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약속 있어요.”희원이 겉옷을 입고 방을 나서는 순간 방 안에서 나오고 있던 양다인과 마주치고 말았다.희원은 양다인을 힐끔 쳐다보고 별 말 없이 그냥 계단으로 향했다.“희원아, 지난번에 도와줘서 고마워.”그때 양다인이 희원의 뒤에서 입을 열었고, 그 말은 막 방에서 나오던 송유라의 귀에 들어갔다.송유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문 뒤에 서서 밖에서 오가는 대화를 들었다.그때 희원이 돌아섰다.“나 이용해 먹고 사탕발린 말을 잘도 하네. 양다인 네 인사는 역겨워서 받고 싶지 않아!”양다인은 희원한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왜 그런 식으로 얘기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유준 씨한테 접근할 수 없었을 거야.”“경고하는데 양다리 걸칠 생각하지 마!”희원은 화를 내며 이를 갈았다.“유준 오빠 앞에서 역겹게 굴지도 마!”양다인은 양손을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왜 화를 내고 그래? 혹시 고자질이라도 하려고? 유준 씨가 과연 네 말을 믿어 줄까?”그 말에 희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너!”양다인은 웃음을 터뜨렸다.“할아버지가 왜 나를 미행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곁에서 부추겼지?”“그게 왜? 정주원한테 접근해도 상관없어. 그런데 나를 이용해서 유준 오빠한테 접근한 건 절대 참을 수 없어! 양다인, 잘 들어. 네가 유준 오빠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절대 가만 안 둬!”“네 아버지가 다시 회사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은 건 아니지?”“할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계시잖아. 그리고 설 후에 바로 회사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절대 우리 아버지 직위를 박탈할 수 없어! 그러니 너도 나한테 전혀 위협할 수 없다는 얘기야!”양다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나랑 맞서 싸울 생각이야?”“맞아!”희원이 싸늘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쏘아보았다.“양다인, 너무 잘난 척하지 마.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오면 모두가 너를 짓밟고 싶어 할 테니까. 나도 마찬가지고!”“픽.”양다이는 코웃음을 쳤다.“소희원, 대체
“공장의 직원들이 책임지고 한 일이지, 저랑은 크게 상관없어요.”“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어요. 제가 사람을 불러서 옷을 보내라고 할게요.”“송유라 씨.”하영이 송유라의 말을 끊었다.“저도 필요한 생필품을 많이 샀는데, 이 옷들은 제가 직접 가져다 주고 싶어요.”송유라는 깜짝 놀랐다.“직접 자양산으로 가려고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미 항공사에 연락해서 전용기로 운송하기로 했고, 언론에도 알릴 거예요. 이건 송유라 씨와 손잡고 하는 일이니까요.”“안 돼요!”송유라가 갑자기 격앙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쪽 산길은 너무 위험하니까 가면 안 돼요!”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송유라를 바라보았다.‘나랑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하영이 말이 없자 송유라는 방금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고 다시 침착한 어조로 얘기했다.“하영 씨, 그곳은 산길도 험하고 거리도 꽤 먼 편이라, 하영 씨 안전이 걱정돼서 그랬어요.”“송유라 씨가 그곳을 잘 알고 있는 걸 보면 직접 가본 적 있으시죠?”송유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네.”“송유라 씨도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아이들한테 따뜻함을 전하셨는데, 제가 왜 두려워하겠어요?”송유라는 걱정된 어조로 물었다.“정말 갈 생각이에요?”“네.”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이미 결정했거든요.”송유라는 더 뭐라 할 수 없었고, 그저 탄식과 후회만 남았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런 일은 시키지 않는 건데. 애가 너무 착해서 탈이야.’하영은 자양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찍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식탁에서 세희가 하영에게 그릇에 국을 담아주며 입을 열었다.“엄마, 국물 드세요. 내일 출장 가면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자는 것도 불편할 거예요.”하영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국그릇을 받았다.“고마워, 세희야. 내일부터 삼촌과 주희 언니 말 잘 들어야 해.”“알았어요, 엄마.”세희가 달
별장 입구.캐리는 하영의 짐을 들어주며 물었다.“애들은 잠들었어?”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바로 공항으로 가면 돼. 그쪽엔 거의 다 준비됐지?”“그래.”캐리는 하영의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며 얘기했다.“도착해서 바로 출발하면 돼.”“송유라 씨와 함께 기부한다는 사실 언론에 얘기했지?”하영은 차 문을 열며 물었고, 캐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얘기를 팔백 번은 더 물어봤을 거야. 다 처리했으니까 안심해도 돼.”하영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하는 공익 활동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 절대 차질이 생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한 시간 뒤에 하영과 캐리는 공항에 도착했다.직원이 이미 보내온 물품을 전부 화물칸에 실어놨고, 하영과 함께 수량을 확안한 뒤 비행기에 올라 출발했다.난원.언론이 발표한 TYC 공익 기사를 보게 된 시원이 그 사실을 유준에게 얘기해주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출발하는 거야?”“네, 지금쯤 이미 출발했을 겁니다.”유준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자양산 쪽에 날씨가 어떤지 확인해 봐.”“이미 확인해 봤는데 자양산은 날씨 변화가 심해서 정확하지는 않아요.”“대충 어때?”유준이 다시 물었다.“지금은 날씨가 아주 좋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캐리도 하영 씨와 함께 출발했어요.”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분부를 내렸다.“수시로 자양산 날씨를 확인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얘기해 줘.”“알겠습니다, 대표님.”새벽, 2시.깊게 잠들었던 세희의 잠꼬대에 잠에서 깬 세준이 얼른 일어나 불을 켜고 세희 침대로 올라갔다.세희가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을 본 세준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희를 불렀다.“세희야, 세희야, 오빠 여기 있으니까 겁내지 마.”세준이 세희의 손을 잡아주려 할 때, 세희가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겁에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그리고 주변에 세준만 있는 것을
세준이 포스트잇을 넘겨받았다.[세희야, 네가 이번에 힘든 고비를 넘어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 세희는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어린이잖아. 다른 사람은 평생 겪지 못할 모험을 겪게 됐지만, 엄마가 돌아왔을 때 우리 세희가 다시 예전처럼 톡톡 튀는 성격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세준이 쪽지를 읽어주자 세희는 그 쪽지를 품에 꼭 껴안고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오빠, 나 절대 엄마한테 걱정 끼쳐드리지 않을 거야. 꼭.”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리 세희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해!”하영과 캐리는 F 시에 도착했고, 직원들이 물건을 전부 화물차에 실은 뒤 F 구로 향했다.차에 앉자마자 하영은 제일 먼저 애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전화기 너머로 세준과 세희의 숨 가쁜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비행기 내렸어요?”다른 때와 다른 세희의 목소리에 하영은 소리 내 웃었다.“두 사람 왜 그래? 뛰고 있었어?”“맞아요, 엄마!”세희가 얼른 대답했다.“주희 언니랑 뛰고 있었어요!”하영이 한시름 놓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세희 참 대단하네. 엄마 이미 F시에 도착했으니까 물건만 전달하고 바로 돌아갈게.”“네! 오빠랑 기다리고 있을게요.”몇 마디 안부를 전한 뒤 하영은 전화를 끊었고, 운전 기사가 하영을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아직 젊어 보이는데 벌써 아이가 있네요.”하영은 자기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그래 보이지 않아요?”“전혀요. 도시에서 오신 거죠?”운전기사의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확실히 짧은 거리는 아니네요.”“이런 산길은 처음이죠?”“네, 기사님은 이 고장 사람이에요?”“저는 자양산에서 내려왔어요. 거기가 제 고향이거든요!”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래요? 거기 상황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어요?”“힘들죠.”운전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힘들다는 말 외에 뭐라 해줄 얘기가 없네요. 제가 글을 배운 적이 없어서 표현을 잘 못합니다…….”“괜찮아요.”하영은 얘기하며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
“캐리, 무슨 일이야?”“G, 지금 비가 와서 기사님이 너무 위험하다고 하는데, 거기 상황은 어때?”하영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기사님보고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해.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니까 조금만 참아. 여기서 멈추면 안 되거든.”“난 괜찮아! 그런데 너는 무섭지 않아?”캐리의 물음에 하영이 대답했다.“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알았어.”캐리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곁에 있던 운전기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큰일 났습니다!”운전기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사태가 일어났어요!”캐리가 운전기사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대량의 흙이 빗물에 씻겨 흘러내리고 있었다.이어서 전화기 너머로 하영의 비명이 들려왔고, 캐리는 얼른 휴대폰에 대고 큰 소리로 얘기했다.“G, 산사태가 발생해서 대량의 흙이 아래로 떠밀려오고 있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커다란 소리가 귀에 전해졌고, 캐리가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앞에는 사람 키의 반이나 되는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게다가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방향은 바로 앞에 있는 하영이 앉은 차가 있는 위치였다.캐리의 눈이 커졌다.“G! 바위가 떨어지고 있어!”말이 끝나자마자 바위는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고, 캐리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격노하기 시작했다.“강하영!”MK.시원이 태블릿을 들고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그때 주주들과 프로젝트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쳐들어온 시원 때문에 대화가 끊겼다.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경솔하게 회의실에 쳐들어온 시원을 보고 화난 어조로 꾸짖었다.“허시원, 제대로 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둬!”그러자 시원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강하영 씨한테 사고가 났습니다!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커다란 바위가 강하영 씨가 앉은 화물차에 떨어졌다고 합니다!”그 말에 온몸이 굳어져 버린 유준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며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뭐라고?”허시원은 태블릿을 유준에게 건네주었다.“대표님,
전화를 끊은 예준은 바로 헬기를 보내달라고 연락했다.F구.하영은 구조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캐리는 구조대원과 함께 침대를 밀며 응급실로 향했다.“보호자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간호사가 몸을 돌려 캐리를 막았고, 그는 눈물범벅이 된 채 간호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제발 우리 하영이 좀 살려주세요. 꼭 살려주셔야 해요!”“최선을 다하겠으니 부디 침착해 주세요.”말을 마친 간호사는 캐리의 손을 뿌리치고 응급실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고 캐리는 하영의 피로 얼룩진 손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움켜잡았다.‘직접 가지 말라고 끝까지 말렸어야 했는데! 내가 왜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내가 말렸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하영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캐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캐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나 화면을 터치해서야 전화를 받았다.그리고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입을 열었다.“여보세요.”“정유준입니다!”유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자 캐리는 깜짝 놀랐다.“어떻게 우인나 폰으로 저한테 전화하는 거죠?”그때 유준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하영이 상황은 어떻습니까?”그 얘기에 캐리는 또 울음이 터져 나왔다.“정말 많이 다쳤어요.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는데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서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캐리의 말에 유준은 누군가 심장을 도려낸 것처럼 아팠고 눈앞이 캄캄해졌다.“의사한테 반드시 살려내라고 하세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살려내야 합니다!”유준이 이를 악물고 얘기했다.“저도 알아요!”“금방 갈 테니까 곁에 있어 주세요.”“네, 기다릴게요.”오후 3시 30분.유준과 인나는 제일 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을 때, 옆에 또 다른 차량이 멈춰 섰다.다급하게 차에서 내린 예준이 응급실 쪽으로 뛰어가고 갔는데, 유준과 인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그걸 본
“대표님, 하영은…….”“지금 왜 또 하영과 예준 형의 관계를 신경 쓰는 거죠?”우인나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캐리의 잠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는데, 분노한 그가 유준을 노려보며 소리 질렀다.“하영은 지금 저기 누워서 생사를 알 수 없는데, 여기서 그딴 것을 신경 써서 무슨 소용입니까? 예준 형의 행동을 보고도 아직도 모르겠어요? 남매니까 수혈이 가능한 거잖아요!”인나는 얼른 캐리의 입을 틀어막았다.“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캐리는 인나의 손을 떼버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나 헛소리한 적 없어! 하영은 예준 형의 친동생 맞잖아!”인나는 골치가 아팠다.‘캐리 이 자식은 화만 나면 전부 불어버리는 게 문제야.’인나는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유준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이제 사실을 다 알게 됐는데, 더 묻고 싶은 게 있나요?”유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런데 왜 나한테 숨긴 거지?”“그걸 몰라서 묻습니까?”캐리가 참지 못하고 유준을 비웃었다.“다 당신이 저지른 잘난 행동 때문이잖아요!”“캐리!”인나가 화를 내며 캐리의 말을 잘랐다.“이제 그만하면 안 돼? 이건 두 사람 일이니까 우리가 함부로 떠들어 댈 자격 없어!”“아무튼 쌤통이야! 속이는 게 당연하지!”정유준은 수술실을 바라보았다.‘내가 그렇게 못난 놈이었나? 5년이나 찾아다녔는데, 그래도 나쁜 놈인 건가?’유준은 질식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어쩌면 그럴지도.’하영이 유준을 피해 김제를 떠나서 5년이나 종적을 감췄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유준에게 좋은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유준도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 어떤 정보도 말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와서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곁에 있는 인나가 책망하는 눈빛으로 캐리를 바라봤고, 캐리는 다른 사람 생각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인나는 한숨
예준은 머리가 어지럽고 힘이 없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인나는 예준의 병실 침대 옆에 앉았다.“예준 오빠, 정유준이 오빠랑 하영이 관계를 다 알았어요.”예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괜찮아,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야.”“그럼 아이들은…….”“하영이 깨어나면 직접 얘기하라고 해야지. 캐리가 얘기한 거지?”인나의 물음에 예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캐리가 얘기하지 않았어도 정유준이 눈치챘을 거야.”예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하영이 돌봐주러 갔지?”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쫓아버릴 생각이에요?”“그럴 필요 없어. 하고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한 사람이라도 더 하영을 돌봐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의사한테 가서 보혈약을 처방해 달라고 할게요.”“그래, 수고 해줘.”“저한테 너무 그러실 필요 없어요.”같은 시각.유준은 병원비를 지불한 뒤 중환자실로 왔고, 캐리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제부터 하영을 잘 부탁해요.”유준과 캐리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호흡기를 달고 있는 하영을 바라보았고, 유준은 남몰래 한숨을 돌렸다.“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그럴 필요 없어요!”캐리가 유준을 노려보았다.“우리 회사 일에 상관하지 마시고 하영이나 잘 돌봐줘요. 아니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겉옷을 집어 들고 병원을 나서려던 캐리가 내키지 않은지 다시 돌아왔다.“하영은 대체 그쪽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유준은 눈을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하영이 그쪽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요?”캐리가 약간 떨리는 입술로 얘기했다.“5년 간 S국에 있을 때도 TV에 그쪽 얼굴만 나와도 몰래 눈물을 훔쳤어요! 술에 취하면 그쪽 얘기만 했어요. 며칠 전에도 울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제가 하영의 모든 주변사람을 대신해서 부탁하는데, 제발 우리 하영이한테 상처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