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마침 하영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려던 참이었다. 갑작스레 심장이 아파와 그녀도 조금 당황스러웠다.인나는 레스토랑 주소를 얘기하자, 하영은 가방을 챙기고 바로 회사를 나섰다.10분 후, 달밤 파스타에 도착한 하영은 인나와 만나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인나는 하영의 곁에 앉아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하영아, 이거 봐봐!”하영은 눈을 들자, 인나의 가운데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현욱 씨가 사 준 반지야?”하영의 말에 인나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맞아, 나를 미리 묶어놓겠다고 하면서 말이야.”하영은 짐짓 한숨을 쉬는 척했다.“보아하니 축의금을 미리 준비해야겠네. 얼마나 넣어야 하나…….”인나는 하영의 팔을 덥석 잡았다.“어머, 백 원이라도 감사하지. 난 너만 곁에 있으면 돼.”말이 끝나자마자 인나의 휴대폰이 울렸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낯선 번호인 것을 확인하고 약간 미간을 찡그렸다.그러자 하영이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왜 그래?”“모르는 번호라서.”인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우인나 씨 맞죠?”휴대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하영과 인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네, 맞아요. 누구시죠?”“우인나 씨, 혹시 점심에 시간 괜찮으면 만날 수 있을까요? 나 현욱이 어머니에요.”김서현의 말에 인나는 깜짝 놀랐다.“안녕하세요, 어머님. 저는 시간 괜찮아요. 점심은 제가 대접할게요.”“좋아요. 식당 주소를 알려주세요.”“MK 근처에 있는 달밤 파스타 106번 방이에요.”“그래요, 지금 바로 갈게요.”김서현이 전화를 끊자 인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현욱 씨 어머니가 왜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거지? 나 화장 번지지 않았어? 옷차림은 괜찮아?”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인나를 바라보았다.“다 좋으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인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당연히 긴장되지. 현욱 씨가 어머니한테 얘기한 건가? 그래서 갑자
김서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주민이가 외국에서 금방 귀국하게 됐는데, 할아버지가 주민이를 데리고 집에 찾아와서야, 어렸을 때 주민이 할아버지랑 혼사를 정한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김서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인나도 그 사실을 깨닫고 무심코 입을 열려는 순간, 하영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아주머니, 혼사가 정해진 사실을 현욱 씨 본인도 알고 있나요?”김서현은 하영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그쪽은 누구죠?”하영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저는 우인나 친구입니다.”“그쪽은 발언권이 없어요.”김서현은 하영과 얘기하기를 거부했다.“우인나 씨도 입이 달렸으니, 직접 얘기하게 하세요.”김서현의 말에 인나는 순간적으로 성질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기 시작했다.“하영은 저의 제일 친한 친구인데, 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죠?”“직접 얘기할 줄 몰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 얘기해줘야 하는 거예요?”김서현이 인정사정없이 면박을 주자 인나는 피식 웃었다.“이제야 알겠네요. 저랑 현욱 씨를 헤어지게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죠?”인나의 말에 하영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짚었다. 인나가 한 번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인나의 말에 김서현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지금 그게 무슨 예의 없는 태도죠?”“저는 충분히 예의를 갖춰서 대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먼저 제 친구한테 무례하게 굴었잖아요!”인나는 전혀 뜻을 굽히지 않았다.“지금 이 태도 때문에라도 절대 우리 집안 며느리로 들어올 수 없을 거야!”“그 집안은 뭐 그렇게 대단해요? 제가 뭐 뜯어가기라도 할까 봐요?”김서현은 치를 떨었다.“못 하는 말이 없구나! 당장 내 아들하고 헤어져!”“그쪽 아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인나는 계속해서 쏘아붙였다.“제가 아니라, 아주머니 아들이 저한테 매달리는 거라고요! 제대로 알아보고 말씀하세요!”그때 곁에 있던 주민이 끼어들었다.“우인나 씨가
인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현욱 씨 어머니니까 현욱 씨가 알아서 해야지.”“나중에 네가 현욱 씨랑 결혼하게 되면, 언젠간 어머니와 마주해야 하잖아.”“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같은 상황엔 그 집안에 시집가고 싶지 않아.”인나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배현욱네 집.현욱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외출하고 돌아온 김서현과 주민을 마주쳤다.주민은 현욱을 보자마자 기쁜 듯이 달려오며 그를 불렀다.“현욱 오빠!”현욱은 자신한테 안기려는 주민을 보고 얼른 몸을 피했다.“누구세요?”현욱의 말에 주민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오빠, 나야, 뚱민이”“뚱민이?”현욱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맞아!”주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오빠 뒤를 따라다니던 뚱뚱한 애 기억 안 나?”“그게 너였어?”현욱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자, 주민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이제야 기억났어?”“그래, 기억이 나긴 하는데.”현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너랑 어머니가 내 여자 친구를 찾아간 일을 좀 설명해 줘야겠어.”주민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때 곁에 서 있던 김서현이 화를 내며 앞으로 다가왔다.“그건 내가 묻고 싶은 얘기야! 따라와!”별장에 들어선 후, 김서현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당장 헤어져. 그런 여자는 우리 집안이랑 어울리지 않아!”현욱도 벌컥 화를 냈다.“이 일에 대해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결혼이니까 절대 부모님 뜻에 따를 생각 없습니다.”“기어이 나를 화나게 할 셈이야?”김서현이 언성을 높이자, 현욱은 불쾌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니요! 그저 부모님이 저를 위해 계획하신 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겁니다!”“배현욱!”김서현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 여자가 나한테 어떻게 말대꾸를 했는지 알기나 해?”“두 사람이 먼저 인나 씨를 떠보지 않았어요?”현욱도 화를 내며 되물었다.“저랑 뚱민이가 어
4시간이 넘는 긴 수술 끝에, 수술실 불이 드디어 꺼졌다.의사가 걸어 나올 때, 유준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고, 의사는 홀가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작은 도련님 수술은 매우 성공적입니다.”유준은 의사의 말에 이틀 동안 가슴 위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간 느낌을 받았다.“최고의 의료팀을 꾸려서 잘 돌보도록 하세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반드시 작은 도련님을 잘 치료해 드릴 것이니 안심하세요. 간호사들도 모두 대기 중이니 작은 도련님도 외로움을 느끼진 않을 겁니다.”곁에 있던 양다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눈시울을 붉혔다.“유준 씨, 너무 잘 됐어요.”유준은 양다인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고마워.”그 말에 양다인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귀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우리 사이에 별말을 다 하네요.”“고마움의 표시로 밥 사 줄게.”유준은 의사한테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양다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가자.”저녁.아크로빌로 돌아온 하영은 저녁 식사할 때도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희민의 답장을 기다렸다.세준과 세희는 하영을 주시하며 작은 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오빠, 오늘 엄마가 약간 정신이 없어 보이는데, 오빠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서 엄마 화나게 했어?”세준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어 세희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넌 나를 그렇게밖에 생각 안 해?”세희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그럼 엄마가 왜 저러시는 거야?”세준은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네가 물어보지 그래?”세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주먹을 입가에 댄 채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엄마?”하영은 여전히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기계적인 동작으로 입안의 음식을 씹고 있었다.“엄마!”세희와 세준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구동성으로 하영을 불렀다.깜짝 놀란 하영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당황
“산속이라 신호가 안 좋을 수 있으니까, 만약 희민이가 너희한테 물어보면 잘 얘기해줘.”“네!”9시, 난원.현욱은 유준을 찾아갔고,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술을 마셨다.“희민이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너도 이제 안심이지?”술잔을 잡고 있던 유준은 고개를 약간 젖히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무균실에서 한 달 동안 있어야 돼.”“걱정하지 마. 의사들이 잘 치료해 줄 거야. 참, 내일모레 개업식에 너도 가는 거지?”유준은 곁눈질로 현욱을 보며 물었다.“너는 우인나랑 가는 거 아니었어?”“부모님도 다 가시는데 인나 씨는 못 데려갈 것 같아.”현욱은 한숨을 쉬었다.“인나 씨 오늘 우리 어머니랑 크게 싸웠거든.”유준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현욱을 바라보았다.“그래서 너는 누구 편이야?”“당연히 인나 씨 편이지!”현욱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불효자식이네.”유준의 조롱에 현욱은 상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도 알아. 그래도 인나 씨를 너무 사랑하는 걸 어떡해.”“앞으로 어쩔 생각인데?”유준이 현욱에게 물었다.“너의 어머니 그렇게 만만하신 분 아니잖아.”현욱이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유준은 못 볼 꼴을 본 것마냥 시선을 피했다.“그렇게 역겨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친구로서 도와줄 생각도 없어?”현욱이 다급하게 물었다.“딱 이번 한 번만 도와줘!”유준은 술잔을 내려놓았다.“대체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유준의 말에 현욱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헤어져 있는 동안 잠도 안 오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면 이해하겠어?”그러자 유준은 눈을 내리깔았다.“네 어머니가 꼭 내 의견을 들을 거란 보장은 없어.”“하지만 우리 아버진 다르잖아!”현욱이 확신하듯 대답했다.“아버지는 언제나 네 말이라면 귀담아들으시잖아!”“한 번 얘기는 해볼게.”유준은 사실 다른 사람의 집안일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현욱이 느끼는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영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모두가 그렇게 차려입은 건 아니잖아. 저기 보면 일반 손님도 있어.”세준도 옆에서 피식 웃었다.“이모, 안경 하나 맞추는 건 어때요?”그 말에 인나는 고개를 숙여 세준을 째려보았다.“너 이 자식, 네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는 걸 못 봤다.”세준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이모, 제가 저기 가서 화려한 의상 하나 얻어 드릴까요?”“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화려한 풍경이 될 수 있거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필요없어!”인나의 도도한 말에 세희가 그녀를 덥석 안았다.“이모가 제일 예뻐요.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인나는 활짝 웃으며 세희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역시 우리 세희는 언제나 말을 이쁘게 한다니까! 가자, 이모가 뭐든 해줄게!”그들이 로비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누가 부르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현욱 오빠!”인나와 하영이 발길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우아한 파티 드레스를 입은 주민이 어딘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그곳에는 현욱이 정장을 차려입고 차 옆에 서 있었는데, 검은색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현욱은 주민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뚱민이, 너도 왔어?”주민은 앞으로 다가가 현욱에게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현욱 오빠는 역시 정장 차림이 멋있다니까! 어릴 때와는 확실히 달라!”현욱은 자연스레 팔을 빼내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내가 누군데!”친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에 하영은 순간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인나를 바라보았다.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현욱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인나의 모습에, 하영은 오늘 재밌게 놀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세희가 머리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현욱 아저씨 옆에 있는 저 여자는…….”말이 채 끝나기 전에 세준이 얼른 세희의 입을 틀어막았다.“조용히 해!”세희가 미처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인나는 이미 세희의 손을 놓고, 분노에 찬 모습
세준은 두 손을 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사실을 말했을 뿐이야.”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두 아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너희들은 얌전히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 테니까.”두 녀석은 고분고분 머리를 끄덕였고, 하영은 아이들의 손을 놓은 뒤 인나의 곁으로 다가갔다.“인나야, 일단 들어가자.”인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하영아, 나 이딴 더러운 곳에 있고 싶지 않아!”하영은 현욱을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인나야, 지금 속상한 건 네가 아니라 현욱 씨인 것 같아.”말을 마친 하영은 유준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인나를 끌고 자리에서 떠났고, 유준과 현욱은 각자 하영과 인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동시에 슬픔에 빠졌다.하영과 인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호텔 개업식이 시작됐는지 폭죽 소리가 들려왔고, 인나는 침대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거짓말쟁이! 배현욱은 거짓말쟁이야!”하영은 곁에 앉아 인나의 등을 다독여줬다.“우리가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오해라니?”인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공들여서 한 화장은 이미 전부 번져있어 침대에 앉아 인나를 보고 있던 두 녀석은 깜짝 놀랐다.“너무 못생겼잖아요!”세준이 표정을 구기며 인나를 쳐다보자, 세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보았다.“오빠, 어떻게 이 상황에도 이모를 놀릴 수 있어?”세준이 조용히 세희의 손을 잡아 꼬집자, 세희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오빠는 지금 이런 식으로 이모 기분을 풀어주려는 거구나!’“너 이 자식 지금 누구를 얘기하는 거야?”인나가 날카롭게 소리 지르자, 세준은 여전히 놀리듯 입을 열었다.“울고 있는 사람을 얘기하는 거죠.”인나는 하영을 돌아보며 눈물과 콧물을 쓱 닦았다.“하영아, 나 오늘은 네 아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을 것 같아!”말을 마친 인나는 세준에게 달려들었다.셋이서 침대에 엉켜 치고받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어떻게
“저 확실히 현욱 오빠를 좋아해요. 며칠 전에 속인 건 사과할게요. 하지만 지금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현욱 오빠를 두고 인나 씨가 저랑 겨룬다면 질 수밖에 없을걸요?”그 말에 세준과 세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용기가 정말 대단하네, 지금 혼자서 선전포고하러 온 거야?’주민의 말에 인나는 비웃듯 얘기했다.“난 너랑 겨룰 생각도 없어. 그런 바람둥이 남자는 내가 그냥 양보할게!”‘멋있어!’두 녀석은 속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양보해요?”그때 문 앞에서 현욱의 목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언제 왔는지 현욱과 유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하영과 유준도 서로 시선이 마주쳤지만, 하영은 금방 시선을 돌렸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마냥 어떠한 감정 변화도 없었고, 그에 유준의 눈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손을 움찔했다.인나는 현욱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어요?”현욱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인나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갔다.“정말 나를 다른사람한테 양보할 생각이에요?”현욱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고, 인나가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주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현욱 오빠, 나 먼저 갈게.”현욱이 거들떠보지 않자 주민은 그대로 방을 떠났고, 인나는 피식 웃었다.“봤어요? 현욱 씨 소꿉친구가 나를 찾아와 선전포고하는 거. 대체 얼마나 여지를 줬으면 저러겠어요?”현욱은 계속해서 인나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하나만 물을게요. 정말 나 양보할 생각이에요?”“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나는 현욱 씨랑 만날 때, 이런 식으로 지저분한 남자관계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현욱 씨는요? 맞선을 보질 않나, 이제는 소꿉친구까지! 미안하지만 나는 이렇게 못 살아요!”현욱은 허탈하게 웃었다.“인나 씨가 화낼 때마다 나는 떠나지 말라고 비굴하게 매달리고, 우리 어머니랑 싸웠을 때도 고민도 하지 않고 인나 씨 편에 섰어요! 그런데 나를 양보한다고?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인나 씨는 그냥 나한테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