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나는 현욱이 전화를 끊고 방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눈을 감았다.‘내일 몰래 따라가서 대체 뭘 하는지 봐야겠어!’저녁 11시.하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2층에 있는 화장실로 올라가 불을 켜는 순간 거울에 비친 모습이 보였다.흐트러진 머리에 퉁퉁 부은 두 눈, 그리고 목에 선명하게 찍힌 키스 마크.하영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유준의 무지막지한 행동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정주원과 만나면 정유준이 화를 낼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결과일 줄은 몰랐다.하영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 유준이 그녀에게 다시는 정주원과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다.그렇지 않으면 오늘과 똑같은 결과일 것이라고 말이다.그런데 이미 시작을 해버렸는데 어떻게 물러날 수 있단 말인가?지영 이모를 해친 사람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도 찾지 못했는데 이런 일 때문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G, 왔어? 야식은 언제 사줄 건데?”갑자기 캐리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자 하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수건으로 목을 가렸다.화장실 쪽으로 다가오던 캐리는 하영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뭐야, 꼴이 왜 그래?”하영은 불쾌한 시선으로 캐리를 바라보았다.“괜히 애들 깨우지 말고 조용히 해.”“대체 무슨 일인데?”캐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영을 훑어보더니 잠시 뒤 눈을 크게 떴다.“설마 정유준 그 자식이 너 괴롭혔어?”“캐리!”하영이 그의 말을 끊었다.“야식 주문해 줄 테니까, 그만 얘기해.”캐리는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젠장!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두 사람 같이 있다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설마 너 때렸어? 아니면 억지로 너한테 무슨 짓 했어? 이 자식을 진짜!”하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좀 조용히 해주면 안 돼?”“알았어. 아무리 그래도 네가 이런 꼴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찾아가서 뭘 어쩌려고? 어차피 일어난 일이잖아!”하영은
오전 10시 30분.복도에서 걸어 나오던 현욱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차에 시동을 걸자 인나도 바로 현욱이 떠난 방향으로 따라갔고, 한참 달리던 차는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 앞에서 멈췄다.현욱이 차에서 내렸고 인나는 차에 앉아 그가 카페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그리고 한 여자가 다가와 현욱의 앞에 앉자 인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지금 나 몰래 다른 여자와 데이트하는 거야? 지금 나를 뭘로 보고!’인나는 다급히 모자를 꾹 눌러쓴 뒤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차에서 내렸다.카페로 들어가 두 사람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으니 두 사람의 대화가 똑똑히 들려왔다.여자는 조금 쑥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사진보다 훨씬 잘 생기셨네요.”현욱도 조금 격동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이런 외모를 좋아하시나 봐요. 영광입니다.”여자가 웃었다.“네, 저희 집 상황은 어머님께 다 들으셨죠? 일단 알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전혀 문제 될 게 없죠. 24시간 항상 언제든 대기 중이거든요.”‘24시간 언제나 대기 중?’인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내 곁에서 24시간 대기하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예쁜 여자만 보면 본성이 나오는 거야? 아부를 떠는 꼴을 못 봐주겠네.’“24시간까지는 필요 없어요. 이제 처음 만났는데 가끔 연락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좋은 인연이 딱 나타났는데 제대로 얘기해보지 않으면 누가 빼앗아 가면 어떡해요?”“현욱 씨…….”주연희가 얼굴을 붉혔다.“그렇게 급할 것 없잖아요. 출근은 안 하세요?”“가족기업이니까 결혼하면 먹고살기 충분해요. 그러니 그 시간에 연희 씨를 더 알아가고 싶거든요…….”현욱의 화려한 말솜씨에 인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하긴, 현욱 씨가 어떤 신분이고 내가 어떤 신분인데. 집안끼리 어울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어?’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욱의 곁으로 성
인나가 손을 뿌리치자 현욱은 다시 잡았다.지금 놓치게 되면 이번에는 정말 놓쳐버릴 것 같아 감히 손을 놓을 수 없었다.인나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니 현욱은 주연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주연희 시, 이 여자 제 여자친구입니다! 오늘 선보러 나온 것도 제가 원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억지로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어요. 방금 한 얘기들도 일부러 저 싫어하라고 한 얘기고 다른 뜻은 없어요.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당신 정말 역겨워!”인나는 억제로 해명하는 현욱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몸을 돌렸고, 현욱은 황급히 인나의 뒤를 따라 카페를 나섰다.인나가 처음 보는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현욱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지금 다른 차로 나 미행한 거야?’현욱은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보조석 문을 열고 차에 앉았고, 인나는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내려요.”현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고 내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요?”인나는 고개를 돌려 현욱을 쳐다봤다.“지금 충분히 차분하거든요? 기어이 얼굴에 물 뿌리고 뺨을 때려야 차분하다고 생각해요?”“그게 아니라 내 얘기 끝까지 좀 들어봐요. 어젯밤에 어머니 전화 때문에 오늘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어요.”인나는 피식 웃었다.“그래요. 그런데 말을 뱉을 땐 생각이란 걸 하긴 해요? 지난번에 누가 나한테 옷을 디자인해 주겠다고 했죠? 참, 이제 알겠네. 내가 또 현욱 씨 부모님을 뵙는 줄 알고 김칫국부터 마셨네요. 나만 혼자서 들떴고 당신은 늘 나의 믿음을 배신했어요.”“인나 씨, 그게 아니에요. 나 정말 인나 씨를 집에 소개해 주고 싶어요. 그전에 미리 얘기할 시간은 줘야죠.”“시간이요? 왜, 집안끼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라도 하실까 봐 걱정 돼요?”“우리 어머니가 그런 분인 건 사실이지만…….”“그럼 더 이상 할 얘기 없겠네요. 축하받지 못하는 결혼은 행복하지 않아요. 배현욱 씨, 지금 정중하게 말씀드리는데 우리 이만 헤어져요.”“싫어요. 나는
하영은 시계를 확인했다.“그래, 30분 안에 갈 테니까 기다려.”“응, 기다릴게.”전화를 끊고 하영은 인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20분 후.달밤 파스타 가게로 도착한 하영은 인나가 퉁퉁 부은 눈으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하영은 얼른 문을 닫고 인나의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무슨 일이야? 누가 너 괴롭혔어?”인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안에 있는 음식을 천천히 씹어서 삼킨 뒤 울먹이는 소리고 입을 열었다.“나 헤어졌어.”“왜 헤어졌어?”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요즘 두 사람 잘 지내고 있었잖아.”인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울음을 터트렸다.그리고 울먹이면서 현욱이 몰래 선보러 나간 사실을 전부 얘기했다.“하영아, 나 정말 참으려고 노력해 봤어. 밖에서 최대한 화도 안 내려고 했고. 나도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막돼먹은 여자로 변하는 게 싫거든.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아파. 마치 누가 가슴을 파먹는 것 같아서 한동안 너무 힘들 것 같아…….”말을 마친 인나는 다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눈물범벅이 된 채 음식을 입에 쑤셔 넣던 인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하영의 눈시울도 따라 붉어졌다. 한 번도 인나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인나는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남자들이랑 허물없이 지내며 놀았을 뿐이지 사실은 뼛속까지 보수적인 사람이었다.그리고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 배현욱인 것이다.하영은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선보기 싫다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게다가 인나한테 숨기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인나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과 배신이라는 것을 하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영은 인나를 품에 안았다.“인나야. 이번엔 현욱 씨가 잘못했어. 그런데 이번 일만 놓고 그 사람이 바람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인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현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허시원을 바라봤다.시원은 현욱이 왜 저렇게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유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알았어. 오후에 희민이 데리러 갈 거야.”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준에게 통지서 하나를 건넸다.“대표님, 그리고 학교에서 건강검진 통지서에 사인하셔야 합니다.”유준은 통지서를 건네받아 사인을 했고, 현욱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희민이는 왜 병원에 데려가?”“요즘 살도 많이 빠졌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기운이 없어.”“나 참, 하영 씨를 못 보게 돼서 기분이 안 좋은 거잖아. 우리 이모 아들이 그랬다니까.”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쳐다보았다.“내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해?”“그게 무슨 말이야? 희민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네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되지.”유준은 침묵을 지켰다.‘내가 정말 애한테 너무했나?’“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어차피 검사는 오후잖아.”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현욱이랑 시원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금방 회사를 나섰을 때 현욱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가 하영인 것을 확인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하영 씨, 무슨 일이야?”말을 하며 곁에 차가운 표정의 유준을 힐끗 쳐다봤다.“지금 어디죠? 잠시 할 얘기가 있어서요.”“MK 회사 아래에 있어. 리즈 레스토랑에서 보는 건 어때? 이따가 방 번호 문자로 보낼게.”“알았어요.”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100미터 거리도 되지 않는 리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그러다 결국 문 앞에서 현욱이랑 유준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하영은 굳은 표정으로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가 인나의 일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 딱 감고 입을 열었다.“들어가서 얘기해요.”“그래, 들어 가자.”유준은 실눈을 뜨고 하영을 훑어본 뒤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다들 자리에 앉자 현욱은 하영에게 메뉴판을 건넸다.“먹고 싶은 거 주문해.”“밥은 됐어요.”하영은 메뉴판을 사양했다.
‘그러니까 전에 정유준이 아이들과 나를 걱정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야?’강하영은 조롱하듯 비웃었다.‘이게 뭐야? 지금 내가 바본 줄 알아?’하영은 눈을 들어 현욱을 바라보았다.“배 대표님, 인나와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없다면 그만 놓아주시죠!”현욱은 바로 거절했다.“포기할 생각 없어. 인나 씨에 대한 감정이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얕지 않아!”“부모님 생각은 안 해요?”하영이 비웃듯 물었다.“나는 그저 우리 부모님 때문에 인나 씨 입장이 난처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부모님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인나한테 자신이 없는 거예요?”하영이 따지듯 물었다.“아직 인나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인나는 약간의 어려운 일이 닥쳤다고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에요. 사람을 속이는 건 더욱 싫어하고요. 아무리 인나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미리 얘기는 해줬어야죠.”“너도 마찬가지잖아.”유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5년 동안이나 너 찾아다니게 했잖아.”하영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정유준 씨, 그건 별개의 일이니까 제대로 구분하시죠.”유준은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하영을 쳐다봤다.“자기 사생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왜 현욱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하영도 절대 질 수 없었다.“내 사생활은 인나와 상관없으니까 당신이 그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오늘 인나가 현욱 씨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내가 심심하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따지겠어요?”“혼자선 못 온대?”유준이 경멸하듯 물었다.“자기를 속인 남자를 보고 싶겠어요?”“됐어, 두 사람 다 나 때문에 싸우지 마!”현욱은 얼른 두 사람을 제지하기 시작했다.‘아니 왜 나 때문에 또 싸우고 그래?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정말 원수도 아니고.’‘잠깐……. 단둘이서 싸우다가 혹시 무슨 일 생기지 않을까?’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욱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몸을 일으켰다.“나 인나 씨한테 찾아가서 직접 해
그 장면이 떠오르자 유준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체 그놈을 이용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냥 접근하고 싶은 거야?”하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정유준 씨, 그렇게 저를 못믿겠으면서 왜 굳이 쓸데없이 물어봐요?”“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은 것뿐이야.”“유준 씨한테는 내가 한 모든 말이 거짓말인 것 같죠?”하영은 참지 못하고 유준을 향해 소리 질렀다.방금까지도 한발 물러서 모든 걸 설명하자는 미친 생각을 잠깐 했다.‘어차피 내 말을 믿지도 않을 텐데!’유준은 코웃음을 쳤다.“나한테 정곡을 찔려서 급한가 보지?”하영은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정유준 씨, 병원에 가서 그 의심병부터 치료하는 건 어때요? 제발 이런 식으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매번 이렇게 의심당하는 거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말을 마친 하영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혼자 남겨진 유준은 소파에 앉아 하영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대체……,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이야?’오후.하영은 현욱의 말을 그대로 인나에게 전해줬고 인나는 답장을 보냈다.[마음대로 하라고 해. 나 피곤해서 잘 거야.]하영도 더 이상 말을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손에 있는 일들을 처리했다.오후 두시까지 일을 마치자 애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문자로 받았다.동시에 부진석의 문자도 와 있었다.부진석은 학교 사진 한 장도 보내왔다.[세희가 피뽑는 걸 무서워할까 봐 반차 내고 병원 건강검진 의료진들과 함께 왔어. 세희랑 애들 모두 용감하니까 걱정하지 마.]하영이 답장을 보내려할 때 또 문자 하나가 떴다.이번에는 정주원이었다.[어제 무슨 일 없었어요? 유준이가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죠?]하영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정주원 씨에 대해 길게 얘기 나눴어요.][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영 씨는 유준의 말을 크게 믿지는 않는 것 같군요.][다음부턴 부르지 마세요. 정주원 씨는 모르겠지만 저는 안 괜찮거든요.][물론이죠. 저도 괜히 매를 사고 싶지는 않네요.]하영
하영이 문자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부진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걱정스러운 그의 말이 흘러나왔다.“그 집에 가서 어쩌려고? 내가 같이 가줄까? 소백중이 또 너한테 무슨 짓하면 어쩌려고 그래?”부진석의 다급한 어조에 하영은 실소를 터트렸다.“왜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지?”“정창만이 너한테 한 짓도 있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어?”“진석 씨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진석은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혹시 내가 너 지켜줄 능력이 없을까 봐 그래?”진석의 나지막한 말투에 하영의 마음이 씁쓸해졌다.“진석 씨,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니야. 나는 진석 씨도 괜한 모욕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부진석은 다정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얘기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랑 함께 마주할 생각이야.”하영의 마음은 진석의 말에 의해 점점 부드럽게 변해갔다.누군가 지켜주는 느낌은 꽤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영은 숨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좋아, 그럼 설날 저녁에 같이 가자.”“그래. 그때 데리러 갈게.”소씨 집안.양다인은 잠에서 깨자마자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젯밤 끝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한참 뒤에 주원이 전화를 받았고 약간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다인 씨.”양다인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주원 씨, 왜 그래요?”그러자 주원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어제 한대 맞고 나니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양다인은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지금 어디에요? 그쪽으로 갈게요.”“주유 별장에 있어요.”……한시 간 뒤, 하영은 주원이 있는 별장에 도착했다.주원이 미리 경호원들에게 얘기해놨기 때문에 양다인이 별장에 들어설 때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다.양다인은 급히 별장으로 뛰어들어갔고, 도우미가 그녀에게 얘기해 줬다.“양다인 씨, 도련님으 지금 위에 계십니다.”말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눌러줬고, 양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