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주희는 이렇게 놀라운 규모로 사람들이 몰려온 건 처음봤다.많은 사람이 몰려왔을 뿐만 아니라 다들 손에 돌까지 들고 욕설을 퍼부으며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하지만 하영이 말을 꺼낸 이상 반드시 인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영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꺼내 현욱에게 전화를 걸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받은 현욱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하영은 화장대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현욱 씨, 청담 국제학교로 가서 애들을 좀 데려가 줘요. 담임 선생님한테 미리 얘기해 둘 테니까, 며칠만 부탁할게요.”현욱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무슨 일 있어?”“인터넷 확인해 봐요. 그럼 부탁할게요.”“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난원.유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서재에 앉아 있었고, 시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지금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강하영 씨가 이번에 처한 상황은 많이 힘들 것 같네요.”유준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강하영한테 전화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분부대로 했다.“대표님, 강하영 씨 휴대폰이 꺼져있습니다. 어쩌면 며칠은 연락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유준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기술팀한테 게시글 작성자 IP 추척해 보라고 전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대표님, 이번 일 MK에도 어느정도 타격이 있을 겁니다.”유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 정도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으니까, 하영의 회사에서 입장 발표를 하는 순간, 홍보팀에서 똑같이 밀고 나가라고 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시원은 몸을 돌려 서재를 떠났고, 입술을 꽉 깨문 유준의 표정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대체 누가 감히 김제에서 이 정도로 멋대로 날뛰는지 두고 보고 싶었다.소진 그룹.기사를 확인한 예준은 하영한테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때 소진호와 송유라
TYC.화사하게 차려입은 하영이 회사에 나타났다.하영은 회사 아래에 몰려든 수많은 기자와 네티즌들을 담담한 표정으로 한 번 훑어본 뒤 회사로 들어갔다.미리 경비원에게 얘기한 덕분에 하영을 막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떤 기자가 회사로 들어가는 그녀를 발견한 순간 목청을 높였다.“저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못 들어가게 하는 겁니까?”하영은 기자가 자신을 알아본 줄 알고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저 사람은 회사 직원입니다!”경비원은 확성기로 사람들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눌러버렸고, 하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바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위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고, 바삐 돌아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하영은 그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런 시기에 함께 어려움에 맞서 싸우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겼다.잠시 후, 직원들은 놀라운 눈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하영을 발견했고, 순간 지나칠 정도로 진한 화장을 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그러다 하영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에야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영이 사무실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 소정이 들어왔다.소정은 하영을 보고 처음엔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대, 대표님. 지금 차림 너무 웃겨요.”하영은 클렌징오일을 꺼내 화장을 지우며 입을 열었다.“지금 웃을 기분이 들어? 두렵지 않아?”소정은 고개를 저었다.“대표님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저희도 두렵지 않아요! 끝까지 대표님만 따를 생각이에요!”그 말에 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부사장은 자리에 있어?”“네!”소정이 대답했다.“그런데 대표님,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대표님의 결정이 필요해요.”“받지 마.”하여은 천천히 얼굴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부사장한테 잠깐 오라고 해.”“네, 대표님!”소정이 사무실을 나섰고, 하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이가 어린 비서지만 조급한 성격이 아니라 다행이라
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사실이잖아. 눈물 콧물에 아주 범벅이 됐네.”“엄마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세희가 반박하기 시작했다.“다들 오빠처럼 침착한 줄 알아? 오빠는 엄마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세준은 세희의 머리를 콩하고 때렸다.“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거고, 너는 겉으로만 사랑하는 거야.”“으악!”세희는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세준을 마구 때렸다.“오늘 반드시 양말로 그 입을 틀어막아 버릴 거야!”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욱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일반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강한 멘탈에 현욱도 충격을 받았다.‘역시 정유준 자식들이야. 이렇게 무서운 유전자가 김제에 또 누가 있겠어?’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정유준한테 자랑해야지!’현욱은 유준의 번호를 눌렀고, 이내 피곤해 보이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본론만 얘기해!”유준의 목소리에 두 아이는 순간 조용해졌고, 특히 세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현욱은 두어 번 정도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늘 바쁜 우리 대표님, 네가 질투할 만한 소식 하나 얘기해 줄까?”유준은 잔뜩 귀찮은 어조로 얘기했다.“그 혀 잘라버리기 전에 똑바로 얘기해.”“…….”“야! 이 양심 없는 놈아! 세준이와 세희가 지금 나랑 같이 있단 말이야! 너 자꾸 그러면 언론에 확 알려버릴 줄 알아!”현욱의 협박에 두 녀석은 일제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현욱을 바라보았다.현욱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 유준이 코웃음을 쳤다.“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세희는 속으로 환호했다.‘역시 우리 아빠 짱이야!’현욱은 순간 기가 꺾였다.“됐어, 놀리지 않을게. 애들은 지금 안전하게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유준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노아에서 보자.”현욱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유준은 전화를 끊었고, 세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노아는 어디에요? 우리도 같이 가는 거예요?”현욱은 치를 떨며 대답했다.“노아는
직원들이 웃으며 다가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하영은 웃으며 소정에게 얘기했다.“오늘 출근한 직원들 이름 기록하고, 오지 않은 사람은 연말 이후 모두 해고해.”소정은 하영이 오늘 직원들에게 한턱 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캐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영에게 다가왔다.“이런 잔꾀를 부릴 줄 몰랐네. 직원들 마음도 안정시키면서, 회사에 마음이 떠난 직원들까지 해고하다니 정말 독하다, 독해!”하영은 캐리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있잖아.”캐리는 눈꼬리를 실룩거렸다.“그래, 우리 독하디독한 강하영 씨!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얘기해 줄 수 있지?”“지켜만 보면 돼.”하영의 대답에 캐리는 이를 갈았다.“지금 나를 외부인 취급하는 거야? 어떻게 계획도 얘기해 주지 않을 수 있어?”“얘기해도 소용없으니까.”하영은 캐리를 밀어냈다.“그냥 안심하고 네 일만 제대로 하면 돼.”연세 병원.사건이 터진 뒤, 양다인은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김형욱이 분부한 대로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너무 그렇게 상처 주지 마세요.”양다인은 속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비록 본인 힘으로 세운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심혈을 기울였잖아요.”전화기 너머로 기자의 질문이 들려왔다.“양다인 씨는 강 대표와 그 네 명의 남자와의 관계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양다인은 훌쩍이며 대답했다.“그건 저도 얘기할 수 없어요. 같은 여자로서 저도 강하영 씨가 다른 사람한테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거든요.”“양다인 씨는 너무 착한 분인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이 괴롭혔으면 반격할 줄도 알아야죠.”기자의 말에 양다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강하영 시는 그 남자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에요. 이 이상은 더 말씀드릴 수 없으니 더 묻지 말아 주세요.”“그런 여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밝히려는 겁니다. 저희는 양다인 씨를 돕고 싶어요.”“다들 정말 감사합니
“여기가 마음에 들어?”그때 회전게단에서 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천천히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유준의 모습이 조명 아래에 드러나자, 온몸은 금빛으로 둘러싸인 것 같았고, 타고난 고상한 분위기와 여전히 당당함을 뿜어내고 있었다.세희는 멍한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아빠는 동화 속에서 나오는 흑마 왕자님 같아!”그 얘기를 똑똑히 들은 세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흑마…… 왕자?”세희는 핑크빛 기류가 감도는 눈빛으로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맞아! 아빠는 검은색 정장을 입었으니까!”그때 세준의 머리속에는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유준의 몸은 검은 말의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너무 추상적이야……, 어우 끔찍해!’유준이 세희와 세준의 앞으로 다가와 아직 입을 열기 전에, 현욱이 먼저 찰싹 달라붙어디 마치 애인마냥 애교를 부려댔다.“나 너무 피곤해. 그 먼 거리를 기사도 없이 내가 직접 운전했단 말야!”유준이 굳은 표정으로 현욱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저리 꺼지지 못해?”현욱은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양심도 없는 놈! 나쁜 놈! 나 고소할 거야!”유준이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안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 한 병 있어.”“그럼 나 먼저 간다!”현욱은 들뜬 표정으로 안으로 뛰어가자, 두 녀석은 할 말을 잃었다.유준이 두 녀석을 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너희들 엄마가 이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 안심하고 여기 있어.”세희가 입술을 핥으며 흥분된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여기 와이너리 꼭 마치 성 같은데, 저도 여기 여주인이……, 아악!”아직 말을 마치기 전에 세준이 세희의 머리를 콩하고 내려쳤고, 세희는 머리를 감싼 채 세준을 노려보았다.“오빠는 왜 맨날 나만 괴롭혀?”유준은 손을 움찔하더니,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보기만 해도 아까운 딸인데, 이 자식은 왜 때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세준이 말을 이었다.“그래도 조심하세요, 엄마.”하영은 몸을 벽에 기대며 대답했다.“엄마도 알아. 별다른 일 없으면 회사에서 나가지 않을 거야.”세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엄마가 김제를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영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안색마저 약간 창백해졌다.“세준아, 너 뭘 알고 있는 거야?”세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두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엄마, 제가 영상 하나를 보내드릴게요.”말이 끝나자마자 하영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세준이 보내온 영상을 클릭했다.잠시 영상을 보던 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준에게 물었다.“세준아, 이 영상 어디서 얻은 거야?”“희민이가 찾아낸 건데 저한테 보내달라고 했거든요. 네티즌들의 정보 발굴 능력을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엄마, 이 영상이 반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거예요.”하영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거 아주 중요한 영상이니까, 만약 그 일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시기를 봐서 유용하게 써먹을게.”그러자 세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저는 엄마가 이 어려운 시기를 꼭 이겨낼 것이라 믿어요.”아들에게 인정받자 하영도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세준아, 현욱 아저씨 말 잘 들어야 해.”세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매만졌다.“사실 저희 아빠한테 와 있어요…….”그 말에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기자들이 너희들을 봤어?”“아니요.”세준은 화면을 움직여 주변 환경을 비췄다.“여기 보안 시스템도 잘돼 있고, 경호원도 많아서 아무도 우릴 발견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시내에서 2시간 거리에 있거든요.”하영은 그곳이 어딘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유준과 함께 와인 가지러 갔던 노아 와이너리인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히려 그 사람이랑 있다니까 안심이네. 엄마가 이번 일 다 해결하면 데리러 갈게. 참 세희는?”그러자 세준의 표정이 굳어졌다.“아마 지금 방에서 도우미가 공주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하영은 기지개를 켜고, 야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진짜 재밌는 건 머지않아 곧 시작될 거야!’이틀 뒤, TYC의 환불 요청도 점차 줄었다. 일부 사람들은 G의 명성을 믿고 제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반품하지 않았다.고객에게 환불을 마치고 나자, 거의 모든 직원들의 책상 위로 쓰러졌고, 소정이 하영의 사무실로 들어와 그동안 환불 금액을 건네주었다.“대표님, 이제는 점점 안정되고 있습니다.”하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회사 유동 자금은 얼마나 남았어?”“지금 2억 정도 남았습니다.”하영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예상 범위 안이네.”소정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대표님, 정말 대응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그 기자들 아직도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요.”“하지 않을 거야.”하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중요한 순간일 수록 느슨새지면 안 돼.”소정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네, 대표님. 말씀드릴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뭔데?”“MK의 환불 건수도 이전에 없던 최고치에 달했고, 손실 금액은 저희보다 두 배 이상입니다.”“…….”‘이번 일은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 뜻하지 않게 또 정유준한테 빚을 지고 말았네.’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 봐.”소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고, 문이 닫힌 뒤 하영은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빠르게 전화를 받은 예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하영아!”하영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그래, 나야.”“너 지금 괜찮아?”예준이 물었다.“혹시 너 회사 일 처리하는데 방해될까 봐 지금까지 전화 안 했어!”하영은 빙그레 웃었다.“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오빠 회사도 영향받았어?”“어느 정도는 있긴 있지만 크지는 않아. 아마 정유준과 부진석이 많은 피해를 봤을 거야.”하영은 깜짝 놀랐다.“진석 씨가 왜?”“정직당했어.”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아무리 나랑 가까이
하영은 그 말에 당황했다.‘과연 내가 보상할 수 있을까?’“나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안 돼.”“그러니까 물어줄 생각은 있었다는 거지?”“…….”하영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만약 부진석 언급하지 앟았다면, 아마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영의 침묵에 진석이 웃었다.“이렇게 비교해 보니까 알 수 있지? 사실 네 마음속에서 나랑 정유준은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게 아니잖아.”“진석 씨, 미안해.”지금 하영에게는 죄책감만이 남았다.“사과할 필요 없어.”진석의 말투는 왠지 홀가부해진 것 같았다.“내가 원해서 하는 거라고 했잖아.”“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밥 사 줄게.”“이제 곧 설이네.”“응, 설날에 우리 집에서 같이 보내자.”하영은 무거운 마음으로 얘기했지만, 진석은 오히려 웃었다.“물론이지.”노아 와이너리.유준은 두 아이와 함께 새로 산 레고를 놀고 있었다.사고력 면에서는 애들을 훨씬 아이들을 앞서고 있지만, 손재주 면에서는 조금은 미흡했다.세희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아직도 작은 가옥 구조물을 완성하지 못한 유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요? 이 속도를 보면 정말 오빠랑 비교도 안 되네요…….”유준은 말문이 막혔다.‘지금 내 딸이 나 무시하는 거야?’유준은 레고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 두 사람은 이제 그만 씻고 자.”“손에 상처까지 낫잖아요.”세준은 턱을 받치고 유준을 바라보며 얘기했다.“레고는 아주 가벼운 거라 그렇게 세게 힘줄 필요 없어요.”“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유준의 시선은 레고를 응시했다. 이런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레고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세준이 하품하고 있을 때, 유준의 휴대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얘기해 줬다.“휴대폰 울리고 있어요.”화면을 보니 발신자가 정창만인 것을 확인한 유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얼른 휴대폰을 들고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도우미한테 너희들 세수를 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