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동생이 수영장에 잠시 빠졌다는 이유로, 남편은 나를 묶어서 수영장에 밀어 넣어버렸다. 고작 2센티 정도 숨 쉴 구멍만 남겨준 채. “청아가 받은 고통을 두 배로 돌려줄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수영할 줄 몰랐던 나는 필사적으로 숨 쉬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차가운 질타였다.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넌 영원히 몰라.” 나는 절망에 몸부림치며 마구 허둥댔다. 5일 뒤, 그는 마침내 마음이 약해져 이 벌을 끝내려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풀어주겠지만, 다음에 또 그러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하지만 그는 몰랐다. 내 시체는 이미 물에 퍼져 퉁퉁 부어올랐다는 것을.
View More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안에 함께 들어가려 했지만 도저히 경찰서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나는 유용한 정보라도 얻으려고 경찰서 입구를 떠돌았다.하지만 너무 드문드문 들은 탓에 허승호가 이미 죄를 인정해 감옥살이할 거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얼마나 감옥살이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심지어 청아도 탈세 혐의, 그것도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함께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나는 경찰서 문 밖을 한참 동안 떠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마침내 재판 날짜가 다가왔고, 나는 경찰차를 따라 경찰서로 향했다.경찰서에 있는 두 사람은 더 이상 반짝반짝 빛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퇴폐해진 얼굴로 경찰차에 앉아 바깥 풍경을 마련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렇게 어느덧 법정에 도착했다. 당연히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 시도했더니, 놀랍게도 들어갈 수 있었다.나는 잔뜩 흥분해서 정 경장의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정 경장이 허승호의 죄증을 말할 때 고맙다는 말이 제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말해봤자 정 경장은 듣지 못했다.법원에서 나는 경찰에 신고한 착한 사람이 허승호의 비서라는 걸 알았다.그는 내 시체를 본 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결국 경찰에 신고했던 모양이다.법원에서 그는 눈물 젖은 설명을 하며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발견한 순간 신고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미뤄서 미안하다고.하지만 괜찮았다. 이렇게 경찰에 신고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으니까.내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비서는 당연히 듣지 못했다.나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이 모든 걸 지켜봤다. 다행히 판결 결과에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허승호는 사형을 선고받고, 허청아는 십몇 년 형을 선고받았다.두 사람이 연행되는 걸 보니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결국 나는 시체를 호송하는 차를 따라 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대로 계속 장례식장에 지낼 줄 알았는데 경철
“아...”청아는 승호의 몸 위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옷으로 몸을 다급히 가렸다.승호도 그제야 경찰을 발견하고 다급히 서서 옷차림을 정리했다.하지만 경찰은 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지하실에 있는 수영장으로 걸어갔다.수영장 옆에서 언뜻 봤던 내가 떠올랐는지, 승호는 다급히 경찰을 막았다.“아무리 경찰이라도, 이렇게 가정집에 무단침입하는 건 불법 아니에요? 어느 소속이에요? 신고할 거예요.”경찰은 싸늘한 눈빛으로 승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경찰청장으로 돼 보이는 다른 경찰 한 명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승호에게 말했다.“허승호 씨 맞으십니까? 정현섭 경장입니다. 허승호 씨가 권시율 씨를 악의적으로 살해했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시체가 집 수영장에 있다는 제보를 받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경찰의 말에 놀란 허승호는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소파를 짚고 겨우 버텼다. 그러면서 억지로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뭔가 착각하신 거 아닌가요? 아내가 제 여동생을 수영장으로 민 걸 혼내려고 수영장에 가두고 겁 좀 준 것뿐이에요. 안 그래도 아내가 도망쳐서 찾고 있던 중이에요.”눈앞의 광경에 나는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대체 어떤 착한 사람이 나를 도와 신고 전화를 했는지? 허승호가 벌받게 해줘서 그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허승호를 죽이지 못하는 게 내 한이었는데.’정 경장은 승호를 옆으로 밀어 버리더니 곧장 지하실로 향했다.“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확인하고 나서 정말 결백하시다면 풀어드릴 겁니다.”승호가 겁먹은 모습을 보니 나는 신이 나서 수영장까지 같이 들어갔다.이곳은 내 시체가 있는 곳이자, 내가 영혼이 되고 나서 처음 돌아온 곳이기도 하다.시체의 악취가 너무 강한 탓에 수영장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쪼그리고 앉아 구역질을 해댔다.결국 정 경장은 마스크를 끼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오랜만에 내 시체를 보는 것이라 그런지 이제는 예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아예 시체 옆으로 다가가
그 꽃가루들은 무대와 관중석에 떨어졌지만 내 몸에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무대 아래에서 나는 부드러운 얼굴로 청아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벤까지 호송하는 승호를 바라봤다.시동이 걸리자 승호는 감동한 듯 청아를 끌어안았다.“청아야, 고마워. 항상 내 곁에 있어 줘.”청아는 으쓱한 미소를 지으며 승호를 끌어안더니, 그의 귓불에 입 맞췄다.그러다가 제가 원하는 대로 붉게 물든 승호의 귀를 보더니 작게 속삭였다.“그럴게. 항상 오빠 곁에 있을게.”콘서트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승호은 나를 찾아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그는 수많은 인력과 물력을 동원해 회사 직원들에게 선포했다. 나를 찾거나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보상으로 현찰을 주겠다고.심지어 나를 직접 제 앞에 데려오는 사람에게는 서울 중심에 있는 집 한 채를 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나는 헛웃음이 나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끔 승호 뒤에 가서 찬바람을 불었다.그러다가 아무 반응 없는 그를 보며 맥 빠진 소리를 했다.“그럴 필요 뭐가 있어? 이미 나를 봤잖아.”저녁 식사 후, 청아는 술에 취한 것처럼 승호의 품에 기대더니 자기 옷 단추를 풀어헤쳤다.“오빠, 나 정말 오빠랑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승호는 그런 청아를 품에 안더니 안쓰러운 듯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럴 거야. 우리는 영원히 같이 있을 거야.”청아는 승호의 목을 끌어안고 애교 부리는 듯 말했다.“정말이야?”승호는 감격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청아의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청아야, 나...”“오빠, 사랑해...”“나도...”곧 맞닿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입술을 본 순간, 나는 구역질이나 몸을 돌렸다.두 사람 사이가 단순한 오빠 동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입 맞추는 걸 보게 될 줄이야.정말 눈 뜨고 봐주기 힘들었다.나는 여느 때처럼 스위치 쪽으로 날아가 힘껏 스위치를 눌렀다.당연히 예전처럼 아무 반응 없을 줄 알았는데, 불이 갑자기 꺼져버렸다.갑자기 닥친 어둠에 승호는 흠
“죽으면 죽었지. 당신 목숨은 청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 부모님도 죽었잖아. 부모님 만나게 해주는 건데 감사해야지.”나는 몸부림치고 반항했지만 승호의 동작은 점점 거칠어졌고, 나를 보는 눈빛은 점점 싸늘해졌다.“청아를 밀었으면 사죄해야지.”내가 협조하지 않자 그는 내 손목을 부러뜨렸고, 내 아랫배를 걷어찬 뒤 나를 수영장에 던져버렸다.“죽어, 이 천한 x!”죽기 전 마지막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사실 나도 까먹었다.아마도 애초에 승호를 선택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거라고 자부했던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승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죽었다.원래대로라면 부모님을 만나야 하는데, 내 눈에는 왜 두 분이 보이지 않는 걸까?그 후 며칠 동안 승호는 나에 관한 일을 알아보지 않았다.오히려 청아의 콘서트 때문에 바삐 보냈다. 그녀를 위해 꽃을 준비하고, 백댄서를 초대하고, 가장 호화로운 경기장을 빌려주었다.게다가 사치스러운 불꽃으로 무대를 꾸며주고, 콘서트 당일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승호가 정성껏 준비한 모든 걸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참 아이러니하게도 승호가 쓴 돈은 모두 내 돈이다.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수많은 재산을 남겨 주셨는데, 결혼한 뒤, 승호는 별의별 이유로 그 돈을 가져갔다.그동안 승호가 그 돈으로 부모님 회사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 이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승호는 내 부모님의 회사 지분을 모두 처리하고 그 돈을 자기 회사에 투자했다.그 막대한 유산으로 1층짜리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승호는 단번에 재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고, 내 부모님의 회사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언급되지 않았다.그리고 오늘, 부모님이 남겨주셨던 재산은 그가 나를 찌르는 칼이 되었다.그때 허씨 가문이 위기에 빠졌을 때, 분명 우리 가문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청아는 오히려 회사에 위기가 빠졌을 때 돈을 몽땅 털어 해외로 도망쳤는데.심지어 해외에서 금수
승호는 아직도 내가 죽은 척 위장하고 도망쳤다고 믿고 있었다.심지어 본인의 추측을 검증하려고 수영장 CCTV까지 확인했다.영상 속에는 내가 수영장에 던져진 뒤 버둥대며 몸부림 치다가 점점 움직임을 멈춘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하지만 승호는 여전히 믿지 않으며 컴퓨터를 주먹으로 내리쳐 하마터면 고장 낼 뻔했다. 그러더니 노기를 띤 얼굴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이후로 계속 똑같은 화면이잖아. 권시율이 도망치고 일부러 조작한 거야. 분명 그 여자 짓이야! 이 천한 것!”승호는 컴퓨터를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그렇게 컴퓨터 하나를 산산조각 내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또 옆에 있는 컵을 들어 바닥에 내리꽂았다.그러다가 옆에서 겁을 먹은 청아를 발견하고는 이내 다정하게 달래주었다.“청아야, 겁먹지 마.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권시율이 너무 책임감 없어서 화난 거야. 너를 그렇게 해치고 도망치다니. 속상해하지 마. 네 콘서트 날 내가 반드시 그 여자 찾아내서 사과하게 할 거야.”잔뜩 겁먹었던 청아는 다시 우쭐해서 승호 품에 안겨 감동한 듯 말했.“역시 나한테 제일 잘해주는 건 오빠밖에 없어.”고작 이 한마디에 승호는 얼굴을 붉히며 청아를 꽉 끌어안았다.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봤으면 너무 달달하다고 외쳤겠지만 나는 구역질이 났다.알고 있었으니까. 청아는 허씨 집안 양녀지만 늘 허 사모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승호를 설득하여 나와 결혼하게 한 것도, 자기의 더러운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거다.아쉽지만 애초에 나는 그걸 알지 못했고, 승호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설레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심지어 결혼식 날, 모처럼 인스타를 올려 축하한 승호의 글을 캡쳐해서 내 소중한 사람들한테 자랑했다.내가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반박하려다가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어 결국 인정했던 적도 있다.“사랑에 눈 먼 게 어때서!”한때 나는 내가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승호는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라
한참이 지나서야 승호는 뭔가 생각난 듯 옆에 있는 덮개를 발로 찼다. 그러고는 계속 헛구역질을 해대는 비서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너지? 네가 마네킹을 안에 넣고 권시율 빼돌린 거지?”비서는 쓰레기통을 품에 안고 계속 헛구역질을 해대다가 승호의 말에 마지못해 대답했다.“대표님, 정말 저랑 아무 상관없습니다.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우엑... 사모님일 거예요.”하지만 비서의 말에 승호는 오히려 낯빛이 좋아지더니 수영을 향해 비아냥거렸다.중얼중얼 말을 내뱉는 걸 봐서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가짜야! 저건 가짜라고!”“권시율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마네킹을 안에 넣은 거야. 내 그럴 줄 알았어. 권시율 그 악독한 여자가 쉽게 뉘우칠 리가 없지.”“기다려, 내가 그 여자를 찾아내면 반드시 청아 앞에 끌고 가서 사과하게 할 거야.”승호의 말이 너무 우스워 나는 그 주의를 빙 맴돌았다.“허승호, 나 바로 당신 앞에 있어. 다 봤잖아. 시체도 다 썩었잖아. 물에 불려 저렇게 부풀었잖아. 그런데 아직도 나를 끌고 가서 청아한테 사과하게 할 생각뿐이야? 정말 꿈도 야무지네.”비서는 눈앞의 승호를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사모님은 이미... 죽었어요.”승호는 옆에 던졌던 빗자루를 주어 비서의 다리를 내리쳤다.그러다 비서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다리를 감싸안자 빗자루를 버리고 싸늘하게 말했다.“저 여자가 죽었을 리가 없잖아. 벌받기 싫어서 마네킹을 가져다 놓은 게 틀림없다니까.”“흥, 내가 그렇게 쉽게 속을 줄 알고? 기다려, 내가 꼭 단서를 모아 그 여자를 찾아낼 테니까. 청아 앞에서 무릎 꿇고 속죄하게 할 거야!”승호는 말하면서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면서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비서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뒤따랐다.청아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돌아온 승호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옆으로 달라갔다. 그러더니 안쓰러운 듯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오빠, 왜 그렇게 화나 있어? 언니랑 또 싸웠어?
나와 승호는 비즈니스로 맺어진 부부지만,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다름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만난 인연 때문에.그때, 이제 막 서울로 전학 온 나는 학교 폭력의 타깃이 되었다.내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항해도 여러 사람을 혼자 이길 수는 없었다.하지만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승호가 나타났다. 그가 나를 구해줬다.때문에 비즈니스 결혼 상대가 승호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너무 설레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승호가 이 결혼을 승낙한 게 회사 자금줄이 끊겨 우리 집 도움이 필요해서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애초에 나를 도와줬던 것도 그 학교 폭력의 주동자가 청아라서, 청아가 고발당할까 봐 걱정돼서 도와준 거였다.하지만 그래도 승호와 결혼한 몇 년 동안, 나는 성심성의껏 그를 내조했다.그가 밖에서 잘 먹고 다니지 못할까 봐 매일 음식을 해다 회사로 바쳤더니 승호도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점차 나에게 선물도 사주고, 서프라이즈도 준비하곤 했다.그때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임신한 사실을 안 내가 너무 설레서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을 때, 남편은 이미 청아의 말에 현혹되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당신 임신했어? 청아가 지난번에 당신이 다른 남자랑 같이 있는 걸 봤대. 그 애새끼도 그놈 거야?”나는 설명하려 했지만, 승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을 깨뜨리며 나를 아내의 도리도 지키지 않는 여자라고 몰아갔다.영혼은 아픔을 느끼지 못할 텐데, 왠지 모르게 나는 또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내가 한참 동안 오지 않자 승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30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거야?”“권시율, 제대로 된 이유를 대야 할 거야.”나는 승호가 당황해 하며 청아를 끌어안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컵도 제대로 쥐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청아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나 잠깐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내가 꼭 그 여자
전화를 받은 승호는 서둘러 회의를 중단하고 집으로 달려왔다.그러고는 수영장에서 물 좀 먹은 청아를 안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청아야, 청아야. 떠나지 마. 난 너 없으면 안 돼...”위층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내 헛웃음만 나왔다.‘참 가지가지 하네.’청아가 수영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이별을 하는 것처럼 구는지.하지만 승호가 내 머리채를 잡아 끌어 나를 수영장으로 밀어 넣을 때, 나는 비로소 두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어떻게 그렇게 악독할 수 있어? 감히 청아를 물에 밀어 넣어? 청아가 하마터면 너 때문에 죽을 뻔한 거 알아? 내가 하마터면 청아를 영원히 잃을 뻔했다고.”“권시율, 넌 악마야. 넌 내 앞에서 마음대로 할 자격 없어. 청아가 받은 고통을 몇 배로 돌려줄게! 뉘우치지 않으면 영원히 나올 생각 하지 마!”승호는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단정지었기에, 나는 결국 울며불며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아니다.“대표님, 대표님... 사모님이 숨을 안 쉽니다.”청아를 달래며 요구르트를 떠주던 승호의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의 표정을 보며 적어도 죄책감을 가지겠지, 그게 아니라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그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피식 웃더니 계속해서 청아에게 요구르트를 먹여주었다.“그 여자가 죽었다고? 그 여자 끈질겨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죽었으면 진작 죽었겠지. 가서 말해 줘. 계속 죽은 척하면 화장터 알아봐 주겠다고.”비서는 전전긍긍하며 뭔가 더 말하려는 듯했지만 승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반시간 뒤에도 깨끗이 단장하고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한 번 더 벌받을 줄 알라고 해.”비서는 당황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때 승호가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을 집어 비서에게 던지며 버럭 소리쳤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가서 말하라니까!”비서는 헐레벌떡 사무실을 나갔다.승호는 청아의
때문에 영혼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눈앞의 광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또다시 저 숨 막히는 공간으로 돌아갈까 봐.그 시각 다른 곳에서 승호는 청아를 달래고 있었다.“무서워하지 마. 많이 먹어. 너 요즘 너무 말랐어.”승호는 청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위로했다.“얼마나 서러웠으면 이렇게 살이 빠졌어? 너에 비하면 그 여자가 고생 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너한테 그렇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승호의 뒤에 서 있는 내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당장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지 않았다.나는 수영장에 갇혀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고작 수영장에서 물 몇 모금 마신 청아의 고통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니.수영장 갇혔던 나는 수영도 할 줄도 몰라 나가겠다고 버둥댔지만, 머리 위를 막고 있는 덮개를 끝내 열지 못했다.생명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빌고 빌었다.승호가 나를 빨리 꺼내주기를, 아직도 살 희망이 있기를.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주먹으로 두드리며 머리 위를 막고 있는 덮개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그의 매정한 비아냥만 돌아왔다.“넌 그렇게 무서우면서, 감히 청아를 물에 빠뜨려? 너도 그 고통을 느껴야 자기 잘못을 알게 될 거야.”나는 겁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가 하지도 않는 죄를 인정했고, 승호가 나를 놔주기를 애원했다.하지만 실패했다.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 승호가 말한 말이 내 귀에 콕 박혔다.“얌전해지도록 덮개를 제대로 닫아. 제대로 반성하라고 해.”나는 무력하게 승호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덮개가 나를 완전히 공기와 단절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하반신에서 피가 나더니 내 인생의 마지막 빛이 점멸했다.청아를 달래 준 뒤에야 승호는 성은이라도 내리듯 말했다.“가서 권시율 풀어줘. 깨끗하게 씻겨서 데려와. 더러운 오물을 보면 청아가 놀랄 수 있으니까.”승호는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듯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비서는
점심 11시, 허승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봤다.“권시율은 뭐 하느라 이틀 동안이나 음식 배달 안 하는 거야? 매일 식사 시간 전에 음식 가져다줬잖아? 왜? 벌 좀 받았다고 해이해졌나? 어디서 나온 배짱이래?”수저를 세팅하던 비서의 손이 잠깐 굳더니 이내 공손히 대꾸했다.“대표님, 사모님은 아직도 수영장에 갇혀 있어요.”흠칫 놀라 굳어버린 승호의 눈에 놀라움이 언뜻 지나갔다.하지만 그는 이내 그 감정을 누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괜찮아, 며칠 더 가둬.”비서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리며 상사의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사모님을 가둔 방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는데, 아마도...”“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승호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악취? 아무렴, 그렇겠지. 똥오줌을 안에서 해결하고 있을 테니 악취가 안 날 수가 있나? 걱정하지 마, 살 희망은 한 가닥도 놓지 않는 여자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비서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승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잘라버렸다.“밥 먹어. 이럴 때 그런 징그러운 얘기는 하지 마. 요 며칠간 그 여자도 자기 잘못을 뉘우쳤을 거야. 나온 뒤 청아한테 사과하면 이 일은 없었던 일로 쳐주려고.”승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청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오빠...”승호는 청아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자기 품에 끌어안더니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청아야, 왜 왔어? 혼자 집에 있기 무서웠어?”그러면서 청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권시율을 제대로 벌했어.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청아는 승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애살스럽게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 하지만 난 그저 시율 언니 사과를 받고 싶지 벌받게 하려는 거 아니었어. 오빠가 이러면 시율 언니가 나 미워하지 않을까?”승호은 동생의 등을 토닥이며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럴 위인이 못 되니까.”남매의 감정을 이미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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