임 선생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안 그러면 저를 굳이 여기까지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장정우는 점점 더 비굴한 태도를 보였고 자칫하면 무릎을 꿇을 기세인 것 같았다.유진헌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전화 한 통으로 도지사 비서인 장정우의 임지환에 대한 태도가 놀랍게도 180도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장정우는 특전대라는
여섯 대의 소형 전투기가 독수리처럼 하늘을 가르며 거대한 음파를 동반한 채 천천히 하강했다.그러다가 전부 호텔 상공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다.분사구의 강한 기류는 사람들의 옷을 날리고 머리를 헝클어놓았다.“내 지원군이 도착했어...”현장에는 전투기의 프로펠러로 인해 막강한 바람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서도 임지환의 말은 신기하게도 모든 이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이... 이제 끝났군...”유진헌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한여름인데도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임지환이 단 전화 한 통으로 전투기를 불러올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이 상황에서는 유진헌 같은 보잘것없는 감찰국 국장이 아니라 도지사의 가족이라고 해도 절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펑펑펑...전투기가 호텔 상공에 정지하자마자 조종석 문이 열렸고 용수 특전대원들이 낙하산을 메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하늘에서 한 명씩 내려왔다.곧 허전하기 짝이 없던 호텔 입구는 군복색으로 가득 찼다.“용수 교관 허청열이 전 대원을 데리고 도착했습니다. 임 대사님, 지시 부탁드립니다.”위장복을 입은 허청열은 존경심을 가득 담아 임지환에게 경례했다.그 뒤에 서 있는 수십 명의 용수 특전대원들도 너도나도 창처럼 곧게 서서 경례했다.다들 임지환을 바라보는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했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임 대사님!”그 울림은 구름을 찢고 바위를 쪼개며 고막도 찢을 듯 강렬하고 우렁찼다.모두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충격을 받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판단이 빨라 다행이군.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장정우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조금 전 자기가 비록 늦었지만 임지환에게 사죄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장정우는 유진헌처럼 어리석진 않았다.“화 장군이 정말 신경 써주셨네. 난 간단하게 상황만 전달했는데 네게 전체 부대를 부탁해 보내주셨구나.” 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대사님, 당신은 우리 장군님의 생명 은인입니다. 예를 다해야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생쇼 끝내고 도망가려 해? 세상이 네 눈에 그렇게 녹록해 보여?”허청열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유진헌의 옷깃을 꽉 잡았다.유진헌은 몸이 마치 밧줄에 묶인 것처럼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날 수 없었다. 실로 난감하고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이거 못 놔? 안 놓으면 네놈을 사살해 버릴 거야.”유진헌은 예상치 못한 행동에 화가 치밀어 총을 꺼내 들고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돌렸다.찌익...유니폼이 마치 헝겊처럼 찢어졌고 커다란 구멍이 났다.하지만 유진헌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라 유니폼 따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네가 진짜 용수 교관이라고 해도 선을 넘으면 나도 널 쏠 수 있어, 알겠어?”유진헌은 총을 든 채 자리에 서서 얼굴에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위협했다. “널 쏴 버려도 내가 보고서를 작성해 위에 보고하면 그만이야. 목숨이 아깝다면 알아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손에 총이 있으니 유진헌은 이름 모를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고 허청열과 협상할 용기도 생겨 슬슬 선을 넘기 시작했다.모두가 호흡을 멈추고 침을 삼키며 미쳐 발광하는 유진헌을 안쓰럽게 쳐다봤다.감착국 국장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임 대사님, 제가 공격해도 되겠습니까?”허청열은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임지환을 보며 물었다.“네가 알아서 해. 죽이지만 않으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아.”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임지환, 넌 이 상황이 우스워 보여? 씨X 새끼가 사람을 우습게 보네. 내가 이 자식을 죽여버리면 다음 순서는 바로 너야, 알겠어?”임지환의 여유로운 태도가 심기를 심하게 건드린 유진헌은 쌍욕을 퍼부으며 임지환에게 큰소리를 쳤다.“좋은 마음으로 한마디 했더니 그게 듣기 싫었어?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넌 그 나불거리는 아가리를 처닫고 뒈졌을 거야.”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게 무슨 뜻이야?”유진헌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부풀어 오르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를 수 없었
장정우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이 사람이 혹시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는 아닐까?“방금 말했잖아, 죽이지는 않을 거야. 기껏해야 허 교관이 불구가 될 때까지 이 자식을 두들겨 패겠지.” 임지환이 한 마디 덧붙였다.“불구가 된다 해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윗선에서 문제 삼으면 나도 같이 책임져야 합니다.”장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임 선생님, 내 체면을 봐 주지 않는 건 이해하겠는데 우리 도지사를 봐서라도 저분을 말릴 수 없겠어요?”궁지에 몰린 장정우는 어쩔 수 없이 도지사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도지사가 여기 계셔도 마찬가지야.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아. 이건 전부 저 자식의 자업자득이야. 남을 탓할 일이 아니지.”임지환은 팔짱을 끼고 서서 일말의 타협도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역시 임지환은 임지환다웠다. 도지사 체면도 사정없이 구겨버리는 걸 보니.도지사 비서로 승진한 이후 장정우는 처음으로 이런 무력함을 느꼈다.“임 대사, 장 비서 말도 일리가 있어요. 무슨 일이나 너무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지 말고 살길을 하나 남기는 게 좋을 겁니다. 유진헌이 아무리 싸가지 없어도 필경 공무원인 이상, 제 체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주실 수 없겠어요?”홍진이 불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어 유진헌을 위해 변호했다.임지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홍 시장님이 이렇게 부탁하시는데 그럼 이번엔 봐 드리죠.”그러고는 허청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화가 풀렸어? 풀렸으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 더 때리면 이 친구 진짜 뒈질지도 몰라.”“알겠습니다.”허청열은 그제야 발을 뺐고 손을 뻗어 병아리를 들어 올리듯 유진헌의 목덜미를 잡고 임지환 앞에 데려왔다.“그만... 그만 때려! 내가 잘못했어!”유진헌은 얼굴이 흉측한 간장 색으로 변했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거의 반쯤 죽은 모습이었다.“사내새끼가 나약하기 짝이 없네.”허청열은 입을 비쭉이며 경멸이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손을
하지만 유진헌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맞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바로 여론을 이용해 자기를 완벽한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었다.“말 돌리지 말고, 사과할 거야, 안 할 거야?” 임지환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네가 먼저 사람을 때렸잖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지?”유진헌은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 “너도 나를 때릴 수 있을 거라고 전혀 믿지 않거든?”유진헌은 허청열이 자기를 때린 것은 허청열이 용수 특전대 교관이라는 특별한 신분 때문이라고 여겼다.임지환은 아무런 배경도 없었고 주변에 아무리 많은 조력자가 있어도 자기를 감히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난 너처럼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이 참 좋더라.”임지환은 빠르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유진헌의 앞에 멈춰 섰다.“임 대사가 설마 진짜 유 국장을 때리려는 건가?”“감찰국 국장을 때리는 건 일반 범죄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야!”“허청열은 용수 교관이라 쳐도 임지환은 한낱 평범한 시민일 뿐이잖아. 진짜 때린다면 그건 엄청난 화제가 될 거야.”“송진국도 대단한 사람은 맞지만 관료는 아니잖아.”“근데 유진헌은 다르지. 당당한 강한시 감찰국 국장인데 누가 감히 쉽게 건드릴 수 있겠어?”구경꾼들은 물론 유진헌도 임지환이 단지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퍽!하지만 임지환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손을 들어 잽싸게 귀싸대기를 날렸다.따귀 소리가 울리자 유진헌 뿐만 아니라 구경꾼들도 전부 눈이 휘둥그레지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누구도 임지환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진짜 감찰국 국장에게 손을 댈 줄 몰랐다.그것도 얼굴에 직접 귀싸대기를 날리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말이다.그 과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져 누구도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세상에 내가 못 할 일은 존재하지 않아. 이 귀싸대기를 네가 내게 사과한 걸로 퉁 칠게. 알았으면 얼른 꺼져!”임지환은 방금 발생한 일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인 것처럼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