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세희와 세준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그리고 희민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오늘 희민 오빠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를 잡아서 물어보니까 어제도 학교에 오지 않았대요.”세희가 친구를 잡아서 물어봤다는 표현에 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혹시 너희들한테 어디 간다고 문자 보낸 적 없어?”휴대폰은 세준한테 있었는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없어요. 새해에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만 보냈어요.”하영은 눈을 아래로 드리웠다.‘희민이는 어딜 간 거지? 설마 정유준이 어제 일 때문에 화가 나서 또 전학 보냈나?’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희민이에게 문자를 보냈다.[희민아, 혹시 전학 갔어?]같은 시각, 병원.희민은 몇 차례 구토로 인해 눈 뜰 힘마저 없었다.파랗게 질린 작은 얼굴엔 핏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거의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렸을 때도 희민은 그저 미간을 약간 찡그리고 확인할 기력이 없었다.유준은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확인해 봤다.하영이 보내온 문자에 유준은 약간 어두운 눈빛으로 희민이 대신 답장을 보냈다.[아니요, 일이 있어서 못 갔어요.]하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내일도 학교에 안 오는 거야?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서 그래.]유준이 또 답장을 보냈다.[한동안은 가정 교사가 와서 수업받기로 했어요.]답장을 받은 하영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희민을 못 만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학교 환경이 아이들의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데, 지금 일부러 못 만나게 하려고 학교에 보내지 않다니.’하영은 비록 화가 났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희민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럼 선생님 말씀 잘 들어. 네가 학교에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세희는 하영의 다리에 엎드려 커다란 촉촉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오빠한테서 답장 왔어요? 뭐라고 그래요?”“사정이 조금 생겼대.”하영은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하영은 식탁에 앉았다.“사업가들이 추구하는 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법칙이야. 나도 아시아 패션 사업에서 정유준한테서 최고의 매출을 빼앗아 왔잖아.”캐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그것도 맞는 말이네.”하영은 주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주희 씨, 내일 저녁에 내 밥은 차릴 필요 없어요.”“어디 가는데?”주희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캐리가 먼저 물었다.하영은 약간 심호흡을 하더니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소백중네 집으로 갈 거야.”……저녁 9시 30분.하영은 애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서재로 들어가 부진석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내일 저녁에 소백중네 집으로 갈 생각이야.]새해에 가기로 했었는데 아주머니의 사고로 또 며칠 지체되고 말았다.괜히 부진석을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니 지킬 수밖에 없었다.하영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고, 컴퓨터를 열어 비밀문서를 클릭했다.그리고 DNA검사 결과 보고서를 전부 인쇄하기 시작했다.현재 하영에겐 양다인의 거짓 신분에 관한 증거만 있고 살인 증거는 단서를 전혀 찾지 못했다.하영은 양다인 뒤에 있는 세력의 실력이 어느 만큼인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니면 지금까지 설치고 다닐 수 없겠지.예준의 말로는 소백중이 양다인을 도와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정유준도 마찬가지였겠지. 양다인은 그의 앞에서 언제나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썼으니까.‘대체 누가 도와주는 걸까?’하영이 자료를 전부 인쇄했을 때 부진석한테서 답장이 왔다.[그래, 내일 오후 회사로 데리러 갈게.][알았어.]하영은 또 예준에게도 내일 저녁 소백중네 집으로 갈 것이라고 알렸다.금요일.하영은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회사로 향했다.간단한 회의를 마친 뒤 소정이 다가와 아래층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하영은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누군데?”“송유라 씨라고 여자분인데 저희 회사랑 합작하고 싶다고 하네요.”소정의 말에 하영의 미간이 좁혀졌다.‘김제에 송씨 성을 가진
그 말에 하영은 웃으며 답했다.“그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일반 공장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저를 택했는지 궁금해서요.”“잘 알고 있는 사람이 소개해 줬어요.”송유라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이 옷들은 언제까지 필요하세요?”“한 달 이내요.”하영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한 달이라면 문제없어요.”“가격은 대충 어느 정도일까요?”송유라가 웃으며 물었다.“디자인은 대표님 회사에서 해주셔야 하니까, 디자인 비용도 포함해야죠.”하영은 리스트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송유라 씨, 디자인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 송유라 씨도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좋은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일단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중에 재료 비용만 따로 보내드릴게요.”송유라는 하영을 살펴보며 물었다.“그냥 재료 비용만 받으시면 남는 게 있어요?”“하기 싫은 사람들만 이익을 생각하겠죠.”하영의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저 또한 엄마로서 자식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린아이들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요. 송유라 씨가 오늘 이 사실을 저한테 알려주셔서 고맙게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그래요?”송유라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도움을 줄 생각이죠?”“아직은 모르겠지만 한 달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을 것 같네요.”“정말 기대가 되네요.”송유라는 휴대폰을 꺼냈다.“톡 아이디가 어떻게 되죠?”하영은 자기 톡 아이디를 송유라에게 알려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추가했다.일에 대한 얘기를 마치고 하영은 송유라를 배웅했다.송유라는 떠나기 전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계약서 보내주세요.”하영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했다.“저희 TYCf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명품 그랜드 캐슬.양다인은 정주원의 객실에서 눈을 떴다.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틀 동안 일
희원은 변장하고 병원에 들어가 희민이 입원한 병실을 알아낸 뒤에 엘리베이터에 탔다.도착해서 희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유준과 현욱이 병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희원은 모자를 더 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추켜 올린 뒤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대표님, 요 며칠 작은 도련님 머리를 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게 되면 도련님도 많이 속상하실 겁니다.”의사가 유준에게 얘기하자 유준이 초조한 표정을 내비쳤지만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머리를 미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 구토를 멈추게 할 수 있죠?”“대표님, 작은 도련님은 현재 몸이 많이 허약해진 상태라 주사로 구토를 멈추는 건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유준은 불쾌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골수는 찾았습니까?”그러자 의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희가 요즘 계속 찾고 있고, 다른 병원에도 연락해 봤지만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유준은 이를 악물고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계속 연락해 보세요.”“네.”의사가 떠나고 현욱이 유준을 보며 물었다.“유준아, 정 안 되면 암시장에 가서 찾아보는 건 어때?”“내가 알아보지 않았을 것 같아?”유준이 되물었다.“설마 없었어? 고가에 매입하겠다고 정보를 흘리는 건 어때?”“중요한 건 희민이와 일치한 골수가 없다는 거야.”현욱이 복도 벽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이 세상에 돈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구나.”유준은 반쯤 눈을 내리깔고 무기력한 표정을 내비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원은 너무 속상했다.어떻게든 유준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암시장은 물론 어디 연락해서 찾을 방법도 없었다.희원은 이 사실을 바로 양다인에게 문자로 보내줬다.문자를 확인한 양다인은 씨익 웃었다.‘아시아를 주름잡던 정유준이 이렇게 무력할 때가 있다니 정말
전화를 아무리 해봐도 진석은 받지 않았다.하영은 마음이 너무 불안했지만 그저 회사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12월이라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서늘한 밤바람에 옷을 아무리 두껍게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하영은 다시 진석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고,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진석…….”“휴대폰 주인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혹시 가족인가요? 저희가 이미 119를 불렀어요!”하영이 말을 꺼내기 전에 전화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고, 상대방의 말에 하영의 손이 떨려왔다.“거, 거기가 어딘데요?”하영은 목소리가 떨려왔고, 다리마저 후들거렸지만 급하게 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둔탁한 소리에 곁에 있던 직원마저 깜짝 놀랐다.“대표님!”그들은 얼른 다가와 부축했고, 하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는 괜찮으니까 휴대폰 좀 찾아주세요.”“여기 있습니다!”한 직원이 휴대폰을 주워서 하영에게 건네주었다.하영이 손을 내밀자 사람들은 그녀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대표님 손이…….”하영은 손에 난 상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전화기 너머의 낯선 이는 여전히 “여보세요.”를 반복했다.하영은 당황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죄송하지만 지금 거기가 어디세요? 상처는 심각해요?”“시청 쪽에 있어요. 지금 정신을 잃어서 일단 차에서 끌어냈어요.”하영의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감사합니다!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말을 마친 하영은 전화를 끊고, 차에 올라 진석이 있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10분 뒤쯤 교통 정체로 막혀버린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하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진석의 차가 뒤집혀 있었고, 상대방 차는 앞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경찰은 현장에서 진술받고 있었고, 하영은 앞으로 다가가 한 경찰에게 물었다.“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하얀색 차주분은 이미 병원
차 문이 열리고 높은 구두를 신은 양다인 다가오더니, 문 앞에 있는 희원을 보고 웃었다.“어머, 지금 나 맞이하러 나온 거야?”희원은 불쾌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노려보았다.“방금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헤드라이트를 켠 거야?”“왜 그런 식으로 얘기해? 금방 도착해서 미처 끄지 못한 거지.”“방금 차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지금 누구를 속이려는 거야?”양다인은 비웃음을 날렸다.“네가 운이 없는게 내 탓이야?”말을 마친 양다인은 화가 난 희원을 밀치고 바로 거실로 향했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양다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백중의 얼굴에 바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곁에 앉아 있던 예준은 계속 시간만 확인했다.‘하영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소백중이 가족들에게 어서 식당으로 가자고 얘기했고, 그 틈에 예준은 얼른 하영에게 문자를 보냈다.[하영아, 왜 아직도 안 와?]그때 막 응급실에 도착한 하영은 문자 알림음이 뜨자 얼른 확인해 봤다.예준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한 하영은 아차 싶었다.오빠한테 부진석의 사고 소식을 전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하영은 얼른 답장을 보냈다.[오빠, 오늘 못 갈 것 같아. 진석 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거든.]하영은 곧장 진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문자를 받은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도 또 지체된 거야? 왜 하영이 매번 양다인의 정체를 밝히려 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거지?’소백중은 식당으로 들어가다가 예준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재촉하기 시작했다.“예준아, 아직도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예준은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응급실.하영은 진석이 있는 병실을 찾았다.진석의 흰색 셔츠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고, 이마에는 붕대를 한 채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하영이 막 자리에 앉으려 할 때 간호사가 들어와 하영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진석 선생님 여자 친구분이죠?”하영은 간호사가 수액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몇 번 살펴보던 하영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쪽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인데 성훈이라고 합니다.”“제가 아는 사람이에요!”하영이 어두운 말투로 얘기했다.예전에 정유준 곁에 있던 경호원이라 자주 봤던 기억이 있는데, 5년 전에 유준이 그를 해고했다.성훈과 하영이 눈이 마주쳤고, 하영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도 놀라움이 스쳤다.“강하영 씨…….”하영은 곁에 있는 형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따로 둘이서만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경찰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얘기 나누세요. 무슨 일 있으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시면 저희가 볼 수 있습니다.”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들은 자리를 떠났다.하영은 성훈의 맞은편에 앉아 직설적으로 얘기했다.“김제가 이렇게 작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필이면 성훈 씨 차에 사고를 당할 수 있죠?”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죠?”“말 돌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 정유준과 관계있죠?”하영이 따져 묻자 성훈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아닙니다.”성훈의 행동을 지켜보던 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거짓말이잖아요!”“대표님한테 이미 해고당했는데 제가 왜 대표님을 위해 일하겠습니까?”성훈의 물음에 하영은 그를 응시했다.“그럼 방금 왜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얘기하지 못한 거죠?”성훈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제가 한 일은 제가 책임집니다. 굳이 대표님까지 끌어드릴 필요는 없잖아요.”“좋아요.”하영이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면 제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겠네요! 만약 성훈 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며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성훈도 하영의 말이 화를 벌컥 냈다.“너무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대체 이번 사고가 강하영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진석 씨는 제 가족인데 어떻게 상관없어요?”하영이 되묻자 성훈은 깜짝 놀랐다.“아니…….”성훈이 말을 잇지 못하자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합의할
“성훈 씨 기억하죠?”“누구?”유준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되묻자 하영이 설명했다.“유준 씨 곁에서 몇 년 동안 경호원으로 있다가 5년 전에 해고 된 성훈 씨 있잖아요. 설마 잊었다고 하지는 않겠죠?”“기억나지 않으니까 용건만 얘기해. 상관도 없는 사람 얘기로 너랑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왜 피해요?”“내가 뭘 피해야 하지?”유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성훈 씨한테 진석 씨 차를 들이받으라고 시켰잖아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너 지금 어디야?”“내가 당신 얼굴을 보고 싶겠어요?”“어떤 상황인지 듣고 싶으면 만나서 얘기해. 아니면 할 얘기 없으니까.”말을 마친 유준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하영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이미 끊겨버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야? 정말 정유준이 한 짓이야? 그래서 만나서 설명하려는 건가? 전화기로 얘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톡으로 유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 어디죠? 그쪽으로 갈게요.]그러자 유준한테서 바로 답장이 왔다.[난원으로 와.]답장을 보낸 뒤 유준은 병실로 들어갔다.“집에 가서 희민이 컴퓨터도 챙기고 옷 좀 갈아입고 올게.”그러자 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엔 안 와도 돼. 간호사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집에 가서 푹 쉬어.”유준은 침대에 누워 이미 잠든 희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병실을 나섰다.30분 뒤.하영이 난원에 도착해 별장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가정부가 얘기했다.“사장님은 지금 방에 계시니까 오시면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어요.”“고마워요.”하영은 인사를 건네고 2층으로 올라갔다.유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그의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들어와.”하영은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나와서 얘기하면 안 돼요?”그러자 낮게 깔린 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 얘기하지 않아.”방에 들어서자마자 머리가 젖어있는 상태로 가운만 입고 있는 유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