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디 있어요?”세희가 눈을 깜빡이며 묻자, 하영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진석 씨 예상이 맞았던 걸까?’하영은 굳은 표정으로 떠보듯 물었다.“혹시 진석 아빠 찾는 거야?”“아니요!”세희가 확고한 어조로 대답하더니, 순간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느꼈는지 얼른 말을 바꿨다.“제가 잘못 얘기했어요.”세희의 표정을 본 하영은 마음이 아팠다.‘혹시 내 기분을 고려하느라 그러는 걸까? 내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한테서 아빠 사랑을 박탈한 것일까?’“세희야, 너 잘못 얘기한 거 없어.”하영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세희는 지금 진짜 아빠가 보고 싶은 거지?”“네…….”세희가 조심스레 하영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하영의 마음이 복잡해졌다.“만약 아빠가 보고 싶은 거라면 아빠한테 데려다줄게.”엄마랑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세희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엄마, 그런 게 아니라…….”세희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저는 엄마랑 떨어져 있기 싫어요. 그런데…….”“왜?”“아빠가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저는…….”세희는 뒤에 말을 잇지 못했다.“엄마 아빠가 모두 세희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하영이 대신 얘기하자 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빠는 저를 구해주신 영웅이잖아요, 저 아빠가 그렇게 싫지 않아요. 그래도 저한테는 엄마가 훨씬 중요해요.”말을 마친 세희는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엄마는 왜 아빠가 싫어요?”“아빠를 싫어한 적 없어.”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일었다.“오히려 그 반대로 아빠를 무척 좋아한단다.”그러자 세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그럼 아빠랑 함께 살 수 있어요?”“좋아한다고 꼭 함께 있는 건 아니야. 엄마랑 아빠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제가 아빠 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그 이야기 때문인가요?”세희의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때문에 아빠 사랑을 잃게 돼서 세희는 엄마를 원망 안 해?”세희는
하영은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일어났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하영의 뜻을 알지 못했던 세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침대로 다가갔고,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자신을 쳐다보는 세희의 모습에 세준의 머릿속에는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세준은 긴장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세희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세희야? 정말 괜찮아?”세준의 물음에 세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나 완전 괜찮아! 그 나쁜 놈은 내가 너무 예뻐서 납치한 거잖아!”세준은 손을 거두었다.“그래. 자아도취에 빠진 모습을 보니 정말 괜찮아 보이네.”“자아도취?”세준은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세준은 비웃듯 혀를 찼다.“스스로 본인을 예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그래.”“내 미모를 질투하는 거지?”세희는 화가 나는지 작은 주먹으로 이불을 마구 때렸고, 세준은 몸을 돌렸다.“미안, 나 잠깐 토하고 올게.”“아아악! 오빠 거기 서!”세희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세준을 쫓아갔다.“…….”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내가 괴짜들만 낳은 건가? 애들의 멘탈은 대체 누구를 닮은 거야?’두 녀석은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고, 세준이 갑자기 몸을 돌려 세희를 응시하며 물었다.“세희야, 지금 어떤 기분인지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봐.”그 말에 세희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달싹이며 눈물을 뚝뚝 흘렀다.“오빠, 나 무서워…….”“그럴 줄 알았어.”세준은 한숨을 내쉬며 세희의 손을 꼭 잡고 카펫 위에 앉았다.“엄마 앞에서 괜히 강한 척할 필요는 없어.”세희는 작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엄마가 걱정하는 건 싫어. 일하느라 고생도 많으신데 엄마한테 얘기하지 마…….”세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세희를 안아줬다.“괜찮아, 내가 꼭 지켜줄 테니까 앞으로 아무 일도 없을 거야.”세희는 세준의 옷자락을 꼭 잡은 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후, 난원.부리나케 별장으로 별장으로 뛰어 들어온 현욱은 문이
문자를 보낸 뒤 확인해 보니 대화 상대가 이미 방을 나갔다는 알림만 있었고, 현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인나 씨가 나 차단했나 봐.”유준은 손에 든 잡지를 내려 놓으며 얘기했다.“첫 번째 일부터 해결하지 못했으니, 내 도움은 바라지도 마.”“전화 연길이 안 되니 MK로 찾으러 가는 수밖에 없겠네.”현욱이 실망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자, 유준은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근무 시간에 괜히 우리 직원을 방해하지 마.”“방해라니!”현욱은 유준의 말을 시정했다.“이건 내 미래를 잡으러 가는 거지! 나는 분명 하영 씨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랑은 달라.”현욱은 하필이면 아픈 곳을 찔렀고, 유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네 발로 직접 걸어 나갈래? 아니면 사람을 불러서 끌어내라고 할까?”현욱은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기대고 입을 열었다.“난 안 가. 어차피 너도 인나 씨 찾으러 못 가게 하는데 안 갈 거야!”유준이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뭐라 얘기하려 할 때, 현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영 씨가 다음 주에 자양산으로 간다고 하던데 알고 있었어?”현욱의 물음에 유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자양산이잖아!”현욱이 몸을 일으키고 말을 이었다.“그 산길이 얼마나 험한지 몰라? 도로 공사도 거의 안 한 곳이잖아!”정유준의 미간에 짜증이 밀려왔다.“지금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나한테 얘기할 필요 없어!”말을 마친 유준은 위층에 있는 서재로 돌아가 노트북을 켜고, 저도 모르게 사이트에 자양산이라는 세 글자를 입력했다.사진을 확인하던 유준의 양미간이 점점 좁혀가기 시작했다.‘좁은 길에 옆에 난간도 없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곳엔 왜 가는 거지?’사흘 뒤.하영이 디자인 원고 수정을 마쳤을 때 캐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하영은 연필은 내려놓고 부은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G, 양자산에 있는 아이들한테 보낼 의상을 전부 제작을 마쳤는데, 언제 출발할 거야?”하영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양다인은 거들먹거리며 턱을 치켜올렸다.“너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일이라면 쉽게 포기할 수 없지. 그나저나 한 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두 명이나 제대로 돌보지 못할 수 있어? 설마 나중에 세 아이 전부 사고당하는 건 아니겠지?”아이들을 저주하는 말에 하영은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입에 걸레를 물었냐? 네가 뭔데 내 아이들을 저주해?”“난 저주한 적 없어.”양다인은 어깨를 으쓱했다.“사실을 얘기한 것뿐이지. 오늘 어쩌다 회사에 나왔는데 여기서 너랑 마주치게 돼서 좋은 마음으로 얘기해 주는 거야. 엄마가 돼서 제대로 애들을 돌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잖아. 네 딸도 운이 좋았지. 만약 정말 성폭행이라도 당했으면 매일 울며불며 죽고싶을 거 아니야…….”양다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영이 빠르게 다가가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뺨을 힘껏 내려쳤다.양다인은 자기 볼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또 나한테 손을 대?”“내가 때린 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니까!”하영이 분개하며 말을 이었다.“경고하는데, 앞으로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그 입에 올리지 마!”“내가 틀린 말 했어? 네 자식은 어차피…….”양다인은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말을 멈췄다.하마터면 희민이 아픈 사실을 하영에게 얘기할 뻔했는데, 다행히 제때 반응하고 말을 멈췄다. 아니면 정유준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른다.싸늘하게 쳐다보는 하영의 눈빛에 의아함이 섞였다. 양다인의 말을 들어보면 세희뿐만 아니라 희민이한테도 뭔가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설마 희민이한테 무슨 일 생긴 건가? 양다인은 정유준 곁에 있으니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거야! 아니면 무슨 짓을 했다거나!’순간 하영의 심정이 복잡해졌다.“내 아이가 왜? 똑바로 얘기해!”양다인은 가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얘기하기 싫어졌어.”양다인이 자리를 뜨려 하자 하영은 바로 앞을 막아섰다.“똑바로 얘
“그럼 좀 안전한 곳에서 할 수 없어?”유준은 따져 묻다가 이내 감성을 추스르고 다시 물었다.“무슨 일인데?”“…….”유준의 감정변화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희민은요?”하영은 그제야 자신이 묻고 싶었던 질문이 떠올랐다.“희민의 휴대폰 유준 씨한테 있죠?”그 말에 유준의 눈빛이 흔들렸다.“무슨 일인데?”하영은 빠르게 사라지는 유준의 표정을 캐치하고 미간을 찌푸렸다.“나한테 숨기는 게 있죠?”“없으니까 무슨 일인지 얘기나 해!”“희민이랑 통화하게 해줘요.”“안 돼!”생각도 해보지 않고 바로 거부하는 유준의 태도에 하영은 지금 그의 화를 돋울 수는 없었다.세희를 구해주고, 방금 죽을 뻔한 하영도 구해줬으니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괜찮으면 희민이 만나게 해줘요.”하영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고 유준의 마음이 약해졌다.지금 희민은 이미 골수 이식을 마치고 무균실에 있으니, 만약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줘도 하영한테 너무 큰 부담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준이 입을 살짝 떼려던 순간 하영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는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캐리, 무슨 일이야?”“어디 갔어? 벌써 퇴근했어?”“세희랑 시간을 보내려고, 무슨 일이야?”“아무 일도 아니야. 그럼 나도 집에 다녀와야겠어. 물품이 오후에 회사에 도착하거든.”“그래, 알았어. 오후에 함께 기부할 물품들을 확인하면 될 것 같아. 이따 집에서 봐.”“그래.”전화를 끊은 하영이 유준을 보며 물었다.“방금 무슨 얘기 하려고 했어요?”“아무것도 아니야.”유준은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하영이 곧 양자산으로 간다고 하니, 혹시라도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희민에 관해 지금은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러자 하영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먼저 갈게요. 희민이 일은 부탁 좀 할게요.”말을 마친 하영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유준은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유준이 돌아오자 시원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방금 제가 차 세우길
금방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지한 표정으로 기마 자세를 하고 있는 세희를 발견했다.곁에는 주희가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재고 있는 것 같았다.하영은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 차에 기댄 채 묵묵히 세희 곁을 지켰다.시간이 3분 정도 흘렀을 때, 세희는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그대로 풀밭에 주저앉았다.“일어나!”주희가 휴대폰을 내리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스쿼드 3세트 시작!”세희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희 말대로 스쿼드를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은 마음이 아파 제지하려고 발을 떼는 순간, 주희가 고개를 들어 하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더는 지켜보기 힘들었던 하영은 그저 별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잠시 뒤에 캐리가 돌아왔다.캐리는 현관에서 슬리퍼를 갈아신으며 하영을 불렀다.“G!”“나 여기 있어.”하영이 거실에서 대답했고, 슬리퍼를 갈아 신은 캐리가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G, 세희 요즘 왜 이렇게 부지런해? 매일 주희 씨랑 운동하고 있던데.”하영은 대충 얼버무렸다.“신체가 딸린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시작한 거겠지.”“하긴!”캐리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을 이었다.“요즘 매일 고열에 시달리던데 확실히 운동이 필요하긴 해.”하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송유라에게 문자를 보냈다.[송유라 씨, 의상 제작이 끝났는데 오후에 확인하러 오실 수 있을까요?]한참뒤에야 송유라에게서 답장이 왔다.[오후 2시쯤 회사로 찾아가도 괜찮아요?][네, 도착해서 전화 주시면 내려갈게요.]하영은 휴대폰을 넣고 곁에서 누군가와 열심히 문자하고 있는 캐리를 보며 물었다.“요즘 계속 늦게 돌아오는 것 같던데.”캐리는 “응.”하고 대답하더니 이내 말을 바꿨다.“아니, 그냥 10시 뒤에 들어왔어.”“…….”‘무슨 차이가 있나?’“혹시 여자 친구 생겼어?”하영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그러자 캐리는 갑자기 휴대폰을 품에 넣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 여자 친구 없어!”하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친구랑 약속 있어요.”희원이 겉옷을 입고 방을 나서는 순간 방 안에서 나오고 있던 양다인과 마주치고 말았다.희원은 양다인을 힐끔 쳐다보고 별 말 없이 그냥 계단으로 향했다.“희원아, 지난번에 도와줘서 고마워.”그때 양다인이 희원의 뒤에서 입을 열었고, 그 말은 막 방에서 나오던 송유라의 귀에 들어갔다.송유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문 뒤에 서서 밖에서 오가는 대화를 들었다.그때 희원이 돌아섰다.“나 이용해 먹고 사탕발린 말을 잘도 하네. 양다인 네 인사는 역겨워서 받고 싶지 않아!”양다인은 희원한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왜 그런 식으로 얘기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유준 씨한테 접근할 수 없었을 거야.”“경고하는데 양다리 걸칠 생각하지 마!”희원은 화를 내며 이를 갈았다.“유준 오빠 앞에서 역겹게 굴지도 마!”양다인은 양손을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왜 화를 내고 그래? 혹시 고자질이라도 하려고? 유준 씨가 과연 네 말을 믿어 줄까?”그 말에 희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너!”양다인은 웃음을 터뜨렸다.“할아버지가 왜 나를 미행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곁에서 부추겼지?”“그게 왜? 정주원한테 접근해도 상관없어. 그런데 나를 이용해서 유준 오빠한테 접근한 건 절대 참을 수 없어! 양다인, 잘 들어. 네가 유준 오빠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절대 가만 안 둬!”“네 아버지가 다시 회사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은 건 아니지?”“할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계시잖아. 그리고 설 후에 바로 회사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절대 우리 아버지 직위를 박탈할 수 없어! 그러니 너도 나한테 전혀 위협할 수 없다는 얘기야!”양다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나랑 맞서 싸울 생각이야?”“맞아!”희원이 싸늘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쏘아보았다.“양다인, 너무 잘난 척하지 마.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오면 모두가 너를 짓밟고 싶어 할 테니까. 나도 마찬가지고!”“픽.”양다이는 코웃음을 쳤다.“소희원, 대체
“공장의 직원들이 책임지고 한 일이지, 저랑은 크게 상관없어요.”“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어요. 제가 사람을 불러서 옷을 보내라고 할게요.”“송유라 씨.”하영이 송유라의 말을 끊었다.“저도 필요한 생필품을 많이 샀는데, 이 옷들은 제가 직접 가져다 주고 싶어요.”송유라는 깜짝 놀랐다.“직접 자양산으로 가려고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미 항공사에 연락해서 전용기로 운송하기로 했고, 언론에도 알릴 거예요. 이건 송유라 씨와 손잡고 하는 일이니까요.”“안 돼요!”송유라가 갑자기 격앙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쪽 산길은 너무 위험하니까 가면 안 돼요!”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송유라를 바라보았다.‘나랑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하영이 말이 없자 송유라는 방금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고 다시 침착한 어조로 얘기했다.“하영 씨, 그곳은 산길도 험하고 거리도 꽤 먼 편이라, 하영 씨 안전이 걱정돼서 그랬어요.”“송유라 씨가 그곳을 잘 알고 있는 걸 보면 직접 가본 적 있으시죠?”송유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네.”“송유라 씨도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아이들한테 따뜻함을 전하셨는데, 제가 왜 두려워하겠어요?”송유라는 걱정된 어조로 물었다.“정말 갈 생각이에요?”“네.”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이미 결정했거든요.”송유라는 더 뭐라 할 수 없었고, 그저 탄식과 후회만 남았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런 일은 시키지 않는 건데. 애가 너무 착해서 탈이야.’하영은 자양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찍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식탁에서 세희가 하영에게 그릇에 국을 담아주며 입을 열었다.“엄마, 국물 드세요. 내일 출장 가면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자는 것도 불편할 거예요.”하영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국그릇을 받았다.“고마워, 세희야. 내일부터 삼촌과 주희 언니 말 잘 들어야 해.”“알았어요, 엄마.”세희가 달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