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화

주서윤은 후회막급했다.

“그때 엄마 아빠가 오빠를 강씨 일가의 데릴사위로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악랄한 사람이 다 있다니! 감히 오빠를 해코지했을 뿐만 아니라 강씨 일가 자산을 빼돌리고 몰래 야반도주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씌워? 심지어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사람을 무려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지난 3년 동안 엄마 아빠도 항상 후회하고 있었어. 설령 오빠가 도망갔다고 한들 원망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본인들이 강요한 결혼이었기에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주태오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꾹 참고 잠자코 듣던 주태오도 여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서윤아, 울지 마. 이제 오빠가 돌아왔으니까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사실 그때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강씨 일가 데릴사위가 되어 해코지당했을 때 마음속에 응어리가 남아 있었지만, 여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니야! 오빠, 얼른 도망쳐. 만약 강씨 일가에서 오빠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만 가!”

이 말을 듣자 주서윤은 주태오를 밀며 밖으로 내쫓으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 왔다. SUV 차 여러 대가 잇달아 멈춰서더니 목에 금목걸이를 한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 소리에 주서윤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오빠, 얼른 가라고, 빚쟁이들이 찾아왔어.”

빚쟁이들은 대부분 문해시 불법 지대에서 출몰했고, 그중에서 가장 큰 조직인 흑범회를 등에 업고 악랄한 짓을 일삼아 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만약 주태오를 발견하면 무차별 폭행할 게 뻔했다.

“젠장, 이 미친년아, 돈 다 모았어? 오늘이 마지막 날인 거 몰라? 돈 안 갚을 거야? 너도 어디 한번 쓰레기 신세가 되어 볼래?”

선두에 선 지저분한 수염의 사내가 네댓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걸어 들어왔다.

그는 주서윤과 함께 있는 주태오를 보자 얼굴을 찡그렸다.

“넌 누구야?”

“네 알 바 아니야. 하나만 물을게. 내 동생이 다리랑 귀가 이렇게 된 게 다 너 때문이야? 그리고 눈도!”

주태오는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빠,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 있어.”

주서윤은 초조한 나머지 주태오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법 따위 안중에도 없는 빚쟁이에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말이다.

“이 개새끼가?!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는 거야? 우리 준이 형님 앞에서 그게 무슨 말투야? 함부로 주둥이를 놀렸다가 그 혀를 확 잘라버릴지도 몰라.”

옆에 있던 부하 중 한 명이 불쾌한 표정으로 칼을 들고 주태오를 가리켰다.

“맞아, 내가 때렸어. 그게 왜? 돈 안 갚으면 다리를 부러뜨리고, 귀도 못 쓰게 하고, 눈까지 멀게 할 줄 알아. 하지만 끝까지 안 갚는다? 그럼 장기라도 팔아야 하지 않겠어?”

양준은 피식 웃더니 주태오를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이 빌어먹을 년이 여동생이라고 했으니 오빠가 대신 갚아주면 되겠네. 아직 8억 넘는 빚이 남아 있으니까 어떻게...”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태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주태오는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대뜸 그를 걷어찼다.

우둑!

처참한 비명과 함께 양준은 두 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러고 나서 따귀를 힘껏 내리치자 이빨이 양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내 귀에서도 선혈이 흘러내려 청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주태오는 손을 번쩍 들어 그의 눈을 힘껏 찔렀다.

“악!”

눈알을 찔려 다치게 된 양준은 실명까지 했다.

그러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바닥에 무릎 꿇고 통곡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련을 일으키며 숨을 거두었다.

“내 여동생을 괴롭힌 자는 죽게 될 거야.”

주태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부하들이 선제공격하는 주태오를 보자 버럭 화를 냈다.

“감히 우리 준이 형님을 죽여?! 얘들아, 덤벼!”

대여섯 명의 부하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태오의 발길질 한 방에 모두 날아가 떨어졌고, 아수라장이 된 바닥에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악! 너 이제 죽었어! 우린 흑범회 사람이야. 어디 한번 두고 봐!”

부하들이 양준의 시체를 들어 올리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반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주서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 당황한 목소리로 연신 질문만 던졌다.

“오빠? 방금 무슨 일이야? 빚쟁이들은?”

“내가 쫓아 보냈어. 괜찮아, 이제 안심해.”

주태오는 서둘러 뛰어가 여동생을 위로했다.

“설마 때린 건 아니지? 오빠, 저자들은 무려 흑범회 사람이라고, 얼른 도망쳐!”

주서윤은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흑범회는 문해시 불법 지대에서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는 조직 중 하나였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주태오는 큰코다치기 마련이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우선 네 상처부터 좀 살펴보자.”

주태오는 흑범회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드래곤 하트를 지닌 이상 전 세계에 뻗어져 나간 신용파는 그의 지휘를 따르기 마련이다.

소집 명령을 내리게 되면 신용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데, 코딱지만 한 흑범회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주서윤의 부상이 더 걱정되었다.

상처를 꼼꼼히 살핀 주태오는 안색이 어두웠다.

“양쪽 눈은 망막박리 상태이고, 고막이 찢어졌어. 두 다리는 골절이라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이고,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 마비가 되었어.”

그녀의 증상은 현대 의학으로는 절대로 치료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척추 골절과 신경 괴사는 불치병이라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오빠, 그만 봐. 어차피 치료할 수도 없는데... 오빠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거든.”

주서윤은 오히려 그가 걱정할까 봐 되레 위로해 줬다. 철이 든 여동생의 모습에 주태오는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아니야, 오빠한테 맡겨.”

주태오가 장담했다.

신용파 두목이 세계 최고의 의술도 가르쳐 준 덕분에 그는 한의, 침술, 추나, 심지어 독술까지 능통했다.

심지어 전설 속 숨만 붙어 있어도 구사일생할 수 있는 칠성현맥(七星玄脈) 침술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했다.

따라서 현대 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질병도 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 침이나 바늘 있어?”

주태오가 물었다.

“응, 잠깐만, 찾아볼게.”

비록 무엇을 하려는지 의심이 가긴 했으나 주서윤은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반짓고리를 발견했다.

“그동안 의술도 조금 익혔는데 병세가 더는 악화하지 않게 현상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우선 침을 놓을 거야. 그리고 시력과 청력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줄게.”

주태오는 반짓고리를 열었다.

주서윤의 증상이 오래 지속된 만큼 오로지 침술만으로는 역부족이라서 고급 약재를 사용한 약물 치료까지 동반해야만 했다.

만약 병세에 적합한 약물만 찾는다면 완치는 떼놓은 당상이다.

“침을 맞는다고 그게 가능해? 심지어 다시 일어서게 한다고?”

주서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침술로 정녕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단 말인가?

척추가 부러져 신경까지 괴사해서 아무리 잘나가는 의사도 속수무책일 텐데...

주서윤은 단지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전혀 믿지 않았다.

주태오는 말없이 손을 번쩍 들어 바늘에 기를 불어 넣었다. 이내 바늘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만약 이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주서윤은 깜짝 놀라 비명이 저절로 나왔을 것이다.

이는 침술 중에서도 가장 어렵기로 소문 난 공중 부양 침술이다.

주태오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바늘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0.5cm만 남겨두고 주서윤의 몸속 깊이 박혔다.

그러나 주서윤은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전신이 나른해졌다.

“칠성현맥! 기운으로 혈맥을 관통하라!”

주태오는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때, 은색 바늘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물결 모양을 이루었는데 마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쿨럭!”

주서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검은 피를 한입 가득 토해냈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