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이 열리고 높은 구두를 신은 양다인 다가오더니, 문 앞에 있는 희원을 보고 웃었다.“어머, 지금 나 맞이하러 나온 거야?”희원은 불쾌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노려보았다.“방금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헤드라이트를 켠 거야?”“왜 그런 식으로 얘기해? 금방 도착해서 미처 끄지 못한 거지.”“방금 차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지금 누구를 속이려는 거야?”양다인은 비웃음을 날렸다.“네가 운이 없는게 내 탓이야?”말을 마친 양다인은 화가 난 희원을 밀치고 바로 거실로 향했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양다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백중의 얼굴에 바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곁에 앉아 있던 예준은 계속 시간만 확인했다.‘하영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소백중이 가족들에게 어서 식당으로 가자고 얘기했고, 그 틈에 예준은 얼른 하영에게 문자를 보냈다.[하영아, 왜 아직도 안 와?]그때 막 응급실에 도착한 하영은 문자 알림음이 뜨자 얼른 확인해 봤다.예준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한 하영은 아차 싶었다.오빠한테 부진석의 사고 소식을 전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하영은 얼른 답장을 보냈다.[오빠, 오늘 못 갈 것 같아. 진석 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거든.]하영은 곧장 진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문자를 받은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도 또 지체된 거야? 왜 하영이 매번 양다인의 정체를 밝히려 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거지?’소백중은 식당으로 들어가다가 예준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재촉하기 시작했다.“예준아, 아직도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예준은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응급실.하영은 진석이 있는 병실을 찾았다.진석의 흰색 셔츠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고, 이마에는 붕대를 한 채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하영이 막 자리에 앉으려 할 때 간호사가 들어와 하영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진석 선생님 여자 친구분이죠?”하영은 간호사가 수액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몇 번 살펴보던 하영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쪽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인데 성훈이라고 합니다.”“제가 아는 사람이에요!”하영이 어두운 말투로 얘기했다.예전에 정유준 곁에 있던 경호원이라 자주 봤던 기억이 있는데, 5년 전에 유준이 그를 해고했다.성훈과 하영이 눈이 마주쳤고, 하영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도 놀라움이 스쳤다.“강하영 씨…….”하영은 곁에 있는 형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따로 둘이서만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경찰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얘기 나누세요. 무슨 일 있으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시면 저희가 볼 수 있습니다.”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들은 자리를 떠났다.하영은 성훈의 맞은편에 앉아 직설적으로 얘기했다.“김제가 이렇게 작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필이면 성훈 씨 차에 사고를 당할 수 있죠?”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죠?”“말 돌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 정유준과 관계있죠?”하영이 따져 묻자 성훈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아닙니다.”성훈의 행동을 지켜보던 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거짓말이잖아요!”“대표님한테 이미 해고당했는데 제가 왜 대표님을 위해 일하겠습니까?”성훈의 물음에 하영은 그를 응시했다.“그럼 방금 왜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얘기하지 못한 거죠?”성훈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제가 한 일은 제가 책임집니다. 굳이 대표님까지 끌어드릴 필요는 없잖아요.”“좋아요.”하영이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면 제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겠네요! 만약 성훈 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며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성훈도 하영의 말이 화를 벌컥 냈다.“너무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대체 이번 사고가 강하영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진석 씨는 제 가족인데 어떻게 상관없어요?”하영이 되묻자 성훈은 깜짝 놀랐다.“아니…….”성훈이 말을 잇지 못하자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합의할
“성훈 씨 기억하죠?”“누구?”유준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되묻자 하영이 설명했다.“유준 씨 곁에서 몇 년 동안 경호원으로 있다가 5년 전에 해고 된 성훈 씨 있잖아요. 설마 잊었다고 하지는 않겠죠?”“기억나지 않으니까 용건만 얘기해. 상관도 없는 사람 얘기로 너랑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왜 피해요?”“내가 뭘 피해야 하지?”유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성훈 씨한테 진석 씨 차를 들이받으라고 시켰잖아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너 지금 어디야?”“내가 당신 얼굴을 보고 싶겠어요?”“어떤 상황인지 듣고 싶으면 만나서 얘기해. 아니면 할 얘기 없으니까.”말을 마친 유준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하영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이미 끊겨버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야? 정말 정유준이 한 짓이야? 그래서 만나서 설명하려는 건가? 전화기로 얘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톡으로 유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 어디죠? 그쪽으로 갈게요.]그러자 유준한테서 바로 답장이 왔다.[난원으로 와.]답장을 보낸 뒤 유준은 병실로 들어갔다.“집에 가서 희민이 컴퓨터도 챙기고 옷 좀 갈아입고 올게.”그러자 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엔 안 와도 돼. 간호사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집에 가서 푹 쉬어.”유준은 침대에 누워 이미 잠든 희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병실을 나섰다.30분 뒤.하영이 난원에 도착해 별장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가정부가 얘기했다.“사장님은 지금 방에 계시니까 오시면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어요.”“고마워요.”하영은 인사를 건네고 2층으로 올라갔다.유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그의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들어와.”하영은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나와서 얘기하면 안 돼요?”그러자 낮게 깔린 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 얘기하지 않아.”방에 들어서자마자 머리가 젖어있는 상태로 가운만 입고 있는 유준의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내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는 잘 알고 있잖아요. 유준 씨가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한다면 나는 습관적으로 당신은 그렇게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유준은 무서울 정도로 서늘한 어조로 되물었다.“기어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나는 내가 직접 본 것만 믿어요!”그 말에 유준은 갑자기 멍해지고 말았다.그 말은 유준이 하영에게 똑같이 얘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유준은 천천히 화를 가라앉혔다.“어머니 일은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갑작스러운 유준의 말에 하영도 약간 놀라더니 눈시울을 붉혔다.‘이제 그런 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하영은 얼른 말을 돌렸다.“내가 알고 싶은 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는 게 설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러는 거예요?”“복수해서 나한테 좋을 게 뭔데?”유준이 하영에게 물었다.“이익? 아니면 그냥 속이 시원하려고? 나한테 복수는 차라리 실질적이고 더 직접적으로 누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그 말에 하영은 생각에 잠겼다.유준의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가 정말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유준의 실력이면 하영은 이미 모든 걸 잃었을 것이다.그리고 유준이 말한 실질적인 압박도 이미 이룬 셈이다. 바로 존슨을 청했으니까.하영은 유준의 얼굴을 살펴봤다. 사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치챘지만 그의 안색은 예전보다 더욱 초췌해져 있었다.하영은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만약 일 때문에 피곤할 정도로 바빴다면 이런 일을 벌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하영은 어쩌면 비통한 심정에 이성을 잃고 애꿎은 유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을 정리한 후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네요. 이만 가 볼게요.”유준은 하영을 잡지 않고 순간 그녀의 뒷모습을 주시했다.하영은 방을 나서려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유준을 바라보았다.“희민이는 왜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거죠?”유준은 하마터면
“그건 아니야…….”“왜 아니야?”인나가 말을 이었다.“자기가 해고했던 경호원을 찾아 진석 씨한테 해를 끼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잖아.”하영은 미간을 좁혔다.“인나야, 정유준 성품을 보면, 뒤에서 그런 비열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요즘 많이 바빠 보였거든.”“직접 만나러 갔었어?”“응. 예전에 내가 너무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 아주머니 일도 정유준이 한 짓이 아닌 것 같아.”“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요즘 생각을 좀 해봤거든. 정유준이 많은 돈을 들여 의료팀까지 꾸려서 일부러 수술을 실패하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정말 해칠 생각이라면 차라리 아주머니가 다른 병원에 있을 때 사고가 생겼으면 의심받을 일도 없잖아.”“맞아. 내가 너무 충동적인 것 같아서 방금 사과하고 왔어.”“나는 우리 하영이가 잘못을 깨닫자마자 바로 사과하는 태도가 너무 좋아!”인나가 말을 이었다.“성훈이라고 했지? 내가 알아보라고 할 테니까 결과 나오면 바로 얘기해 줄게.”“수고해 줘.”“별말을 다 하네! 진석 씨는 좀 어때?”“큰 문제는 없어.”“그럼 다행이네.”……30분 뒤 하영은 병원에 도착했다.진석은 이미 정신을 차렸는지 형사가 그의 곁에 앉아 진술을 받고 있었다.하영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진석은 약간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고 형사를 향해 물었다.“이제 됐습니까?”그러자 형사가 몸을 일으켰다.“네, 끝났으니까 푹 쉬고 계세요. 나중에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할게요.”“네, 수고많으십니다.”“제 일이니까 당연한 거죠.”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하영은 형사를 배웅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석이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하영아, 미안해.”하영은 진석의 곁에 앉으며 얘기했다.“지금은 그런 얘기 하지 마. 누구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 건 아니잖아. 몸은 좀 어때?”진석은 입꼬리를 올렸다.“그냥 가벼운 뇌진탕이라 괜찮아. 운이 좋았던 거지.”하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석을 노려보
하영은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얘기했다.“그럼, 너희들은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그러자 캐리가 벽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내일 토요일이잖아. 그것도 잊었어?”하영은 애들 손을 잡고 거실에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정말 잊고 있었네. 누가 나 물 좀 가져다줄 수 있어?”세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가져다드릴게요.”세희는 얼른 하영에게 주스 한 잔을 따라주었다.“고마워.”하영은 주스를 건네받고 바로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하자, 캐리가 다가와 컵을 뺏었다.“주스를 그렇게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다 체하겠네.”“목이 너무 말라서 그래.”하영은 다시 컵을 가져갔다.“진석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경찰서랑 병원을 오갔거든.”“교통사고?”하영의 말에 두 녀석과 캐리가 깜짝 놀라 이구동성으로 외쳤다.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응. 그래도 진석 씨가 운이 좋았는지 차가 뒤집어졌는데도 그냥 뇌진탕이래.”캐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하영의 곁에 앉았다.“뇌진탕인데 심각하지 않아?”“가벼운 뇌진탕이거든.”하영은 교통사고 현장을 캐리에게 얘기해 줬고, 모든 얘기를 전해 들은 캐리는 크게 충격받았는지 입만 뻐금거렸다.그러다 혀를 차며 탄식을 내뱉었다.“대박, 진석 씨 운이 정말 좋네. 역시 착한 사람들은 좋은 보답을 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하영은 캐리를 보며 농담을 던졌다.“그래서? 우리 캐리 아저씨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캐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참, 한국인들은 교회를 많이 다닌다고 했지? 내일 내가 십자가라도 사 올까?”캐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영과 두 아이는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어이없다는 그들의 시선을 느낀 캐리가 물었다.“다들 왜 그런 눈빛으로 봐?”셋은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거두고 방으로 올라갔고, 캐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외쳤다.“이봐, 대체 무슨 뜻인데? 얘기해 줘야지!”……토요일.하영은 6시에 일어나 진석에게 가져다줄 아침을
인나는 혼란스러웠다.“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정유준을 노린다니 그건 또 무슨 얘기야?”“지영 이모의 죽음부터 시작해서 정유준이 괴로워하며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잖아. 그리고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또 정유준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번엔 진석 씨 일까지.”“그렇게 얘기하니까 나 무서워지려고 해. 설마 누군가 뒤에서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거야?”“나도 아직 몰라.”하영은 이제 완전히 침착해졌다.“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일단 알아봐야지.”“그래, 그럼 나한테 시간을 더 줘.”“그래.”연세 병원.유준은 도우미가 만들어 놓은 죽을 챙기고 병실로 향했다.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유준이 현욱을 봤을 때 마치 판다를 보는 듯했다.“유준아.”현욱이 기운 없는 모습으로 일어나며 말했다.“이제부터 너한테 맡길게. 나는 돌아가서 좀 자야겠어.”유준은 죽을 침대맡에 놔두고 아직도 잠자고 있는 희민을 바라보았다.“어제도 지금처럼 이렇게 아팠어?”“낮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어. 어젯밤에 오렌지를 까줘서 많이 먹기는 했는데, 그래도 걱정돼서 잘 수 없었어.”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고생했어, 얼른 들어가 봐.”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떠났다.유준이 희민을 깨우려고 할 때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허시원에게 걸려 온 전화인 것을 보고 병실을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알아봤어?”유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성훈이란 자가 누구라고 확실히 지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형사가 제게 제공한 CCTV 영상을 확인해 보니, 강하영 씨가 대표님은 언급했을 때 언행이 뭔가 숨기려 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MK 인사팀 직원 한 명을 잡았는데, 그가 성훈에게 2억을 이체한 기록이 있었습니다.”유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의 계좌는 샅샅이 뒤져 봤어?”“네, 아주 깨끗했습니다. 상대방은 아마 현금으로 건네면서 시킨 일인 것 같습니다.”유준의 주변 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찾았어?”“어젯밤에 경찰서에 다녀왔는데…….”하영이 입을 열려던 순간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간호사가 진석을 데리고 들어왔고, 하영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하영은 예준을 향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는 눈빛을 보냈고, 예준도 고개를 끄덕인 뒤 부진석을 바라보았다.“몸은 좀 어때요?”진석이 웃으며 답했다.“많이 좋아졌어요. 처음부터 큰 문제는 없었거든요.”“아침 챙겨왔으니까 일단 와서 먹어.”진석은 스스로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마침 검사 끝나고 구내 식당 가려던 참이었는데, 갈 필요가 없겠네.”“진석 아빠.”세희가 진석의 곁으로 돌아와 담요로 덮인 두 다리를 응시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가 고개를 들어 세희를 바라보았다.“세희야, 왜 그래?”“진석 아빠는 머리를 다쳤는데 왜 휠체어에 앉아 있어요?”진석이 웃으며 담요를 들추고 붕대가 감긴 발목을 보여줬다.“다친 발목이 부어서 지금은 휠체어가 회복에 도움이 되거든.”하영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어제는 왜 얘기 안 했어?”“괜히 너까지 걱정시킬 필요 없잖아.”진석이 시선을 거두여 말을 이었다.“회사 일로도 충분히 바쁘잖아.”하영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숙여 진석의 상처를 살피려 했지만, 진석은 담요를 다시 덮어버렸다.“걱정하지 마, 곧 괜찮아 질 거야.”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석을 보며 물었다.“또 숨기는 건 없지?”진석은 짐짓 생각하는 척했다.“아마 없겠지?”하영은 진석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됐어, 묻지 않을게.”그러자 진석도 웃으며 얘기했다.“괜히 마음에 담아두지 마. 또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도 말고…….”진석과 하영이 얘기하고 있을 때 예준은 눈을 들어 그를 응시했다.‘지금 하영을 위로하는 거야, 아니면 자책이라도 하게 유도하는 거야?’진석이 휴식을 취하고나서야 하영은 예준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병원에서 나와 차에 오른 뒤 예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