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문자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부진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걱정스러운 그의 말이 흘러나왔다.“그 집에 가서 어쩌려고? 내가 같이 가줄까? 소백중이 또 너한테 무슨 짓하면 어쩌려고 그래?”부진석의 다급한 어조에 하영은 실소를 터트렸다.“왜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지?”“정창만이 너한테 한 짓도 있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어?”“진석 씨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진석은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혹시 내가 너 지켜줄 능력이 없을까 봐 그래?”진석의 나지막한 말투에 하영의 마음이 씁쓸해졌다.“진석 씨,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니야. 나는 진석 씨도 괜한 모욕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부진석은 다정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얘기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랑 함께 마주할 생각이야.”하영의 마음은 진석의 말에 의해 점점 부드럽게 변해갔다.누군가 지켜주는 느낌은 꽤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영은 숨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좋아, 그럼 설날 저녁에 같이 가자.”“그래. 그때 데리러 갈게.”소씨 집안.양다인은 잠에서 깨자마자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젯밤 끝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한참 뒤에 주원이 전화를 받았고 약간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다인 씨.”양다인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주원 씨, 왜 그래요?”그러자 주원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어제 한대 맞고 나니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양다인은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지금 어디에요? 그쪽으로 갈게요.”“주유 별장에 있어요.”……한시 간 뒤, 하영은 주원이 있는 별장에 도착했다.주원이 미리 경호원들에게 얘기해놨기 때문에 양다인이 별장에 들어설 때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다.양다인은 급히 별장으로 뛰어들어갔고, 도우미가 그녀에게 얘기해 줬다.“양다인 씨, 도련님으 지금 위에 계십니다.”말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눌러줬고, 양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하영은 유준의 의아한 표정을 눈치챌 수 있었다.‘지금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건가?’하영은 시선을 거두었고, 유준이 빠른 걸음으로 곁으로 다가왔다.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시에 유준의 싸늘한 어조가 들려왔다.“다시는 희민이를 만나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한 것 같은데.”하영은 그를 힐끗 쳐다봤다.“유준 씨가 이 학교를 세운 것도 아닌데 우리 애들이 다니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요?”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벽에 적힌 반급을 확인하고 나서야 깨달았다.그는 하영의 손목을 잡고 차 안으로 끌고 갔다.하영은 갑작스러운 유준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의 손을 뿌리치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하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정유준과 싸울 수는 없었다.결국 영향을 받게 되는 건 두 사람뿐만 아니라 애들도 있으니까.차에 오른 뒤 유준이 더욱 화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너 지금 애들을 희민이와 같은 반에 보낸 거야?”하영은 유준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으며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제가 보낸 게 아니라 우리 애들이 실력으로 이 학교에 붙은 거예요.”유준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네가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학교에 들어올 기회가 있었겠어?”하영은 범인을 심문하는 식으로 따져 묻는 유준의 말투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유준을 향해 소리 질렀다.“교장 선생님을 찾아간 건 맞지만 그 전에 교장 선생님이 먼저 애들이 여기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꺼냈어요! 그 중에 희민이도 있었고요. 정유준 씨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다른 사람 생각은 아예 안중에도 없어요? 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 들어요?”“청담 국제 학교 후계자는 김제에서도 100년의 전통을 이어온 학문이 깊은 집안이야. 그들이 먼저 너를 찾아갔다는 얘기를 내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애를 보고 싶다고 이런 수작을 부리면 안 되지!”하영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집에 도착한 뒤 하영은 애들을 위해 저녁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그때 한 여자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포티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청초한 모습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하영을 발견했을 때 그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귀여운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강하영 씨, 안녕하세요! 저는 소예준 대표님 보낸 도우미예요. 주희라고 불러주세요.”주희의말이 끝나기 바쁘게 예준이 거실에서 걸어 나왔다.“하영아, 왔어?”하영은 갑자기 당황스러웠다.“오빠, 이게 대체…….”그러자 예준이 웃으며 얘기했다.“네가 고생이 많잖아. 그래서 내가 도우미 한 명 청했어. 주희 씨 아주 대단해. 요리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자격증도 많이 땄거든.”“자격증?”하영이 깜짝 놀랐다.“무슨 자격증?”예준이 주희한테 시선을 던지자 주희는 얼른 현관으로 다가가 가방에서 카드 서류 가방을 꺼냈다.그리고 앞으로 다가와 두 손으로 하영에게 내밀었다.“강하영 씨, 한 번 봐주세요!”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 가방을 받아 펼쳐 보니 많은 자격증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교사 자격증, 불어 C2, 영어 PETS-5, 요리사 자격증, 영양사, 태권도, 격투 등등…….마지막까지 펼쳐보던 하영은 놀라서 혀를 내둘렀다. 주희는 심지어 배관 수리공 자격증도 땄다.‘세상에 자격증에 이 정도로 진심인 사람이 있다고?’하영은 고개를 들어 예준을 바라보았다.“오빠, 이런 아가씨는 어디서 데려온 거야?”“우리 회사 직원인데 내가 도우미를 구한다고 하니 자진해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삼촌 회사에는 정말 숨겨진 인재들이 참 많네요.”세준도 감탄하더니 주희에게 물었다.“컴퓨터에 대해서도 잘 아세요?”그러자 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물론이지.”그 말에 세준이는 흥미가 생겼다.“저녁 식사 후에 게임 한판 하는 게 어때요?”“오빠!”세희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을 이었다.“숙제도 다 못했으면서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지금 엄마도 여기 계시는데!”주희가 웃
“안 될 것도 없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예준의 말에 하영의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래. 그럼 설날 저녁에 갈게.”“응. 양다인에 관한 물건은 내가 다 준비해 놓을 거니까 너는 그냥 오기만 하면 돼.”……저녁 식사 후 주희는 설거지를 마치고 애들의 숙제를 봐 주기 시작했다.곁에서 잠시 지켜보던 하영은 세 사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안심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영은 서재에 들어가 연세 병원의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받자 하영이 입을 열었다.“선생님, 임연수 씨 수술에 대해 상의하려고 전화드렸어요.”“강하영 씨, 드디어 연락을 주셨군요. 저희도 한참 기다렸어요.”“죄송해요. 그동안 몸이 좀 안 좋아서 입원해 있었거든요.”“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면 저희한테 말씀하셔도 돼요. 메일 주소 알려주시면 임연수 씨 수술 방안을 보내드리겠습니다.”하영이 메일 주소를 얘기하자 의사 선생님이 바로 수술 방안을 보내왔다.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던 하영은 빼곡히 적혀 있는 불어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하영은 그 방안을 다시 부진석에게 보냈고, 잠시 뒤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진석 씨, 수술 방안 확인했어?”“확인했어.”“두개 골을 여는 기술은 지금 많이 선진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많이 줄어들었으니까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진석의 얘기에 하영은 안심이 되었다.“그래. 그럼 의사 선생님이랑 날짜를 정해야겠어.”“식사 꼭 챙기고, 곧 수술 들어가야 해서 이만 끊을게.”“얼른 가.”“응.”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다시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어 수술 날짜를 내일 오후 2시로 잡았다.의사 선생님은 이 사실을 바로 정유준에게 보고했다.그때 마침 희민의 방에 앉아 있던 유준은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낮은 소리로 분부했다.“알겠습니다. 수술은 최대한 신중하게 부탁드릴게요. 어떻게든 임연수 씨가 깨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알겠습
도우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희민을 바라보았다.“작은 도련님, 혹시 맛이 별로면 제가 다른 국을 끓여 올까요?”희민은 두 눈이 붉게 충혈될 정도로 고통을 참았다.“저 신경 쓰지 마시고 볼일 보세요.”“네,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도우미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했고, 희민은 숟가락을 놓고 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갔다.변기에 엎드리는 순간 금방 먹었던 음식들을 전부 토하고 말았다.작은 몸으로 변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온몸이 떨려 올 정도로 음식을 전부 토해냈다.먹은 음식을 전부 토해낸 뒤 희민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다리가 저려와 똑바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무릎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희민이 고개를 숙여 다리를 확인하자 무릎이 까졌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희민은 얼른 휴지로 상처 부위를 꾹 누르고 있었지만, 한참 지나도 피는 멎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작은 도련님?”갑자기 화장실 밖에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희민이 다급하게 대답했다.“화장실에 있어요.”“네, 알겠습니다.”도우미가 떠나자 희민은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나 어디가 아픈 걸까?’자주 코피가 흐르고, 온몸에 힘도 없이 아프고, 몸에는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만약 정말 어디가 안 좋은 거라면 아빠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내가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혼내지 않을까?’‘사내답지 않다고 야단치면 어쩌지? 아니면 내가 아픈 것 때문에 또 술담배를 하시면 어쩌지?’희민은 무기력하게 벽에 기댄 채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았다.‘내 몸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무슨 자격으로 엄마를 지켜?’병원.주원을 데리고 병원에 온 양다인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그러다가 병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와 주원의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뺐다.잠에서 깬 양다인이 몸을 곧게 펴고 낮은 소리로 간호사에게 물었다.“열은 내렸어요?”“내렸습니다.”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약 처방을 꺼내 양다인에게 건네
“확실해요!”양다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주원 씨랑 상의할 일이 있어요.”“얘기해요.”양다인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어젯밤 사실 주원 씨랑 강하영의 대화를 듣게 됐어요. 주원 씨가 유준 씨한테 좋은 감정 품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괜찮으면 저에게도 주원 씨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제가 유준 씨 곁에서 감시할게요. 그러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주원 씨한테 알려줄 수 있잖아요. 그에게 복수라도 하고 싶다면 저도 도울게요. 어때요?”주원은 미간을 찌푸렸다.“다인 씨,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들키게 되면 다인 씨만 위험해져요.”주원의 말에 양다인은 웃어보였다.“주원 씨, 제가 어떻게 스스로를 위험에 빠지게 하겠어요? 할 수 있으니까 저 믿어 주세요.”“다인 씨…….”“주원 씨, 제 얘기 한 번 들어봐요. 주원 씨가 수십 년을 집을 떠나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제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요? 지금 이런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주원은 양다인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인 씨가 정말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겠다면 내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아요.”“그런 바보같은 얘기가 어디 있어요?”양다인은 그런 주원을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흘겼다.“저는 주원 씨만 행복하면 돼요.”솔직히 말해서 양다인도 사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강하영,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콧대를 세웠지?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강하영이 원하는 사람들이 전부 양다인 편으로 돌아 섰을 때 하영이 어떤 식으로 미쳐갈지 보고 싶었다.주원과 얘기를 마치고 양다인은 집으로 돌아갔다.양다인은 지금 희민의 백혈병이 어느정도 심각한지 알아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잠시 고민하던 양다인은 이내 김형욱을 떠올렸다.김형욱이 바로 정주원이니까 정유준에 대한 원한 정도를 따져보면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양다인은 김형욱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빠르게 상대방은 전
하영은 식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언제 일어나서 준비한 거예요?”“5시요! 만약 하영 씨만 괜찮으시면 내일부터 애들을 데리고 아침 운동을 다니고 싶어요.”“아침 운동이요?”하영은 깜짝 놀랐다.“엄마!”그때 세희가 하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엄마, 저 주희 언니랑 아침 운동 다니고 싶어요. 저랑 오빠가 아침에 해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그래?”하영은 세희의 몸을 꼭 껴안아 줬다.“그런데 아침 운동같은 건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돼. 견지해야지.”세준이 우유를 마시면서 한 마디 했다.“힘들긴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주희와 함께 운동하게 되며 나중에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겠다고 세준은 생각했다.세희도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저도 괜찮아요.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되잖아요. 엄마, 저 어젯밤에 시 한편 외웠는데 들어 볼래요?”하영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세희를 쳐다봤다.“그래, 들어보자.”세희는 몸을 곧게 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시를 외웠다.“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를 사러 갔다 하네.”“풉.”세준은 우유를 전부 세희의 얼굴에 뿜어버렸다.세희는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곁에 있던 하영도 깜짝 놀랐다.“바보야!”세준은 티슈를 꺼내 세희의 얼굴을 닦아 주며 입을 열었다.“스승은 약초를 캐러 갔다 하네지.”세희는 티슈를 뺏어 씩씩거리며 얼굴을 닦았다.“오빠 미워! 한 마디만 틀렸을 뿐이잖아!”주희도 곁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세희도 참 대단한 거죠. 어젯밤에 두 번밖에 읽지 않았는데 외웠거든요.”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또 티슈를 한 장 뽑아 세희의 얼굴을 닦아줬다.“애들이 주희 씨랑 훈련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애들은 주희 씨한테 맡길게요.”하영의 말에 주희는 자기 가슴을 팡팡 쳤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공부도 잘 시키고 운동도 열심히 시킬게요.”……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하영은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줬고, 주희도 함께 따라나
양다인은 자신의 차로 돌아와 교문 입구에 있는 CCTV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리고 쿠션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CCTV에 애타게 애를 찾는 모습을 남기는 것도 꽤 힘든 일이네.’MK.현욱은 아침부터 유준 회사의 주차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8시 30분까지 기다려서야 인나의 차가 천천히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현욱은 얼른 차에서 내려 인나의 차로 달려가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인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현욱을 보고 깜짝 놀랐다.“미쳤어요?”인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현욱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현욱은 얼른 호주머니에서 작은 선물함을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인나 씨, 내가 잘못했어요!”그리고 선물함을 열자 다이아 팔찌가 인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내가 이런 게 필요하다고 했어요?”인나는 목청을 높였다.“배현욱 씨, 결국 나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고 있네요!”현욱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인나 씨, 내 얘기 끝까지 다 듣고 화내는 건 어때요? 우리 어머니는 얘기가 잘 통하는 분이 아니에요. 어머니께 소개해 주지 않은 건 인나 씨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어요. 인나 씨를 떠나 살 수도 없고, 없어서도 안 돼요.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인나 씨를 찾아가 나랑 헤어지라고 얘기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았어요.”인나는 피식 웃었다.“내가 뭘 원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네요.”“알아요!”현욱이 말을 이었다.“그날 내가 했던 얘기들을 자세히 따져보기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나 싫어하라고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거였어요.”“몰라요! 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한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 뜻을 헤아려 보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아요!”인나는 현욱의 말을 끊었다.“내가 원하는 건 내 남자친구가 나한테 숨기지 않고 속이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야 사실을 알고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게 정말 싫어요!”현욱이 뭔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열었지만 인나는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이미 얘기가 여기까지 나온 이상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