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장이영은 소항시에서 제일가는 기업 장진그룹 회장의 큰 아들로서 적어도 소항시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장이영 대표라면 저 자식 콧대를 콱 눌러놓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공짜로 좋은 구경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진은 눈을 반짝였다.“장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괜찮겠지만...”이진은 말끝을 흐리며 괜히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진 씨, 할 말 있으면 하세요.”답답하게 말을 절반만 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장이영은 대놓고 불쾌한 티를 냈다.“언니가 지금 되게 대단한 분이랑 같이 있는 중이라서요. 대표님 설명을 들을 틈이나 있을지 모르겠어요.”이진은 일부러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대단한 인물이라뇨? 이 소항시에서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이진의 말에 장이항은 바로 발끈했다.“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성이 임씨라는 것과 안양인 회장이 초대한 VIP 고객이라는 것밖에요.”잠깐 멈칫하던 이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대표님, 절대 제가 얘기했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임 선생님이라는 그분 꽤 대단한 사람인 것 같던데 괜히 눈밖에 나고 싶지 않거든요.”‘임 선생?’역시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장이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역시 또 그 자식이었어.’“하, 난 또 누군가 했더니 그 촌스러운 자식이었어?”장이영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지금 나랑 같이 들어가요. 내가 어떻게 그 자식을 모욕하는지 똑똑히 두고 보라고요.”화가 잔뜩 나서 돌아서는 장이영의 뒤를 따르며 이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임지환이 장이영에게 짓밟히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임 선생님,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세요. 진 대표는 낙찰받은 물건을 수령하러 갔습니다.”임지환을 접대실로 안내한 안양인은 어딘가 초조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 모습을 단번에 캐치한 임지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볼일 보세요. 저 혼자 기다리면 되니
“언니, 제가 대표님한테 여쭤봤는데요. 저 사람 애초에 부자도 아니래요. 진운 대표님 옆에 빌붙어서 잘난 척하는 찌질이일 뿐이라고요! 그러니까 더 이상 저 사람이랑 엮이지 마세요.”한발 앞으로 다가선 이진이 송연소가 걱정되는 척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여기까지 오는 내내 장이영에게 임지환의 정체를 묻고 또 물은 터라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전 한 번도 제가 부자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만.”여유로운 표정의 임지환이 다리를 꼰 채 장이영, 이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연소 씨, 들었죠? 저 자식도 인정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 자식한테서 떨어져요.”장이영은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부자가 아닌 게 뭐가 어때서요? 지환 씨 돈 보고 이러는 거 아닌데요? 내가 부자만 보면 달려드는 속물인 줄 알아요?”고개를 돌린 송연소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오히려 그쪽이야말로... 껌딱지처럼 귀찮게 굴지 말고 제발 좀 떨어지죠?”“풉.”송연소의 말에 임지환 역시 웃음을 터트렸다.‘여배우라 당연하게 까칠하고 도도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털털하네.’“연소 씨, 당신에 대한 내 마음 정말 모르겠어요? 그래요. 백 번 물러나서 내가 싫다고 쳐요. 이렇게까지 차갑게 굴 필요는 없잖아요?”장이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던 그가 송연소 앞에서만큼은 비굴하리만치 매달렸고 온갖 명품이며 비싼 스포츠카까지 선물로 안겼는데 여전히 그를 바라보지 않는 송연소가 원망스러웠다.‘그것도 모자라서 이제 저딴 사기꾼 편을 들어?’“선생님, 절차 다 밟았습니다.”이때 방으로 들어온 진운이 임지환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진 대표, 진씨 집안도 나름 연경에서는 내놓으라 하는 명문가인데 왜 저딴 자식한테 굽신대고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장이영이 진운을 향해 비아냥거렸다.“장 대표님, 말씀 조심하십시오. 임 선생님이야 자기 손을
쨍그랑!녹 쓴 자국이 가득했던 청동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무수한 조각으로 흩어졌다.“그렇게 죽고 싶다면 그 소원 이뤄주지!”저승사자 같은 음산한 목소리에 온 방에 울려 퍼졌다.순간 살기를 번뜩이던 임지환이 순식간에 장이영 앞으로 다가왔다.장이영의 목을 움겨쥔 뒤 임지환은 100kg는 넘는 거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올렸다.“이... 이거 놔!”숨이 막혀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장이영이 겨우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진, 진정해요!”이러다간 정말 누구 하나 죽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송연소가 나서 그를 제지했고 대충 옆에서 구경이나 하려던 이진 역시 얼굴이 창백해진 채 입을 틀어막았다.“선생님, 제발 진정하세요!”진운 역시 다급하게 임지환의 앞을 막아섰다.‘접견실 주위에는 온통 CCTV인데다 보는 눈도 많아. 게다가... 장이영은 장씨 일가의 외동아들이야. 여기서 죽여버리면 우리 가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거야. 임 선생님이 또 곤란해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우웅!모두가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때 산산조각 났던 청동 조각들이 묘한 빛을 내뿜더니 마치 마법처럼 원래 모양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역시... 보통 물건이 아니었어.”그 모습을 캐치한 임지환은 망설임없이 장이영을 내쳤다.그리곤 청동 조각을 들고 부랴부랴 접견실을 나섰다.‘이 청동 조각의 정체에 대해 얼른 알아봐야겠어.’“임 선생님, 잠깐만요!”진운 역시 임지환의 뒤를 따라나서고...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진이 다급하게 장이영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으세요?”“쿨럭, 쿨럭,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겉으로는 센 척해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장이영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방금 전,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괜, 괜찮으신 거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한 곳에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이진이 다급하게 일어서며 송연소의 팔을 잡아당겼다.“하, 그 고철덩어리 같은 물건이 정
“너무 오랫동안 보시는 거 아닙니까?”“이 청동 조각은 대체 어떤 물건입니까?”진운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임지환을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물었고,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주조종실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그를 바라보며 진운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남국 아저씨는 할아버지께서 운전기사로 배정해 주신 분입니다. 믿을 만하니 무슨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잠시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물건이 보물이라는 사실입니다!”“그 말은...... 우리가 돈을 벌었다는 말입니까?”진운은 물건이 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눈앞이 아찔해 났다. 10억으로 이렇게 귀한 물건을 가져왔으니 이번 장사는 틀림없이 대박이었다.“너무 빨리 들떠 하지 마십시오.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임지환이 적당히 찬물을 끼얹었다.“비록 귀한 보물이지만 흠이 있습니다. 한쪽이 떨어져 나갔습니다.”“흠 말입니까? 다른 조각도 있다는 말씀입니까?”진운은 순간 그의 말뜻을 깨달았다.“맞습니다. 만약 완벽한 보물이라면 제가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이런 보물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임지환은 청동 조각을 탐지해 보려 했으나 그 어떤 신령스러운 기운에 의한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떨어뜨려 깨졌을 때 자동으로 맞물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었다.“만약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위력을 정말 보여줄 수 있는 겁니까?”진운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일말의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만약 복원에 성공만 한다면 그야말로 값어치가 꽤 나갈 것이다.임지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이론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선옥초를 되찾는 게 급선무입니다.”진운이 제안했다.“아니면 지금 당장 안양인을 잡아다가 확실히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아닙니다. 안양인은 사람을 붙여서 감시만 하면 됩니다. 왠지 그가 또 움직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도련님, 두 분 꽉 잡으세요! 나머지는 저한테 맡기세요!”남국은 한마디를 남긴 채 엑셀을 세게 밟았고, 차는 순식간에 차 무리를 초월하더니 쫓아오는 승용차를 따돌렸다. 그는 안전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외진 길을 찾아 운전했고, 무려 2킬로미터를 운전한 뒤 뒤따르는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속도를 줄였다.“정말 운전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쉽게 차를 따돌리다니요!”진운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고, 옆에 앉은 임지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너무 섣불리 좋아하지 마십시오. 전 항상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안이 장진그룹만큼은 아니어도 감히 저를 건드릴 사람은 없습니다.”퍽!진운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가 들렸고, 차 유리에 총알이 박히자, 유리가 쩍 갈라졌다.“저격수가 어디 숨어서 감히!”총알이 박히는 순간 진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금방 집안이 어쩌고저쩌고 큰소리를 쳤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감히 진씨 집안 둘째 도련님을 건드려?’임지환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차 세우세요.”진운은 다급하게 소리쳤다.“안 됩니다. 지금은 너무 위험합니다.”“숨은 저격수를 죽일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큰일날 겁니다.”임지환은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국은 목숨이 걸린 마당에 귀빈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말했다.“상대가 저격수를 배치해 놓았는데, 차를 세우면 우리가 표적이 되는 것 아닙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차는 방탄 장치가 잘 되어 있습니다.”진운은 진지하게 말을 보탰다.“상대가 저격수를 배치했다고 해도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그쪽에서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펑!총알 하나가 방탄유리를 또 맞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알이 맞힌 위치가 지난번과 불과 몇센치메터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특제한 방탄유리도 여기저기 금이 갈 정도였다.“두 번만 더 쏘면 아무리 방탄유리라도 깨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격수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
의문의 남자는 마치 저승사자가 생명을 빼앗으려는 듯 임지환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어떤 미친놈이 제 발로 차에서 나와? 그래도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겠네.”저격수는 씩 웃더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펑!하지만 그 순간, 그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임지환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그는 간발의 차이로 그 무시무시하고도 치명적인 총알을 피했다.“말도 안 돼! 어떻게 사람의 반응 속도가 총알보다 빠를 수 있어?”저격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뿐이었다.“그냥 우연이었을 거야! 내가 총으로도 사람을 못 죽인다고? 말도 안 돼!”에이스 킬러로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재차 손안의 총을 들고 일어서서 임지환을 향해 더 신중하게 조준하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종적을 숨기지 않았고, 당당하게 암살을 시도했다. 그는 총만 있다면 수백 미터 이내에서 설사 상대가 로봇이라 하더라도 총알이 머리에 박히게 할 확신이 있었다. ‘드디어 그 더러운 모습을 드러냈네!’임지환은 멀리 저격용 총을 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몸을 무기로 위험을 무릅쓴 이유는 저격수를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사냥의 순간이다. 임지환의 신분은 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나를 보고도 웃음이 나와? 정말 웃기는 녀석이네?”저격수는 조준경을 통해 임지환의 미소를 또렷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비록 서로 적수라도 상대가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복도 잠시, 저격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펑!그 순간, 임지환은 뜨거운 기류가 정면으로 무섭게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총알의 위력은 거리가 가까울수록 어마어마했다. 임지환은 몸속의 기운을 극치로 돌렸고, 그 기운과 총알이 부딪쳐 거대한 소리를 내뿜었다.쿵!“미친놈 아니야? 몸으로 총알을 막아내?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는 놈이군……”저격수는 총을 내려놓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이미 죽어야 할 임지환이 지금 유령처럼 그의 뒤에 나타났다.옷에 먼지가 조금 묻은 것 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빨리 도망쳐!”“얜 상대가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천둥의 뇌리을 스쳐 지나갔다.프로 킬러로서 그는 자기 직감에 충실했다.지금 눈앞에 서있는 이 평범하기에 그지없는 남자는 자기를 죽일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이제 와서 도망갈 생각을 한다니. 너무 늦으신 거 아니에요?”임지환은 덤덤하게 천둥을 보고 말했다. 마치 오랜 친구가 만나서 수다를 떠는 듯이.슉!천둥은 고개를 돌리고 재빨리 도망쳤다.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젖 먹는 힘까지 다했다.“사람 하나 죽이는 데 총밖에 쓰지 못한다는 법이 있었나?”임지환은 피식 웃더니 손에 쥐어진 은침을 발사했다.지금 임지환의 모습은 마치 사탄이 인간계에 강림한 것만 같았다. 은침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칼날이 되었다.푹.빠른 속도로 날아간 은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천둥의 뒤통수에 꽃혔다.순간, 온몸에 주문이라도 걸린 듯 제자리에 굳어버린 천둥이었다.철퍽!30초도 되지 않아 천둥은 뒤로 곧게 쓰러졌다.눈은 뜨고 있었지만 이미 숨은 멎은 상태였다.프로 킬러는 죽어서까지도 임지환이 방금 자신의 총알을 어떻게 피했는지 모르고 있다.“방금 총을 쏘지 않고 도망갔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임지환은 천둥의 시신을 쳐다보고는 자리를 떴다.이 정도 킬러는 보통 불법으로 넘어온 사람이라 죽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뒤에서 지시한 배후가 천둥을 킬러로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저는 또…”걱정하고 있었던 진운도 마음이 드디어 놓였다.“또 뭐요?”임지환은 진운을 힐끔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제가 그 킬러 하나 상대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겁니까?”“저도 임 선생님 안전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진운은 어색하게 물었다.“그 킬러는 어떻게 됐습니까? 놀라서 도망갔습
“임 선생님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진운은 임지환 말투 사이의 살기를 느껴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못했다.그는 남국을 데리고 차를 몰고 떠나려 하였다.“차는 남기십시오.”임지환이 말했다.“여기가 시내랑은 십몇 킬로 되는 거리라 저희가 걸어간다면 아마도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걸어야 할 겁니다.”진운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이 차는 제가 쓸 곳이 있습니다.”하는 수 없이 진운과 남국은 걸어서 자리를 떠났다.임지환은 눈을 감고 기를 고르더니 점차 숨도 멈췄다.지금의 임지환은 마치 시체와도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뒤를 몰래 쫓고 있었던 벤츠가 그들이 주차하고 있던 길로 몰고 들어왔다.차가 멈추고 표정에 살기가 가득한 검은 옷을 입은 남정네 7,8명이 차에서 내려와 신속하게 모든 출입구를 통제했다.“형님, 여기 모든 출입구는 저희가 막고 있으니까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할겁니다.”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한테 보고를 올렸다.“알았어.”소원용은 대답을 하더니 여유가 넘치는 발걸음으로 차안에서 내려왔다.그의 발걸음은 길옆에 세워진 롤스로이스로 향했다.“하하하, 이 새끼가 진짜 죽었네?”“원표야, 보고 있냐? 형이 드디어 널 위해 복수했다.”소원용은 임지환의 시신을 보고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그의 눈에는 살기가 스쳤다.“이렇게 쉽게 죽이는 건 아니었는데.” “우리 불쌍한 원표가 평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거란 생각만 하면 네 자식을 산산이 조각내도 모자랄 것 같거든.”소원용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지 권총을 꺼내 들어 임지환의 머리를 조준했다.“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진짜 그렇게 한다면 머리가 깨질 사람은 너일 거야.”갑자기 차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경악에 찬 소원용의 눈빛 아래서 서서히 눈을 뜬 임지환이다.“대체 사람이야, 귀신이야?”방금까지 기세가 등등한 소원용은 지금 총을 들고 있던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시체가 어떻게 부활해! “내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