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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누가 봐도 겁을 먹은 부모님의 모습에 주태오도 두 분이 더 놀라실까 봐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무리 초라한 처지에 빠졌다고 한들 거짓말하면 쓰겠어? 남의 공로를 가로채거나 제 분수도 모르고 나대는 건 제일 잘못된 거야. 주태오, 나쁜 버릇은 바로바로 고쳐야 해, 알겠어?”

주민국은 노발대발하며 주태오에게 호통쳤다.

흑범회 손범수는 무려 누구인가? 그런 분이 어찌 주태오의 부하일 리가 있겠는가?

만약 주태오의 부하라는 게 사실이라면 지난 3년 동안 오문덕 일당에게 이 지경까지 당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흑범회에서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서둘러 떠났을지도 모르기에 주민국은 주태오가 거짓말한다고 확신했다.

“당신도 참, 그냥 넘어가. 태오도 우리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한 거겠지. 자, 다들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얘기해.”

조하영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하며 주태오를 끌고 집에 들어섰다.

“엄마, 아빠, 제가 집을 비운 3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자금줄이 끊어졌다고 해도 파산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주태오가 물었다.

주씨 일가의 자금줄이 끊겼다고 해서 폭삭 망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당시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부모님께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는가?

“휴, 말하자면 끝이 없어.”

주민국은 착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알고 보니 회사 주주들은 일찌감치 강씨 일가에게 매수되었다.

자금줄이 끊겼을 때 매수당한 주주는 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주씨 일가의 의약 관련 핵심 기밀을 강씨 일가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챙겨 뻔뻔스럽게 강씨 일가와 손을 잡았다.

결국 주씨 일가의 제약회사는 완전히 망했다.

주민국과 조하영이 준비한 모든 대안도 무용지물이 되었고, 되레 몇십억이라는 거액의 빚만 떠안았다.

설령 모든 자산을 팔아도 전부 다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여전히 8억이 넘는 빚이 남아 있었다.

더욱 괘씸한 건 강씨 일가에서 각종 판로와 자원을 독점해 주씨 일가의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짓밟아 버렸고, ZX 그룹까지 매각해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돈을 갚기 위해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주서윤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며 매일 쓰레기를 수거하러 다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해도 강씨 일가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오문덕을 비롯한 흑범회 사람들을 고용해 수시로 빚 독촉시켰고, 자칫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 대뜸 매질부터 했다. 주서윤이 다친 것도 결국 흑범회 때문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주태오의 눈에 살의가 점점 차올랐고, 지금 당장 강씨 일가를 찾아가 쑥대밭을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아들아, 진정해. 강씨 일가는 워낙 막강한 집안이라 우리는 적수가 안 돼. 복수할 생각 따위 하지 마, 알겠지? 얼른 네 동생 데리고 멀리 도망가. 둘만 잘 살면 엄마는 여한이 없단다.”

조하영은 눈물을 닦으며 진지하게 주태오를 타일렀고, 절대 복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돈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

주태오는 입만 벙긋하더니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끝내 대신 복수해주겠다는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무려 8억이 넘는 돈인데, 네가 무슨 수로 갚아? 아빠랑 엄마가 어떻게든 갚을게.”

주민국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 오로지 주태오가 주서윤을 데리고 도망쳤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어차피 앞으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두 사람이 쓰레기장에 남아서 평생 빚을 갚아도 상관없었다. 둘이 죽고 나면 강씨 일가도 포기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강씨 일가에서 주태오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로 봐주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남은 돈마저 갚으라고 강요할 게 뻔했다.

무려 8억이지 않은가? 노예처럼 일해도 죽을 때까지 8억은 벌기 힘들다.

“아빠도 왜 믿지 않...”

주태오가 다시 설득하려는 찰나 ‘짝’하는 소리와 함께 주민국은 따귀를 세게 내리치며 큰 소리로 호통쳤다.

“이 자식이 나 열받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도망가라고 했더니 아직도 버티고 뭐해? 얼른 네 동생 데리고 가라고! 죽고 싶어 환장했어? 복수 따위 꿈도 꾸지 마.”

그는 주태오마저 강씨 일가에게 모함당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이제 고작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들이 대체 무슨 수로 강씨 일가와 싸우냐는 말이다.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격하게 기침하더니 피를 토해내고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여보!”

“아빠!”

조하영과 주서윤이 깜짝 놀라면서 외쳤다.

주태오는 서둘러 주민국을 부축하고 손으로 맥박을 짚었는데, 안색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맥박이 뛰는 속도가 심상치 않아요. 아마 폐에 문제가 있나 봐요.”

말을 마치고 나서 침대에 눕히더니 웃옷을 걷어 올려 그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빠, 아빠 어디가 안 좋은데?”

주서윤이 당황한 얼굴로 휠체어를 타고 다가왔다. 아직 컨디션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장시간 서 있는 건 무리였다.

“여보, 죽으면 안 돼!”

조하영은 울음기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혹시 그동안 유해가스를 흡입한 적이 있어요?"

주태오는 주민국의 혈자리를 몇 군데 차례로 눌러 우선 병세를 완화했다.

“한 번은 네 아빠랑 플라스틱 수거하러 다니다가 구리 선이 담겨 있는 페트병을 발견했거든. 그래서 구리 선을 꺼내 팔려고 페트병에 불을 지폈는데, 네 아빠는 항상 연기에 그을려 가무잡잡해서 다녔고 폐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하긴 했어.”

조하영이 잽싸게 대답했다.

하지만 고작 페트병을 태워서 먼지나 연기를 흡입했다고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제가 추측하건대 페트병에 독약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아빠는 이미 폐 섬유화 단계에 진입해서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이에요.”

주태오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고, 마음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는 강씨 일가가 꾸민 짓이 틀림없었다.

“뭐? 폐섬유화증?”

두 눈이 휘둥그레진 조하영은 다리가 나른해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폐섬유화증은 불치병으로 조하영도 잘 알고 있다.

무려 폐가 서서히 괴사하면서 숨쉬기 점점 힘들어져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병이지 않은가?!

“어쩐지 누가 구리 선을 페트병에 넣어서 버린다 했어. 일부러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거였군.”

조하영도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엄마, 일단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맥박을 짚어볼게요.”

주태오는 서둘러 조하영의 맥박을 짚었고, 안색이 또 한 번 어두워졌다.

조하영도 폐 섬유화 단계에 진입하여 수명이 3일밖에 안 남은 상태였다.

아악! 망할 강씨 일가!

주태오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나도 그때 연기를 좀 마셨는데, 강씨 일가 사람이 우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조하영이 입을 가린 손바닥을 내리자 피가 흥건했는데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조하영은 주태오의 팔을 덥석 붙잡고 거의 몸을 찰싹 붙어 있다시피 기대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들아, 엄마가 이렇게 애원할게. 복수는 꿈도 꾸지 마. 어차피 우리는 강씨 일가의 상대가 안 돼. 안 그러면 엄마가 죽어도 눈을 편히 감지 못한단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말을 겨우 마친 뒤 그녀도 기절하고 쓰러졌다.

간절한 애원에 주태오는 마지막 이성의 끈마저 놓쳐버렸다. 이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두 줄기의 눈물이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씨 일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주태오는 조하영을 안아서 침대에 눕힌 뒤, 증세가 악화하지 않도록 혈자리를 눌렀다.

조하영은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여전히 중얼거렸다.

“얼른 가, 아들아.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말고...”

“아빠! 엄마!”

주서윤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서윤아, 걱정하지 마. 약만 찾으면 엄마 아빠를 치료할 수 있거든. 우선 약 좀 구해올게.”

주태오가 주서윤을 위로했다.

“오빠, 진짜야? 엄마 아빠를 치료해줄 수 있어? 근데... 불치병 아니었어?”

주서윤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신으로 가득했고, 단지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약을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껏해야 목숨을 며칠만 더 연장할 뿐, 속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다.

“나만 믿어. 일단 약 사러 다녀올 테니까 엄마, 아빠를 잘 부탁해.”

주태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주민국과 조하영은 물론 여동생의 병까지 치료할 수는 있지만, 필요한 약재의 가격이 전부 고가에 속했다. 우선 지금은 당장 약 살 돈부터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칠지도 모른다.

발걸음을 떼자마자 주태오는 멀지 않은 곳에 몰래 숨어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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