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은 당장 이마를 부여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 세희의 모습은 완전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그러자 세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다친 곳은 없으니까 괜찮아.”그 말에 세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세준을 바라보았다.“정말 괜찮아요? 삼촌보다 싸움 잘해요?”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S 국에서 학교 다닐 때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많이 괴롭혔는데, 그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매번 싸우면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지난 일들을 떠올리던 유준은 잠긴 어조로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조심스레 유준의 기분을 살피던 세희는, 그에게서 약간의 씁쓸한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희뿐만 아니라 세준도 그것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할머니 사건 외에 다른 괴로운 과거가 있는 건가?’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가 간식을 한 가득 들고 숨을 헐떡였다.“대표님, 간식 사 왔습니다.”유준이 애들 앞에 놔두라고 턱짓을 하자 비서는 간식을 애들 앞에 하나씩 꺼내놓았고, 테이블에 한가득 쌓인 간식을 본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맛있겠다!”세희가 침을 꿀꺽 삼키자, 유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좋아하면 많이 먹어. 점심에 맛있는 거 사 줄게.”말을 마친 유준이 비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오늘 점심 약속 나중으로 밀어.”그러자 비서가 깜짝 놀랐다.“대표님, 그 프로젝트는…….”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불쾌한 어조로 되물었다.“내 얘기 못 들었어?”비서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이만 나가볼게요.”‘프로젝트? 설마 중요한 프로젝트를 미루고 우리를 데리고 밥 먹으러 간다고?’그 프로젝트가 얼마짜린지 약간 궁금해진 세준은 곁에서 다리를 흔들며 신나게 간식을 먹고 있는 세희를 보며 얘기했다.“나 화장실 다녀올게.”세희는 입 안에 젤리를 한가득 넣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웅얼거렸다.“그래, 알았어.”세희는 소파에서 내려와 유준을 향해 고개를
순간 유준은 참지 못하고 세희를 안아 올려 다리 위에 앉혔다.“아이스크림은 안 먹어도 되니까, 같이 가도 돼.”유준이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아빠가 나를 무릎에 앉혔어!’세희는 귀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휴대폰 있어?”갑작스런 유준의 물음에 세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없어요. 엄마가 오빠한테만 사 줬거든요.”유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들만 편애하고 그래?’“너는 갖고 싶지 않아?”유준의 물음에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오빠가 대신 전화하고 문자 보내주거든요.”“내가 하나 사 줄까?”유준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그러면 연락 주고받을 수 있잖아.”물론 단순히 연락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지 못한 아이와 친해지는 게 목적이었다.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그럼 이건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인가요?”유준은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세희는 바로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좋아요! 그럼 약속해요!”명품 그랜드 캐슬.어두운 방안에서 천천히 눈을 뜬 주원은 손으로 자기 목을 만지자, 욱신욱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쑤셔왔다.이불을 젖히고 겨우 몸을 일으켜 힘없이 일어섰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젠장, 또 이 빌어먹을 느낌이네!’주원은 초조한 마음에 서랍을 열어 체온계를 꺼내 체온을 쟀고, 이내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39도라는 숫자가 나타났다.그때 침대에서 자고 있던 양다인이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몸을 돌려 흐릿한 눈으로 주원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주원 씨, 깼어요?”주원은 싸늘한 눈빛을 숨기고 양다인을 보며 대답했다.“네, 좀 더 자요.”양다인은 체온계에 나타난 붉은 빛을 보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주원 씨, 지금 열이 나요?”주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얘기했다.“괜찮아요. 피곤하면 열이 나는 체질이라 그래요.”양다인도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다.“열이 나는데 그냥 넘
주원은 퇴원하기 전에 의사가 처방한 비타민이 생각났다.[요즘은 안 먹었어요.][지금은 그 약을 끊으시면 안 됩니다. 도련님 체질에는 꼭 장기간 비타민을 복용해야 하거든요.][그러니까 이건 그냥 알레르기인 겁니까?][네, 도련님]주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열이 나는 것 같은데, 오늘 시간 되면 저희 집으로 오세요.][네, 그럼 점심 때 들러서 수액 놔드릴게요.]양다인은 세수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변한 주원의 태도에 마음이 불안해졌다.‘혹시 최대한 빠르게 MK에 들어갈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해서 나를 탓하는 건가?’양다인은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죽을 먹다가, 주원이 검은색 하이칼라 웨이터를 입고 식탁으로 다가오자 얼른 웃는 얼굴로 반겼다.“주원 씨, 제가 죽을 담아올게요.”주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식탁에 앉았고, 양다인은 그의 앞에 죽을 내려놓았다.“저 어제 주원 씨 아버지를 찾아갔어요.”“우리 아버지는 왜 찾아갔어요?”주원의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양다인은 정창만과의 협상을 전부 얘기해 줬고, 그 얘기를 다 들은 주원은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서 내가 어떻게 강하영을 위협하면 되죠?”양다인은 묵묵히 휴대폰을 들어 사진 한 장을 찾아 주원에게 보여주었다.“이걸 봐요. 강하영의 두 아이와 정유준의 혈연관계 증명이에요.”주원은 그 사진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물었다.“이 검사 결과는 어떻게 얻었어요?”양다인은 웃으며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강하영에 대한 일을 제가 뭘 모르겠어요?”“그러니까 이 검사 결과로 강하영에게 협조하라고 위협하라는 거죠?”주원이 양다인에게 물었다.“네, 이것만 있으면 분명 고분고분해질 거예요.”강하영이라면 분명히 협조할 거라는 걸 주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이 사실로 협박한 적이 있으니까.주원은 양다인도 꽤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다인 씨는 나랑 강하영이 가깝게 지내면 신경 쓰이지 않아요?”“당
하영의 말에 패션팀 팀장이 대답했다.“걱정마세요, 대표님! 디테일 부분까지 전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건 우리 TYC의 싸움이니까요!”하영은 팀장의 말에 울지도 웃을 수도 없었다.점심.유준은 아이들을 데리고 밥 먹으러 중국집으로 향했다.주희는 다른 일 때문에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았고, 아이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간 유준은 잠시 화장실에 갔고, 그때 세희가 세준을 보며 물었다.“오빠, 화장실에 왜 그렇게 오래 있었어? 빠진 줄 알았잖아!”세준은 화장실 문을 보더니 대답했다.“그 비서한테 슬쩍 물어보러 갔거든.”“뭘?”세희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물어보러 갔는데?”세준은 손으로 턱을 받치고 웃으며 세희를 바라보았다.“아빠가 점심에 얼마짜리 식사 약속을 취소했는지 알아?”세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말 빙빙 돌리지 마, 하나도 재미없으니까.”세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다섯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이 정도 숫자야.”“5천만 원?”세희의 대답에 세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 돈은 자신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포부를 좀 더 크게 가지는 게 어때?”“그럼 50억?”“더.”“500억?”세희가 질겁하며 묻자 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아빠가 우리 때문에 그렇게 큰 계약을 취소할 줄 몰랐어. 그래서 조금 달리 보이기도 하고.”“우리가 아빠 일에 방해가 된 건 아니겠지?”세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나도 몰라.”세준은 천천히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비서가 계약에 대해 얘기한 건 비밀이었기 때문이다.“우와…….”세희는 놀란 얼굴로 두 손을 들었다.“500억이면 대체 0이 몇 개야…….”“11개.”세준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 정도 돈은 아빠한테는 그저 작은 숫자일 거야.”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작은 숫자라고? 왜? 500억이잖아! 나는 그렇게 많은 돈을 본 적도 없는데!”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아시아를 주름잡을 정도인데 그 몸값을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인나의 말에 하영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정유준이 뭔가 눈치챈 건가? 그건 안 돼……. 그 사실은 절대 알면 안 돼. 이대로 양육권을 빼앗길 수는 없어!’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영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 유준이 아이들을 데려다주길 기다렸다.시간이 거의 1시가 되었을 때, 유준은 오후에 있는 회의 때문에 아이들을 아크로빌로 데려다줬다.아크로빌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 차 한 대가 금방 멈춰 섰고 부진석이 차에서 내렸다.진석을 발견한 순간 유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고,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어주자 유준은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그때 정원에 있던 진석도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유준과 애들을 발견한 순간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세희가 중얼거리듯 진석을 불렀다.“진석 아빠…….”세희의 호칭에 유준의 표정은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내 아이들이 왜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불러?’유준이 애들을 데리고 다가가자, 진석이 담담한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유준의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친한 사이도 아닌데, 오랜만일 것도 없죠!”그 말에 진석이 미소를 지었다.“애들을 데려오느라 수고했어요. 세준아, 세희야, 나랑 같이 들어갈까?”“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유준이 싸늘한 어조로 거절했다.“정 대표님.”진석은 여전히 표정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대표님이 애들을 데리고 간 사실을 하영은 아직 모르고 있죠?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기분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유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이 집으로 돌아왔다고?’유준이 마당을 둘러봤지만 평소에 하영이 타고 다니던 차는 보이지 않았다.‘주차장에 세운 건가?’유준은 시선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돌아왔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러는 그쪽은 무슨 자격으로 계속 얼쩡거리는 거죠?”“딱히 자격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진석은 차분한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건 대표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어떻게 제가 자격이 없다고 확신하
그 말에 하영의 가슴이 욱신거렸다.“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나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찬 바람 쐬고 싶으면 혼자서 천천히 쐬던가요!”말을 마친 하영은 몸을 돌렸다. 어쩌면 시린 바람 때문인지, 그녀의 눈이 시큰거렸다. 지금까지도 유준은 여전히 양다인과의 일을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네.’유준도 그녀를 잡지 않았고, 하영이 집안에 들어서 문을 닫고 나서야 유준은 차에 올라 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대표님.”유준은 별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어떻게든 강세준과 강세희 DNA를 얻어와.”“여전히 그 아이들이 대표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여전히?”유준의 말투가 싸늘하게 식었다.“틀림없이 내 아이들이야!”“…….”‘대표님께서 이번에는 확신하는 것 같네.’“알겠습니다.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이 일은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DNA를 얻으면 바로 외국으로 보내.”“그렇게 되면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릅니다.”“시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아무도 손쓰지 못하게 해!”“알겠습니다.”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소파에 앉아있었고, 하영은 애들의 맞은편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엄마를 속였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세희는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쥐고 조심스럽게 하영을 올려다보았다.“엄마, 제가…….”“제가 세희한테 같이 가자고 했어요.”세준이 고개를 들더니 세희의 말을 끊었고,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세준아, 세희가 직접 얘기하게 해! 괜히 도와줄 생각하지 말고!”“하영아.”그때 진석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그러면 애들이 겁을 먹잖아.”말이 끝나기 바쁘게 세희가 울먹이기 시작했다.“제가 잘못했어요. 그저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이유가 뭔지 얘기해!”하영이 따지듯 묻자,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다친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세희는 하영의 기에 눌려 감히 아빠라는 단어는 얘기할 수 없었다.“삼촌은 걱정되지
하영은 멍해지고 말았다.‘내 기분이 안 좋을까 봐 거짓말한 거라고?’하영은 생각에 잠겼다.‘내가 왜 그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거지?’“미안해, 세희야.”뒤늦게 후회된 하영은 세희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었다.“엄마가 너무 심했어. 네 생각을 고려하지 못했네.”하영은 자책하듯 말을 이었다.“앞으로 엄마한테 거짓말하지 마.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 테니까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돼.”세희는 울면서 하영의 품에 안겼다.“엄마, 속여서 죄송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흐느끼며 우는 세희를 꼭 안아준 하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잠시 아이들을 달래고 나니, 어느새 두 녀석은 위층에 올라가 놀았고, 하영은 말없이 멍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진석이 곁에 앉자, 하영이 중얼거리듯 물었다.“내가 너무 이기적이지?”진석은 몇 초간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애들 생각을 자주 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진석의 말 뜻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사실은 하영이 이기적인 게 맞았다. 어쩌면 이제는 손을 놓을 때가 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 무렵.하영은 카페에서 만나자는 주원의 문자를 받고, 애들한테 얘기한 뒤 경호원에게 주원이 만나자고 한 카페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하영이 도착했을 때 주원은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창백한 얼굴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아파보였다.하영은 다가가 주원 앞에 앉았다.“제가 또 뭘 해야 하는지 얘기해 보시죠.”하영의 경계심 가득한 눈빛에 주원은 커피를 앞으로 밀어줬다.“긴장할 필요 없으니까, 목이라도 축여요.”하영은 커피에 손대지 않았다. 양다인이 한 짓 때문에 다른 사람이 준 음료는 함부로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니까, 용건만 얘기해요.”하영의 차가운 어조에 주원은 웃으며 레몬차를 한 모금 마셨다.“저 MK로 돌아가고 싶어요.”“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일단 제 얘기부터 먼저 들어요.”유
하영의 다리 위에 놓아져 있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정주원 씨는 정말 비열하기 짝이없는 인간이군요!”화가 난 하영이 욕을 퍼부었다.“하영 씨한테서 욕 두어 마디 먹고 원하는 걸 이룰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요.”계속해서 욕을 퍼부으려 할 때 주원이 말을 이었다.“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이 하영 씨 곁에 있을 수 있을까요?”“우리 애들이랑 정유준의 관계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죠?”하영이 날카로운 어조로 따지듯 물었다“제가 알고 싶으면 알 수 있어요.”하영은 속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주원을 욕했다.“손해보게 하지 않아요.”주원은 얘기하며 갑자기 서류 하나를 꺼내 하영에게 건네주었다.“확인해 봐요.”서류 봉투를 열어 안에 내용물을 확인하던 하영의 눈빛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주원이 흡족스러운 눈빛으로 얘기했다.“좋은 소식 기다릴 테니, 잘 생각해 보세요.”말을 마친 주원은 몸을 일으켜 떠났고, 하영은 주원이 떠난 뒤 가방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음성녹음을 껐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반복해서 들어봤다. 아직은 이 녹음을 유준에게 건네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세준과 세희가 그의 애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니까. 정창만이 알게 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생각에 잠긴 하영은 주원이 준 서류를 보면서 한참 고민하다가 문를 보냈다.[좋아요.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건 알아뒀으면 좋겠네요.]빠르게 주원의 답장이 날아왔다.[마지막인지 아닌지는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그게 무슨 뜻이죠?][글쎄요.]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주원과 손을 잡은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다음날.유준은 오늘 꼭 본가에 들르라는 정창만의 전화를 받고 본가에 도착했을 때, 막 도착한 정주원을 마주쳤다.유준은 보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렸고, 차 문을 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