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하영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애들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월반한 걸 축하해주고 있어요.”“세준과 세희도 월반했어?”현욱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우리 희민이도 월반했는데!”인나는 그런 현욱을 흘겨보았다.“그게 현욱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당연히 있죠! 바로 하영 씨와 유준의 유전자가 엄청나다는 뜻이잖아요. 애들이 다 이렇게 똑똑한 걸 보면 나도 분발해야겠어요. 앞으로 우리도 이렇게 똑똑하 아이를 낳아야죠!”인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부끄럽지도 않아요?”“전혀요!”현욱이 말을 이었다.“나는 지금 우리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잖아요.”말을 마친 현욱은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소예준, 안 그래?”소예준은 화를 꾹 참으며 현욱을 바라보았다.“세준이와 세희는 내 아이야.”곁에 있던 캐리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야? 내가 뭘 놓쳤지? G가 지금 자기 오빠랑 손 잡고 정유준 앞에서 연기하는 거야?’눈치 빠른 현욱이 캐리의 표정을 포착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캐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그럴 리가 없을 텐데…….’캐리는 하영의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데 애들과 소예준의 관계를 모를리 없었다.현욱은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캐리, 술도 많이 못 마시면서 왜 또 술을 마셔요? 지난 번에 있었던 일 기억 안 나요?”캐리는 현욱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방금 뭐 라고 했어요?”그러자 현욱은 애꿎은 표정으로 다시 반복했다.“술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왜 술을 마셔요?”그 말은 캐리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주량이 약하다느 말은 또 처음 들어보네요! 지난 번은 지난번이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붙어봅시다!”현욱의 눈가에 예리한 빛이 스쳤다.‘오늘 어떻게든 내가 알아내고 말 거야!’“좋아요! 끝까지 상대해 줄게요!”캐리는 씩씩 거리며 술을 주문하고 현욱과 결판을 내고자 했다.정유준과 소예준 사이의 말다툼이 잠시 중단되자, 하영은 얼른 예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원은 전혀 급해하지 않고 여유를 부렸다.“네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강하영 씨 의견부터 물어보는 건 어때?”“네 놈을 병신으로 만드는 데 강하영의 의견 따위 필요없어!”“좋아, 기대할게!”주원이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꽉 움켜쥐고 있는 정유준의 주위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온 몸을 감쌌다.지금 아무리 하영에게 불만을 품고 있을지라도, 정주원이 하영을 건드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파티룸.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방금 밖으로 나와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물어보려고 종업원을 찾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하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빈 방으로 끌려들어갔다.문이 닫히고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자 유준의 화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하영은 얼른 손을 빼내고 미간을 찌푸렸다.“정유준 씨, 예의를 지킬 줄 몰라요?”“대체 정주원이랑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얘기해 봐!”정유준의 당장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하영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랑 정주원 씨 사이에 있었던 일을 왜 당신한테 얘기해야 하죠?”“강하영, 그 자식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천배는 더 무서운 놈이야!”유준은 분노를 억누르고 말하자, 하영은 피식 웃었다.“저한테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정주원이 저를 어떻게 할까 봐 걱정돼요?”그러자 유준의 눈빛이 굳어졌다.“나는 그저 그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알려주는 것뿐이야…….”“나한테 얘기해줄 필요 없어요!”하영이 바로 유준의 말을 끊어버렸다.“정유준 씨, 저의 생사따위 상관없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더 이상 남에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기어이 정주원과 만나겠단 거야?”“그래요!”유준의 물음에 하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니 쓸데없이 상관하지 마세요!”분노에 찬 유준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도 섞였다.고집스러운 하영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던 유준은 순간, 갑자기 모든 분노가 사
캐리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아무리 취해도 정신은 말짱하다 이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술을 허투루 마신 것도 아니고.’배현욱이 자기한테서 뭔가 캐내려 한다면, 다른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현욱이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캐리가 말을 이었다.“소예준이 강하영을 정말 아끼는것 같지 않아요?”“강하영 씨를 아껴요?”현욱은 피식 웃었다.“소예준은 하영 씨와 같이 지내는 것도 아니고, 돌봐주는 것도 아닌데 아낀다고 할 수 있어요?”“충분하죠! 배려야 말로 아껴주는 게 아니겟어요? 생각이 정말 짧네요.”캐리는 현욱을 흘겨보았다.“…….”그러고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자유와 믿음을 주는 것도 일종 사랑하는 방식이니까.현욱은 캐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확실히 취한 것처럼 보이자 의심을 거두었다.그리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강하영 씨는 가정도 있는데, 캐리 씨는 왜 하영 씨 집에서 지내요?”“내가 그집에서 지낼 수 없는 이유는 또 뭔데요? 소예준도 아무 말 안 하는데, 그쪽이 뭔데 그런 걸 물어요?”“난 또 캐리가 하영 씨를 좋아해서 거기서 지내는 줄 알았죠.”“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캐리의 눈빛이 순간 쓸쓸하게 변했다.“아쉽게도 이미 결혼했더라고요.”“누구에요? 남자에요, 여자에요?”“나 성향은 정상이에요!”캐리는 현욱을 노려봤다.“내가 그집에서 지내는 것도 괜히 정유준이 하영이한테 접근할까 봐 그러는 거죠.”“소예준도 있는데 캐리가 왜요?”“소예준이 없을 때 내가 악연을 막아줄 수 있잖아요.”그러자 현욱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캐리한테 하영 씨는 그저 친한 친구일 뿐이네요.”“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겠어요? 강하영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겁니다.”하영의 집에서 지내는 진짜 목적도 이젠 숨기고 싶지 않았다. 소예준이 이미 나서서 자기 아이라고 얘기까지 했으니, 굳이 자기까지 나서서 연기할 필요는 없으니까.정유준에게 호시탐탐 주시당하는 것도 꽤 피곤한 일이었다.
정유준이 먼저 오빠 앞에서 언급했으니 이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하영은 컴퓨터를 껐다.“오빠, 나 정주원한테 접근해 보려고…….”하영이 자신의 목적을 소예준에게 얘기하자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영아, 결백을 밝히는 것도 좋지만 그 인간은 정주원이야. 지영 이모의 상황을 네가 못 본 것도 아니잖아.”“위험할수록 증거를 찾을 기회가 있을 거야.”하영은 확신했다.“정주원은 정유준에게 복수를 원하기 때문에 분명 나를 중시할 거야.”“잘 생각해 본 거야? 일단 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상처투성이가 될 각오해야 할 거야.”예준의 말에 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예준은 한숨을 내쉬었다.“하나만 약속해 줘. 정주원을 만날 땐 꼭 조심하겠다고. 특히 음식을 먹을 때 말이야.”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다음 날.유치원에 전학 수속을 밟으러 간 하영은 온 오전 바삐 돌아치고 나니 드디어 수속을 마쳤다.교장 선생님이 계신 덕분에 입학 수속은 매우 순조로웠고 내일이면 정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하영은 선물들을 사 들고 교장 선생님 교무실로 향했다.교장은 하영이 많은 선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해 줬다.“강 대표님, 이게 다 뭡니까?”하영은 선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저의 작은 성의일 뿐이니 받아주세요. 저희 애들을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교장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그렇게 훌륭한 자녀들이 저희 학교에 입학한 것이야말로 영광입니다.”하영이 웃으며 대답했다.“사실 그일 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께 다른 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교장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혹시 세 아이를 같은 반에 배정해 달라는 부탁인가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집안 사정이 조금 복잡해서 말씀은 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러니 부디 그렇게 해주세요.”교장은 선물들을 다시 하영
“야!”캐리는 인정할 수 없었다.“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잖아.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상관도 안 했을 거라고!”“그럼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 오늘 저녁에…….”띠링-하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휴대폰에 문자 알림이 떴다.정주원한테서 온 문자인 것을 확인한 하영의 표정이 굳어졌다.저녁 식사를 같이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하영은 문자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몸 상태가 좋아진 거야? 아니면 나랑 정유준을 상대하려고 마음이 급해진 건가?’캐리는 하영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G,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하영은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아무 일도 아니야. 회사에 일이 조금 생겼거든. 저녁에 야식 먹을래?”“그럼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 괜히 애들 혼자 두지 말고. 나 아직 여기 할 일 남았으니까 회사에 일이 있으면 먼저 가 봐.”“그래, 저녁에 봐.”“응.”하영은 공장에서 나와 바로 차에 올라탔다.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꺼내 주원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는 의미 없는 저녁 식사는 안 좋아해요.]주원은 그 문자를 보고 무표정한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그럼 어떤 게 의미 있는 거죠? 정유준을 어떻게 상대할지 계략이라도 꾸며야 하나?]하영은 계속해서 주원을 떠봤다.[아니면요?][어떤 식으로 타격을 줘야 좋은 복수일까요?]하영은 피식 웃었다.[그걸 제가 알았으면 정주원 씨 제의에 동의했을까요?][한 사람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이성을 무너뜨리는 거죠. 그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무기력한 모습을 지켜보는 겁니다.][그게 우리 저녁 식사랑 무슨 상관이…….]문자를 반쯤 쓰다가 하영의 머릿속에 무언가 퍼뜩 떠올라, 쓰던 문자르 지우고 다시 썼다.[혹시 정유준에게 우리 둘이 식사하기로 했다고 얘기했어요?][강하영 씨는 역시 똑똑하다니까요.][제가 꼭 동의할 거라고 자신하는 것 같네요.][정유준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얘기가 여기까지 나왔으니 하영은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었다.만약 약속
세준은 발길을 멈췄다.“무슨 일인데?”세희는 하영을 힐끔 쳐다보더니 세준을 잡고 빠르게 방으로 돌아간 뒤 문을 닫았다.“오빠, 희민이 오빠가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세희의 물음에 세준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어제저녁에 함께 놀 때도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세준이 미간을 찌푸리자 세희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렇다니까! 희민 오빠 어디 아픈 것 같아!”“불길한 얘기 하지 마.”세준이 세희를 혼냈다.“계속 환경이 바뀌어서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일 거야.”“그럼 어쩌지?”세희는 다급한 마음에 눈을 깜빡였다.“참! 오빠, 우리 아빠한테 찾아가 상의해 보는 건 어때?”“어떻게 상의할 생각인데?”“희민 오빠를 내놓으라고 문자를 보내면 되잖아!”“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것 같아?”“일단 물어는 봐야지! 나는 희민 오빠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살 빠진 것 보니까 마음이 아프단 말이야.”세희는 말을 하며 표정을 축 늘어뜨렸다.“혼자서 분명 많이 외로울 거야.”세희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본 세준도 마음이 아파 세희 눈을 문질러줬다.“울면 못생겼으니까 울지 마. 보기 힘들어.”“오빠는 엄마가 어디서 주워 온 자식인지도 몰라!”세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휴대폰을 들어보였다.“글쎄.”세희는 세준의 손을 잡아 그대로 팔뚝을 콱 물어버렸다.세준은 얼른 손을 빼내고 짐짓 화난 척하며 물었다.“문자 보내지 말까?”세희는 그제야 헤헤 웃으며 세준의 팔뚝을 닦아줬다.“착한 오빠, 얼른 보내!”세준은 정유준의 번호를 찾아서 문자를 보냈다.[저 세준이에요. 어제 희민이 정신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일단 저희 집으로 보내면 안 될까요?]같은 시각, MK.한창 회의 중이던 유준은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자 문자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답장을 보냈다.[안 돼.]그리고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이 자식은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문자를 보낸 거야? 혹시 강하영이 시킨 짓인가?
가방을 챙기고 하영은 방을 나섰다.애들 방을 지나갈 때 하영은 발길을 멈추고 방문을 두드렸다.그러자 세희가 바로 뛰어와 문을 열고 하영의 차림을 보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우와, 엄마 너무 예뻐요!”세희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엄마, 다음에도 치마 입어요. 너무 예뻐요.”“요런 아부쟁이.”세준이가 웃음을 터뜨렸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이를 노려봤다.“오빠는 얘기하지 마! 미워!”하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고마워, 세희야. 엄마 나가봐야 하니까 오빠랑 얌전히 집에 있어. 캐리 아저씨가 곧 집에 돌아올 거야.”세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엄마가 어디 가시는지 아니까 오빠랑 얌전히 있을게요.”그 말에 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세희도 이제 관찰할 줄 아는 거야?”세희는 손을 내밀어 하영을 밀었다.“얼른 가세요. 오빠랑 저한테 새아빠 만들어 주셔야죠.”‘아빠가 약 오르게 말이에요!’“그래, 그럼 엄마 갈게. 세준아 동생 잘 부탁해.”“알았어요.”세준이 대답하며 세희와 함께 하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소씨 집안.양다인은 정주원이 퇴원했다는 소식을 금방 알게 됐다.소식을 접하자마자 양다인이 정주원에게 전화를 걸자 그가 곧 전화를 받았다.“다인 씨, 무슨 일이에요?”양다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주원 씨, 오늘 퇴원 축하하는 기념으로 같이 저녁 식사 어때요?”그때 정주원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오늘 저녁은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이레스시에서 누구랑 약속이 있거든요.”‘이레스시?’양다인은 빠르게 핵심을 캐치했다.‘설마 강하영과 약속이 있는 건 아니겠지?’“그래요?”양다인은 다소 실망한 척했다.“그럼 저녁 늦게라도 같이 야식이라도 먹는 건 어때요?”정주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치맛자락을 꽉 움켜쥔 양다인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식사는 다음에 해요.”“그래요. 지금 나가봐
주원의 눈가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정말 그렇게 확신해요?”하영은 입꼬리를 올렸다.“정주원 씨는 그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당신 아버지한테 맞고 있을 때도 모른 척하던 사람인데, 우리 둘이 밥 한 끼 먹는다고 여기 올 것 같아요?”그 말에 정주원이 웃었다.“좋아요. 그럼 저는 온다는 것에 걸죠.”“자신 있게 말씀하시네요.”주원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강하영 씨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유준은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하긴.”하영은 살짝 코웃음 쳤다.“다른 사람이었어도 자기 어머니를 범한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겠죠.”정주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보아하니 강하영 씨는 아직도 저를 오해하고 계시네요.”“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하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식적으로 연기할 줄 몰라요.”정주원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하영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입꼬리만 올렸다.“보아하니 정주원 씨도 저를 믿지 않는 것 같네요. 저만 괜히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나 봐요!”말을 마친 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때 정주원도 따라 일어서 다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참고 절뚝거리며 다가가 하영의 손목을 잡았다.“강하영 씨, 마음이 너무 급한 것 아닌가요? 저는 그런 뜻이 전혀 없었어요.”하영은 정주원의 다리를 보며 일부러 손을 빼내지 않았다.“다리 괜찮아요? 일어설 수 있어요?”정주원의 생각은 한번 또 한 번 강하영의 말에 흐트러지고 말았다.“제가 강하영 씨보다 입원한 시간이 빠르잖아요.”하영은 그제야 천천히 손을 빼냈다.“됐어요. 다음부턴 이런 식으로 제 마음을 떠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재미없거든요.”룸 밖.마침 일식집에 도착한 양다인은 문틈으로 강하영과 정주원이 안에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봤다.양다인의 아름다운 눈에는 질투심과 승부욕으로 꽉 찼다.‘역시 정주원이 만나는 사람이 바로 강하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