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은 두 손을 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사실을 말했을 뿐이야.”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두 아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너희들은 얌전히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 테니까.”두 녀석은 고분고분 머리를 끄덕였고, 하영은 아이들의 손을 놓은 뒤 인나의 곁으로 다가갔다.“인나야, 일단 들어가자.”인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하영아, 나 이딴 더러운 곳에 있고 싶지 않아!”하영은 현욱을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인나야, 지금 속상한 건 네가 아니라 현욱 씨인 것 같아.”말을 마친 하영은 유준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인나를 끌고 자리에서 떠났고, 유준과 현욱은 각자 하영과 인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동시에 슬픔에 빠졌다.하영과 인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호텔 개업식이 시작됐는지 폭죽 소리가 들려왔고, 인나는 침대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거짓말쟁이! 배현욱은 거짓말쟁이야!”하영은 곁에 앉아 인나의 등을 다독여줬다.“우리가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오해라니?”인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공들여서 한 화장은 이미 전부 번져있어 침대에 앉아 인나를 보고 있던 두 녀석은 깜짝 놀랐다.“너무 못생겼잖아요!”세준이 표정을 구기며 인나를 쳐다보자, 세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보았다.“오빠, 어떻게 이 상황에도 이모를 놀릴 수 있어?”세준이 조용히 세희의 손을 잡아 꼬집자, 세희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오빠는 지금 이런 식으로 이모 기분을 풀어주려는 거구나!’“너 이 자식 지금 누구를 얘기하는 거야?”인나가 날카롭게 소리 지르자, 세준은 여전히 놀리듯 입을 열었다.“울고 있는 사람을 얘기하는 거죠.”인나는 하영을 돌아보며 눈물과 콧물을 쓱 닦았다.“하영아, 나 오늘은 네 아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을 것 같아!”말을 마친 인나는 세준에게 달려들었다.셋이서 침대에 엉켜 치고받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어떻게
“저 확실히 현욱 오빠를 좋아해요. 며칠 전에 속인 건 사과할게요. 하지만 지금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현욱 오빠를 두고 인나 씨가 저랑 겨룬다면 질 수밖에 없을걸요?”그 말에 세준과 세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용기가 정말 대단하네, 지금 혼자서 선전포고하러 온 거야?’주민의 말에 인나는 비웃듯 얘기했다.“난 너랑 겨룰 생각도 없어. 그런 바람둥이 남자는 내가 그냥 양보할게!”‘멋있어!’두 녀석은 속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양보해요?”그때 문 앞에서 현욱의 목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언제 왔는지 현욱과 유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하영과 유준도 서로 시선이 마주쳤지만, 하영은 금방 시선을 돌렸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마냥 어떠한 감정 변화도 없었고, 그에 유준의 눈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손을 움찔했다.인나는 현욱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어요?”현욱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인나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갔다.“정말 나를 다른사람한테 양보할 생각이에요?”현욱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고, 인나가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주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현욱 오빠, 나 먼저 갈게.”현욱이 거들떠보지 않자 주민은 그대로 방을 떠났고, 인나는 피식 웃었다.“봤어요? 현욱 씨 소꿉친구가 나를 찾아와 선전포고하는 거. 대체 얼마나 여지를 줬으면 저러겠어요?”현욱은 계속해서 인나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하나만 물을게요. 정말 나 양보할 생각이에요?”“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나는 현욱 씨랑 만날 때, 이런 식으로 지저분한 남자관계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현욱 씨는요? 맞선을 보질 않나, 이제는 소꿉친구까지! 미안하지만 나는 이렇게 못 살아요!”현욱은 허탈하게 웃었다.“인나 씨가 화낼 때마다 나는 떠나지 말라고 비굴하게 매달리고, 우리 어머니랑 싸웠을 때도 고민도 하지 않고 인나 씨 편에 섰어요! 그런데 나를 양보한다고?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인나 씨는 그냥 나한테 마음이
유준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너희 두 사람은 애초에 신분 차이도 크고, 우인나 성격이 털털하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여자잖아.”현욱은 입술을 삐죽였다.“여자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지금 나 비웃는 거야?”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현욱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아니, 너도 결국 하영 씨를 네 여자로 만들지 못했잖아!”유준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지기 시작하면서, 눈에서는 서늘한 한기를 뿜었다.“배현욱, 죽고 싶냐?”안 좋은 상황을 감지한 현욱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갔다.저녁.끝내 방을 나가지 않으려던 인나는 결국 베개를 안고 잠들었고, 하영은 할 수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온천으로 향했다.아이들을 데리고 수영복을 갈아입은 하영은 두 녀석에게 목욕 가운을 둘러주고 탈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애들이랑 얘기하고 있던 중에 어떤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비틀거리며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난 하영이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안경을 쓴 남자가 있었다.“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앞을 못 봤어요.”남자는 하영을 한 번 보고 세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남자의 눈이 빛나더니 얼른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덴 없으시죠?”“네, 괜찮아요.”하영의 대답에 남자는 미소를 보였다.“아이들이 참 귀엽네요.”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하영은 애들을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별일 없으시면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하영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천으로 향했고,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세희를 뒤쫓으며 음침한 빛을 내비쳤다.뒤에서 이상한 시선을 느낀 세준이 뒤를 돌아 남자를 쳐다봤고, 남자는 세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자 급히 웃어 보였다.“…….”세준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남자는 꽤 정직해 보였다.‘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거겠지?’온천에 들어가자 세희는 신나서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싫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세준을 끌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놀다가 피곤
세준은 고개를 들어 여직원을 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누나, 엄마 찾으러 가고 싶은데 화장실까지 데려다 줄 수 있어요?”여직원은 세준의 부탁에 못 이겨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세준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입구에 도착하자 세준이 또 직원에게 부탁했다.“누나, 혹시 들어가서 엄마 좀 불러줄 수 있어요?”“그래.”세준이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여직원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뛰어나와 세준을 한 번 보더니, 무전기를 꺼냈다.“매니저님, 남쪽에 있는 온천 화장실에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세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급히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하영을 발견한 세준은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내려놓고 곁으로 달려갔다.“엄마!”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영을 불렀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세준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하영의 코끝에 대보았다.하영의 숨결을 느끼고 그제야 한숨을 돌린 세준은 곧 다시 몸이 굳어져 버렸다.‘잠깐……, 세희는 어디 갔지?’세준은 빠르게 다른 칸 화장실도 전부 확인해 봤지만 세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때 여직원이 화장실로 달려 들어왔다.“꼬마야, 매니저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찾으러 갔으니까 너무 다급해하지 마.”여직원을 바라보던 세준의 머릿속에 갑자기 안경을 쓴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순간 그 남자의 눈빛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변태였어!’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변태의 모습에 세준은 한기를 느꼈다.세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어 유준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면서, 여직원을 쳐다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엄마한테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말을 마친 세준은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갔다.‘노트북! 지금 당장 노트북이 필요해!’곧 유준이 전화를 받았고, 세준은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세희를 구해주세요!”유준은 전화기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가 물었다.“무슨 뜻이지?”세준은 로비로 달려가면서 방금 일어난 상황을 얘기했고, 그 말에 유준의 목
그때 갑자기 노트북 화면에 몇 개의 CCTV 화면이 나타났고, 세준은 빠른 속도로 남쪽 화장실을 찾아 물을 사러 갔던 시간대로 설정했다.세준이 자리를 비우고 얼마 안 되어, 하영이 세희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마른 몸매의 사람이 화장실로 들어갔다.CCTV 화면을 주시하던 인나는 그 사람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체형을 보니 남자 같아!”세준은 인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화면을 주시했다.3분 쯤 지났을 때,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남성이 세희의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마치 미리 길이라도 확인해논 것처럼 차분하게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세준은 두 손으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자, 남자가 하영을 안고 떠나는 화면이 다시 나타났다.세준은 주변의 환경과 안내판을 살피고, 바로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남쪽 온천.유준이 급히 현장에 도착하니, 많은 직원들과 호텔 전문 의료진이 화장실 입구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들것에 누워 나오는 하영을 발견하고 앞으로 다가가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가 세준인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그 남자를 찾았어요! 제가 길을 알려드릴 테니 세희를 찾아주세요!”유준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둡게 가라앉았다.“거기가 어디야!”“화장실에서 나온 뒤 동남쪽으로 200미터쯤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가면 숲이 있는 산소 카페가 있는 곳이에요! 제발 빨리요! 세희를 데려간 지 벌써 40분이 넘었어요!”‘40분…….’유준의 눈빛이 흔들렸다.‘지금 시간이면 세희의 상황이 많이 안 좋을지도 몰라!’세희가 나쁜 놈 손에 두려움에 울면서 떨고 있다는 생각에, 유준의 심장이 이상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무의식이 끊임없이 유준에게 반드시 빨리 세희를 찾아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었다.“알았어!”유준은 세준이 알려준 길을 따라가며 경호원들에게도 찾아보라고 명령했다.숲에 있는 산소 카페는 산책을 할 수
세희는 작은 손으로 유준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끊임없이 유준의 품속을 파고들었다.“아빠……, 아빠……,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유준의 가슴은 마치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팠다. 이유 모를 안타까움에 손을 내밀어 떨고 있는 세희를 꼭 껴안아 줬고, 미간이 부드럽게 펴지기 시작하더니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집에 데려다줄게.”말이 끝나자마자 시원이 사람들을 데리고 뛰어왔고, 유준의 품에 안겨 있는 세희를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왔다.“대표님, 저희가 늦었습니다!”유준은 싸늘한 눈으로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남자를 응시하며, 날카로운 어조로 얘기했다.저 자식의 더러운 물건을 없애버리고 경찰서에 보내!”“알겠습니다!”하영은 객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고, 인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곁을 지키며 노트북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세준을 주시했다.막 입을 열어 위로를 건네려던 때 세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세준히 얼른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자 유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세희 찾아서 의무실로 데려가는 중이야. 하영은 좀 어때?”세준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혹시 세희가…….”세준은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삼켰다.“아무 일 없어.”그제서야 고개를 푹 떨구고 안심하는 세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의사 선생님에게 보이고 나면 여기까지 데려다주세요. 엄마는 지금 수액을 맞고 있어요.”“그래.”말을 마친 유준이 전화를 끊었고, 인나도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세준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준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지만, 인나는 그가 지금 흐느낌으로 떨리는 몸을 꾹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녀석…….’나중에 세준도 삼촌이랑 똑같이 동생을 끔찍이 아낄 것 같았다.의무실에 도착한 세준은 품에 안고 있던 세희를 침대에 눕혔고, 의사가 다가오자 몸을 일으켜 얘기하려던 순간 세희가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싫어요!”세희가 비명을 지르
유준이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궁금한 게 참 많네.”현욱은 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매만졌다.“그래도 우리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제대로 알아야지.”유준은 눈물이 맺힌 채 품에 안겨 잠든 세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세희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모든 상황을 현욱에게 알려줬다.“세상에!”현욱이 화를 내며 입을 열었다.“어떻게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다 있어?”욕설을 퍼붓던 현욱은 유준의 곁에 앉아 물었다.“그런데 왜 너를 아빠라고 불러?”“착각했겠지.”유준은 뭔가 아쉬운 말투로 대답했다.“소예준에게 연락해 봐.”그 말에 현욱은 유준의 팔을 툭툭 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너 세희가 네 딸이었으면 좋겠지? 너무 귀엽잖아.”유준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홱 들어 현욱을 쏘아보았다.“좀 닥치지 못해?”현욱은 그래도 포기를 몰랐다.“유준아, 혹시 네 딸일 가능성은 없을까? 세희가 처음에는 착각했을 수 있지만, 나중에 또 착각한다고? 세희 정신 연령은 다섯 살 어린이 수준이 아니라 엄청 똑똑한 애잖아.”현욱은 마지막 한 마디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세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니, 똑똑하고 철이 든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유준은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그 입 닥치고 얼른 소예준에게 연락이나 해!”“자기 딸을 이대로 다른 사람한테 보내려고?”현욱이 또 은근슬쩍 말을 이었다.“너를 아빠라고 부르잖아.”유준은 당장이라도 현욱을 뚫어버릴 듯이 쏘아보며,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세희는 소예준 딸이야!”유준이 정말로 화를 내자 현욱도 더는 그를 놀리지 않았고, 밖으로 나가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문이 닫기자 유준의 시선은 다시 세희의 작은 얼굴로 향했다.‘나와 강하영의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이었을까?’11시.다급하게 의무실로 도착한 예준은 세희를 안고 있는 유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고맙다.”유준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고마울 필
다음 날 아침.한 실검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새로 오픈한 메리어트 온천 호텔에서 변태가 검거되었는데, 해당 남성의 신상정보와 주소가 전부 공개되고 말았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메리어트 호텔은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고, 많은 손님들이 온라인으로 예약하면서 단기간에 예약이 꽉 찰 정도였다.인나는 그 기사를 보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예준을 바라보았다.“예준 오빠, 세준에게 부탁한 게 하영과 세희를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배현욱 호텔 홍보를 위한 거예요?”“일거양득인 셈이지.”예준이 책상 옆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여기 호텔엔 유준의 지분도 있거든.”인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정유준 대표님한테 보답하고 싶은 거군요.”고개를 끄덕이는 예준은 약간 무력한 표정을 내비쳤다.“그래도 세희를 구해줬는데, 이 빚은 다 갚을 수 없을 거야.”인나는 예준과 아직 잠들어 있는 하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역시 피는 속일 수 없다니까.’두 사람은 정유준과 다소 갈등을 빚고 있더라도, 은혜와 원한만큼은 항상 확실하게 구분했다.예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던 하영은 천천히 눈을 떴고,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이 벌떡 일어났다.“세희야!”예준과 인나, 그리고 아직 자고 있던 세준까지 소리를 듣고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예준이 항영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세희 괜찮으니까 흥분하지 마.”하영은 서둘러 예준의 뒤를 확인했다. 그리고 세희의 작은 얼굴에 상처가 난 모습을 보자 급히 이불을 걷어 올리고 달려가려는데, 인나가 그녀를 막았다.“하영아, 세희 아직 자고 있으니까, 깨우지 마.”하영은 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어젯밤 그 남자가…….”“잡았어.”인나가 설명하기 시작했다.“세희 괜찮아. 정유준이 제때 세희를 구해줬거든.”“정유준?”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이 세희를 구했다고?”인나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들을 하영에게 설명했고, 그 얘기를 들을 수록 하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