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후.정희민은 VIP 병실로 옮겨졌고, 유준과 현욱도 병실로 들어가자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정창만이 굳은 표정으로 경호원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섰다.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희민을 보고 유준에게 호통치기 시작했다.“애를 너한테 맡겼더니 이 꼴로 만들어?”유준은 입술을 꾹 깨물며 정창만의 질책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희민의 병을 언급할 때 그의 심장은 마치 누군가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온 몸의 신경이 팽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곁에 있던 현욱은 더는 듣기 힘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아저씨, 이게 어떻게 유준이 탓이에요? 유준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 건 아니잖아요.”“이 일은 너랑 상관없으니까 신경 꺼!”정창만은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지금 이 불효자한테 묻고 있잖아! 대체 내 손자를 어떻게 보살핀 거야?”유준은 감정을 억누르며 싸늘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 희민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경호원을 불러 끌어내라고 할까요?”정창만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희민을 위해서 목소리를 낮췄다.“자기 자식 몸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맨날 정주원을 괴롭힌 거야?”“나가세요!”정창만을 쳐다보는 유준의 눈빛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정창만의 날카로운 눈이 가늘어지더니 전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네놈 병원에서 희민을 고칠 수 없다면 내가 해외로 데려가서 고칠 거다!”“내 아들 일에 신경 끄시죠!”아무 감정도 없는 말투로 대답하는 유준의 분위기는 무서울 정도로 서늘했다.“다시 말씀드리지만 나가주세요!”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내쫓기게 되자 정창만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정창만은 콧방귀를 뀌었다.“희민이가 아프니까 이제 주원을 적당히 괴롭히거라. 아니면 절대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말을 마친 정창만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병실을 떠났다.현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대체 손자를 보러
“그럴 필요 없어.”하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거절했다.“아주머니가 나오시기 전에 아무데도 안 가.”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술실 불이 꺼졌다.그리고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나오더니 무거운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죄송합니다. 수술이 실패했습니다.”하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실패…… 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병실 침대가 수술실에서 밀려 나왔고 의사는 옆으로 몸을 돌려 간호사에게 침대를 밀고 나오라고 지시했다.임연수가 나오던 순간 하영이 앞으로 다가가 상황을 확인하려 할 때 의사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2시 27분에 사망하셨습니다.”의사의 말에 하영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맑은 눈동자에 뿌옇게 물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의사는 미안한 기색을 지으며 하영을 바라보았다.“임연수 씨는 수술 중에 생명 징후가 불안정하여…….”“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하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자르고 이성을 잃었다.“방금 뭐라고 하셨냐고 물었잖아요!”“2시 27분에 사망하셨습니다…….”“지금 농담하시는 거죠?”하영은 앞에 있는 간호사를 밀치고 임연수 곁으로 다가갔다.그리고 얼굴을 덮고 있던 흰 천을 들추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파랗게 질린 임연수의 모습을 보고 하영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진석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하영을 부축해줬다.“하영아…….”“이건 아니야.”하영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물을 흘렸다.“분명 수술하면 높은 확률로 깨어날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그리고 진석의 손을 덥석 잡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진석 씨도 그랬잖아. 요즘 수술이 선진적이라며?”진석은 눈을 내리깔았다.“누구든 100프로 보장은 할 수 없어…….”“그런 얘기는 듣고싶지 않아!”하영은 가슴이 무너져 내려 앞에있는 의사들을 바라보았다.“여기 누워있는 임연수 씨가 당신들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고 최선
“왜? 왜? 대체 왜?”하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는데? 왜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가는 거야? 대체 왜?”진석도 몸을 웅크렸다.“하영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하영은 천천히 몸을 굽혔다.“나 아직 아주머니를 호강을 누리게 하지도 못했단 말이야……. 왜 보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데? 내가 아주머니를 해친 것과 다름없어. 나 때문에 엄마도 죽고, 지영 이모도 내가 죽였어. 나는 정말 재수없는 년인가 봐.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리잖아!”진석은 마음이 아파와 하영을 위로하기 시작했다.“하영아, 이건 너랑 전혀 상관없어. 애들은 너를 필요로 하는데 네가 정신을 차려야지.”……아래층, VIP 병실.유준은 의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방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임연수가 수술 실패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줬다.그 사실을 알게 된 유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면서 머릿속에는 지금 울고 있을 하영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이를 악물로 싸늘한 말투로 얘기했다.“거액을 들여서 여기까지 청해왔는데 이런 결과밖에 줄 수 없습니까?”“대표님, 원래대로면 수술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술 중에 환자분의 생명 징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일이 생긴 뒤에 분석해서 무슨 소용입니까?”유준은 그런 의사의 말을 잘라버렸다.“당장 짐싸서 나가세요!”그 말을 끝으로 유준은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의 서늘한 눈빛에 병실 공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현욱은 소름이 돋는지 팔을 문지르며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유준에게 물었다.“무슨 일 생겼어?”“임씨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어.”현욱이 눈을 크게 떴다.“수술이 실패한 거야?”유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어.”라고 대답했다.현욱은 이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 희민이는 백혈병에 아주머니까지 돌아가시다니……, 왜 일이 한꺼번에 터지는 거야?’유준은 눈을 들어 현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
진석은 인나가 들어가 하영한테 가려는 것을 막아서지 않았다.귓가에 인기척이 들리자 하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인나를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그리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왔구나.”인나는 하영의 곁으로 다가가 임연수의 시신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하영아, 좋게 생각하자. 아주머니도 네가 이러는 거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하영은 몸을 일으켜 손을 뻗어 흰 천을 잡았다.“아주머니는 평생 동안 힘들게 살아오셨어. 남편과 이별 후에도 힘들게 돈을 모아 아들을 유학 보냈는데, 아들은 결국 불효자가 되었지. 나는 아주머니가 내 곁에 계시면서 행복해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어려운 상황에 밀어넣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파.”인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하영은 다시 아주머니 얼굴에 흰 천을 덮어주었다.“웃기지 않아?”“응?”“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하나씩 세상을 떠나잖아.”인나는 하영의 말에 덜컥 겁이 났다.“그건 너랑 상관없어. 그 외국 의사들이 능력이 없는 탓이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외국 의사…….’하영의 눈빛이 흔들렸다.‘그 의사들은 정유준이 아주머니를 위해 특별히 청해왔다고 했었지…….’정유준이 억지로 아주머니를 연세 병원으로 옮겼고, 의사 선생님의 의견대로 한 번 더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었다.만약 이번 수술이 아니라면 아주머니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건가? 몇 년 동안 출국해 있으면서 살아 있는 것을 숨기고 괴롭게 만들어서? 아니면 아주머니가 내 행적을 알면서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고?’하영은 몸을 흠칫 떨며 손을 거두었다. 무서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그리고 분노도 점점 하영의 이성을 앗아갔다.저녁.임연수의 시신을 장례식장에 보냈다. 그녀한텐 친구도 없고 가족들과도 연을 끊었기 때문에 하영과 우인나, 그리고 하영의 곁에서 임연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 모두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소예준은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네 건강에도 좋지 않아.”진석의 말에 하영은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쓰러지지 않아! 이번 일은 내가 정유준을 찾아가 물어볼 거야!”하영의 말에 예준이 입을 열었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설날 저녁 계획은 아마 미뤄야 할 것 같아.”말을 마친 뒤 예준은 진석을 보며 얘기했다.“하영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요. 저는 잠시 통화 좀 할게요.”“네.”예준은 하영을 데리고 들어가는 진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아주머니가 첫 수술을 마쳤을 때 그를 의심한 적이 있었다.‘종양 내과에 있는 진석이 왜 개두 수술실에 나타난 걸까? 그저 하영을 위해서?’하지만 예준은 곧 이 생각을 버렸다.만약 정말 부진석에게 문제가 있다 해도 정유준의 병원에까지 손 쓸 능력은 없었다.게다가 하영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깊은데 그녀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겠지.다음 날 오후.의사가 정밀 검진 결과를 유준에게 건네줬다.급히 진단한 결과 정희민은 급성 백혈병 중기라는 진단을 받았다.중기라는 두 글자에 진단서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유준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의사에게 물었다.“치료 방법은 있습니까?”“일단 약물 치료로 완화한 후 제일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골수 이식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완치될 수 있습니다.”유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제 골수는 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검사를 받아보셔야 알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일치할 확률은 50퍼센트입니다. 안전하게 일단 일치하는 골수를 먼저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복도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정유준 씨!”양다인의 잠긴 목소리가 유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유준의 얼굴엔 혐오스러운 눈빛을 숨김없이 드러났다.정유준은 몸을 돌려 자기 앞으로 뛰어오는 양다인을 보고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얃아인은 병실을 보며 얘기했다.“희민이가 안에 있는 거 알아요. 아프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할게.”유준이 말을 이었다.“대신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치료 잘 받아야 해.”희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네.”라고 대답했다.그저 아빠가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무슨 말이든 다 따를 생각이다.명품 그랜드 캐슬.양다인은 연세 병원에서 나와 바로 주원의 집으로 향했다.주차를 한 뒤 거실로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쉬고 있는 주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주원 씨, 저 왔어요.”주원은 눈을 뜨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다인을 바라보았다.“정희민은 어때요?”“별로 안 좋아요.”양다인은 주원의 곁에 앉으며 별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그저 골수가 문제죠.”“골수?”주원이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자 양다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을 바꿨다.“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거든요…….”양다인은 깜짝 놀랐다. 주원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아직 감정이 단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얘기는 절대 할 수 없었다. 양다인은 어쩌면 주원이 먼저 태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주원은 시선을 거두고 얘기했다.“그저 충분한 자금만 있으면 골수를 찾는 건 쉬운 일이죠. 하지만 정유준이 돈이 있어도 골수를 찾을 수 없다면 그때는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양다인은 조심스레 주원을 떠보기 시작했다.“혹시 정유준이 골수를 찾을 방법을 차단하려는 건가요?”주원은 그저 웃으며 양다인을 바라보았다.“어떨 것 같아요?”“그렇다면 제가 정유준한테 접근하기 더 쉬워지겠죠!”양다인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저한테 정희민을 살릴 수 있는 게 있지만 정유준이 찾을 수 없게 되면 분명 그 일로 저를 다시 받아줄 거예요!”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일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남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요.”양다인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네! 주원 씨를 위해서 꼭 정유준 곁에 있을게요!”저녁.소예준은 강제로 하영과 인나를 집에 돌아가 휴식하라고 했
임연수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거의 5년이나 보살펴 줬고, 그들 모두 아주머니를 제일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그런 아주머니가 돌아갔다는 얘기에 아이들도 하영만큼이나 괴로웠다.하영은 두 아이를 품에서 놓아주고 입을 열었다.“1월 2일에 할머니를 보내드릴 거니까 엄마가 학교에 얘기해서 너희들도 함께 가자.”두 아이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명품 그래드 캐슬.주원이 오늘 양다인에게 자고 가라고 얘기했다.양다인은 주원의 방에 앉아있었다. 약속한 이틀이라는 시일이 다가오는데 주원은 아직 휴대폰을 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양다인도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어서 일단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로 했다.욕실에 들어가 옷을 다 벗은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양다인이 휴대폰을 확인하니 발신자가 김형욱인 것을 보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김형욱 씨?”양다인은 말을 하며 욕실 문 쪽으로 몸을 가까이 붙였다.정주원이 지금 통화하고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골수는 이미 찾았으니까 언제든지 보내줄 수 있어. 가격은 그쪽이 내줘야겠어.”김형욱의 말이 들려왔지만 밖에 있는 주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방음이 너무 좋은 탓인가?’“얼마나 필요한데요?”양다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었다.“4,000만 원.”김형욱이 얘기할 때 양다인은 마침 욕실 문을 열었고, 문틈으로 정주원이 통화하는 것을 발견했다.양다인은 흥분된 마음으로 황급히 욕실 문을 다시 닫았다.‘이번엔 확실히 증거를 잡았어! 정주원이 맞았어!’양다인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좋아요. 돈은 어떻게 보내드리면 되죠?”“이따가 계좌번호 보내줄게.”“알았어요, 김형욱 씨.”전화를 끊은 뒤 바로 문자가 왔고, 양다인이 먼저 계좌번호에 2,000만 원을 이체하자마자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상대방이 골수가 있는 위치를 보내줬다.새해.희민은 잠에서 깨자마자 하영의 문자를 받았다.[우리 소중한 희민이 새해 복 많이 받아.]하영의 문자에 희민의 코끝이 찡해
“좋아.”희민은 유준이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유준은 흔쾌히 동의하자 희민의 눈빛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고마워요.”유준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그저 아주 작은 요구를 들어줬을 뿐인데 희민이 이 정도까지 기뻐할 줄 몰랐다.점심.유준은 희민을 데리고 점심을 먹은 뒤 손잡고 백화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희민은 이미 뭘 살지 정했는지 가게를 찾아 바로 들어갔다.하영을 위해 목도리를 고르고,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 세준을 위해서 보온병을 골랐다.그리고 세희 선물은 저녁에 안고 잘 수 있는 커다란 인형을 골랐다.마지막으로 유준을 위해 넥타이를 골랐다.선물을 받은 유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나 주는 거야?”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새해인데 아빠도 선물을 받으셔야죠.”유준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굽혀 희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마워.”희민은 놀란 얼굴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아빠가 웃었어…….’처음으로 아빠가 이렇게 기쁘게 웃는 모습을 봤다.희민의 창백한 얼굴은 기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아빠, 많이 웃어요. 보기 좋아요.” 유준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가에 어색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손을 거두고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또 필요한 거 있어?”“없어요.”“너는 뭐 살 것 없어?”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희민의 눈가에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모두가 기뻐한다면 그게 저한테는 선물이에요.”유준은 희민의 작은 손을 잡았다.“네가 예전에 데스크톱 컴퓨터를 고르고 있던 걸 본 적 있는데.”그 말에 유준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부품을 보고 있었어요. 혼자서 조립해 보고 싶었거든요.”“필요한 부품들을 적어서 허시원에게 전해줘. 대신 사다 줄 거야.”희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공부와 상관없는 일을 한다고 반대하지 않으세요?”“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데 왜 반대해야 하지?”……병원에서 돌아온 유준은 허시원에게 희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