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실소를 터트렸다.“세희야, 너 지금 엄마 곤란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야?”세희는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입을 열었다.“저는 세준이 누나가 되고 싶어요. 제가 크면 마음껏 괴롭힐 수 있잖아요!”세준은 눈을 반쯤 내리깔고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나보다 한 살이 많아도 너는 날 이길 수 없어.”말을 마친 세준은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엄마, 저 할 얘기가 있어요.”“응? 무슨 얘긴데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세준이 진지하게 얘기했다.“저랑 세희, 희민이 찾으러 가고 싶어요.”세희도 따라서 머리를 끄덕였다.“엄마, 저도 희민 오빠 보고 싶어요. 희민이네 집으로 가도 돼요?”하영은 유준을 떠올렸다. 만약 아이들이 놀러 간다면 어쩔 수 없이 유준과 마주칠 수도 있다.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또한 이제 그만 유준을 놓아주기 위해서라도 하영은 눈을 아래로 드리우고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건 허락할 수 없을 것 같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희민이도 곧 학교로 돌아올 거야.”“왜요?”세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희민 오빠는 벌써 며칠째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다시 돌아올까요?”하영은 유준과 있었던 일을 아이들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아이들을 설득해야 했다.“꼭 돌아올 거야. 희민이가 보고 싶으면 집에 가는 대신 전화라도 해 봐.”그러고 보니 희민은 며칠 동안 하영에게 문자도, 전화도 없었다.‘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을까? 공부가 많이 바쁜가? 문자라도 해볼까? 다음 달 말이면 설인데, 희민이와 함께 연말을 보낼 수 있을까?’세준은 하영이 곤란해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저희는 엄마 말대로 할게요.”그러자 세준이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그만 얘기해.”세준이 세희의 말을 끊었다.“괜히 엄마 귀찮게 하지 마.”세희는 실망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알았어, 나도 말 잘 들을게.”하영은 철이 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어느새 우울한 기분도 싹 가시고 말
눈 깜짝할 새, 캐리의 손에 이끌려 가까운 도매 시장에 도착했다.다양한 물품으로 가득 찬 시장을 보고 하영은 캐리에게 물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았어?”“며칠 전에 우연히 발견한 데야.”캐리는 하영을 한 가게 앞으로 데려갔다.“이 가게에 네가 원하는 물건들이 있을 거니까, 사장님한테 얘기하면 돼.”하영은 빠르게 가게 안을 살피며 물었다.“품질은 어때?”“내가 보장할 수 있거든!”캐리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을 찾았다.한 시간 동안 하영은 가게 사장님한테 필요한 물품에 대해 얘기하고, 그에 따른 선금을 지불했다.캐리는 뒤에서 휴대폰으로 열심히 촬영했다. 그리고 캐리를 따라 나온 뒤 하영은 어깨를 주무르며 차에 올라탔다.“캐리, 잠시 서점도 들렀다 가. 그래도 애들한테 필요한 책이라도 좀 사줘야지.”캐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책도 사려고? 방금 비누만 만 개에, 세제는 차 한 대에 전부 싣지도 못할 정도잖아!”하영은 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마을에 아이들이 있다면 분명 노인들도 있을 건데, 그 정도 양은 돼야지.”말로는 하영을 이길 수 없었던 캐리는 어쩔 수 없이 하영을 데리고 책을 사러 갔다.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점심때가 되었고, 두 사람은 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먹었다.하영은 희민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휴대폰을 꺼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자를 써 내려갔다.[희민아, 요즘 공부하는 게 많이 바빠? 동생들도 그렇고 엄마도 우리 희민이가 많이 보고 싶어.]같은 시각, 병원.희민은 의사를 따라 수술 전 검사를 받으러 갔고, 하영이 보낸 문자는 희민의 휴대폰을 쥐고 있던 유준이 보게 됐다.톡에 엄마라고 찍힌 이름을 본 유준은 갑자기 심장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어젯밤 하영과 한 대화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한데, 포기라는 단어는 유준이 5년을 버티면서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유준은 휴대폰을 꽉 움켜쥐고 문자를 클릭했고, 동생들이란 단어가 더욱 그의 눈을 쓰리게 했다.
[내 아들이 너희들을 따라 낯선 남자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아빠로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그럼 알아서 생각해 보세요.]문자를 보낸 세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나를 시험하려고? 꿈 깨시죠!’유준이 계속해서 답장을 보내려 할 때, 문밖에서 갑자기 양다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준 씨, 희민이 검사 끝났어요. 검사 결과가 나와 수치만 정상범위에 도달하면 수술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유준은 휴대폰을 넣고 일어나서 양다인을 쫓아냈다.“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아.”“네?”양다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희민이 오후에 약물 치료도 받아야 하잖아요. 바쁘면 먼저 가 봐요.”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회사와 현장에 한 번은 다녀와야 했다.요즘 희민이가 아프다 보니 회사에도 못 나갔고, 게다가 오늘 프로젝트에 관해 거래처와 회의가 있다고 비서한테서 문자가 왔었다.“그럼 여기 남아 있어.”양다인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내가 꼭 희민을 잘 보살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유준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희민의 휴대폰을 베개 아래에 넣은 뒤, 다시 병실 문 앞으로 가서 김호진에게 당부했다.“한 발자국도 떠나지 말고 양다인을 잘 지켜봐. 절대 희민이랑 단둘이 있는 기회를 주지 말고.”김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검사를 마친 희민이 병실로 돌아왔고, 유준은 희민이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병실을 떠났다.오후.하영이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에 앉자마자 정주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화면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던 하영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하영이 싸늘한 어조로 묻자, 주원이 가볍게 웃었다.“강하영 씨, 양다인 씨와 있었던 일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만 끊을게요.”하영은 주원에 대한 짜증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얘기하세요.”“맞아요. 제가 양다인 씨한테 유준의 어머니에 대해 얘기해 줬어요.”정주원이 솔직하게 털어놨다.“그러니까 이번 일은 정주원 씨가 일부러 양다인을 통해 의도적
저녁.양다인이 집으로 돌아오자 소백중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다인아, 오늘 회사도 안 나갔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딜 간 거야?”집으로 오는 길에 양다인은 이미 핑계를 생각해 놓았다.“할아버지, 저는 의류 회사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일할 공장도 둘러보고 그래야죠.”소백중은 그제야 활짝 웃었다.“거래처에 다녀오는 길이었어? 피곤하지 않아?”양다인은 입을 삐죽 내밀고 목을 주물렀다.“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할아버지, 저 먼저 올라가서 쉴게요.”“그래, 얼른 올라가.”방으로 돌아온 양다인은 샤워를 마치고, 소백중이 침실로 들어간 뒤에야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정유준이 보낸 사람들의 미행을 피하고자 양다인은 자신을 꽁꽁 숨기기 위해 옷도 수수하게 차려입었다.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명품 그랜드 캐슬로 향했다.30분 뒤에 양다인은 정주원의 집 앞에서 내려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경호원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양다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주원 씨를 찾아왔는데 왜 막아서는 거죠?”“큰 도련님은 오늘 외부인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경호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외부인?”양다인은 눈을 부릅뜨고 경호원에게 쏘아붙였다.“내가 누군지 잘 봐요, 내가 외부인이에요?”“그럼 직접 도련님께 말씀드려 보시죠.”계속 이렇게 실랑이를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한 양다인은 휴대폰을 꺼내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 뒤에야 그가 전화를 받았다.“다인 씨?”주원이 부드러운 어조로 양다인의 이름을 불렀다.“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에요?”양다인은 주원에게 투정을 부렸다.“주원 씨, 경호원이 왜 저를 못 들어가게 막는 거죠?”주원의 눈빛에 섬뜩함이 스치더니, 피투성이가 된 채 곁에 누워있는 여자를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지금 씻는 중이라 이따가 내가 직접 열어줄게요.”양다인은 비록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네, 기다릴게요.”전화를 끊은 후, 주원은 자리에서 일어
목요일.정희민의 각종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 수치에 달했기에, 의사는 곧 골수이식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유준을 찾아갔다.“대표님, 이제 곧 수술을 진행해도 됩니다. 수술이 끝나고 작은 도련님은 무균실에서 한동안 지내서야 할 겁니다.”유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얼마 동안요?”“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겁니다.”의사의 말에 유준의 가습에 갑자기 통증이 밀려왔다.“설 전에 나올 수 있을까요?”의사는 시간을 계산한 뒤, 약간 아쉬운 듯이 말했다.“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최고로 좋은 약만 사용해서, 최대한 빨리 회복하도록 해주세요.”“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오전, 10시.양다인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들이 침대에 누운 정희민을 밀고나오는 모습을 보았다.희민이 살짝 눈을 뜨는 것을 발견한 양다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얼른 앞으로 다가가 작은 손을 꼭 잡았다.희민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고 겁에 질린 눈빛으로 양다인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약간 멍하니 있다가 얼른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희민아,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무 겁내지 마.”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희민은 얼른 시선을 피해 유준을 바라보았다.“아빠, 제 걱정하지 마세요. 밥 제때 챙겨 드시고 푹 쉬세요.”유준은 안타까운 마음에 희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그래, 너도 빨리 나아야지.”“그럼요.”희민은 유준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희민은 반드시 이겨내서 엄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 전에 쓰러질 수도, 아니, 쓰러져서도 안 된다.곧 희민은 수술실로 들어갔다.……TYC.하영은 회의 중에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식은땀이 흐르던 순간, 하영은 가슴을 꽉 움켜쥐고 몸을 숙였다.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얼른 다가가 하영의 상태를 살폈다.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임수진이 침착하고 빠르게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신속하게 청심환을 꺼내 하영에게 건넸지만, 하영은 그녀를 밀어내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괘
“그래.”마침 하영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려던 참이었다. 갑작스레 심장이 아파와 그녀도 조금 당황스러웠다.인나는 레스토랑 주소를 얘기하자, 하영은 가방을 챙기고 바로 회사를 나섰다.10분 후, 달밤 파스타에 도착한 하영은 인나와 만나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인나는 하영의 곁에 앉아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하영아, 이거 봐봐!”하영은 눈을 들자, 인나의 가운데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현욱 씨가 사 준 반지야?”하영의 말에 인나는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맞아, 나를 미리 묶어놓겠다고 하면서 말이야.”하영은 짐짓 한숨을 쉬는 척했다.“보아하니 축의금을 미리 준비해야겠네. 얼마나 넣어야 하나…….”인나는 하영의 팔을 덥석 잡았다.“어머, 백 원이라도 감사하지. 난 너만 곁에 있으면 돼.”말이 끝나자마자 인나의 휴대폰이 울렸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낯선 번호인 것을 확인하고 약간 미간을 찡그렸다.그러자 하영이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왜 그래?”“모르는 번호라서.”인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우인나 씨 맞죠?”휴대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하영과 인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네, 맞아요. 누구시죠?”“우인나 씨, 혹시 점심에 시간 괜찮으면 만날 수 있을까요? 나 현욱이 어머니에요.”김서현의 말에 인나는 깜짝 놀랐다.“안녕하세요, 어머님. 저는 시간 괜찮아요. 점심은 제가 대접할게요.”“좋아요. 식당 주소를 알려주세요.”“MK 근처에 있는 달밤 파스타 106번 방이에요.”“그래요, 지금 바로 갈게요.”김서현이 전화를 끊자 인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현욱 씨 어머니가 왜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거지? 나 화장 번지지 않았어? 옷차림은 괜찮아?”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인나를 바라보았다.“다 좋으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인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당연히 긴장되지. 현욱 씨가 어머니한테 얘기한 건가? 그래서 갑자
김서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주민이가 외국에서 금방 귀국하게 됐는데, 할아버지가 주민이를 데리고 집에 찾아와서야, 어렸을 때 주민이 할아버지랑 혼사를 정한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김서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인나도 그 사실을 깨닫고 무심코 입을 열려는 순간, 하영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아주머니, 혼사가 정해진 사실을 현욱 씨 본인도 알고 있나요?”김서현은 하영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그쪽은 누구죠?”하영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저는 우인나 친구입니다.”“그쪽은 발언권이 없어요.”김서현은 하영과 얘기하기를 거부했다.“우인나 씨도 입이 달렸으니, 직접 얘기하게 하세요.”김서현의 말에 인나는 순간적으로 성질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기 시작했다.“하영은 저의 제일 친한 친구인데, 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죠?”“직접 얘기할 줄 몰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 얘기해줘야 하는 거예요?”김서현이 인정사정없이 면박을 주자 인나는 피식 웃었다.“이제야 알겠네요. 저랑 현욱 씨를 헤어지게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죠?”인나의 말에 하영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짚었다. 인나가 한 번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인나의 말에 김서현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지금 그게 무슨 예의 없는 태도죠?”“저는 충분히 예의를 갖춰서 대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먼저 제 친구한테 무례하게 굴었잖아요!”인나는 전혀 뜻을 굽히지 않았다.“지금 이 태도 때문에라도 절대 우리 집안 며느리로 들어올 수 없을 거야!”“그 집안은 뭐 그렇게 대단해요? 제가 뭐 뜯어가기라도 할까 봐요?”김서현은 치를 떨었다.“못 하는 말이 없구나! 당장 내 아들하고 헤어져!”“그쪽 아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인나는 계속해서 쏘아붙였다.“제가 아니라, 아주머니 아들이 저한테 매달리는 거라고요! 제대로 알아보고 말씀하세요!”그때 곁에 있던 주민이 끼어들었다.“우인나 씨가
인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현욱 씨 어머니니까 현욱 씨가 알아서 해야지.”“나중에 네가 현욱 씨랑 결혼하게 되면, 언젠간 어머니와 마주해야 하잖아.”“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같은 상황엔 그 집안에 시집가고 싶지 않아.”인나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배현욱네 집.현욱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외출하고 돌아온 김서현과 주민을 마주쳤다.주민은 현욱을 보자마자 기쁜 듯이 달려오며 그를 불렀다.“현욱 오빠!”현욱은 자신한테 안기려는 주민을 보고 얼른 몸을 피했다.“누구세요?”현욱의 말에 주민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오빠, 나야, 뚱민이”“뚱민이?”현욱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맞아!”주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오빠 뒤를 따라다니던 뚱뚱한 애 기억 안 나?”“그게 너였어?”현욱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자, 주민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이제야 기억났어?”“그래, 기억이 나긴 하는데.”현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너랑 어머니가 내 여자 친구를 찾아간 일을 좀 설명해 줘야겠어.”주민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때 곁에 서 있던 김서현이 화를 내며 앞으로 다가왔다.“그건 내가 묻고 싶은 얘기야! 따라와!”별장에 들어선 후, 김서현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당장 헤어져. 그런 여자는 우리 집안이랑 어울리지 않아!”현욱도 벌컥 화를 냈다.“이 일에 대해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결혼이니까 절대 부모님 뜻에 따를 생각 없습니다.”“기어이 나를 화나게 할 셈이야?”김서현이 언성을 높이자, 현욱은 불쾌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니요! 그저 부모님이 저를 위해 계획하신 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겁니다!”“배현욱!”김서현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 여자가 나한테 어떻게 말대꾸를 했는지 알기나 해?”“두 사람이 먼저 인나 씨를 떠보지 않았어요?”현욱도 화를 내며 되물었다.“저랑 뚱민이가 어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