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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너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양호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명의라면 적어도 나이가 지긋한 영감일 줄 알았는데 젊은이라니.

다른 사람들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태오를 쳐다보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저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저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치료한다는 게 말이 돼요?”

유범수는 대놓고 얕잡아보았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장난을 쳐? 여봐라, 당장 이놈을 내쫓아!”

화가 난 양호연은 다짜고짜 주태오를 내쫓으려 했다.

“아빠, 안 돼요.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죠.”

양채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끈다면 어르신 정말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주태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흥! 헛소리! 난 네가 어르신을 치료할 거라고 믿지 않아. 만약 진짜로 치료한다면 무릎 꿇고 스승으로 모실게.”

유범수는 피식 웃으며 건방을 떨었다.

“날 스승으로 모신다고요? 당신 같은 쓰레기도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태오도 그와 못지않게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너!”

유범수는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다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주태오를 확 꼬집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이들도 주태오가 너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어찌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일단 해봐. 만약 치료하지 못하고 장난하는 거라면... 그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거야. 흥!”

양호연은 결국 하는 수 없이 길을 비켜주며 주태오를 들여보냈다. 그의 말속에 협박의 뜻이 짙게 담겨있었다.

주태오는 덤덤하게 다가가 침대 위의 양천용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제때 도착해서 살릴 수는 있겠어요.”

“계속 큰소리치네?”

유범수는 속으로 그를 호되게 꾸짖은 후 재미난 구경을 볼 준비를 했다.

그때 주태오가 은침을 꺼냈다.

“침을 어르신의 몸속에 넣고 움직이게 하면서 끊어진 심맥을 봉합할 겁니다.”

그의 말에 유범수는 더는 참지 못했다. 그는 주태오가 의학을 모욕하고 사람들의 지능을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들을 필요도 없는 허망한 소리였다.

“듣자 듣자 하니까 점점 황당한 소리만 하네? 침을 몸속에 넣어서 움직이게 한다고? 그건 신이나 할 수 있는 거야. 더는 볼 필요도 없어요. 무턱대고 침을 놓았다가 어르신이 목숨이라도 잃으면 어떡해요? 그냥 지금 당장 저 자식의 다리를 분질러버리고 쫓아내요.”

유범수의 말에 양채원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그녀도 주태오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진짜로 사기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양호연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결국 화를 내지 않고 꾹 참았다. 주태오가 어떻게 할지 계속 지켜보았다.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네요.”

주태오는 싸늘하게 웃고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손가락을 움직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은침들이 양천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곧이어 열 손가락을 움직이자 양천용의 피부 속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마치 진짜로 은침들이 움직이듯 북두칠성 무늬를 이루었다. 신기한 기술에 사람들은 저마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침을 몸속에 넣고 기로 끌어당겼어요. 이게 바로 칠성현맥 침술이라는 겁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유범수는 너무도 놀라 두 눈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주태오가 이런 침술을 익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전설 속의 칠성현맥 침술이었다.

털썩!

유범수는 놀란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의학 천재 정성해가 와도 놀라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어쩐지 주태오가 오만하기 그지없더라니, 유범수는 주태오의 제자가 될 자격이 정말로 없었다.

그렇다! 제자는 물론이고 밑에서 하찮은 심부름을 할 자격도 없다.

“뭐야?”

양호연과 양채원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고 양씨 일가 사람들도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쓰읍!”

놀라운 광경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유범수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의학 천재 정성해의 제자로서 그의 의술을 전수받아 명의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런 명의가 무명 젊은이에게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고 주태오를 쳐다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주태오가 힘을 거두어들이자 은빛이 양천용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빙빙 돌면서 침가방에 스스로 들어갔다.

“됐어요. 어르신의 병은 이미 치료됐어요. 이따가 처방전을 써줄게요. 처방에 따라 약을 제때 드신다면 한 달 내로 완치할 겁니다.”

그때 양천용이 기침을 하자 얼굴의 흑빛이 사라졌고 정말로 깨어났다.

“명의, 명의시군요!”

양호연은 양천용이 깨어난 걸 보고는 너무도 흥분하여 몸까지 파르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명의님. 아까는 제가 명의님도 몰라뵙고 예의 없게 굴었어요. 명의님을 모욕까지 하다니,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유범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주태오가 혹시라도 조금 전의 복수를 할까 너무도 두려웠다.

주태오 같은 경지에 다다르면 은침 하나로도 그를 수백 번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주태오는 유범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

“어르신!”

양채원 등 이들은 재빨리 양천용에게 다가갔다.

“콜록콜록. 저승 문턱까지 간 나를 살리다니, 대체 어떤 귀한 분이야?”

양천용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몸이 아까보다 한결 편해졌다.

양채원 등 이들이 길을 터주자 주태오가 웃으며 다가갔다. 그런데 양천용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들 나가고 채원이와 호연이만 남아.”

양천용의 긴장한 모습에 사람들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바로 나갔다. 나가면서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유범수도 끌고 나갔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던 양채원과 양호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때 양천용이 주태오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본 게 맞다면 너 혹시 주태오? 주씨 의약 회사의 그놈 맞지?”

그의 말에 양채원과 양호연은 다시 충격에 빠졌다. 양채원은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당신이 바로 강씨 일가의 돈을 수억 원 들고 도망간 주태오예요?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그 쓰레기장은... 아, 생각났어요. 거긴 주씨 일가의 의약 회사였어요.”

“어르신의 기억력이 이렇게나 좋을 줄 몰랐네요. 예전에 연회에서 어르신을 뵀었고 말도 몇 마디 나눴었어요. 어르신이 절 기억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주태오가 웃어 보였다.

사실 주씨 일가의 회사는 양씨 일가 같은 큰 가문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양천용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의외였다.

“그때 봤을 때도 네놈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못 본 사이에 의술 실력이 이렇게나 늘었어? 그때 그 일, 다른 사정이 있었던 거 맞지?”

양천용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역시 어르신은 예리한 안목을 지니셨네요. 그때 강나리가 저에게 데릴사위로 들어오라고 한 건 사실 제 심장을 꺼내서 연라성의 용수호에게 이식할 목적이었어요. 저희 집 회사가 망한 것도 다 그 여자 때문이고요.”

주태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양채원과 양호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내 목숨을 살려주긴 했지만 난 강씨 일가와 맞설 수 없어. 왜냐하면 강씨 일가는 연라성의 용씨 일가와 정략결혼을 하기로 해서 실력이 우리 양씨 일가보다 훨씬 강해. 하지만 네가 멀리 떠나고 싶다면 이름을 숨기고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그리고 먹고사는데 걱정 없이 자금도 지원해주고 권력도 누리게 해줄게.”

양천용이 천천히 말했다.

그는 주태오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는 돈과 권력, 그리고 실력이 전부니까.

그런데 주태오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인데 무엇으로 강씨 일가와 맞서겠는가?

그냥 꾹 참고 문해시를 떠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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