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예원이 눈물 젖은 불쌍한 모습으로 애걸복걸 빌었지만, 그 모습에 집주인은 연민은커녕 오히려 더욱 흥분하여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짜악-우예원의 겉옷이 찢어지면서 그녀의 여리고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집주인은 삽시간에 굶주린 늑대가 어린 양을 보듯 눈을 무섭게 뜨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우예원이 절망에 빠진 순간 누군가 방문을 뻥 걷어찼다.쾅!듬직한 실루엣이 문 앞에 나타났다.“그 손 치워!”집주인이 당황한 틈을 타 그에게서 벗어난 우예원은 옷을 여민 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었다.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염무현이었다. 우현민이 그에게 우예원이 이사하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우예원은 짐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염무현과 단둘이 있기엔 왠지 모르게 어색해서 거절했었다.우현민이 염무현에게 주소를 알려줬기에 다행히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당신은 누군데 함부로 여길 들어와? 이거 주거 침입이야!”집주인은 잠깐 놀랐지만 곧바로 으름장을 놓았다.“고소당하고 싶어? 눈치가 있으면 오지랖 떨지 말고 꺼져. 아니면 무단침입으로 신고할 테니까.”염무현은 되레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신고해. 어디 한번 보자고, 경찰이 당신을 잡아갈지 나를 잡아갈지.”순식간에 기세가 꺾인 집주인은 180도 태도를 바꾸며 역겨운 미소를 지었다.“자네, 이거 다 오해야. 다 오해라니까?”염무현은 뻔뻔한 그의 말을 무시하고 우예원을 향해 물었다.“넌 어때? 괜찮아?”“괜... 괜찮아.”우예원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 모습을 본 집주인은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이대로는 안 되겠어. 상황을 바꿔야지, 안 그러면 나한테 너무 불리하겠어.”그는 일부러 오만한 태도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이봐 자네, 들었지? 이 아가씨도 괜찮다잖아. 속 좁게 그러지 말고 이 일은 이대로 넘어가자고. 보증금 40만 원에, 이 아가씨 월세도 절반 돌려줄게. 어때?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그럼... 조심해.”우예원은 복잡한 심경으로 말했다.감옥에 다녀온 염무현을 생각해 다시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으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집주인은 표정이 갈수록 일그러지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잔뜩 아부 섞인 어투로 말했다.“준구 형님, 저 진씨요. 여기 문제가 좀 생겼는데 형님께서 해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부하들도 데려오세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형님들 헛걸음하시게 둘 순 없으니 야식값은 물론이고, 깜짝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여기 형님들이 만족하실만한 엄청난 미인이 있어요. 우리 함께 즐겨보자고요. 좋아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통화를 마친 집주인은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같아 즉시 거들먹거렸다.“자네, 들었지? 준구 형님은 이 바닥에서 유명해. 북파 두목과도 어울렸던 사람이야. 서씨 가문이라고 들어봤는지 몰라. 서해 어둠의 세계에서 왕좌로 불린다고! 무섭지? 얼른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 머리 열 번 조아리면서 200만... 아니지, 내 좋은 일 망쳐놨으니까 400만 원 내놔. 깔끔하게 돈으로 보상하면 보내줄게. 하지만 저 계집은 안 돼. 쟤는 여기 있어야지, 안 그러면 내가 준구 형님에게 할 말이 없잖아. 내 말 안 들려? 귀먹었어?”짜악!우렁찬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역겨운 집주인의 주름진 얼굴로 향했다.그는 곧바로 제자리에서 튕겨 나갔고, 순식간에 부서진 유리 테이블 조각 위를 처참하게 뒹굴었다.반쪽 얼굴이 빠른 속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선명한 손바닥 자국과 함께 입을 벌려 피를 뱉자 이빨 몇 개가 섞여 나왔다.다른 한쪽도 부서진 유리 조각에 긁히고 베여 피범벅이었다.화장실에서 씻고 있던 우예원은 요란한 소리에 심장이 철렁했다.‘그렇게 걱정하던 일이 결국 일어났네.’4년을 감옥에서 지냈는데 왜 그는 전혀 달라진 게 없을까.툭하면
“이런 젠장!” 준구는 진씨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덜컥 놀랐다. “어떤 미친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내가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을 건드려. 개를 때릴 때도 주인 허락 받아야 하는 거 몰라?” 한 무리 부하들이 화가 잔뜩 난 채 몇몇은 뒤 허리에 고정된 칼을 뽑아 들었고, 일부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예원은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얼굴을 닦고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염무현이 다시 손을 쓰는 건 막아야 한다. 그가 나쁜 길로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우예원은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 앞장서서 방으로 쳐들어가던 준구의 표정이 순간 우스꽝스러워졌다. “무... 무... 무현 님, 무현 님이셨군요!”문을 열고 달려 들어올 때만 해도 화가 났던 준구의 표정이, 염무현을 보자 충격에 이어 곧바로 아부 섞인 웃음으로 바뀌었다.하도 얼굴이 빨리 바뀐 탓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얼굴 근육이 앞뒤로 뒤엉키며 무척 괴이하고도 웃긴 표정이 되었다.염무현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고, 각지고 잘생긴 얼굴 위로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당신 나 알아?” 준구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횡설수설 말했다.“압니다... 아는 걸 넘어서 영광스럽게도 인사까지 했었습니다...”“그래?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염무현의 말투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감정에 호소하는 건가?’염라대왕 앞에서 감히 한낱 버러지가 감정을 호소하다니!식은땀을 흘리던 준구는 말을 더듬으며 설명했다.“지난번 정진 영천에서 무현 님의 기품을 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똑바로 말해!”염무현의 두 눈이 번뜩이며 살기를 내뿜었다.털썩!준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로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것도 개의치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전 그때 서운혁 밑에 있다가 무현 님께 혼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씨 가문에 들어와 김범식 형님을 따르고 있습니다.”염무현은 차가운 눈빛을 거
부하들은 겁에 질려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무현 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이윽고 저마다 창피한 듯 고개를 숙였다.그 모습을 본 우예원은 깜짝 놀랐다. 집주인이 사람을 부를 때만 해도 문제가 커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양측이 싸우기도 전에 이미 끝나고 말았다. 그것도 상대가 단체로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제일 놀란 사람은 집주인 진씨였다. 엄밀히 말하면 놀랐다기보다 충격적이었다!큰 기대를 품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불렀던 사람이 상대에게 무릎을 꿇고, 그것도 모자라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며 상대의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덜덜 떨면서, 속으로 이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하지만 준구 일행의 행동을 본 순간, 마지막 남은 환상마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상대를 잘못 건드렸다!’“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면 없던 일이 되나?”염무현의 두 눈이 다시 한번 서늘하게 번뜩이자 준구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저희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시겠습니까, 말씀만 하세요.”“저 자식이 내 동생한테 개수작을 부리고 너희들까지 불러서 도와달라고 했어.”염무현이 차갑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너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도 남았겠지?”준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 말씀은...?”“뿌리부터 제거해야지!” 염무현의 말 속엔 숨은 뜻이 있었다.‘뿌리부터?’준구는 곧바로 그의 말뜻을 깨닫고 요점을 파악했다.“알겠습니다, 무현 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튀어 오르며 집주인을 가리킨 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저놈 좀 잡아!”“준구 형님, 뭐 하는 겁니까?” 사지를 벌린 채 땅바닥에 눌린 집주인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며 두려움에 떨었다.준구는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망할 자식, 감히 무현 님까지 건드리고 우리까지 끌어들여? 내가 방금 너 때문에 죽을 뻔했어!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누굴 탓하지도 마!”말을 마치기도 전에 준구는 집
“짐은 다 챙겼어?”염무현의 질문에 우예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 쌌어.”“무현 님, 제가 두 분 아래층까지 배웅해 드릴게요.”준구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갔다. “됐어, 너희들은 이만 가봐.” 염무현은 크고 작은 가방을 한 손에 가볍게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예원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준구와 그의 부하들은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무현 님, 조심히 가십시오.”우예원은 순순히 염무현을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1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상대방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 놀라웠던 건 싫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든든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문을 나서며 우예원은 염무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어렴풋이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당시 중학교에 막 입학한 우예원은 같은 반 학생 몇 명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염무현은 오빠라고 나서서 그녀를 괴롭혔던 애들을 대신 혼내줬다.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치 지금처럼...사실 우예원이 방금 전 화장실에서 달려 나왔을 때, 염무현은 이미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기에 손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염라대왕의 신분으로 굳이 준구의 손을 빌려 집주인을 처벌하진 않았을 것이다. ‘네가 폭력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적어도 네가 보는 앞에서는 때리지 말아야지.’한편 월셋집에서 부하들은 오늘 운이 너무 좋았다고 한탄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 준구 형님 덕분입니다. 형님 없었으면 저희 모두 오늘 당장 끝날 목숨이었어요. 무현 님이 말씀하지 않아도 범식 형님이 저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뿌리부터 뽑으라는 게 그런 말이었군요. 역시 준구 형님 똑똑하십니다. 존경합니다, 형님!”“저였으면 진작 당황해서 무현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몰랐을 겁니다.”잔뜩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던 준구가 얼른 다시 표정을 굳히며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임기욱 씨, 모든 지수가 정상이고 상처도 거의 다 나았습니다.” 이승휘는 검사 결과를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이건 정말 기적입니다!”“총을 맞은 부위만 놓고 봤을 때, 저희 병원에 올 때만 해도 사망 확률이 99퍼센트가 넘었습니다.” 100%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임기욱이 지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승휘가 대신 치료를 담당했다면 임기욱은 지금쯤 꽃으로 가득한 추모식장에 누워 있거나 화장터에 줄을 서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임기욱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기쁨의 표정이 역력했고, 가슴에는 여전히 불골사리 펜던트를 달고 있었다. 이승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거들었다.“정말 행운이었습니다!”염무현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에 미처 말하지 못한 한마디가 있는데, 바로 염무현이 나타나면 저승사자가 물러간다는 말이었다.이번에는 저승사자를 물리쳤다기보다, 염무현이 아예 저승사자 손에 들려 있던 사람 목숨을 빼앗아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염무현 씨에게 치료비 내는 것 잊지 마세요.”이승휘가 한 마디 덧붙였다.이전까지 임기욱은 서해에 있었고, 그의 모든 재산은 제원에 있어서 거액의 자금을 동원하려면 그가 돌아와야 했기에 그동안 치료비를 내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본인이 제원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서둘러 정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선 지불 후 치료라는 염무현의 규칙대로면 지금 임기욱은 큰 이득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알겠습니다.” 임기욱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이승휘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진료비가 본인이랑 뭔 상관이라고 참나. 꼭 내가 안 줄 것처럼 저 말을 맨날 입에 달고 사네.’이승휘는 몇 마디 더 당부하고 싶었지만 임기욱의 표정을 보고 목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됐어.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어쨌든 이건 염무현과 임기욱 사이의 문제였고, 그저 임기욱이 어떤 잔꾀도 부리지 않길 바랐다. 안 그러면 손해 보는 건 임기욱 본인일 테니까. 이
18억! 임기욱이 생각했을 땐 이것도 엄청난 금액이었다.비록 생명은 돈과 바꿀 수 없다지만 의사에게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었다. 그는 이미 가장 비싼 수술비를 기준으로 계산했고, 그것의 3배가 되는 가격을 제시하며 성의를 표현했다.고작 10분에 18억이라니! 전 세계적으로 사업하는 최고 갑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임기욱은 이렇게 많은 치료비를 염무현은 받아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흔쾌히 동의할 거라 확신했다.전화기 너머로 염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돈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구린내가 나는 이 물건들은 그의 눈에 그저 긴 숫자의 나열에 불과했다. 수입의 90퍼센트 이상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 재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렀다. 몇 세대가 평생 놀고 먹어도 다 쓸 수 없는 돈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0이 몇 개쯤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건 딱히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일 처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규칙이다! 과거 교도소에서 진료할 때는 이미 그의 명성을 듣고 온 환자들이었기에, 염무현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먼저 나서서 치료비를 내곤 했다. 임기욱이 이런 것들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염무현은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임 이사님께서 뭔가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엇, 그게 무슨 뜻이죠?” 임기욱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되물으며 손으로 느긋하게 불골사리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염무현이 말했다. “제가 직접 치료했으면 집안의 재산 절반을 내야 합니다.”이런 속세에 물든 소리를 하려니 염무현은 격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이런 사소한 일까지 전문적으로 도와줄 비서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임기욱은 곧바로 목소리를 높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염무현 씨,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대체 어느 부분이 농담처럼 들리시죠?”염무현이 되묻자 임기욱은 표정이 확 굳어졌다.“이승휘 씨는 당사자가 아니니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고 칩시다! 하지
바로 그때 전태웅의 휴대폰이 울렸고,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중요한 회의를 할 땐 무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전태웅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환한 얼굴로 말했다.“신의님 전화야. 드디어 나한테 연락이 왔네!”사실 그의 휴대폰은 무음으로 설정해서 가족들 전화에도 울리지 않았지만, 단 한 명, 염무현의 번호만은 예외였다!“다들 조용,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전태웅은 이 한마디를 하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조심스럽게 말했다.“여보세요, 신의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빨리 연락주시다니 영광입니다...”사람들은 경악했고, 현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맙소사,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거대 화하 상업 그룹의 우두머리이자,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비즈니스계의 거물 전태웅이 아니던가! 어디를 가도 존경받는 최고의 인물이 대체 누구 전화길래 이렇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받는 걸까? 대통령의 연락에도 거침없는 태도로 일관하던 전태웅은 상대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감히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들이밀면 당장에 자리를 뜰 정도로 대쪽 같은 인간이었다.무엇보다 그런 그의 태도에도 항상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상대였다.“임기욱이라는 사람 압니까?”염무현이 덤덤한 어투로 말하자 전태웅은 서둘러 대답했다.“네! 이사직을 맡고 있는 제 부하 직원인데,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로 특별히 서해로 보냈습니다.”왜 하필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서해였냐 하면, 그건 바로 염무현 때문이었다.현지 경제가 발전하고, 각종 지수가 나날이 올라가면서 간접적으로 신의님 일상의 행복지수를 올리려는 게 전태웅의 취지였으니 그야말로 충신이 따로 없었다.염무현이 말했다.“처리하세요.”“혹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태웅은 흠칫하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임기욱이 서해에서 사고라도 쳐서 신의님에게 밉보인 건가?’만약 정말 그렇다면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