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미쳤어?”유준은 가면을 벗고 하영을 향해 소리쳤다.“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 지금 여기서 다른 남자와 춤추고 있어?”하영은 유준에게 잡혀 빨갛게 부은 손목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유준 씨랑 무슨 상관이죠?”유준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왜 상관없어? 그래도 한때 너의 상사였는데, 이렇게 스스로 망가지는 걸 두고 보란 얘기야?”‘내가 망가졌다고?’정유준의 눈에 고작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는 생각에 하영은 눈시울을 붉혔다.그동안 억눌러왔던 고통이 유준의 한 마디에 완전 폭발하고 말았다.“오늘은 양다인이 주인공인데, 주인공한테 가면 되잖아요!”하영은 유준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왜 나한테 와서 귀찮게 굴어요?”말을 마친 하영이 자리를 뜨려 하자 유준은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대체 뭘 하려는 건지 얘기해 봐. 또 그 남자랑 춤이나 출 거야? 남자 손길이 그렇게도 좋아? 그 자식 손이 어디 있었는지 알기나 해?”그 말에 하영은 멍해지고 말았다.‘내가 남자 손길을 좋아한다고? 그럼 양다인이랑 계속 만나는 건 뭔데?’하영은 유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알아들었어요?”하영이 다시 춤을 추러 간다는 생각에 유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바로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겨 머리를 잡고 입을 맞췄다.그러자 하영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읍……, 당신…….”유준은 놔줄 생각이 없는지 하영의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고, 하영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밀어내지 못했다.유준은 계속해서 입술을 탐했고, 하영이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놔주고,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얘기해 줘. 내가 얼마나 도와주고 싶은지 알아? 그런데 혹시 실수라도 해서 너한테 방해만 될까 봐 그렇게 하지 못했어!”유준의 말에 하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만약 얘기해 주지 않으면, 복수는커녕 이 휴게실을 나서지도 못할 것 같았다.하영
10분 뒤 악단의 연주가 멈추고, 가면을 쓴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소진 그룹의 눈부신 행적을 얘기했다.“이어서 우리 소진 그룹 회장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그러자 무대 아래에서 우렁찬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소백중이 웃으며 무대에 올랐다.마이크 앞에 선 소백중은 오늘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오늘은 소진 그룹이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저는 중대한 사안을 발표하고자 합니다!”소백중은 무대 아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이제부터 저의 외손녀를 무대에 모시겠습니다.”그때 하영의 곁에 앉은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회장님께서 설마 지분을 손녀한테 넘기는 건 아니겠지?”“그럴 것 같은데? 소문에 회장님이 외손녀를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잖아.”“…….”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하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니, 주위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영에게 시선을 던졌다.유준의 시선도 하영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잠시 뒤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눈을 가늘게 떴다.‘이제 곧 강하영이 찾은 증거들이 화면이 나타나겠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유준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하영을 위해 마지막 히든카드는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하영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볼 수 없었기에, 유준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저 여자는 누구죠?”“몰리요. 가면을 쓰고 있는데 누가 알아보겠어요?”“뭐 하려는 거죠? 지금 무대로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지금 소진 그룹 외손녀가 무대에 오르는 순서인데, 대체 어쩌려고 저러지?”“어디서 온 미친X인지 모르겠지만, 이따가 곧 끌려나갈 거예요.”하지만 아쉽게도 경호원들은 하영을 보고 막아설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양다인은 드레스 자락을 들고 천천히 무대로 올라가 곁에 서더니 소백중과 포옹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오늘 소진 그룹 100
무대 아래에서 술렁이는 얘기를 들은 소백중은 하영을 노려봤다.“대체 누구시죠? 왜 저의 연회를 망치려는 겁니까?”하영은 소백중을 향해 다가갔다.“회장님께서 나이가 드셔서 어떤 일은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시는 것 같은데, 양다인은 회장님 외손녀가 아니에요. 그런 정말 모든 주식을 외분인에게 넘길 생각입니까?”“그게 무슨 헛소리야?”양다인은 하영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경호원 어디있어? 당장 이 미친 여자를 끌어내!”경호원이 꼼짝도하지 않는 것을 보자 양다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소예준……, 소예준이 배치한 경호원들이구나! 지금 여기서 내 정체를 밝힐 생각이야?’양다인은 온몸을 덜덜 떨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영을 응시했다.“안 내려가?”하영은 피식 웃으며 비웃었다.“뭐가 겁나서 그래? 내가 증거라도 내 놓을까 봐?”양다인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내, 내가 할아버지 손녀가 아니라는 증거 있어? 만약 거짓말이면 소진 그룹을 적으로 돌리자는 거지!”하영은 양다인에게 바싹 다가가 입을 열었다.“어떤게 바로 증거인지 다 같이 한번 볼까?”말을 마친 하영은 CCTV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무대 위 상황을 지켜보았다.시간은 1분 1초가 흘러가고 있지만 뒤에 있는 스크린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그러자 하영의 표정도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캐리와 오빠는 대체 뭐 하는 거야?’“웃겨 죽겠네! 지금 정신병자가 여기서 미친 짓하고 있었던 거네.”갑자기 무대 아래서 누군가 비웃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난 또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그냥 소란이였어?”“빨리 꺼져! 쪽팔리지도 않아?”“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여기가 어딘줄 알고 소란을 피워?”“소진 그룹을 적으로 돌리다니, 이제 넌 죽었어!”무대 아래에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와,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리는 하영을 보고, 양다인은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정말 증거
“안녕하세요,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제 말 들려요?”그때 갑자기 앳되고 익숙한 목소리가 하영의 귀로 흘러들었다.연회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두가 일제히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눈을 번쩍 뜬 하영이 스크린에 나타난 세준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몸이 굳어져버렸다.‘세준이?’“다들 말씀이 없는 걸 보니 제 말 들리시는 거죠?”세준의 우아한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저 꼬마는 누구죠?”“외모가 정유준 대표를 닮았네요! 정유준 대표님 아드님 아니에요?”“대표님 아드님 본 적 있는데, 아들이었던 것 같아요.”“그럼 틀림없겠죠.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죠?”“모르죠. 일단 조용히 있어 봐요!”세준이 목청을 가다듬었다.“일단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강세준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발생한 사건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이 여러분 앞에 나타나게 됐네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에요? 정말 너무 저급하네요!”세준의 비웃음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앉아 있는 유준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상류층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욕을 해주다니, 역시 내 아들이야! 배짱도 두둑하고, 카리스마 넘치네!’세준이 계속 말을 이었다.“저기 이름이 양 뭐라고 했지? 함부로 우리 엄마 비난하지 마시죠? 그때 당시 엄마가 살인을 저지른 게 확실해요? 그쪽도 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만약 반박하고 싶다면 그 전에 이 영상부터 확인해 보시죠!”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하영과 양다인이 카페에 앉아있는 장면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소리는 없었지만 뒤에 보면 종업원이 건넨 레몬티를 마신 하영이 쓰러졌고, 그때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두 경호원이 쓰러진 하영을 한 아파트로 끌고가기 시작했고, 양다인이 그 뒤를 따랐다. 곧 이어 노란 머리 남자도 그 아파트로 들어갔다.“과정이 좀 길어서 여기서부터 제가 빨리 감기로 보여드릴게요.”말을 마친 세준은 영상을 배속으로 보여줬고, 한참 뒤에 피를 뒤집어쓴 양다인이 아파트에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린 양다인은 불안한 눈빛으로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소백중을 쳐다보았다.“할아버지…….”양다인은 얼른 소백중 곁으로 기어갔다.“할아버지,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정말 그런 일은 한 적 없어요!”소백중은 생기 없는 눈빛으로 양다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귀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들려왔고, 가슴은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5년이나 내가 아끼던 외손녀가 가짜라니…….’소백중은 비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그만 가거라.”그 말에 양다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하, 할아버지…….”“나는 네 할아버지 아니다.”소백중은 힘없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우리 집안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게 됐구나.”“할아버지!”양다인은 소백중을 향해 울부짖었다.“강하영 말을 믿으시면 안 돼요. 거짓말이에요, 분명 거짓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하영이 앞으로 다가갔지만, 소백중은 차마 고개를 들어 하영의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백중은 양다인이 억장이 무너진 듯 울어대며 절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더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잠시 후 소예준이 서둘러 무대 위로 올라왔고, 하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양다인 앞으로 다가가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니, 너도 여기 남아있을 이유 없잖아.”양다인은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매서운 눈빛으로 예준을 노려보았다.“너희 둘이 한통속이 되어 꾸민 짓이지? 할아버지가 나를 내쫓게 하려고 그런 거잖아! 소예준, 나야말로 진짜 너의 동생인데, 대체 왜 남을 돕는 건데?”“드디어 미쳤구나.”예준이 작은 소리로 양다인을 비웃었다.“경호원! 당장 이 여자를 끌어내!”예준의 말에 꼼짝도 안 하던 경호원들이 전부 무대 위로 올라와 양다인을 끌어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너희들 분명 후회할 거야! 후회할 거라고! 나야말로 진짜 소진 그룹 손녀야. 내가 진
정원에는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쌓여 있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다.하영은 코를 막고 깨진 창문과 얼굴에 생채기가 난 채로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을 바라보았다.하영은 경호원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오늘은 돌아가서 씻고 푹 쉬고 있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강하영 씨, 저희가 청소부한테 연락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요.”말을 마친 하영은 별장에 들어섰고, 인기척을 느낀 인나와 주희가 얼른 아래층으로 뛰어내려왔다.인나는 하영을 보자마자 순간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다.“하영아…….”인나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와 하영을 덥석 껴안았다.“뉴스 봤어! 양다인이 드디어 벌을 받게 됐네!”하영은 그런 인나의 등을 토닥이며 작은 소리로 달래줬다.“그동안 많이 무서웠지?”인나는 고개를 저었다.“네가 해결할 줄 알았어! 하영아, 이제 드디어 5년 동안 짊어진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네.”하영은 인나에게 아직 양다인을 돕고 있는 배후가 있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었고,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어.”인나는 하영을 놓아주고, 들뜬 표정으로 주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주희 씨, 얼른 그거 줘요!”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건넸고, 인나는 그걸 다시 하영에게 전해줬다.“하영아, 이거 오늘 별장에서 소동 피우던 사람들 명단이야.”하영은 종이를 받아 힐끔 보더니, 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이 일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뭐?”인나는 눈을 크게 떴다.“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자.”“…….”난원. 유준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경호원이 막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고, 세준은 턱을 살짝 쳐들고 유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저한테 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유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결국은 너의 엄마를 위한 일인데, 보상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세준은 유준을 똑바로 직시했다.“엄마를 위한
“데리러 오라고 얘기할게.”유준은 우유를 들어 세희에게 건네 주었다.“이거 마시고 씻어야지.”“네!”다음 날.하영은 잠에서 깨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실검을 확인했고, 하룻밤 사이에 반전된 호평과 사과의 댓긍르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으려 할 때 소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하영은 곁에서 곤히 잠든 인나를 보고 욕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소정 씨,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야?”“대표님!”소정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대표님! 회, 회사가……, 콜록, 콜록…….”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정은 자기 침에 사레가 들렸고, 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예매가 다시 급상승 했지?”“네!”소정은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예매 발표 때보다 세 배나 올랐어요! 대표님,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요!”“이게 모두 직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준 결과야.”소정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그래서 송년회는 계획대로 개최할 거예요?”“아니. 이따가 다들 어디 놀러 가고 싶은지 통계 내 봐. 여행 비용은 내가 전부 책임질게.”그 말에 소정은 멍해지고 말았다.“지, 진짜요? 대표님!”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오늘까지 통계 내서 나한테 보내줘.”“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대표님! 대표님이 세상에서 제일 멋져요!”소정은 감격에 휩싸여 외쳤다.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씻을 준비를 했고, 인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눈을 비비며 물었다.“하영아, 아침부터 누구랑 통화한 거야…….”“비서 전화야.”하영은 휴대폰을 세면대 위에 올려 놓았다.“어서 일어나.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 받아야 하니까, 아침 먹으면 안 돼.”“그래, 알았어.”오전 8시.하영은 인나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한 후, 여러 검사를 마친 인나가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보여주니, 의사가 몇 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임신하셨네요.”“그래서 요즘 자꾸 피곤하고, 식욕이 강해졌네요.”인나가 중얼거렸다.
인나는 입술을 적시고 긴장된 마음을 억눌렀다.“네, 지금 시간 괜찮으면 잠깐 만날 수 있어요?”“물론이죠!”현욱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지금 어디에요? 데리러 갈게요!”“집에 있어요.”“10분만 기다려요!”10분 후, 인나는 아파트 아래에서 현욱을 만나 차에 올랐고, 두 사람 사이에 긴장된 기류가 흐르면서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반쯤 운전했을 때, 현욱이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핸들을 꽉 잡고 먼저 입을 열었다.“나한테 할 얘기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인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커피……, 아니 밀크티 마시러 가요.”그 말에 현욱은 깜짝 놀랐다.‘인나 씨가 밀크티 마시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오늘 왜 갑자기 밀크티를 찾지?’밀크티 가게에 도착하자, 현욱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하고 한 잔은 인나에게 건넸다.“고마워요.”인나가 밀크티를 받으며 인사를 전하자, 현욱은 맞은편에 앉아 인나의 안색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그리고 약간 피곤해 보이는 인나를 보며 물었다.“요즘 제대로 휴식하지 못했어요?”인나는 밀크티 한모금 마시고 대답했다.“네, 하영이한테 일이 좀 생겨서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고생 많았겠네요.”현욱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생겼어요?”인나는 밀크티를 내려 놓은 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방에서 초음파 사진을 꺼내 현욱의 앞에 내밀었다.“확인해 봐요.”멍한 눈빛으로 인나를 바라보던 현욱은 앞에 있는 종이를 펼쳤고,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이거 인나 씨 거예요?”현욱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자, 인나는 그런 반응에 화가 났다.“눈이 삐었어요? 거기 분명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그러자 현욱은 서둘러 설명했다.“아, 아니, 인나 씨가 내 아이를 가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어요.”인나는 화를 내며 초음파 사진을 도로 빼앗았다.“책임지고 싶지 않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