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재욱과 15년 동안 사랑했고, 그 시간은 내내 달콤했다. 하지만 어느 날, 다른 여자가 그의 삶에 들어오면서 내가 알던 권재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권재욱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나와 이혼하려 했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그가 돌아올 거라 믿으며 그의 손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제는 내가 이 감정을 끝내야 할 때라는 것을.
더 보기전에 학교 정문에서 날 구해줬던 선배였다.이렇게 우연히 또 날 한번 구해줬다.그날 나는 그 선배에게 밥을 사주었고 그제야 선배의 이름이 강시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고 점점 편해졌다.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취미도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한 달 뒤, 이웃이 아버지에게 내 남자 친구로 어떠냐며 소개해 준 사람이 시운이었다.반년 뒤, 우리는 결혼했다.결혼식 날, 시운은 내가 높은 하이힐을 신어 힘들까 봐 메이크업 실에서 쉬게 하고 시운이 나가서 손님을 맞이했다.재욱이 갑자기 수염도 안 깎고 충혈된 눈으로 나타나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고 가슴이 아파했다.“지혜야.”재욱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요즘 꿈꿨는데, 꿈에서 우리 결혼했더라. 근데 내가 너 배신하고 하연을 좋아하게 돼서 너한테 상처 줬어. 그리고 우리 아이도 잃어버렸고.”재욱은 창백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이거 다 그냥 꿈이지? 맞지?”나는 재욱을 바라보았다.나는 이 일을 다시 꺼내면 날 힘들게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나는 아주 평온했다.“아니야, 이거 다 꿈 아니야.”재욱의 몸이 흔들렸다.“어떻게...?”재욱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그래서 그때 네가 갑자기 날 차갑게 대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재욱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울면서 말했다.“근데 지혜야, 그거 나 아니잖아.”재욱은 쉰 목소리로 울먹였다.“난 너 배신하지 않았어!”“근데 그게 바로 너야.”나는 힘들어하는 재욱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넌 똑같은 결정을 하겠지.”“난 그렇지 않아.”“그건 네가 지금 내가 겪었던 고통을 겪어서야!”난 재욱의 말을 끊어버렸다.재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꿈속의 재욱은 날 사랑하지만 자기 발로 걸어들어온 신선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은 재욱이 타고난 성질이다.“가. 내 남편 곧 올 거야.”나는 말을 하면
“앞으로 꼭 주의할게!”경비원이 동의했다.나는 그제야 아까 날 도와준 남학생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 남학생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그 뒤로 한동안 나는 재욱을 만나지 못했다.경비원에게 들었는데, 재욱이 여러 번 왔었는데, 경비원이 다 돌려보내고 학교에서 재욱의 부모님을 찾아 학교로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퇴학 처리하겠다고 했었단다.재욱의 아버지, 어머니는 급히 학교로 가 재욱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나 재욱은 여전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 내가 동창 모임에 참석했을 때, 친구들이 재욱이 아직 졸업하지 못했다고 했다.졸업하고 나서 나는 예전에 재욱을 도와 정리해 놨던 인맥을 아버지 회사로 불러들였다.곧이어 나와 아버지의 노력으로 회사는 나날이 자리를 잡아 갔고 어머니의 유품도 더 빨리 받아올 수 있었다.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다시 졸업하고 돌아온 재욱에게 막혀 버렸다.이번에는 하연도 마주쳤다.“재욱 오빠!”하연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벌레처럼 재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재욱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나한테서 좀 떨어져 줄래? 나 너 안 좋아한다고 얘기했잖아!”재욱은 말하다가 날 발견하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지혜야, 나 졸업하고 돌아왔어. 나도 내 회사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와서 날 도와줄래?”나는 웃으며 재욱을 바라보았다.“우리 아빠 회사가 곧 세워지는데, 널 도와달라고?”재욱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내 회사 안 와도 돼. 근데 우리...?”“우리 아무 사이 아니잖아?”나는 재욱의 말을 끊어버리고 옆에 있는 하연을 바라보았다.“너 좋아하는 여자 생긴 거 아니야?”“아니! 나랑 얘 아무 사이도 아니야!”재욱은 큰소리로 설명했다.나는 뒤에 있던 하연이 상처받은 표정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전에 상처를 받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남자는 다 똑같네, 가질 수 없는 걸 항상 가지려고 하네.’내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재욱이 내 팔을 잡았다.
“난 대학교 간 다음의 일은 그때 얘기하자고 했지.”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 그때가 되면 우리 만나자고 말 안 했어.”재욱의 몸이 휘청였고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재욱의 마음속에는 나랑 재욱이 곧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재욱은 한 번도 자신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앞으로도.재욱이 그렇게 대범하게 하연과 만난 것도 내가 재욱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재욱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그러나 평생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지혜도 그렇고 앞으로의 지혜도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재욱을 보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그 뒤로 재욱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방학 내내 우리 집 앞에 와서 나한테 계속 전화를 걸었고 마지막에는 아버지까지 재욱이 왜 저러냐고 물었다.아버지는 내가 재욱을 전에 좋아했는데 지금은 거절했다는 것을 보아냈다.나는 아버지한테 이제는 재욱을 안 좋아한다고 얘기했다.재욱이 다시 나타나 날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학교에 가서 수속을 밟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 뒤로 나는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려줬다.전생에 내가 재욱을 무척 좋아했을 때, 이 친구들이 내 옆에서 날 말렸었는데, 그때는 귀에 말이 들어오지 않아, 결국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났었다.이번 생에 나는 그 친구들을 아주 아꼈고 친구들도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재욱은 내가 핸드폰 번호를 바꾼 것을 알고 학교에 찾아왔지만, 학교에서 외부인은 출입 금지라고 해서 재욱은 학교 정문에서 날 기다렸다.재욱이 다니는 학교는 여기랑 멀리 떨어져 있어 KTX를 타고 세 시간 가야 했다. 이렇게 갔다 왔다 하는 바람에 수업을 많이 빼먹어 학교에서 경고하였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재욱을 못 본 척했다. 그런데 재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쳐있었다.어느 한번 내가 학교 밖에서 먹을 것을 사
‘아니면 재욱이 고정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관심이 없어졌나?’그때가 되면 하연이 아니어도 다른 여자를 좋아했을 것이 분명했다.“지혜!”재욱이 날 발견하고 구세주를 만난 듯이 날 불렀다.그러나 나는 재욱을 못 본 척 옆으로 지나갔고 곁눈질로 재욱의 굳어버린 얼굴을 보았다.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계속해서 재욱을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내가 너무 무시하자, 재욱도 참을 수 없었는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날 막아섰다.“지혜야, 너 왜 갑자기 이렇게 차가워졌어?”재욱이 눈시울이 빨개져서 날 바라보았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것을 보면 요즘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어제 후배가 나한테 고백해서?”재욱이 나한테 다가오며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나 거절했어! 나...!”“난 지금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나는 재욱의 말을 끊어버렸다.재욱이 잠시 굳었더니,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아, 그런 거였구나. 그럼 내가 너랑 같이 공부할게. 대학교 가면 우리 다시...!”“대학교 간 뒤의 일은 그때 다시 보자.”재욱의 입술이 움직였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눈치였다.대학 입시 시험까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재욱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재욱은 예전처럼 매일 날 따라 학교에 오고 갔다. 그저 날 방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대학 입시 시험이 끝나고 나는 전생보다 100점 정도 많이 맞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재욱은 전생보다 잘 못 쳐 좋은 대학에는 갈 수 없었다. 특히 전생에 갔던 그 좋은 대학과는 인연이 없었다.대학교 지원서를 작성할 때, 재욱은 전생과 같이 나한테 어디 학교를 갈지 물었고 나는 전생과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거라고 했다.그러나 난 본 지방의 좋은 대학을 썼다.입학 통지서가 나온 날, 재욱이 우리 집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아버지도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걱정시키게 하기 싫어서 집 밖으로 나왔다.문을 열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주방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짙은 연기에 나는 매워 기침했다.“캑캑캑!”아버지는 손을 이리저리 휘적이며,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학교 끝났어? 밥하다가 태워버려서...!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갔다.나는 아버지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품속에 파묻었다.“왜 그래?”아버지는 조금 놀랐지만, 곧 나의 등을 토닥이며 날 위로해 주었다.“그냥 좀 태운 것뿐이잖아. 아빠가 다시 하면 되지, 아니면 우리 나가서 먹을까?”나는 눈물이 나 대답하지 못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계속 슬픔에 빠져 아버지의 슬픔을 알아채지 못했다. 후에 대학 입시 시험에 영향이 가지 않게 하려고 아버지는 바쁜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밥하는 법, 집안일 하는 법을 배웠다.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응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재욱을 위해 아버지랑 싸우고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다.만약 내가 재욱과 계속 함께 하겠다고 고집만 피우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유품마저 못 가져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나는 그때의 결정을 몹시 후회했다.나는 방에 돌아가 익숙한 배치를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재욱과 함께 산 뒤로 나는 아주 오래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나는 아버지가 날 위해 만들어준 책상을 만져보고 10여 년 누웠었던 침대에 천천히 앉았다.나는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었다.집에서 뛰어내리고 몸에서 피가 흘러나올 때,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사실 예상 못 했던 일은 아니다. 두 달 전, 재욱이 술에 취해, 재욱의 친구가 습관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그때 재욱이 이혼 서류를 나한테 준 뒤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다.내가 재욱을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와 침대에 눕혔을 때, 재욱이 날 강제로 끌어다가 관계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때 재욱이 불렀던 이름은 내가 아닌 하연이었다.그 뒤 첫 달에 나는 생리를 하지 않았다
“지혜야, 너 이 문제 할 줄 알아?”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눈앞에는 교복을 입고 장난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칠판에는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다.재욱이 나한테 이혼하자고 한 기간 동안 나의 꿈에 무수히 나왔던 장면이었다.나는 재욱이 날 가장 좋아했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나 또 꿈꾸는 건가?’“지혜야, 내 말 안 들려? 무슨 멍을 그렇게 때려?”길고 예쁜 손이 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고개를 돌리자, 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재욱과 눈이 마주쳤다. 거의 눈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고 재욱은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아주 오랫동안 재욱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마 일 년, 이년, 더 된 것 같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나는 이 꿈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이상한 감이 들었다.왜냐하면 전에 꿈에서도 나는 재욱이 이렇게 찬란하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도 하고 재욱의 얼굴이 정말 고등학교 때처럼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내 기억의 깊은 곳에 있던 어릴 적 재욱이 다시 나타났다.“지금 몇 년도야?”내가 물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재욱이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대답해 주었다.“오늘 금요일이잖아. 공부 너무 해서 바보 됐나?”“아니, 몇 년도냐고?”“2011년3월25일, 금요일이야.”재욱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너 내일이 네 생일이라고 얘기했었잖아. 잊어버렸어?”‘2011년?’나는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진짜네? 이거 꿈 아니야? 나 정말 2011년으로 돌아온 거야?’이때의 나는 금방 어머니가 돌아가서 재욱의 도움으로 그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학교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가 재욱에게 너무 의지해서 재욱과 한평생 같이 있고 싶다고 결심한 상태였다.“지혜야.”재욱이 생각에 잠겨있던 날 끄집어냈다.재욱은 안쓰럽다는 듯이 날 바라보았다.“너 또 아줌마 생각했어?”재욱은 내 손을 잡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지나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재욱은 나한테 정말 잘해줬었다. 진심으로 관심해 주고 아껴줬다.나는 우리가 정말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만 눈 감고 넘기면 우리는 계속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욱을 용서해 주었다.그러나 한 달이 지난 뒤, 하연이 자살 시도를 했다.하연은 집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하기 전에 재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절 책임지지 못하시는 거 사장님 탓 안 할게요.]이때 재욱은 나랑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이 메시지를 보고 미친 듯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가버렸다.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버려둔 채.재욱은 3일 동안 자취를 감춰 버렸고 다시 나타났을 때 나에게 이혼 서류를 건넸다.“지혜야, 우리 이혼하자. 하연은 나 없으면 안 돼.”이혼 서류를 봤을 때, 나의 모든 분노와 자만했던 마음이 깡그리 사라졌다.나는 그 이혼 서류를 가져다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난 너랑 이혼 안 해!”나는 재욱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해도 재욱이 곁을 떠나기 싫었다.그렇게 나와 재욱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욱은 나한테 보여주듯이 모든 사람 앞에 하연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모님의 자리가 곧 바뀌리라는 것을 보여줬다.재욱의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재욱을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재욱은 어릴 때부터 예쁘게 자라 한 번도 한 사람을 위해 세상과 맞서는 느낌이 무엇인지 느껴본 적이 없었다.하연 앞에서 재욱은 멋있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재욱은 이런 느낌이 좋았다.재욱은 집에서 나가 하연과 같이 살았고 매달 집에 이혼 서류를 보내는 외에 나랑 연락하지 않았다.내가 재욱의 소식을 하연의 인스타그램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같이 있었던 뒤, 하연은 두 사람의 일상을 계속 공유했다. 같이 쇼핑하고 여행을 다니고 재욱이 선물한 것들까지 모두 공유했다.나는 재욱이 이런 서프라이즈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저 나한테만 안 해준 것이었다.나는 하연을 차단하고 싶었지만,
재욱은 날 바라보더니 갑자기 날 품에 안았다.“지혜야, 나 너 좋아해. 내가 너 평생 지켜줘도 될까?”나는 재욱의 품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그날을 떠올렸다. 재욱이 나한테 자기도 곁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던 진지한 표정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재욱과 결혼했다.결혼한 첫해에 우리는 세계를 혼돈에 빠뜨렸던 바이러스를 맞이하게 되었다.그때 재욱이 출장을 가서 내가 혼자 집에 있었는데, 약을 구하지 못했고 뉴스에서는 매일 전날보다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와 너무 무서웠었다.그러나 밤중에 나는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 나는 긴장해서 문에 난 구멍으로 내다봤는데, 문 앞에 재욱이 서 있었다.재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어떻게 왔어?”오후에 분명 나랑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 있었는데 말이다.“운전해서 왔지.”재욱은 두꺼운 마스크를 끼고 말했다.“넌 나오지 마.”재욱은 사 온 약을 문 앞에 놓았다.“내가 가면 나와서 약 가져.”“어디가?”내가 물었다.‘집 왔는데, 어디 가지?’“아직 처리 못 한 일이 있어서.”재욱은 급히 떠났다.후에 알았는데, 그날 재욱이 열이 펄펄 끓는데도 5시간을 운전해서 나에게 약을 가져다준 것이다.다른 사람을 시켜서 보내도 되는데, 보내는 길에 다른 사람한테 뺏길까 봐, 그렇게 되면 내가 먹을 약이 없을까 봐 직접 왔다.이렇게 날 사랑하던 사람이 회사에 새로 들어온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재욱은 그 여자가 순수해서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고 했다.내가 조사해 보니 그 여자는 확실히 순수하고 귀엽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 버림받은 어린 시절을 보내 남자가 보호하고 싶게 만들었다.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의 스토리를 이용해 전에 여러 남자와 놀았다.이 증거들을 재욱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믿지 않았다.“지혜야, 너 사업을 너무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왜 사람을 나쁜 쪽으로만 생각해?”재욱은 하연이 순수
이것은 나랑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다.나는 재욱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곧이어 재욱은 하연의 어깨를 감싸며 담담히 말했다.“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면 왜 경매에서 가지지 못했어?”나는 재욱이 하연의 어깨에 놓인 손의 네 번째 손가락에 옅어진 반지 자국을 보았다.“나 돈 그렇게 많지 않아.”“그건 네 문제지.”재욱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나랑 이혼하는 거 조금만 빨리 동의해 줬다면, 내가 너한테 배상금 줬을 텐데, 그럼 이거 살 수 있잖아?”재욱의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에 와서 꽂혔다.“그래서 네가 하연 씨에게 이 목걸이 사준 이유가 나랑 이혼하기 위해서야?”나는 말을 하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권재욱,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나 너한테 아무 감정 안 남았어. 지혜야, 넌 왜 날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거야?”그날, 나는 결국 하연의 손에서 목걸이를 가져오지 못했다.집에 돌아오고 나서 내 머릿속에 재욱이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을 바라봤다. 이 그림과 배치는 모두 나와 재욱이 함께 한 것이다.‘우리 전에 함께 할 미래를 그려왔는데, 너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나는 믿을 수 없었다.재욱이 하연을 데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얘기했어도 난 이혼하기 싫었다. 나는 재욱을 놓을 수 없었다.나는 탁자 위에 놓인 우리의 사진을 보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나랑 재욱은 고등학교 때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우등생이었고 재욱은 장난만 치면서 공부하기 싫어하던 학생이었다. 재욱은 내 뒤에 앉아 내 머리로 장난쳤다.내가 고개를 돌려 재욱과 화를 내자, 재욱이 나한테 글이 적힌 메모장을 건네주었다.“지혜야, 나 너 좋아해, 나랑 만나지 않을래?”그날부터 재욱은 매일 일찍 일어나 내 집 앞에서 날 기다리면서 같이 등, 하교했다.후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재욱을 알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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