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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각
신룡각
작가: 비오

제1화

“나왔다! 드디어 탈출했어! 하하하!”

구름 위에 우뚝 솟은 용마 절벽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뒤흔들렸다.

한 마리의 야수를 연상케 하는 주태오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서 불쑥 튀어나와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고래고래 외쳤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깜짝 놀라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여태껏 생존자가 없기로 소문 난 용마 절벽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 있다니!

“무려 3년 만이야! 강나리, 그때 내 심장을 도려내고 용마 절벽에서 밀어버렸을 때 살아남을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주태오의 얼굴에는 살의로 가득했다.

3년 전, 주태오는 부모님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8년 동안이나 사귄 여자 친구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강씨 일가의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회전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진정한 목적은 연라성 용수호에게 그의 심장을 이식하는 대가로 강씨 일가 첫째 딸 강나리가 재벌 집에 시집갈 기회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태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심지어 절벽 아래에 있는 신용파 두목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신용파란 무엇인가? 무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테러 조직이다.

이에 소속된 4대 세력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전 세계에 걸쳐 막대한 자산과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

설령 최강 암살 조직 또는 영웅호걸이라고 해도 신용파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려야 할 신세였다.

오늘날 세상에서 최상위급에 해당한 존재라고 가히 칭할 수 있다.

따라서 신용파라는 말만 들어도 다들 겁에 질려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절대 지존인 드래곤 하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은 자만이 신용파를 장악할 수 있지 않은가!

주태오를 발견한 신용파 두목은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심지어 자신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주태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체내의 드래곤 하트를 이식해 주고 그동안 연마한 모든 기술까지 남김없이 전수했다.

“이제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다 배웠구나. 다양한 방면에서 이미 날 훨씬 뛰어넘었으니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로군. 너에게 더는 가르쳐줄 게 없단다. 그동안 신용파는 자취를 너무 오래 감춘 것 같아. 우리 신용파의 위엄을 까맣게 잊은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심지어 신용파를 집어삼키려는 만행을 시도하는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태오야, 이제 속세로 돌아가! 널 무시하고, 배신한 사람에게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우리 신용파의 명성을 다시 떨치거라!”

이 말을 끝으로 노인은 숨을 거두었다.

심장 없이 오로지 의지와 실력만으로 3년을 버텼다는 자체가 이미 기적에 가까웠다.

“네, 사부님!”

주태오는 무릎 꿇고 절을 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노인을 묻은 다음 그는 용마 절벽을 떠났다.

용마 절벽.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낸 주태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 부모님 회사는 부도 위기를 무사히 넘겼나? 우선 집에 가서 부모님부터 찾아뵈어야지.”

당시 강씨 일가의 데릴사위가 되는 대신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부모님의 사업 자금에 보태주려고 했다. 이미 3년이 지난 지금은 집안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단 말이지?

비록 용마 절벽에서 집까지 거리가 한참 되었지만, 현재의 주태오에게는 코앞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은 총 3가지였다. 첫 번째는 복수, 두 번째는 8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를 위한 보상, 세 번째는 신용파의 명성을 되살리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태오는 주씨 일가가 있는 문해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헌 옷 수거함을 발견했는데, 버린 옷을 찾아서 갈아입었다. 원래 입었던 옷은 거의 누더기가 되기 직전이라 부모님의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그는 넋을 잃고 말았다.

깔끔하던 저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장이 들어섰는데, 마침 청소차에서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파리가 마구 날아다니고 더럽고 너저분한 건 물론 고약한 냄새까지 풍겼다.

“이게 무슨 일이지?”

주태오는 어안이 벙벙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쓰레기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이내 허름한 판잣집이 나타났는데, 기침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재빨리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제발, 문만큼은 부수지 마세요! 노크하는 소리 다 들리니까 금방 열어드릴게요.”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태오는 다름 아닌 자기 여동생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판잣집 문이 끼익 열렸다.

“제발... 제발 부탁드릴게요. 부모님께서 쓰레기 수거하러 나갔으니 금방 돈 모아서 드릴게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될까요?”

뼈만 앙상한 여자가 휠체어에 앉아 힘겹게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매라도 맞을까 봐 두려운 듯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안았다.

주태오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는 여자를 보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의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 가녀린 아이가 여동생인 주서윤일 줄이야!

게다가 여동생은 한창 예쁘고 활기찬 나이인데 왜 갑자기 휠체어를 타게 되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윤아? 나야, 주태오! 네 오빠!”

주태오는 떨리는 손으로 주서윤의 팔을 붙잡았다.

“뭐? 뭐라고요?”

주서윤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앙상한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실망으로 가득한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당신, 대체 누구야!”

“네 오빠 주태오라고, 서윤아, 오빠 잊었어?”

그제야 여동생의 뿌연 눈동자가 보였는데 이건 분명 실명 전조 증상이다. 심지어 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동생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니!

게다가 딱 봐도 따귀를 너무 심하게 맞아 다친 탓인데, 대체 범인은 누구란 말이지?

‘감히 내 여동생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해?!’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에 주태오는 여동생을 품에 덥석 끌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오빠 태오라고, 서윤아, 내가 떠난 3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리 오빠? 그럴 리가! 구라 치지 말고 썩 꺼져.”

주서윤은 마치 자극이라도 받은 듯 뼈만 앙상한 팔을 미친 듯이 휘적거렸고, 그 바람에 낡아빠진 휠체어가 맥없이 넘어졌다.

“썩 꺼져! 저리 안 가?! 내 몸에 손대지 마.”

주서윤은 땅을 기어가는 한 마리의 벌레처럼 불구가 된 하체를 끌고 바닥에서 버둥거렸다.

이내 울며불며 말했다.

“강나리가 우리 오빠는 3년 전에 강씨 일가의 자산을 일부 빼돌려 야반도주했다고 했어. 아니면 우리도 빚을 갚기 위해 이런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거야. 엄마 아빠 회사는 이미 부도나서 집도 쓰레기장으로 바뀌고, 지금은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지경이라고. 심지어 난 빚쟁이에게 두들겨 맞아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잖아.”

이 말을 들은 주태오는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강씨 일가는 자금을 지원해주기는커녕 그를 해코지한 다음 가족마저 파멸의 길로 몰고 갔던 것이다.

여동생의 처참한 모습에 주태오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아악! 강나리, 이 악독한 여자야,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그는 서둘러 다가가 주서윤을 일으켜 세웠다. 비록 끊임없이 발버둥 쳤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휠체어에 앉혔다.

“서윤아, 우선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강나리가 얘기한 게 사실이 아니야. 나도 모함당한 입장이거든. 당시 강씨 일가의 데릴사위로 맞이하겠다는 말은 덫에 불과할 뿐, 실은 강나리가 연라성 용씨 일가에 시집갈 기회를 얻기 위해서 내 심장을 연라성 용수호에게 이식해 줬어. 만약 고상한 분을 만나 심장을 이식받지 못했더라면 용마 절벽 아래서 아무도 모르게 죽었을 거야.”

주태오가 웃옷을 걷어 올리자 가슴에 끔찍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말...?”

주서윤은 몸부림치는 대신 앙상한 손가락을 뻗어 덜덜 떨며 주태오의 가슴을 만졌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흉터를 만질 수 있었다.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움찔했다.

이렇게 큰 상처가 생기다니? 대체 얼마나 아팠겠냐는 말이다.

심장이 없는 상황에서 주태오는 어떻게 그 모든 시련과 고난을 견뎌냈을까? 주서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픈데 말이다.

“오빠... 드디어 돌아왔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에 실명하기 직전인 주서윤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뿌옇게 변한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어 주태오의 얼굴을 보려고 했으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형체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오빠가 안 보여... 하지만 너무 보고 싶었어. 지난 3년 동안 오빠를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주서윤은 주태오의 턱을 살포시 받쳐 들었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를 힘겹게 뜨고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곧 실명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앞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주태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두 줄기의 피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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