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세희와 세준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그리고 희민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오늘 희민 오빠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를 잡아서 물어보니까 어제도 학교에 오지 않았대요.”세희가 친구를 잡아서 물어봤다는 표현에 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혹시 너희들한테 어디 간다고 문자 보낸 적 없어?”휴대폰은 세준한테 있었는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없어요. 새해에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만 보냈어요.”하영은 눈을 아래로 드리웠다.‘희민이는 어딜 간 거지? 설마 정유준이 어제 일 때문에 화가 나서 또 전학 보냈나?’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희민이에게 문자를 보냈다.[희민아, 혹시 전학 갔어?]같은 시각, 병원.희민은 몇 차례 구토로 인해 눈 뜰 힘마저 없었다.파랗게 질린 작은 얼굴엔 핏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거의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렸을 때도 희민은 그저 미간을 약간 찡그리고 확인할 기력이 없었다.유준은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확인해 봤다.하영이 보내온 문자에 유준은 약간 어두운 눈빛으로 희민이 대신 답장을 보냈다.[아니요, 일이 있어서 못 갔어요.]하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내일도 학교에 안 오는 거야?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서 그래.]유준이 또 답장을 보냈다.[한동안은 가정 교사가 와서 수업받기로 했어요.]답장을 받은 하영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희민을 못 만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학교 환경이 아이들의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데, 지금 일부러 못 만나게 하려고 학교에 보내지 않다니.’하영은 비록 화가 났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희민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럼 선생님 말씀 잘 들어. 네가 학교에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세희는 하영의 다리에 엎드려 커다란 촉촉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오빠한테서 답장 왔어요? 뭐라고 그래요?”“사정이 조금 생겼대.”하영은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하영은 식탁에 앉았다.“사업가들이 추구하는 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법칙이야. 나도 아시아 패션 사업에서 정유준한테서 최고의 매출을 빼앗아 왔잖아.”캐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그것도 맞는 말이네.”하영은 주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주희 씨, 내일 저녁에 내 밥은 차릴 필요 없어요.”“어디 가는데?”주희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캐리가 먼저 물었다.하영은 약간 심호흡을 하더니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소백중네 집으로 갈 거야.”……저녁 9시 30분.하영은 애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서재로 들어가 부진석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내일 저녁에 소백중네 집으로 갈 생각이야.]새해에 가기로 했었는데 아주머니의 사고로 또 며칠 지체되고 말았다.괜히 부진석을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니 지킬 수밖에 없었다.하영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고, 컴퓨터를 열어 비밀문서를 클릭했다.그리고 DNA검사 결과 보고서를 전부 인쇄하기 시작했다.현재 하영에겐 양다인의 거짓 신분에 관한 증거만 있고 살인 증거는 단서를 전혀 찾지 못했다.하영은 양다인 뒤에 있는 세력의 실력이 어느 만큼인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니면 지금까지 설치고 다닐 수 없겠지.예준의 말로는 소백중이 양다인을 도와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정유준도 마찬가지였겠지. 양다인은 그의 앞에서 언제나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썼으니까.‘대체 누가 도와주는 걸까?’하영이 자료를 전부 인쇄했을 때 부진석한테서 답장이 왔다.[그래, 내일 오후 회사로 데리러 갈게.][알았어.]하영은 또 예준에게도 내일 저녁 소백중네 집으로 갈 것이라고 알렸다.금요일.하영은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회사로 향했다.간단한 회의를 마친 뒤 소정이 다가와 아래층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하영은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누군데?”“송유라 씨라고 여자분인데 저희 회사랑 합작하고 싶다고 하네요.”소정의 말에 하영의 미간이 좁혀졌다.‘김제에 송씨 성을 가진
그 말에 하영은 웃으며 답했다.“그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일반 공장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저를 택했는지 궁금해서요.”“잘 알고 있는 사람이 소개해 줬어요.”송유라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이 옷들은 언제까지 필요하세요?”“한 달 이내요.”하영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한 달이라면 문제없어요.”“가격은 대충 어느 정도일까요?”송유라가 웃으며 물었다.“디자인은 대표님 회사에서 해주셔야 하니까, 디자인 비용도 포함해야죠.”하영은 리스트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송유라 씨, 디자인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 송유라 씨도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좋은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일단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중에 재료 비용만 따로 보내드릴게요.”송유라는 하영을 살펴보며 물었다.“그냥 재료 비용만 받으시면 남는 게 있어요?”“하기 싫은 사람들만 이익을 생각하겠죠.”하영의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저 또한 엄마로서 자식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린아이들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요. 송유라 씨가 오늘 이 사실을 저한테 알려주셔서 고맙게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그래요?”송유라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도움을 줄 생각이죠?”“아직은 모르겠지만 한 달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을 것 같네요.”“정말 기대가 되네요.”송유라는 휴대폰을 꺼냈다.“톡 아이디가 어떻게 되죠?”하영은 자기 톡 아이디를 송유라에게 알려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추가했다.일에 대한 얘기를 마치고 하영은 송유라를 배웅했다.송유라는 떠나기 전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계약서 보내주세요.”하영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했다.“저희 TYCf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명품 그랜드 캐슬.양다인은 정주원의 객실에서 눈을 떴다.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틀 동안 일
희원은 변장하고 병원에 들어가 희민이 입원한 병실을 알아낸 뒤에 엘리베이터에 탔다.도착해서 희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유준과 현욱이 병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희원은 모자를 더 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추켜 올린 뒤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대표님, 요 며칠 작은 도련님 머리를 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게 되면 도련님도 많이 속상하실 겁니다.”의사가 유준에게 얘기하자 유준이 초조한 표정을 내비쳤지만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머리를 미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 구토를 멈추게 할 수 있죠?”“대표님, 작은 도련님은 현재 몸이 많이 허약해진 상태라 주사로 구토를 멈추는 건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유준은 불쾌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골수는 찾았습니까?”그러자 의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희가 요즘 계속 찾고 있고, 다른 병원에도 연락해 봤지만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유준은 이를 악물고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계속 연락해 보세요.”“네.”의사가 떠나고 현욱이 유준을 보며 물었다.“유준아, 정 안 되면 암시장에 가서 찾아보는 건 어때?”“내가 알아보지 않았을 것 같아?”유준이 되물었다.“설마 없었어? 고가에 매입하겠다고 정보를 흘리는 건 어때?”“중요한 건 희민이와 일치한 골수가 없다는 거야.”현욱이 복도 벽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이 세상에 돈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구나.”유준은 반쯤 눈을 내리깔고 무기력한 표정을 내비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원은 너무 속상했다.어떻게든 유준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암시장은 물론 어디 연락해서 찾을 방법도 없었다.희원은 이 사실을 바로 양다인에게 문자로 보내줬다.문자를 확인한 양다인은 씨익 웃었다.‘아시아를 주름잡던 정유준이 이렇게 무력할 때가 있다니 정말
전화를 아무리 해봐도 진석은 받지 않았다.하영은 마음이 너무 불안했지만 그저 회사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12월이라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서늘한 밤바람에 옷을 아무리 두껍게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하영은 다시 진석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고,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진석…….”“휴대폰 주인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혹시 가족인가요? 저희가 이미 119를 불렀어요!”하영이 말을 꺼내기 전에 전화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고, 상대방의 말에 하영의 손이 떨려왔다.“거, 거기가 어딘데요?”하영은 목소리가 떨려왔고, 다리마저 후들거렸지만 급하게 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둔탁한 소리에 곁에 있던 직원마저 깜짝 놀랐다.“대표님!”그들은 얼른 다가와 부축했고, 하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는 괜찮으니까 휴대폰 좀 찾아주세요.”“여기 있습니다!”한 직원이 휴대폰을 주워서 하영에게 건네주었다.하영이 손을 내밀자 사람들은 그녀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대표님 손이…….”하영은 손에 난 상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전화기 너머의 낯선 이는 여전히 “여보세요.”를 반복했다.하영은 당황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죄송하지만 지금 거기가 어디세요? 상처는 심각해요?”“시청 쪽에 있어요. 지금 정신을 잃어서 일단 차에서 끌어냈어요.”하영의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감사합니다!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말을 마친 하영은 전화를 끊고, 차에 올라 진석이 있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10분 뒤쯤 교통 정체로 막혀버린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하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진석의 차가 뒤집혀 있었고, 상대방 차는 앞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경찰은 현장에서 진술받고 있었고, 하영은 앞으로 다가가 한 경찰에게 물었다.“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하얀색 차주분은 이미 병원
차 문이 열리고 높은 구두를 신은 양다인 다가오더니, 문 앞에 있는 희원을 보고 웃었다.“어머, 지금 나 맞이하러 나온 거야?”희원은 불쾌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노려보았다.“방금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헤드라이트를 켠 거야?”“왜 그런 식으로 얘기해? 금방 도착해서 미처 끄지 못한 거지.”“방금 차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지금 누구를 속이려는 거야?”양다인은 비웃음을 날렸다.“네가 운이 없는게 내 탓이야?”말을 마친 양다인은 화가 난 희원을 밀치고 바로 거실로 향했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양다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백중의 얼굴에 바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곁에 앉아 있던 예준은 계속 시간만 확인했다.‘하영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소백중이 가족들에게 어서 식당으로 가자고 얘기했고, 그 틈에 예준은 얼른 하영에게 문자를 보냈다.[하영아, 왜 아직도 안 와?]그때 막 응급실에 도착한 하영은 문자 알림음이 뜨자 얼른 확인해 봤다.예준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한 하영은 아차 싶었다.오빠한테 부진석의 사고 소식을 전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하영은 얼른 답장을 보냈다.[오빠, 오늘 못 갈 것 같아. 진석 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거든.]하영은 곧장 진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문자를 받은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도 또 지체된 거야? 왜 하영이 매번 양다인의 정체를 밝히려 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거지?’소백중은 식당으로 들어가다가 예준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재촉하기 시작했다.“예준아, 아직도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예준은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응급실.하영은 진석이 있는 병실을 찾았다.진석의 흰색 셔츠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고, 이마에는 붕대를 한 채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하영이 막 자리에 앉으려 할 때 간호사가 들어와 하영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진석 선생님 여자 친구분이죠?”하영은 간호사가 수액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몇 번 살펴보던 하영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쪽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인데 성훈이라고 합니다.”“제가 아는 사람이에요!”하영이 어두운 말투로 얘기했다.예전에 정유준 곁에 있던 경호원이라 자주 봤던 기억이 있는데, 5년 전에 유준이 그를 해고했다.성훈과 하영이 눈이 마주쳤고, 하영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도 놀라움이 스쳤다.“강하영 씨…….”하영은 곁에 있는 형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따로 둘이서만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경찰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얘기 나누세요. 무슨 일 있으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시면 저희가 볼 수 있습니다.”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들은 자리를 떠났다.하영은 성훈의 맞은편에 앉아 직설적으로 얘기했다.“김제가 이렇게 작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필이면 성훈 씨 차에 사고를 당할 수 있죠?”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죠?”“말 돌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 정유준과 관계있죠?”하영이 따져 묻자 성훈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아닙니다.”성훈의 행동을 지켜보던 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거짓말이잖아요!”“대표님한테 이미 해고당했는데 제가 왜 대표님을 위해 일하겠습니까?”성훈의 물음에 하영은 그를 응시했다.“그럼 방금 왜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얘기하지 못한 거죠?”성훈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제가 한 일은 제가 책임집니다. 굳이 대표님까지 끌어드릴 필요는 없잖아요.”“좋아요.”하영이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면 제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겠네요! 만약 성훈 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며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성훈도 하영의 말이 화를 벌컥 냈다.“너무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대체 이번 사고가 강하영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진석 씨는 제 가족인데 어떻게 상관없어요?”하영이 되묻자 성훈은 깜짝 놀랐다.“아니…….”성훈이 말을 잇지 못하자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합의할
“성훈 씨 기억하죠?”“누구?”유준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되묻자 하영이 설명했다.“유준 씨 곁에서 몇 년 동안 경호원으로 있다가 5년 전에 해고 된 성훈 씨 있잖아요. 설마 잊었다고 하지는 않겠죠?”“기억나지 않으니까 용건만 얘기해. 상관도 없는 사람 얘기로 너랑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왜 피해요?”“내가 뭘 피해야 하지?”유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성훈 씨한테 진석 씨 차를 들이받으라고 시켰잖아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너 지금 어디야?”“내가 당신 얼굴을 보고 싶겠어요?”“어떤 상황인지 듣고 싶으면 만나서 얘기해. 아니면 할 얘기 없으니까.”말을 마친 유준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하영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이미 끊겨버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야? 정말 정유준이 한 짓이야? 그래서 만나서 설명하려는 건가? 전화기로 얘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톡으로 유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 어디죠? 그쪽으로 갈게요.]그러자 유준한테서 바로 답장이 왔다.[난원으로 와.]답장을 보낸 뒤 유준은 병실로 들어갔다.“집에 가서 희민이 컴퓨터도 챙기고 옷 좀 갈아입고 올게.”그러자 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엔 안 와도 돼. 간호사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집에 가서 푹 쉬어.”유준은 침대에 누워 이미 잠든 희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병실을 나섰다.30분 뒤.하영이 난원에 도착해 별장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가정부가 얘기했다.“사장님은 지금 방에 계시니까 오시면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어요.”“고마워요.”하영은 인사를 건네고 2층으로 올라갔다.유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그의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들어와.”하영은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나와서 얘기하면 안 돼요?”그러자 낮게 깔린 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 얘기하지 않아.”방에 들어서자마자 머리가 젖어있는 상태로 가운만 입고 있는 유준의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