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욱은 말로 유준을 이길 수 없었다.“그래. 네 말이 다 맞아.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며칠 더 지켜보면 되잖아.”“지켜봐도 결과는 똑같아. 지금 내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거든.”현욱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유준아, 내려놓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어때?”현욱은 당장이라도 유준을 끌고 하영의 앞에 던져놓고 대신 화해하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이렇게 서로를 괴롭히는 게 피곤하지도 않나?’유준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고, 현욱의 물음에는 대답조차 해주지 않았다.월요일.부진석은 아침일찍 아침밥을 들고 하영의 병실에 찾아왔다.병실 문을 열자마자 마침 하영이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고, 진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안으로 들어섰다.“일어났으면 아침 먹어. 이따가 내가 퇴원 수속 밟아줄게.”“나 이제 퇴원해도 돼?”하영은 진석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애들이 눈치채지 않을까?”진석은 두유를 꺼내 빨대를 꽂아 줬다.“아니, 상처도 아주 빠르게 회복됐으니까 지금은 그저 밴드만 갈면 돼.”하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두유를 받았다.“나랑 같이 돌아가서 애들 얼굴 볼 거야?”그러자 진석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보였다.“내가 너 혼자 보내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하영은 얼굴을 붉혔다.“사실 경호원…….”말이 채 끝나기 전에 주머니에 있던 하영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확인해 보니 희민이가 보낸 문자였다.하영은 고개를 들어 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잠시만, 답장 좀 할게.”“그래, 일단 깁스부터 풀어줄게.”[엄마, 출장은 잘 다녀왔어요?]애들의 걱정에 하영의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오늘 집으로 돌아갈 거야. 엄마 많이 보고싶었어?]희민이가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왔다.[네, 엄마. 새로 옮긴 유치원이 엄마 회사랑 엄청 가까워요.]그 말에 하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희민이가 어디로 옮겼는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어느 유치원인데?][청담 국
“그럼 오후에 애들을 데리고 가봐야겠어.”“그래, 혹시 운전기사가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면…….”“당연히 괜찮지. 오후에 같이 가자.”오전 10시, MK.유준은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존슨에게 전화를 걸었고, 존슨은 전화를 받자마자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제가 졌네요, 그렇죠?”유준은 입꼬리를 올렸다.“이제 약속을 지키셔야겠네요.”“제가 뭘 하면 되죠?”“이미 김제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유준이 낮게 깔린 어조로 물었다.“직접 뵙고 말씀드려도 될까요?”“저에 대해 꽤 많은 정볼르 알고 계시네요. 레스토랑 위치 보내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오세요.”존슨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준의 핸드폰에 존슨이 보낸 레스토랑 위치가 도착했다.“15분 뒤에 봅시다.”유준은 겉옷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레스토랑.유준은 존슨이 얘기한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마자 초록색 상의와 붉은 바지를 입고, 세련된 짧은 머리와 진한 화장을 한 존슨이 보였다.존슨도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정유준 쪽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둘 다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정?”존슨이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유준도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참 뒤에야 이름 두 글자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레아?”그 이름이 언급되자 존슨은 눈에 띄게 긴장해 하는 게 보였다.존슨은 유준의 등 뒤로 보이는 문을 바라봤다.“일단 그 문부터 닫고 얘기해.”유준은 문을 닫은 뒤 테이블로 다가왔다.“여기서 누가 알아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존슨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그래도 그 이름은 다시는 언급하지 마.”유준은 존슨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는 존슨이 레아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 했다.레아는 그가 S국에서 만난 집주인이었다.그때 어머니가 S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학교 재학 중에 S국으로 떠났었다.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싫어서 학교 밖에 오피스텔을 하나 맡았는데, 집주인이 바로 레아였었다.레아도 꽤 고달픈 삶을 살고
존슨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더니 시선을 거두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정, 지금 내 제자의 회사를 누르려는 거야?”존슨의 담담한 어조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다고 할 수 있죠.”유준은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이유를 얘기해 봐.”“디자이너들이 명성을 쫓는 것처럼 우리 사업가들도 이익만 추구할 뿐입니다. 회사의 장래를 위한 일인데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다른 사람이라면 아무 말도 안 하겠지만, 내 제자를 상대하는 건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이 안 들어?”“왜죠?”유준이 되물었다.“제자한테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그러자 존슨이 웃었다.“정, 지금까지 너에 대한 기사라면 나도 많이 봤어. 교섭이라면 내가 너를 이길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회사 일을 도와달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다만 제자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나한테도 선이란 게 있거든.”유준은 천천히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제자에 대한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요?”“그럴 필요 없어. G의 실력이라면 다들 알고 있으니까.”“제자가 존슨을 뛰어넘을 실력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존슨은 침묵을 지켰고, 유준도 더는 뭐라하지 않았다.이정도까지 얘기했는데도 만약 존슨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더 말을 많이 해도 의미가 없었다.한참 뒤에 존슨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하더니 테이블에 컵을 쾅하고 내려놓았다.“좋아,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유준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얘기하세요.”“나한테 언제든 이 계약을 끝낼 권리가 있어!”“그리고 작업 공간도 내가 알아서 정해.”“적어도 1년은 채우셔야 합니다.”유준은 존슨의 요구를 전부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애써 모셔온 의미가 없으니까.존슨은 한참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좋아. 원고 재촉하지 마.”“최소한 2개월 내에 디자인 초안은 제출하셔야 합니다.”“문제없어.”오후.하영은 아크로빌로 돌아와 간단히
진석은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세희야, 나 보고싶지 않았어?”세희는 신나는지 두 다리를 흔들며 대답했다.“보고싶었어요! 엄청 보고싶었어요!”세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웃었다.“그런데 왜 한 번도 진석 아빠 얘기를 하는 걸 못 봤지?”세희는 얼른 고개를 돌려 세준을 째려봤다.“오빠는 마음으로 보고싶어하는 게 어떤건지 모르지?”‘정말 얄밉다니까!’세희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진석은 두 녀석 덕분에 웃음을 터뜨렸다.“이따가 학교에 갈건데 긴장되지 않아?”세준은 의자에 편안히 기대 앉으며 입을 열었다.“저는 괜찮은데 세희는 긴장할 것 같네요.”그러자 세희가 코웃음을 쳤다.“나 그런 겁쟁이 아니야!”“글쎄?”세준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하영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두 귀염둥이를 바라보며 그간의 속상했던 일들이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았다.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고지훈 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원장님, 혹시 지금 학교에 계신다면 애들을 데리고 잠깐 만나뵙고 싶어요.]문자를 보내자마자 원장한테서 답장이 날아왔다.[강 대표님, 언제쯤 도착하세요?]하영은 시간을 확인했다.[2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네 그럼 학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2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차는 청담 국제 학교 앞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세희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우와, 엄마! 여기 학교 너무 예뻐요! 우리가 다니던 유치원보다 훨씬 커요!”하영도 웃으며 부지 면적이 엄청 큰 학교를 바라보았다. 전부 유럽 양식의 건축이라 싫어하는 애들이 없을 것이다.하영은 세희의 손을 잡고 물었다.“세희야, 마음에 들어?”“네!”세희가 흥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마음에 들어요!”그에 비하면 세준은 가만히 있었다.세준은 사영의 곁에 서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금빛으로 된 교문을 살펴보았다.엄마가 희민이를 자주 만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이 학교에 입학해야 했다.곧 원장님이 하영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하영과
하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원장 선생님, 오늘 저도 그 문제 때무에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하여의 말에 원장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이 말씀인가요? 아니면 두 명 전부요?”“세준이요. 다른 한 명은 정희민이라고 하는데 이미 입학했어요.”그 말에 원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유준 대표님의 아이가 강 대표가 낳은 아이라고?’교장은 부진석을 힐끔 쳐다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강 대표님, 애들을 저희 학교에 보내면 안심하셔도 돼요. 저희가 잘 가르칠 자신이 있거든요. 그리고 며칠 전에 애들의 교복 디자인을 받았는데 아버지께서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하영이 웃으며 답했다.“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30분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선생님 두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그리고 기쁜 표정으로 교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교장 선생님, 두 아이가 먼저 저희한테 입학 시험을 내달라고 하더군요. 성적이 나왔는데 두 아이 전부 입학 기준에 충분히 부합되고 있어요.”교장도 격동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잘 됐네요! 강 대표님, 괜찮으시면 바로 전학 수속 밟으시죠!”하영도 깜짝 놀랐다.아이들이 스스로 시험을 제안하고 또 통과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세 아이의 아이큐는 모두 높았고, 확실히 정유준의 유준자가 강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영아?”부진석이 부드러운 어조로 멍 때리고 있는 하영의 이름을 불렀다.하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죄송해요. 애들의 테스트 결과가 너무 의외라 잠시 정신이 팔렸네요. 원장 선생님, 최대한 빠르게 전학 수속 밟을 테니까 앞으로 애들을 잘 부탁드려요.”“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똑똑한 아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네요.”일이 확정된 후, 하영은 인나와 캐리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렸다.인나는 바로 하영과 캐리를 단톡 방에 초대했다.“대박 사건! 저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축하해야지!”“나도 찬성! 두 아이의 첫 번째 인생의
하영이 웃었다.“오빠, 나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 아직까지 오지 않으니 나와서 전화라도 하려고 했지.”그러자 예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봐?”“글쎄?”하영이 예준을 놀리기 시작했다.“우리 하영이도 이렇게 똑똑한데 오빠가 둔해서 되겠어? 얼른 올라가자.”“그래.”그때 길 건너편에서 정유준이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다리 위에 놓인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표정은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욱이 서둘러 고개를 숙여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아, 도착한 거 같은데 이만 내릴까?”희민은 정신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현욱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고 한참만에야 대답했다.“네.”유준을 바라보는 현욱의 눈빛은 잔뜩 신나보였다.‘오늘 또 정유준이 질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네!’현욱은 희민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고, 유준이 꼼짝도 하지 않자 일부러 모르는 척하면서 말을 건넸다.“유준아, 가자. 뭘 멍 때리고 있어?”유준은 레스토랑 입구에서 시선을 거둔 뒤, 차문을 열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레스토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현욱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희민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희민은 약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아저씨,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안 돼요?”현욱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희민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미안, 아저씨 다리가 길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희민은 따라갈 수 없는 게 아니라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레스토랑에 들어선 후, 유준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하영의 모습을 찾았다.한참 둘러봐도 하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때 파티룸에서 세희의 즐거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유준이 파티룸 쪽을 들여다봤을 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현욱도 유준의 시선을 따라 하영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강하영 씨와 관련된 남자들
현욱은 강하영의 입에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얼른 희민을 하영의 품에 안겼다.“그럼 사양하지 않을게.”현욱은 바로 인나랑 얘기하러 가버렸다.하영은 희민을 안고 정유준 쪽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괜찮으면 자리에 앉아요.”유준은 하영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세 남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어디 앉으면 적당할 것 같아?”그 말에 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죠?”“지금 남자친구인 소예준 곁에 앉을까, 아니면 너랑 썸타는 관계인 캐리 곁에 앉을까? 그것도 아니면, 네 자식들이 아빠라고 부르고 너랑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는 부진석 옆에 앉을까?”그러자 하영의 안색이 바로 굳어졌다.“정유준 씨, 당신…….”하영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제정신이냐는 단어를 겨우 삼켰다.희민이도 있는데 너무 듣기싫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캐리도 불쾌한지 입술을 삐죽였다.“정유준 대표님, 참석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요.”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캐리를 쳐다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곁에 있던 의자를 당겨서 자리에 앉았다.희민이 차가운 손으로 하영의 손을 잡았다.“엄마, 저 안을 필요 없어요. 힘들 텐데 그만 내려주세요.”상처도 다 낫지 않았을 텐데 괜히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희민을 내려놓은 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희민아, 요즘 밥 제대로 안 챙겨 먹었지?”그러자 희민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그게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요. 걱정하실 필요없어요.”하영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민의 곁에서 보살펴 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세 아이가 다시 뭉쳐서 즐겁게 놀기 시작했고, 하영도 다시 예준의 곁에 앉았다.캐리도 따라오더니 하영의 왼쪽에 자리 잡았고, 하영은 예준과 캐리의 사이에 끼고 말았다.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유준의 표정이 새파랗게 변했다.그는 속에서부터 끓어
“아니.”하영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애들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월반한 걸 축하해주고 있어요.”“세준과 세희도 월반했어?”현욱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우리 희민이도 월반했는데!”인나는 그런 현욱을 흘겨보았다.“그게 현욱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당연히 있죠! 바로 하영 씨와 유준의 유전자가 엄청나다는 뜻이잖아요. 애들이 다 이렇게 똑똑한 걸 보면 나도 분발해야겠어요. 앞으로 우리도 이렇게 똑똑하 아이를 낳아야죠!”인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부끄럽지도 않아요?”“전혀요!”현욱이 말을 이었다.“나는 지금 우리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잖아요.”말을 마친 현욱은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소예준, 안 그래?”소예준은 화를 꾹 참으며 현욱을 바라보았다.“세준이와 세희는 내 아이야.”곁에 있던 캐리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야? 내가 뭘 놓쳤지? G가 지금 자기 오빠랑 손 잡고 정유준 앞에서 연기하는 거야?’눈치 빠른 현욱이 캐리의 표정을 포착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캐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그럴 리가 없을 텐데…….’캐리는 하영의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데 애들과 소예준의 관계를 모를리 없었다.현욱은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캐리, 술도 많이 못 마시면서 왜 또 술을 마셔요? 지난 번에 있었던 일 기억 안 나요?”캐리는 현욱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방금 뭐 라고 했어요?”그러자 현욱은 애꿎은 표정으로 다시 반복했다.“술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왜 술을 마셔요?”그 말은 캐리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주량이 약하다느 말은 또 처음 들어보네요! 지난 번은 지난번이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붙어봅시다!”현욱의 눈가에 예리한 빛이 스쳤다.‘오늘 어떻게든 내가 알아내고 말 거야!’“좋아요! 끝까지 상대해 줄게요!”캐리는 씩씩 거리며 술을 주문하고 현욱과 결판을 내고자 했다.정유준과 소예준 사이의 말다툼이 잠시 중단되자, 하영은 얼른 예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